이춘근 연세대 정치외교학, 미국 텍사스대 정치학 박사,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한국국제정치학회 부회장, 이화여대 겸임교수,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선임연구위원
이춘근
연세대 정치외교학, 미국 텍사스대 정치학 박사,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한국국제정치학회 부회장, 이화여대 겸임교수,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선임연구위원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리는 제2차 미·북 정상회담에 대해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양측 정상이 다룰 사안은 국가의 사활이 걸린 심각한 주제인 만큼 정상회담 몇 번으로 해결될 일은 아닐 것이다. 특히 현실주의 국제정치 이론가인 필자는 이 회담이 원하는 목표를 얻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고 비관적으로 보는 편이다. 이 글은 그런 이유에 대한 설명이다.

김정은이 트럼프를 만나서 해야 할 핵심 주제는 핵무기를 폐기해야 하느냐 마느냐 하는 것이다. 핵무기는 김일성 이래 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사실상의 세습 왕조가 체제 보존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가난한 국력을 총집결해 만든 것이다. 북한 정권이 핵무기를 만든 것은 정권의 사활과 직결되는 일이었다. 지금부터 거의 70년 전인 1950년 6월 25일 북한은 소련과 중국의 지원 약속을 등에 업고 한국전쟁을 도발했지만, 그 과정에서 중국, 소련이 보인 태도에 김일성은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소련은 전쟁의 배후 세력이 아님을 변명하고 회피하느라 급급한 나머지, 유엔 안보이사회에 불참함으로써 미국이 주도하는 유엔군 결성을 막지도 못했다. 미국은 소련이 결석한 틈을 타서 사상 최초이자 마지막이 된 전투 부대로서의 유엔군을 만들어 당당한 모습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했지만, 차후 한국전 참전 소련 조종사들은 그들의 참전을 숨기기 위해 서툰 한국어로 교신을 해야 했을 정도였다.

북한을 피로써 지원한 건 중국이지만 중국이 북한에 파견한 군대는 ‘중국인민해방군’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조차 숨기고 왔다. 중국 정부와 관계 없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인민지원군’이라는 이름으로 왔던 군대는 김일성에 대해 극도의 무례를 범하기 일쑤였다. 인민지원군 사령관 팽덕회가 부하들이 많이 보는 앞에서 작전 실패로 중공군 다수를 위태롭게 만들었던 김일성의 뺨을 때렸다는 일화조차 있을 정도다.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부터 김일성은 독자적으로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이를 위해 핵무기는 필수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1960년대 중반 김일성은 일본 의원들 앞에서 “우리도 원자탄을 생산하게 됐다. 미국이 원자탄을 사용하면 우리도 원자탄을 사용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한 바 있다. ‘핵 보유’라는 염원을 말한 것이다. 김일성이 살아있을 당시 김정일은 “수령님 대에 조국을 통일하자면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그래야 마음 놓고 조국 통일 대사변을 주동적으로 맞이할 수 있다”라고 핵전략을 완전히 이해한 사람이라야 할 수 있는 발언을 했다. 소련이 붕괴하고 중국마저 한국과 수교한 후 김정일은 “믿을 것은 핵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후 국민들이 수백만씩 굶어 죽는 판에도 핵 개발에 매진한 북한은 2017년 1월 1일 비록 과장이 심하기는 했지만, 김정은이 ‘내 사무실에는 미국을 공격할 수 있는 핵 단추가 놓여 있다’고 호언장담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한 것이다.

물론 김정은의 이 언급은 전략적일 뿐 완전한 거짓이다. 정말 북한이 미국을 핵 공격할 수 있다면 그것은 북한의 핵전략이 완결된 상태이며 미국과 핵 폐기 회담을 벌일 아무런 이유가 없는 상황인 것이다. 아직은 미국을 공격할 수 없기에 김정은은 대화장으로 나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김정은이 할아버지 대 이래 지금까지 정권의 생존을 위해, 목숨을 걸고 만든 무기를 ‘대화’로 폐기하자고 논한다는 사실 자체가 과연 가능한 일일지를 생각해야 할 정도다.

