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데이비스 시카고대 교수가 3월 15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 회관에서 열린 ‘트럼프노믹스의 시대, 한국의 전략은?’ 국제포럼 강연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 C영상미디어 염동우>
스티븐 데이비스 시카고대 교수가 3월 15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 회관에서 열린 ‘트럼프노믹스의 시대, 한국의 전략은?’ 국제포럼 강연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 C영상미디어 염동우>

“지금 한국 경제의 불확실성은 사상 최고 수준으로 높아진 상태다. 불확실한 현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인정하는 것이 한국 새 정부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

TV조선이 3월 15일 주최한 ‘트럼프노믹스의 시대, 한국의 전략은?’ 국제포럼 강연을 위해 한국을 찾은 미국 시카고대 경영대학원 스티븐 데이비스 교수는 ‘이코노미조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이 지금의 긴박한 상황을 인식하고 순발력 있게 대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 경제는 실제로 ‘긴박한 상황’에 처해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사실상 국정 공백 상태가 이어지는 가운데 대우조선해양 법정관리,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에 따른 중국의 보복 조치, 미국의 환율조작국 지정 가능성,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등 악재들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한국 경제의 ‘4월 위기설’이 불거지는 이유다.

데이비스 교수는 한국 경제의 불확실성이 박 전 대통령 탄핵을 전후해 역대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고 밝혔다. 근거는 그가 개발한 ‘경제정책 불확실성(EPU·economic policy uncertainty) 지수’다. 이 지수는 경제적 불확실성을 드러내는 단어(경제·불확실·규제 등)가 언론에 얼마나 자주 등장하는지 분석해 특정 국가나 시기의 불확실성을 수치로 표시한다.

분석 결과, 한국의 경제정책 불확실성 지수는 박 전 대통령 탄핵을 전후해 393(100은 1995~2014년 평균치)까지 치솟아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외환위기 직후 대우그룹이 해체될 당시인 2000년대 초(EPU 234)나 글로벌 금융 위기 때인 2008년(263)보다 앞날이 더 불투명한 상태라는 뜻이다.

데이비스 교수는 전미경제학회보(American Economics Review) 편집인을 맡는 등 경제학계에서 학문적 업적을 인정받고 있는 학자다. 아시아통화정책포럼 공동대표를 맡고 있어 아시아 경제통(通)으로도 평가받는다.


한국 경제의 최대 리스크가 불확실성인가.
“그렇다. 긴박한 상황이다. 대외적으로 어려운 상황인데, 국내 정치 변수까지 겹쳤다. 무엇보다 한국 경제의 최대 리스크는 트럼프노믹스의 불확실성이다. 트럼프 정부의 보호무역주의 정책이 어느 강도·규모로 한국을 압박할지 아직 알 수 없다. 즉 미국과의 통상 마찰 역시 어떤 강도로 얼마나 오래 진행될지 모른다.”

불확실성이 왜 문제인가.
“정치적 불확실성은 정책의 불확실성을 불러오고 경제 전반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무엇보다 정책 불확실성은 경제의 부정적 요소에 그치지 않고 실제 산업별 투자와 고용에 악영향을 미친다. 아울러 소비와 수요 창출을 위축시켜 잠재성장률을 갉아먹는다. 한국처럼 경기(景氣)가 회복 중인 국가에 불확실성은 더 큰 짐이 된다.”

트럼프 시대에 한국이 피해야 할 가장 큰 위험요인은 뭔가.
“미국과 중국 간 분쟁에서 한국이 ‘중국 편’으로 분류되는 경우다. 한국이 중국과 ‘한편’으로 설정돼 미국과 통상 마찰이 발생한다면 한국 경제는 적잖은 타격을 입을 수 있다. 또 한국은 경제적으로 중국과 밀접하게 연관된 데다 미국과의 무역에서 흑자를 기록하고 있어 미·중 통상 분쟁이 발생할 경우 부수적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있다.”

