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삶의 균형은 근로자들이 회사를 선택할 때 중요한 요소로 꼽는 것 중 하나다. 몇몇 기업들은 유능한 직원을 채용하기 위해 무제한 휴가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일과 삶의 균형은 근로자들이 회사를 선택할 때 중요한 요소로 꼽는 것 중 하나다. 몇몇 기업들은 유능한 직원을 채용하기 위해 무제한 휴가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일과 삶의 균형’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지금, 근로자들에게 휴가에 대한 통제권을 주는 것은 아주 매력적으로 보인다. 회사가 근로자들이 원할 때마다 휴가를 준다면 어떻게 될까. 누군가는 사무실이 텅 비고, 생산성이 떨어져 회사가 무너지는 모습을 상상할 것이다.

그럼에도 몇몇 회사들은 무제한 휴가와 병가를 허용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는 놀랍다. 넷플릭스가 2004년 무제한으로 신청할 수 있는 유급 휴가 정책을 발표하면서 주목받았다. 이후 제너럴 일렉트릭(GE), 링크드인, 버진그룹과 같은 회사들도 비슷한 정책을 채택했다.

이 정책은 회사와 직원 모두에게 이익이다. 경영진은 휴가를 관리하는 데 시간을 덜 쓸 수 있고, 근로자들은 밀린 휴가를 반납하는 대신 재충전의 시간을 갖기 위해 휴가를 떠날 수 있다.

그러나 몇몇 전문가들은 “무제한 휴가가 일부 분야에서만 더 나은 시스템이며,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다”라고 지적한다. 와튼스쿨의 경영학 교수인 매튜 비드웰은 “‘남들이 하면 나도 한다’는 생각으로 무분별하게 정책을 모방하는 회사들이 생겨날 것”이라며 “이러한 제도는 관료주의가 심하지 않고, 자유가 보장되는 사내 문화를 가진 기업에 적합하다”고 말했다.


‘무제한 휴가’ 회사 강점으로 홍보

일과 삶의 균형은 근로자들이 회사를 선택할 때, 중요한 요소로 꼽는 것 중 하나다. 많은 회사가 무제한 휴가 정책을 회사의 매력적인 면으로 홍보한다.

와튼스쿨의 HR(Human Resources) 센터장인 피터 카펠리 교수는 “숙련된 기술자들을 필요로 하는 기업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에 복지나 혜택 면에서 거품이 일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영진들은 자신들이 좋다고 생각하는 정책이나 제도를 만들지만, 경험이 많은 인력 관리 직원들의 평가나 승인을 거치지 않아 종종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몇몇 기술 회사가 도입한 무제한 휴가 정책은 몇몇 직원들에게는 ‘직장에서 성공하려면 아이 갖는 것을 미뤄야만 한다’는 메시지로 해석됐다.

무제한 휴가 제도가 좋기만 한 것처럼 보이지만 현실은 조금 다르다. 카펠리 교수는 “무제한 휴가 정책은 직장에서의 사회적 압력을 무시한 것”이라며 “이 압력은 휴가 가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고 했다. 언제, 얼마나 오래 휴가를 쓸 것인지는 직원에게 달려 있다. 직원들이 모두 한 프로젝트를 위해 팀을 이뤄 일하고 있을 때 휴가를 가는 것은 마치 해당 직원이 팀원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만약 직원들이 딱 2주간 휴가를 떠날 권리를 갖고 있다면, 이 권리를 활용하는 데는 압박감이 적다.

와튼스쿨의 경영학 교수 이완 바란케이는 “채택한 회사의 비율은 여전히 낮지만 무제한 휴가는 잠깐 주목받는 특권이 아니라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닌 것처럼 보인다”며 “회사가 이를 활용하는 올바른 방법을 찾아내는 데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휴가 제도는 회사 전체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는 문제다. 그럼에도 기업들은 이 정책을 어떻게 시행할지 더 많이 연구하고 있다. 현재까지 이 정책을 시행한 회사 중 어디에서도 휴가 신청이 폭주했다고 밝힌 곳은 없다. 오히려 사람들은 휴가를 덜 갔다. 그래서 몇몇 회사는 이 정책을 중단했다.

넷플릭스는 2004년 무제한 휴가 제도를 도입했다. 당시 넷플릭스는 “‘일하는 시간’이 아닌 ‘일의 성과’에 초점을 맞추겠다”고 밝혔다. <사진 : 블룸버그>
넷플릭스는 2004년 무제한 휴가 제도를 도입했다. 당시 넷플릭스는 “‘일하는 시간’이 아닌 ‘일의 성과’에 초점을 맞추겠다”고 밝혔다. <사진 : 블룸버그>


직원들의 미사용 휴가는 회사의 부채

왜 사람들은 휴가를 덜 썼을까? 비드웰 교수는 “관료주의가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미셸 크로지어가 저서 ‘관료주의 현상’에서 지적했듯이 관료주의는 사람들과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제약하지만, 또한 그것을 보호하기도 한다.

