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과 인공지능이 많은 일자리를 대체하고 소득 불평등을 악화시키고 있다며 로봇세 도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홍콩 공항에 있는 소프트뱅크의 안내 로봇 ‘티미’의 모습. <사진 : 블룸버그>
로봇과 인공지능이 많은 일자리를 대체하고 소득 불평등을 악화시키고 있다며 로봇세 도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홍콩 공항에 있는 소프트뱅크의 안내 로봇 ‘티미’의 모습. <사진 : 블룸버그>

‘켄’은 20년 동안 ‘루크’ 소유의 대규모 농장에서 일했다. 켄은 농장에서 일하며 번 돈으로 가정을 꾸렸고, 정부는 켄이 낸 소득세와 사회보장세로 재정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그런데 변화가 생겼다. 루크가 켄을 해고하고 그가 하던 일을 로봇 ‘넥서스’에게 맡긴 것이다. 루크는 넥서스에게 월급은 물론 휴일도 주지 않았지만 생산량은 전보다 크게 늘었다. 루크는 더 많은 돈을 벌었다. 반면 켄은 실업자가 됐다. 이웃 농장도 노동자 대신 로봇을 사용하면서 켄의 실업 기간은 길어졌다. 정부 곳간 사정도 어려워지게 됐다. 세금 낼 노동자는 일자리를 잃었는데, 이들을 대체한 로봇은 세금을 내지 않기 때문이다.

로봇과 인공지능(AI)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이런 사례는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로봇이 인간의 모든 일자리를 대체하면서 대규모 실업이 발생할 것이라는 공포도 커졌다. 로봇에게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는 ‘로봇세(robot tax)’ 논쟁이 가열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가 최근 “로봇세를 도입해 이 재원을 자동화에 따라 실직한 노동자를 재교육하는 데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논쟁에 불을 붙였다. 프랑스 사회당 대선후보 베누아 아몽을 비롯한 정치인들도 로봇세 도입을 지지하고 있다. 또 유럽의회는 로봇에게 ‘만든 물건이나 발생시킨 피해에 책임이 있는 전자화된 개인’이라는 법적 지위를 부여하는 내용의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로봇이 일자리 대체하는 한계점 지나”

사실 로봇 도입과 자동화 문제는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16세기 말 영국에서 개발된 방적기는 같은 시간에 근로자보다 10배 많은 실을 만들었고, 은행 자동입출금기(ATM)는 텔러 자리를 대신했다. 기술이 발전하며 제품을 만드는 데 필요한 시간과 노동의 양이 감소하는 패턴은 매 세기 반복됐다. 그동안에는 이런 자동화가 극심한 실업을 발생시키지는 않았다. 방적기 등장 이후 실을 만들던 사람들은 멋진 디자인의 옷을 만들었고, ATM이 현금을 지급하면서 텔러들은 기계가 하지 못하는 금융 상품 판매를 시작했다. 그런데 최근 자동화 양상은 다르다. 단순히 근로자의 노동 분야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노동 자체가 필요 없도록 하고, 아예 일하지 않는 사람이 부자가 되는 시대가 됐다. 게이츠는 “로봇이 일자리를 잠식하는 한계점이 이미 지난 것 같다”고 했다. 로봇이 집안일이나 운전 등 모든 분야에서 노동의 필요를 없애버리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자동화는 소득 불평등도 더 악화시키고 있다. 자본주의에서 노동자가 받는 임금은 언제나 자본가에게 돌아가는 이익보다 적었는데, 자동화는 그 차이를 더 벌렸다. 1973년부터 2011년 사이 생산성은 80.4% 증가했지만, 중산층의 실질 가처분 소득은 10.7% 증가하는 데 그쳤다.

로봇세 도입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로봇을 사용해 높은 이익을 얻는 사용자에게 추가 과세함으로써 자동화 속도를 늦추고 실업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로봇세가 기술 발전에 대한 반발을 줄임으로써 반발에 따라 새로운 기술의 등장이 좌절되는 상황을 막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또 로봇세 신설로 새로운 세원(稅源)이 형성되면 이 돈으로 노동자를 재교육하고 자동화에 따라 악화된 소득 양극화를 줄일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데이비드 아서 매사추세츠공과대학 경제학과 교수는 로봇세가 기존 조세정책의 역할과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아서 교수는 “정부는 통신망이 지역 전체에 구축되도록 통신에 세금을 부과하고, 공공주택을 짓기 위해 주택에도 세금을 부과한다”며 로봇세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반면 로봇세 도입에 비판적인 입장을 가진 전문가들은 기술 발전이 일자리 감소에 얼마나 영향을 주는지 증명하지 않는 이상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기업 자동화를 지원하는 ‘심포니벤처스’ 데이비드 풀 대표는 “로봇은 사람과 같이 단순한 단위로 구분할 수 없고, 일자리를 대체하는 로봇 대부분은 소프트웨어”라며 “로봇에 얼마의 세금을 부과할지 추정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앞으로 많은 로봇이 머신러닝(기계학습) 기능을 얻고, 높은 수준의 지능이 장착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 경우 일자리를 잡아먹는 시스템에 부과할 규칙을 만들어내기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반대론자는 기술 발전의 순기능 강조

미국 재무부 장관을 지낸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는 “항공기 탑승권을 발행하는 기계나 모바일뱅킹도 일자리를 줄였지만, 이런 기술에는 과세하지 않았다”며 “로봇을 일자리 약탈 주범으로 몰아 과세할 근거가 약하다”고 말했다.

40년 전까지만 해도 수십만명이 회계 종이에 숫자를 입력하는 점원으로 일했다. 그런데 스프레드시트 소프트웨어 ‘비지캘크(VisiCalc)’가 등장하면서 이런 노동은 필요 없게 됐다. 점원들은 당장 일자리를 잃게 됐지만 비지캘크는 새로운 고용 기회를 창출했다.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산업이 등장했다. 기술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내게 하면서 기존 일자리는 없애지 못하게 하는 노력 역시 불가능에 가깝다.

로봇세는 로봇과 인공지능 발전으로 탄생할 수 있는 새로운 산업을 방해할 수 있다. 로봇 업체 등을 지원하는 벤처캐피털 ‘렘노스랩스’의 제레미 콘래드 파트너는 “로봇세는 간접비용을 발생시켜 새로운 산업에 매우 해로울 것”이라고 말했다. 서머스 교수 역시 “로봇은 단순히 생산량을 늘리는 자동화 설비가 아니라 더 좋은 제품 등을 만드는 데 기여하고 있다”며 세금은 로봇의 이런 역할을 억제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로봇세 도입에 대한 찬반이 팽팽한 만큼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루치아노 플로리디 영국 하트퍼드셔대 정보철학연구학장은 “로봇이 가져오는 현실적인 위협은 그들이 악마가 돼 인간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고 경제적 불평등을 증폭시키는 것”이라며 “로봇세가 유용한 정책의 틀이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지만 중요한 대화를 시작하는 계기가 된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