오히려 한국은 사드 배치 문제로 중국과 갈등을 빚고 있다.
“알고 있다. 하지만 미국 대통령이 집행할 수 있는 무역정책 수단은 상당히 많다. 트럼프 행정부의 반(反)중국 정책이 중국을 넘어 한국, 일본, 대만으로 확대되며 세계를 무역전쟁으로 이끌 가능성이 있다. 미국 편에 서는 게 분명히 유리하다.”

미국의 금리 인상은 얼마나 큰 리스크가 될까.
“미국은 올해 3~4차례 추가로 금리를 올릴 수 있다. 장기적으로 달러 가치는 상승할 것이다. 당연히 수출 국가들은 역풍을 맞게 될 거다. 하지만 한국 정부와 기업들이 이에 대비하고 있었던 만큼 큰 리스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미국 금리 인상은 글로벌 경제, 특히 엄청난 소비 시장인 미국 경제의 회복을 의미한다. 미국 내 수요 증가는 수출국에는 희소식이다.”

미국이 제2의 플라자 합의를 시도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트럼프 행정부가 달러 강세와 이에 따른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를 해결하기 위해 제2의 플라자 합의를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 경제적인 이유보다는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내 여론과 자신의 공약 등 정치적 이유에 밀려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 이 가능성은 한국 등 신흥국에 큰 리스크가 된다. 불확실성이 엄청나게 고조될 거다.”

한국 정부가 불확실성 해소를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나.
“새로 당선될 한국 대통령이 최대한 빨리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정상회담을 가져야 한다. 한국은 국내 정치, 북한 핵, 사드 배치로 인한 중국과의 갈등 등 여러 분야에서 유례없이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이다. 미국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은 분야가 없다. 무엇보다 미국과의 관계 불확실성은 조속히 해소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조언을 한다면.
“트럼프 대통령에게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미국에 가져다줄 이익을 확실히 각인시키는 한편 한국 기업이 미국의 고용 등에 도움을 줄 수 있음을 공개적으로 계속 부각시켜야 한다.”

트럼프의 대선 공약을 고려하면 쉽지 않다.
“맞다. 트럼프 대통령과의 협상에는 전략이 필요하다. 주고받기를 중요시하는 ‘기업가 트럼프’의 협상 전략을 역으로 이용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금 지지율 하락으로 큰 어려움에 처해 있다. 미국 내에서 표를 얻을 수 있는 선물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준다면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도 있다. 한·미 정상회담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호재로 삼을 수 있게 해줘야 한다. 협상을 원활히 진행하기 위해 트럼프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칭찬해 그의 대외 이미지를 좋게 만들어 주는 것도 협상전략으로 바람직하다.”

흥미로운 분석이다.
“미국 기업이 한국 시장에 더 많은 상품과 서비스를 팔 수 있게 문호를 확대하고, 공공사업에도 미국 기업 참여를 제고할 방안을 트럼프 정부에 당근으로 제시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한국이 미국산 셰일가스를 대거 수입하는 등 트럼프 정부의 정책에 호응하는 것도 무역 전쟁의 파고를 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포럼에 참석한 다른 전문가들도 데이비스 교수와 일맥상통하는 의견을 내놨다. 후쿠다 신이치 도쿄대 교수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경우 벌써 미국을 두 차례 방문해 트럼프 정부와 우호적인 관계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미국과 직접적인 관계를 구축해 커뮤니케이션 채널을 상설적으로 가동하면 트럼프 정부의 향후 통상 정책 변화와 그로 인한 시장 충격에 대응할 수 있다”고 밝혔다. 김소영 서울대 교수도 “정치적 불확실성이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데 동의한다”며 “이를 해소하는 게 새 정부의 과제가 될 것”이라고 했다.


▒ 스티븐 데이비스(Steven Davis)
브라운대 경제학 박사, 전미경제학회보 편집인, 아시아통화정책포럼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