비드웰 교수는 “모두가 지켜야 할 규칙이 있다. 누군가가 당신에게 규칙과 다른 것을 하거나 변화를 만들라고 한다면 당신은 ‘허가받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 방식으로 관료주의는 사람들을 간섭으로부터 보호한다”고 말했다.

같은 원리로 기존의 휴가 규칙을 없애는 것은 규칙이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보호 역시 없애는 것과 마찬가지다. 최대 휴가 기간이 정해지지 않은 것은 휴가 받을 권리가 명확하게 정해지지 않은 것과 같다. 정해진 것이 없기 때문에 ‘마음껏 쉬어도 된다’와 ‘마음대로 하루도 쉴 수 없다’로 상반된 해석이 가능해진다. 그러므로 얼마나 휴가를 써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는 점점 더 어려워진다.

넷플릭스, 그럽허브(Grubhub) 등의 회사는 다양한 이유로 무제한 휴가 정책을 채택했다.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이유 중 하나는 휴가가 종종 회사의 대차대조표에 부채로 기록되기 때문이다. 직원들의 미사용 휴가에 대해 지급해야 하는 비용은 회사의 부채가 된다.

몇몇 회사들은 일과 삶의 균형을 장려하기 위해 무제한 휴가를 도입했다.

일부 근로자들은 미사용 휴가를 다음 해로 넘겨 사용할 수 있지만, 그러지 않은 경우도 있다. 이 정책은 이 경우에 발생할 수 있는 법적 문제를 피할 수 있도록 돕는다. 또한 연말에 미처 쓰지 못한 휴가들로 인력 공백이 발생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바란케이 교수는 “직원들에게 스스로 휴가 계획을 세우도록 허용하는 것은 직원들이 일과 가정 생활을 잘 조절할 수 있게끔 한다”고 말했다.

그는 “휴가 일수가 정해져 있을 때, 연초에 당신의 아이들이 아플 수도 있다. 당신은 출근하고 싶지 않지만, 휴가를 쓰고 싶지도 않기 때문에 어쨌든 일을 하러 갈 것이다. 그러면 당신의 능력 100%를 쓸 수 없기 때문에 생산성은 좋지 않을 것이다. 연말에 당신은 해야 할 일이 많아도 휴가를 갈 것이다. 휴가를 가지 않으면 휴가를 잃게 되기 때문이다. 이것 역시 비효율적인 일”이라고 설명했다.

이 두 가지 종류의 비효율성은 무제한 휴가 정책으로 해결될 수 있다. 현재 회사들은 좋은 선례를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일부 기업들은 정책에 대해 많이 생각하지 않고 정책을 실행했다가 폐기했다.

그런 회사 중 하나가 시카고트리뷴과 LA타임스를 발행하는 트론크(옛 트리뷴퍼블리싱)다. 트론크는 2015년 일부 직원들을 대상으로 무제한 유급 휴가 정책을 시행하면서 “앞으로 직원들을 성과와 잠재력에 따라 평가하겠다”고 했다. 휴가를 주는 권한은 관리자의 재량에 맡겼다. 1주일이 채 지나지 않아 잭 그리핀 당시 최고경영자(CEO)는 “정책이 회사 내에서 혼란과 우려를 불러일으켰기 때문에 폐지했다”고 말했다.

온라인 배송 서비스 업체 ‘그럽허브’는 2015년부터 정규직 직원들에게 무제한 휴가를 주고 있다. <사진 : 블룸버그>
온라인 배송 서비스 업체 ‘그럽허브’는 2015년부터 정규직 직원들에게 무제한 휴가를 주고 있다. <사진 : 블룸버그>


‘무제한 휴가’로 신뢰받는다 느껴

무제한 유급 휴가를 제공하는 기업의 비율은 수년간 단 1~2%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 제도를 주목하는 기업들은 늘고 있다. 리처드 브랜슨 버진그룹 회장은 2014년 “직원들이 원할 때 언제든지, 기간에 제약 없이 유급 휴가를 다녀올 수 있도록 하겠다”며 기존 휴가 제도를 없앴다. 브랜슨 회장은 넷플릭스의 휴가 제도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GE는 2015년부터 ‘관대한 접근(permissive approach)’이라는 이름으로 무제한 휴가를 실시하고 있다. 경영진과 선임 전문직군 등 3만명에게 혜택을 주고 있다. 정규직 직원의 약 40%에 해당하며, 그 수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인 그랜트 손턴(Grant Thornton)도 2015년부터 약 7000명의 직원에게 무제한 휴가를 주고 있다. 이를 통해 직원 간 신뢰도를 높이고 보다 수평적인 문화를 형성하겠다는 목표다. 직원들이 행복해지면 생산성 또한 높아진다는 것이 경영진의 철학이다.

