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가 직원을 위하는 척하며 일을 심하게 시키면 직원 역시 일하는 척하는 시늉으로 대응한다.
리더가 직원을 위하는 척하며 일을 심하게 시키면 직원 역시 일하는 척하는 시늉으로 대응한다.

최근 과로사, 번아웃(burn out) 증후군, 피로사회 등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직장인들의 작은 소망이 ‘저녁이 있는 삶’이란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최근 직장인 1323명을 대상으로 실제 근로 시간에 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직장인들은 일주일 평균 53시간을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루 10시간 넘게 일하며 저녁이 없는 삶을 살고 있다는 이야기다.

과로, 번아웃 증후군의 폐해는 요즘에만 있는 이야기는 아니다. ‘공자가어(孔子家語)’에 보면 궁하필위(窮下必危)란 말이 나온다. 아랫사람을 힘들게 몰아붙이면 윗사람이 위험해진다는 이야기다. 노(魯)나라 제후 정공(定公) 시절에 동야필(東野畢)이라는 말을 잘 조련시키는 사람이 있었다. 그에 대한 칭찬을 은근히 기대하며 안연(顔淵)에게 평을 청하자 안연의 대답이 시큰둥했다. “잘 몰기는 하지요. 하지만 그는 말을 곧 잃게 될 겁니다.” 아니나 다를까, 사흘 있다가 말이 모두 달아났다는 소식이 전해져왔다.


이직률 높은 기업, 직원들 창의력 낮아

안연에게 예측한 비결을 물어보니 이렇게 답했다. “정치를 보고 알았습니다. 예전 순(舜) 임금은 백성을 잘 부렸고 조보(造父)는 말을 잘 부렸습니다. 백성과 말을 궁하게 하지도 않았지요. (중략) 동야필의 말 모는 법을 보니 말 위에 올라 고삐를 잡고, 재갈을 물리는 것 등 모두 절도에 맞았습니다. 그러나 말에게 험한 길을 훈련시키고, 멀리까지 다녀오고 하여 말의 힘이 이미 다했을 때도 말에게 요구하기가 끝이 없었습니다. 저는 이 때문에 곧 달아날 걸 알았습니다.”

동야필같이 ‘쉼 없이 몰아붙이는’ 리더일수록 이런 착각을 한다. 바로 군말 없이 척척 돌아가면 만사형통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군말 없이 척척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조직일수록 그 속을 들여다보면 하는 척 시늉만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리더가 직원을 위하는 척하며 일을 심하게 시키면 직원 역시 일하는 척하는 시늉으로 대응한다. 말하자면 ‘척척’의 이중성이다. 자신의 생각대로 척척 돌아가길 바라는 리더일수록 생각과 현실의 차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 이런 리더는 직원들이 저녁 늦게까지 일하고 있어야 조직이 제대로 돌아간다고 생각한다. 그러지 않으면 드라이브를 계속 걸어 직원들이 쉼 없이 일하게 한다. 그리고 ‘일과 삶의 균형’ ‘행복한 성공’은 배부른 소리라고 비웃는다. 번아웃 증후군은 의지력 부족이라고 말하며 “자신의 성공은 근무 시간 외 가외 근무 시간에 비례했다”고 자랑스레 털어놓는다.

모회사의 A사장은 “사람은 (당신 말고도) 회사 현관에 줄지어 서있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 언제든 이동하리란 걸 알기 때문에 단기간 최대한의 능력을 뽑아내고, 튕겨나가면 다음 구간을 질주할 새로운 사람으로 대체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과연 그럴까. ‘상시 교체가능하다’고 여겨지는 구성원들이 자부심과 창의력을 가지고 일하겠는가.

모업체의 경영자 B대표는 직원 채용면접 시 반드시 물어보는 질문이 있다. “회사와 집에서 동시에 화재가 일어난다면 어디를 먼저 구조하겠는가?”다. 원하는 정답이 뻔하니 구직자들은 당연히 ‘회사’라고 답한다. B대표는 단지 회사라고 말하는 것만으론 부족하고, 답하기까지 시간체크를 한다. ‘물음표가 떨어지자마자 회사’라고 거의 본능적으로 답해야 합격이란다. 그런 헌신적인 직원이라면 회사가 집을 알아서 챙겨줄 테니 집 걱정 하지 말라는 것이다. 문제는 헌신을 맹세한 직원들을 엄선했는데도 이직이 끊이지 않는 것이다. 구인공고를 한 달이 멀다 하고 올리니 그 기업은 구직자들에겐 일종의 ‘빨간 줄’ 경계 대상으로 꼽힌다. 회사를 빈번하게 옮긴 구직자는 인내력, 조직 적응력에서 감점을 받는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하루가 멀다하게 구인공고를 내는 기업 역시 의구심을 품게 만든다.


제프리 페퍼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직원 한사람을 채용하는 데 드는 비용은 연봉의 1~2배”라고 지적한다. <사진 : 조선일보 DB>
제프리 페퍼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직원 한사람을 채용하는 데 드는 비용은 연봉의 1~2배”라고 지적한다. <사진 : 조선일보 DB>

일과 삶 균형 잡힌 문화 추구해야

조직은 동창회도 아니고 놀이터도 아니다. 성과에 죽고 살며 매일매일 치열한 경쟁을 한다. 앞서 언급한 일 중심적인 사고가 과연 성과를 향상시킬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제프리 페퍼(Jeffrey Pfeffer)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직원 한 사람을 채용하는 데 드는 비용은 연봉의 1~2배”라고 지적한다. 잦은 이직에 따른 신규채용, 교육비용을 생각하면 직원 이탈방지를 위한 ‘일과 삶 균형문화’ 추구는 구호와 가치를 넘어선 구체적 수치로, 생산적이다. 뿐만 아니라 업무집중을 방해하는 요소들을 제거함으로써 일에 대한 몰입도를 높일 수 있다. 실제로 포드자동차는 ‘균형 프로그램’을 도입한 지 4개월 만에 580만달러(약 66억원)의 비용을 절감하고 70만달러의 수익을 창출했다.

리더가 직시해야 할 것은 업무 효율성이다. 늦게까지 일하는 것이 보기 좋다가 아니고, 성과가 향상됐는지를 측정해 봐야 한다. 모교육업체의 C사장은 “솔직히 칼퇴근하는 직원을 보면 서운하고, 야근·주말 근무를 하는 직원들은 대견하고 믿음이 갔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일은 인풋이 아니라 아웃풋으로 측정해야 한다”고 털어놓는다. 성과측정 기준이 애매한 조직일수록 근태 근무를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 월화수목금금금 야근·특근을 하고, 사축(社畜)을 자처하는 조직 문화가 진정으로 효과적일까. 이제는 업무 성과를 냉정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다.

잉여가 되지 않기 위해 오늘도 ‘과잉근무’로 성실을 증명해야 하는 오늘날 한국의 직장인들을 보면 공자의 제자 안연이 뭐라고 말할지 궁금하다. 궁하필위라고 말하지 않을까.


▒ 김성회
연세대 국문학과 석사,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경영학 박사, 주요 저서 ‘성공하는 CEO의 습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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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아웃(burn out) 증후군 의욕적으로 일에 몰두하던 사람이 극도의 신체적·정신적 피로감을 호소하며 무기력해지는 현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