김정은이 미국과 핵 폐기 논의를 시작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동해에 항공모함을 3척씩 가져다 놓고 으름장을 놓았던 미국의 대북한 포함외교(Gunboat Diplomacy)의 결과라고 봐야 한다. 제1차 회담에서는 두루뭉술하게 앞으로 잘하자고 말할 수 있었지만 2차 회담은 구체적인 그 무엇이 나와야 하기 때문에 김정은으로서는 더욱 스트레스가 쌓이는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제2차 미·북 정상회담을 앞둔 하노이 거리 상점에서 성조기와 인공기를 함께 판매하고 있다. 사진 AP 연합
제2차 미·북 정상회담을 앞둔 하노이 거리 상점에서 성조기와 인공기를 함께 판매하고 있다. 사진 AP 연합

핵 폐기는 북한 정권의 사활 걸린 문제

미국은 전통적으로 절대 안보(absolute security)를 추구해 온 나라다. 적어도 그것을 목표로 노력해 왔다. 그런데 북한이 미국 본토를 공격할 핵무기를 보유한다는 것은 미국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북한이 실상 미국의 ‘전략적 경쟁자(strategic rival)’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핵을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에 이르렀다. 오바마와 트럼프의 북핵 접근이 다른 이유는 트럼프 재임 기간에 북한의 핵폭탄이 미국에 도달할 것이 확실시됐기 때문이다. 오바마와 달리 트럼프는 시간적인 여유가 없다. 북한 핵을 제거해야 하는데 미국은 우선 대화의 방식을 택하는 중이다.

미국은 북한의 핵이 미국에 도달하는 것은 무조건 막아야 한다. 그런데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을 만들지 않을 경우 현 수준에서 적당히 봉합하고 넘어갈 수 있을까? 이 부분을 우려하는 사람들이 대단히 많다. 핵전략 이론상 ‘현 수준에서의 동결’ 역시 미국이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북한의 핵이 한국, 일본을 공격할 수 있을 때 한국, 일본은 어떻게 반응할까? 특히 거의 당장 완전한 핵보유국이 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일본은 핵무장을 결단할 것이다. 일본의 핵무장은 북한보다 미국에 훨씬 위험한 핵무장 강대국의 출현을 의미한다. 한국과 대만 역시 핵무장의 길로 나갈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 역시 미국의 이 같은 미봉책에 분노할 것이다. 자금이 부족한 북한이 이란, 이라크 등에 핵폭탄을 판매할 가능성을 가장 두려워하는 이스라엘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제1차 회담에서 북한은 핵을 폐기하고 한국전쟁 당시 북한 지역에서 전사한 미군 실종자들의 유해를 보내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회담 성공을 서로 자축했다. 그 후 8개월여가 지난 지금 제2차 회담에서는 그 진행 상황이 점검되어야 하고 더 구체적인 것이 나와야 한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경제 제재 일부 해제, 연락사무소 설치,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북한 측의 핵 사찰 수용 등이 회담에서 약속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하나같이 어려운 사안들이 아닐 수 없다. 북한이 과연 미국의 연락사무소를 평양에 개설해 줄 수 있을까? 개방을 체제의 위험으로 간주하는 북한 아닌가? 달팽이가 움직이는 속도로 진전이 있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시간은 무한하지 않다. 특히 트럼프는 재선을 위한 선거를 바로 1년 앞에 두고 있다. 이미 미국의 정보기구들은 “김정은은 자신 체제의 정통성 여부 때문에 핵 폐기가 불가능하다”라고 분명한 결론을 내렸다.

이번 하노이 회담에서 김정은은 북한 핵이 폐기될 수 있다는 근거를 보여주지 않는 한 앞으로 대단히 곤란한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트럼프의 경우 손바닥을 뒤집어 판을 깨버릴 수 있는 전략적 옵션이 하나 더 있기는 하다. 그러나 트럼프 역시 북한의 핵 폐기를 이뤄내지 못할 경우 허풍쟁이 취급을 받으면서 국내 정치에서도 곤란한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