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LA의 캐주얼 패션 브랜드 아메리칸어패럴이 1년여 만에 또 파산보호 신청을 했다. 지난해 1차로 파산보호 신청을 한 아메리칸어패럴은 새로운 CEO 폴라 슈나이더의 지휘 아래 회생 노력을 했지만 답을 찾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사진 : 블룸버그>
미국 LA의 캐주얼 패션 브랜드 아메리칸어패럴이 1년여 만에 또 파산보호 신청을 했다. 지난해 1차로 파산보호 신청을 한 아메리칸어패럴은 새로운 CEO 폴라 슈나이더의 지휘 아래 회생 노력을 했지만 답을 찾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사진 : 블룸버그>

1989년 다소 파격적인 시도들을 선보이며 패션업계에 등장한 기업이 있다. 바로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에 본사를 둔 캐주얼 패션 브랜드 ‘아메리칸어패럴(American Apparel)’이다. 자라(ZARA), H&M 등 SPA 브랜드의 원조격이라고 할 수 있는 이 기업은 ‘안티 브랜드 패션 기업’ ‘환경 보호에 앞장서는 윤리적인 기업’ ‘이민자 적극 채용 및 직원 복지 추구 기업’ 등을 표방하며 시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설립자(전 CEO)인 도브 차니(Dov Charney)는 캐나다 몬트리올 출신으로 미국 터프스대 1학년을 다니다가 아메리칸어패럴을 만들었다. 대학을 중퇴한 그는 아버지에게 1만달러를 빌려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로 가서 사업을 시작했다. 20명의 여직원을 채용해 에어컨도 없는 열악한 환경에서 티셔츠를 제작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기업이 독특하다고 평가받은 이유는 여러 가지다. 많은 기업들이 싼 노동력을 찾아 중국·멕시코 등 해외로 떠날 때, 아메리칸어패럴은 반대로 LA 한복판에 공장을 마련했다. 그리고 아시아·라틴아메리카 등지의 이민자를 채용해 경쟁사의 2배 가까운 임금을 줬다. ‘옷을 만드는 사람이 건강하고 행복한 환경에서 만들어야 그 옷을 입는 사람도 행복할 수 있다’는 도브 차니 전 CEO의 생각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저임금·비인간적인 대우 등 노동력 착취 현장을 뜻하는 스웻숍(sweatshop)을 반대하는 ‘안티 스웻숍’, 이민 노동자들을 위한 ‘Legalize LA’ 캠페인 등 사회적 기업 활동을 통해 독자적인 기업 이미지를 구축해나갔다. 옷감과 종이, 플라스틱을 재활용해 쓰레기 배출을 최소화했고, 태양열 발전을 활용해 전기 절약에 앞장서는 등 환경에 있어서도 남다른 모습을 보였다.


설립 10년 만에 직원 20명에서 5000명으로

회사가 의류의 기획과 생산, 판매를 모두 하는 SPA 개념이 없던 당시에 자체 생산을 고집한 차니 전 CEO의 경영 스타일은 찬사와 비난을 동시에 받았다. 또 경쟁사보다 훨씬 많은 임금과 최고의 복지 수준을 보장하는 것에 우려의 목소리도 높았다. 이러한 찬사와 비난은 아메리칸어패럴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을 키웠고, 매출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

아메리칸어패럴은 값싼 임금 대신 현지 생산 체제에 초점을 맞춰 재고 회전율을 높이고, 재고 비용을 최소화했다. 소비자 수요에 대한 발 빠른 대응으로 매장 내 재고 물량을 대폭 줄였다. 아메리칸어패럴의 신규 제품이 매장에 진열되는 시간은 채 4일이 걸리지 않는다. 이런 유통 방식을 토대로 아메리칸어패럴은 설립 10년 만에 직원 5000명, 전 세계 300여개 매장을 보유한 매출 2억달러 규모의 의류 회사로 성장했다. 적극적인 해외시장 진출로 세계 각지에 사업 거점을 마련했다. 한국에는 2003년에 진출해 명동, 압구정동, 부산 등에 매장을 냈다. 진출 2년 만인 2005년 연간 매출은 57억원이었다. 학계와 업계는 아메리칸어패럴의 성공 요인을 분석하고 적극적으로 벤치마킹에 나섰다.

이런 가운데 최근 들려오는 아메리칸어패럴 파산 소식은 업계에 큰 충격을 줬다. 뉴욕증권거래소는 2015년 10월 파산보호를 신청한 아메리칸어패럴의 거래를 정지시키고 상장폐지 절차를 밟았다. 같은해 6월 기준, 회사의 현금 보유량은 690만달러였으나 미지불 채무는 3840만달러에 달했다. 차니 전 CEO를 대체한 폴라 슈나이더 CEO의 지휘 아래 빚을 삭감하고 자금을 투자하는 등 회생 노력을 했지만 결국 올해 11월 2차 파산보호 신청까지 하게 됐다.

