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X조선해양은 글로벌 조선 산업의 구조적 공급과잉과 중국이라는 강력한 경쟁업체의 등장으로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었다. <사진 : 조선일보 DB>
STX조선해양은 글로벌 조선 산업의 구조적 공급과잉과 중국이라는 강력한 경쟁업체의 등장으로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었다. <사진 : 조선일보 DB>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제는 저성장 국면에 들어섰고, 산업 환경은 보다 빠르게 변화하기 시작했다. 이런 변화의 속도를 따라 잡지 못하는 기업은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 한순간에 역사 속에서 사라지는 것이다. 기업이 살아남기 위해선 끊임없이 변신해야 한다. 바로 ‘구조조정’을 통해서다.

기업 구조조정은 조직 또는 사업 구조를 조정해 효율성을 높이고 실적을 개선하는 작업을 말한다. 특히 부실기업을 미래지향적인 조직, 지속 성장 가능한 기업으로 탈바꿈시키는 데 주목적이 있다.


원칙 1 |
기업 부실 원인 파악하라

구조조정은 기업 부실이 왜 발생했는지 원인을 파악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부실 발생 원인에 따라 구조조정 접근 방식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특히 기업 재무구조 개선에만 초점을 맞춘 분석이 아니라 산업 환경, 제품 가치, 경쟁 업체, 영업 능력, 규제 등 경영 전반적인 영역에서 부실 원인을 파악해야 한다. 그래야 부실을 해결할 수 있는 구조조정을 펼 칠 수 있다.

STX조선해양의 경우 글로벌 조선 산업의 구조적인 공급 과잉 문제로 인해 부실이 발생했다. 그러나 구조조정은 산업 악화라는 근인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기보다는 기업을 살리는 데 치우친 자금 지원 형태로 진행됐다. STX조선해양은 수혈받은 자금으로 차입금을 상환할 수는 있었지만 근본적인 부실 원인을 해결하지는 못했다. STX조선해양은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한 중국 조선 업체와의 경쟁에서도 밀렸다. 단순히 자금을 지원하는 차원의 구조조정은 실적을 개선하고 나아가 미래 성장을 담보할 수 없다.


델파이는 전 세계에 위치한 공장을 생산성과 매각했을 때의 현금 확보 능력을 비교해 핵심과 비핵심 공장으로 구분했다. 이후 비핵심 공장을 매각했다. <사진 : 블룸버그>
델파이는 전 세계에 위치한 공장을 생산성과 매각했을 때의 현금 확보 능력을 비교해 핵심과 비핵심 공장으로 구분했다. 이후 비핵심 공장을 매각했다. <사진 : 블룸버그>

원칙 2 |
비핵심 사업 매각해 유동성 확보하라

성공적인 구조조정을 펼치기 위한 기본적인 요소는 유동성 확보다. 구조조정에 들어간 기업은 현금흐름이 좋지 않다. 매출이 급격히 떨어지고, 적자에 허덕이는 게 보통이다. 좋은 조건으로 대출 또는 투자를 받는 것도 쉽지 않다. 이미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었다는 평가를 받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경영 자금을 마련할 수 있을까.

‘몸집 줄이기’다.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몸집을 줄이는 것은 아니다. 원칙이 있다. 경쟁력이 떨어지는 비핵심 사업(자산)을 매각하는 것이다. 이는 현금을 확보하기 위한 효과적인 방안이 될 수 있다. 반대로 핵심 사업은 강화한다. 기업의 핵심과 비핵심 사업은 현 매출 상황과 미래 성장성을 비교·분석해 구분할 수 있다.

미국 자동차 부품 생산 업체 델파이는 주요 공급처인 GM의 실적 부진과 전미자동차노조(UAW) 소속 노동자들에 대한 의료비 부담 증대라는 악재가 겹쳐 2005년 미 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당시 델파이의 부채 총액은 221억달러(약 25조원)로 미국 자동차 업계 파산으로선 최대 액수였다.

델파이는 구조조정 동안 부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자금을 확보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우선 전 세계에 위치한 공장을 생산성과 매각했을 때의 현금 확보 능력을 비교해 핵심과 비핵심 공장으로 구분했다. 이후 생산성은 떨어지지만 매각 가치가 높은 비핵심 공장부터 매각에 나섰다. 또 델파이는 브레이크, 섀시 등을 비핵심 사업으로 정하고 규모를 축소했다. 동시에 제어, 보안, 파워트레인, 냉난방, 전기·전자구조 시스템, 통신 등의 부품을 미래 핵심 사업으로 선정해 강화해 나갔다.

이처럼 델파이는 수익성이 떨어지는 사업은 처분하고 미래 핵심 사업은 강화해 2009년 구조조정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원칙 3 |
채권단·경영진 등 이해 관계자와 협력하라

구조조정은 임직원뿐만 아니라 채권단, 대주주, 경영진, 협력업체 등 해당 기업과 관련된 이해 관계자의 협력과 희생을 필요로 한다. 기업이 구조조정에 실패해 청산의 길을 걷게 되면 눈덩이처럼 불어난 손실은 결국 이해 관계자에게 돌아간다.