GE의 HR 담당 이사인 에브렌 에센은 “특히 기술, 전문직, 금융 분야 기업이 직원을 채용하고 근속시키기 위해 무제한 휴가를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점점 더 많은 회사가 이 제도를 채택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다”고 했다. 예컨대 시간제 또는 서비스 산업의 회사들이 이를 도입하기엔 제약 조건이 많기 때문이다.

한 연구는 무제한 휴가 정책 도입과 직업 만족 간의 상관관계를 발견했다. 스웨덴 룬드대의 연구에 따르면 응답자들은 무제한 휴가가 도입되면서 회사에서 더 신뢰받는다고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 문화가 뒷받침되고 직원들의 참여도가 높을 때, 무제한 휴가 정책은 일과 삶의 균형 수준을 직접적으로 끌어올렸다. 연구자들은 “‘일과 삶의 균형’ 수준이 올라가는 것은 직업 만족에 긍정적이고 분명한 영향을 미친다”고 평가했다.

와튼스쿨의 법학연구 및 윤리학 교수인 제니스 벨래스는 “휴가 승인이 관리자의 재량에 달려 있을 때, 무제한 휴가는 때로 법적 문제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직원들을 여러 명의 관리자가 나눠서 관리할 경우 휴가에 관대한 관리자의 팀원은 그렇지 못한 관리자의 팀원보다 휴가를 더 많이 갈 수 있을 것이다.

백인 여자가 자신의 아버지를 심장병 전문의에게 데려다주기 위해 휴가를 가야만 한다. 또 젊은 흑인이 재판을 받는 자신의 친구에게 정신적인 힘이 돼주기 위해 휴가를 쓰고자 한다. 이때 관리자의 반응은 어떨까. 변호사들은 이와 같은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실제로 차별 대우가 있는지 없는지를 감시하는 장치는 전혀 없다.

벨래스 교수는 “규모가 작은 회사에서 휴가는 종종 비공식적인 방식으로 처리된다. 근로자들이 부재 시에도 업무에 지장이 없도록 보장한다. 휴가에 대한 엄격한 룰이 없다는 점을 부당하게 이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회사 규모가 50명 이상이 되면, 규범을 지키고 자체적으로 모니터링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려워진다”고 설명했다.

그는 “회사는 얼마나 많은 직원들의 휴가를 수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 기준을 세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책이 적용되는 과정과 부작용 등을 모니터링하는 것도 필수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미셸 크로지어는 “관료주의가 사람들의 권리를 제약하면서 보호하기도 한다”고 봤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미셸 크로지어는 “관료주의가 사람들의 권리를 제약하면서 보호하기도 한다”고 봤다.


휴가 가면 보상 주는 장치 마련해야

몇몇 회사들은 인센티브를 활용해 직원들이 휴가를 아끼지 않도록 해왔다. 에버노트는 2011년 유급 휴가 일수 제한을 없앴다. 그러자 직원들은 ‘휴가를 쓰지 말라’는 뜻으로 오해하고 휴가를 반납했다. 이에 필 리빈 CEO는 1주일 이상 휴가 가는 직원에게 보너스 1000달러를 지급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인맥관리 소프트웨어 업체인 ‘풀콘택트’도 2012년부터 휴가 가는 직원들에게 급여뿐만 아니라 2주일 동안 7500달러를 추가로 지급하고 있다. 이 유급 휴가에는 세 가지 조건이 붙는다. △업무 관련 이메일·문자·전화 금지 △휴가 기간 업무 엄금 △휴가를 다 쓰지 않으면 추가 지원금 없음 등이다. 휴가를 온전히 쓰게 하려고 회사가 마련한 장치인 셈이다.

에브렌 에센 GE HR 담당 이사는 “무제한 휴가 제도와 관련된 몇 가지 다른 보상이나 규칙을 마련해두는 것이 좋다”고 설명했다.

무제한 휴가의 효과에 대한 논의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직원들이 무제한 휴가를 제대로 활용하려면 기업 문화와 직장 상사, 관리자의 용인 등이 뒷받침돼야 한다. 상당수 직원들은 언제 해고될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승진 욕구 때문에 무제한 휴가를 활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이 제도가 업무 생산성을 높이고 회사의 비용을 줄이는 등 제대로 효과를 내려면 회사와 직원 상호 간의 노력이 필요하다.

바란케이 교수는 “무제한 휴가를 도입하면 일과 삶의 균형을 이루는 것뿐만 아니라 기업 문화 내에서 받아들여지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키는 효과도 있다”고 설명했다.

변화를 가져오는 것은 항상 회사에 큰 도전이다. 무제한 휴가가 일하는 문화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꿀 수 있다면, 어렵더라도 해볼 만한 도전이 될 것이다.


※ 본 기사는 ‘이코노미조선’과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온라인 리서치·비즈니스 분석 저널인 Knowledge@Wharton의 정식 계약에 따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