이에 대해 성추문 문제로 2014년 회사를 떠난 차니 전 CEO는 “회사가 파산신청을 하는 등 어려운 것은 자신이 없기 때문”이라고 발언했다. 아메리칸어패럴은 브랜드 관련 지적재산권도 캐나다 의류업체 길단 액티브웨어에 6600만달러에 판매하기로 했다.


실패 요인 1 |
이민자 정리해고 후 엄청난 손실

회사의 문제는 차니 전 CEO가 해임되기 전부터 발생하기 시작했다. 2009년 미국 이민 당국이 조사를 벌여 아메리칸어패럴 공장에서 근무하는 불법 체류 직원 1800여명을 적발한 것이다. 적발된 직원들은 노동허가서가 없거나 가짜 사회보장번호를 이용해왔다. 이민 당국은 합법적인 신분임을 증명한 300여명을 제외한 1500여명에게 해고 통보를 내렸다.

스스로도 이민자인 차니 전 CEO는 이민자들을 고용하고 좋은 대우를 해주는 일관된 전략을 펼쳐 왔다. 매년 5월 1일에 이민자 퍼레이드에 직원들이 참가하는 것을 허용하기 위해 그날을 휴일로 지정했을 정도로 이민 정책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왜 비싼 급여를 주고 이민자를 고용하느냐”는 질문에 “그들은 미국에 꿈을 이루려고 왔고, 나는 미국이 그 꿈을 이루게 해주길 바란다. 불법 이주 노동자라고 할지라도 그들에게 가족이 살 수 있을 정도의 돈을 줘야 하는 게 당연하다”고 답하기도 했다. 그런데 정부가 이민자들에 대한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면서 LA 공장 직원 절반 이상을 정리해고시켜야만 했던 것이다.

아메리칸어패럴은 체류 신분이 불확실한 직원 1500명을 해고했고, 동시에 직원 1000여명이 추가로 퇴사를 결정했다. 5600여명의 전체 직원에서 절반가량이 그만두면서 인력 공백이 커졌고, 대체 인력 채용 및 교육을 위해 추가로 엄청난 비용이 들었다. 약 3만5000달러의 벌금을 냈고, 제품 출하가 지연되면서 손실이 발생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듬해 면직물 가격이 급등하면서 위기를 불러왔다.


직원들이 아메리칸어패럴 광고 사진이 전시돼 있는 벽 앞에 서 있다. 아메리칸어패럴은 2015년 봄 시즌 마케팅으로 회사를 대표하는 100가지 스타일을 집중 홍보했다. <사진 : 블룸버그>
직원들이 아메리칸어패럴 광고 사진이 전시돼 있는 벽 앞에 서 있다. 아메리칸어패럴은 2015년 봄 시즌 마케팅으로 회사를 대표하는 100가지 스타일을 집중 홍보했다. <사진 : 블룸버그>

실패 요인 2 |
선정적 광고로 갈 곳 잃은 마케팅

아메리칸어패럴 제품에는 브랜드 로고가 없다. 브랜드가 주는 가격 거품을 빼고 실용적인 옷으로 승부하겠다는 전략이다. 현재 많은 SPA 브랜드가 이 같은 방식을 채택하고 있지만, 당시에는 신선한 전략이었다. 아메리칸어패럴은 같은 디자인의 옷을 다양한 컬러로 선보여 소비자들을 공략했다. 250여개의 원색과 350여개의 혼합색을 사용해 비슷하면서도 색다른 스타일의 의류를 제공했고, 이는 아메리칸어패럴 제품을 차별화하는 특징이 됐다.

특별한 스타일을 한정적으로 내세우지 않기 때문에 마케팅을 위해 특정 스타 모델의 이미지와 결부시킬 필요가 없었다. 차니 전 CEO는 직접 일반인들을 섭외해 수수한 스타일의 아메리칸어패럴 의류를 입은 모습을 촬영했다. 누구나 입을 수 있고, 일상적이지만 평범하지 않은 스타일을 연출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그러나 아메리칸어패럴은 2000년대 후반부터 미성년처럼 보이는 여성 모델을 고용해 선정적인 광고 사진을 촬영해 논란을 빚었다. 여성 모델이 마치 윗옷을 벗는 듯한 모습, 또는 외모나 차림새에 비춰 아동으로 보일 만한 모델이 성적 대상으로 보이게끔 촬영한 광고 사진 등을 전면에 내세워 마케팅을 펼쳤다.

영국광고표준위원회 등 여러 국가와 기관에서 아메리칸어패럴 광고를 금지 조치하기도 했지만, 아메리칸어패럴 측은 “문제의 모델은 이미 성인이다” “지나치게 선정적이거나 부적절한 장면은 아니다” 등의 입장을 보였다.