채권단은 만기 연장, 이자 조정, 출자 전환 등을 통해 기업 회생에 참여할 수 있다. 기업 임직원은 인력 감축 대상이 되고, 대주주는 대규모 감자로 지분율이 떨어질 수 있다. 최악의 경우, 경영 실패에 책임이 있는 대주주는 경영권을 잃을 수도 있다. 협력업체는 대금 납금 기한을 연장해 구조조정에 동참할 수 있다. 그러나 무조건적인 희생은 안 된다. 모든 이해 관계자가 납득할 수 있도록 형평성, 투명성, 미래 성장성을 지닌 구조조정이어야 한다.

프랑스 완성차 제조업체 르노의 구조조정 사례를 보자. 르노 스페인 법인은 경영진과 생산직 근로자의 협력과 희생을 바탕으로 실적 개선에 성공했다.

스페인 바야돌리드(Valladolid) 공장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11년 유럽 재정위기로 판매량이 급격히 감소하는 어려움을 겪었다. 2교대로 운영되던 공장이 겨우 1교대를 돌리는 상황이었다. 생산 물량이 감소하자 임금이 줄었고, 노조가 불만을 제기했다. 시장에선 노조 파업과 경영진의 공장 폐쇄까지 예상됐다. 그만큼 노사 갈등이 심했다.

그러나 바야돌리드 공장 노사는 ‘이렇게 가다가는 함께 망할 수 있다’는 위기를 인식했고, 양보하며 협력하기 시작했다. 노조는 스스로 임금을 동결하고 초과 근무 수당을 양보했고, 경영진은 새로운 자동차 모델인 ‘캡처’ 생산 물량을 확보하며 고용을 보장했다.


JC페니는 2010년대 초반 성장이 정체돼 파산 위기에 처했다. 그러자 2014년 미론 울만 전 CEO를 복귀시켜 구조조정을 이끌도록 했다. <사진 : 블룸버그>
JC페니는 2010년대 초반 성장이 정체돼 파산 위기에 처했다. 그러자 2014년 미론 울만 전 CEO를 복귀시켜 구조조정을 이끌도록 했다. <사진 : 블룸버그>

원칙 4 |
구조조정 컨트롤타워 구축하라

구조조정을 이끌 수 있는 컨트롤타워 역할도 중요하다. 기존 경영진의 안일한 대응이 기업 부실을 야기했을 가능성이 큰 만큼 새롭게 구조조정 조직을 만드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그 리더는 새로운 최고경영자(CEO)가 될 수도 있고, 최고구조조정책임자(CRO)가 맡을 수도 있다. 동시에 구조조정이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는지 감독해야 한다. 매분기, 매달, 매일 구조조정 진행 과정을 살피고, 원하는 성과를 달성했는지 확인해야 한다.

미국의 대형 백화점 체인 JC페니는 2010년대 초반 성장이 정체돼 파산 위기에 처했다. 그러자 JC페니는 2014년 미론 울만(Myron Ullman) 전 CEO를 복귀시켜 구조조정을 이끌도록 했다. 울만 CEO는 JC페니가 고가 제품 판매 전략을 펼치다 실패했다고 판단, 기존 ‘저가형 패션잡화 전문’이라는 이미지를 회복하기 위해 다양한 브랜드를 입점시켰다. 자체 브랜드(PB) 제품을 개발해 수익성도 끌어올렸다.

또 울만 CEO는 지역별 매장 실적을 실시간으로 점검하는 시스템을 구축해 매장을 보다 유연하게 운영했다. 최근 JC페니는 전자상거래 플랫폼을 강화하기 위해 매장 수를 줄이는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다.


원칙 5 |
조직 내 혼란 줄이고 희망 심어줘라

구조조정 과정에서 일부 인력은 어쩔 수 없이 회사를 떠나게 된다. 그러면 조직 내 분위기는 어떨까. 동료가 짐을 싸서 떠나는 모습을 본 직원들은 ‘나도 회사를 떠날 수 있다’는 불안감에 휩싸일 것이다. 이런 불안감을 없애고, 조직원이 업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기업 내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개인별 역량을 파악해 기업이 최고의 성과를 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핵심 인력의 이탈을 방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는 구조조정 이후 기업이 성장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포드는 2006년 보잉 부사장을 지낸 앨런 멀럴리(Alan Mulally)를 CEO로 영입하며 구조조정을 추진했다. 당시 포드는 127억달러(약 14조4000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하는 등 거의 파산 지경이었다.

멀럴리 CEO가 취임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생산 현장을 돌며 자신이 생각하는 포드의 미래를 공유하는 것이었다. 그는 말단 직원부터 최고 임원까지 조직 전체가 현 위기 상황을 인식하고, 앞으로의 계획을 공유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데 힘썼다. 또 포드의 약점으로 꼽히는 부서 간 장벽을 없애 조직이 하나로 뭉칠 수 있도록 했다. 그 결과 포드는 비주력 브랜드 매각, 인력 감축, 공장 폐쇄 등 대규모 구조조정 이후 불안정한 환경 속에서도 실적을 개선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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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조정 기업 조직 또는 사업 구조를 조정해 효율성을 높이고 실적을 개선하는 작업이다. 특히 부실기업을 미래지향적인 조직, 지속 성장 가능한 기업으로 탈바꿈시키는 데 주목적이 있다.

박용선 기자
이코노미조선 기자

김명철 알바레즈앤드마살 한국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