이러한 마케팅은 기존에 형성된 이미지와 동떨어진 채 대중의 반감만을 불러일으켰다. ‘일상에서의 평범하지 않은 스타일’을 내세우며 차별화된 마케팅을 펼쳐왔던 회사는 마케팅에서도 ‘실패’의 역사를 하나 기록했다.


논란을 불러일으킨 아메리칸어패럴의 선정적 광고들. <사진 : 아메리칸어패럴>
논란을 불러일으킨 아메리칸어패럴의 선정적 광고들. <사진 : 아메리칸어패럴>

실패 요인 3 |
성추행 파문 휩싸인 CEO

경영은 물론 디자인까지 관여하며 ‘아메리칸어패럴 그 자체’로 불렸던 설립자 도브 차니는 경영 악화와 각종 성추문에 휘말리며 2014년 6월 CEO에서 해임됐다. 이후 그간의 공로를 인정받아 회사 고문으로 남아있던 그는 반 년 만에 고문직에서마저 퇴출됐다. 그가 회사에서 쫓겨난 이유 중 하나는 성추문이다. 차니는 자신의 집 지하실에 노골적인 성적 사진을 전시하고 속옷 차림으로 회사 공장을 둘러보는 등 노출증이 있다는 의혹을 받아 왔다.

또 2011년에는 여성 종업원이 그가 자신을 성노예로 부려 왔다고 소송을 걸었다. 이외에도 수차례 여직원을 성폭행했다는 의혹 등으로 기소된 바 있지만 대부분 소송이 취하되거나 합의로 끝났다. 이사회는 결국 회사 공금을 유용하고 직장 내 성희롱 정책을 위반했다는 이유를 들어 차니 CEO를 해임했다.


실패 요인 4 |
성장 제자리인데 임금 비용은 증가

‘Made in Downtown LA’. 아메리칸어패럴 제조공장에는 이러한 문구가 붙어 있다. 아메리칸어패럴은 LA 시내에 공장을 둬 접근성을 확보하고 빠른 재고 회전 시스템으로 성공한 대표적인 경우다. 그러나 경제 위기로 전반적인 의류 소비가 줄고, 각종 위기 요인으로 회사의 매출이 줄자 LA의 비싼 임금과 기반 비용을 충당할 수 없게 되면서 난관에 부딪혔다.

뉴욕포스트에 따르면, 아메리칸어패럴은 캘리포니아주보다 최저임금이 낮은 지역으로 본사를 옮길 계획을 세우고 있다. 오는 2020년까지 최저임금을 시간당 15달러로 인상하겠다고 발표한 LA의 안이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아메리칸어패럴 LA 건물의 임대계약은 2019년 만료될 예정이다. 수년간 경영난을 겪고 있는 아메리칸어패럴은 올해 초 호손 지역의 염색 공장과 사우스게이트의 데님 공장을 폐쇄했다. 지난 10월엔 LA의 니트직물 공장도 운영을 중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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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Specialty store retailer of Private label Apparel) 제조 소매 의류. 회사가 의류의 기획·디자인부터 생산·물류·판매까지 수직통합해 일괄적으로 관리하는 사업 모델이다. 유행에 발 빠르게 대응해 적당한 질의 제품을 저렴하게 대량 공급하는 방식을 주로 취한다.
사회보장번호(social security number) 미국에서 출생 시 공식적으로 부여되는 개인 신원 번호.

Plus Point

창업자 정신 강했던 도브 차니

캐나다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 도브 차니는 건축가 아버지와 예술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캐나다인이지만 불어를 사용하는 퀘백주에서 생활했고, 어렸을 때부터 몬트리올과 뉴욕을 자주 오갔다. 그는 유대인 어머니 밑에서 자라면서 유대인 특유의 경영 능력과 경제 관념을 배웠으며, 예술학교를 다니면서 미적 감각을 키웠다.

그는 어려서부터 남다른 창업가 정신과 독립성을 지니고 있었다. 어린 시절 그의 첫 사업은 깨끗한 빗물을 마요네즈 병에 담아 이웃들에게 파는 것이었다. 그는 이때부터 무언가를 팔아서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11살에는 자신의 신문을 편집해 학교 근처에서 20센트에 팔았고, 이 일로 정학을 당하기도 했다.

1989년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그는 미국 의류 브랜드 헤인즈(Hanes)와 프룻오브더룸(Fruit of the loom) 티셔츠를 캐나다로 수입해 학교 친구들에게 판매했다. 고등학교 시절에만 약 1만장의 티셔츠를 팔았다. 이후 자신이 수입해 팔았던 헤인즈를 경쟁 타깃으로 두고 18가지 티셔츠를 만든 것이 ‘아메리칸어패럴’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