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르 오미디아 이베이 창업자 <사진 : 블룸버그>
피에르 오미디아 이베이 창업자 <사진 : 블룸버그>

‘가짜 뉴스(Fake News)와 싸우려면 탐사 보도(Investigative reporting)가 살아야 한다.’

가짜 뉴스가 45대 미국 대선의 판도를 흔든 데 이어 국제 사회와 공동체의 신뢰를 갉아먹고 있다는 자성론이 거세지고 있다. 가짜 뉴스의 가장 큰 ‘숙주’로 지목된 페이스북은 부랴부랴 인공지능(AI)으로 가짜 뉴스를 걸러내겠다고 선언했고, 독일 등 각국 정부들은 가짜 뉴스 척결을 위한 법률 제정을 서두르고 있다. 가짜와 진짜, 거짓과 참을 구별하는 인류의 오랜 과제가 21세기 디지털 시대의 정부, 기업, 미디어의 화두가 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세계 인터넷 상거래 시장을 장악한 미국 온라인 경매 기업 이베이(eBay)의 창업자, 피에르 오미디아(Pierre Omidyar·50)가 가짜 뉴스에는 진짜 뉴스가 특효약(藥)이라며 탐사 보도 지원을 위해 1억달러(약 1140억원)를 기부했다고 외신들이 보도했다.

오미디아 네트워크는 4월 5일 “세계적인 신뢰의 위기를 초래하는 근본 원인과 싸우기 위해 탐사 보도 펀드를 조성하겠다”며 “3년 동안 자유와 진실 규명을 위해 노력하는 각국의 탐사 보도 언론인들에게 자금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오미디아 네트워크의 파트너인 스티븐 킹은 “신뢰할 만한 정보를 제공하고 사실 여부를 체크하며, 권력에 대한 균형 있는 보도를 제공하는 자유롭고 독립적인 미디어 육성이야말로 가짜 뉴스와 싸움의 핵심 과제”라고 말했다. 2004년 오미디아 부부가 창립한 오미디아 네트워크는 빈곤 퇴치, 교육과 의료 지원 등 ‘사회 변화에 도움 되는 사업’에 10억달러(1조1500억원) 이상을 기부한 비영리 단체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 제프 베조스 아마존 창업자, 래리 페이지 구글 창업자….

실리콘밸리에서는 기업과 창업자 이름이 붙어다니는 경우가 많다. 창업자의 비전과 개성이 기업과 사업의 성패, 브랜드 가치에 큰 영향을 준다. 기술 기업(Tech company)의 창업자들이 캐주얼 차림으로 무대에 올라 주주와 대중을 상대로 사업 비전을 역설하면서 신상품을 소개하는 장면은 실리콘밸리의 혁신과 역동성을 상징한다.


인터넷 벼락부자에서 사회 사업가 변신

피에르 오미디아는 다른 디지털 기업 창업자들에 비해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애플·MS·구글·아마존 등과 함께 인터넷 광고를 끌어모으는 이베이의 명성과 기업 규모에 비하면 신기할 정도다. 비즈니스 세계에서 이베이는 여성 경영자로 유명한 맥 휘트먼과 자주 연결된다. 맥 휘트먼은 1998년부터 2008년까지 10년 동안 이베이를 이끌었다.

하지만 피에르 오미디아는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비즈니스 패러다임이 바뀌는 순간을 한발 앞서 포착, 스스로의 힘으로 억만장자가 된 뒤 ‘지혜롭게 인생을 관리하는’ 현명한 기업인이다.

오미디아는 인터넷과 디지털 여명기의 수퍼스타다. 1995년 9월 온라인 경매 서비스를 시작한 뒤 매년 매출 신장률 1000%를 기록하며 창업 4년 만인 1998년 나스닥 상장에 성공했다. 이베이는 상장 6개월 만에 주가가 20배 이상 상승하는 등 초고속으로 성장, 30여개 나라에서 매출 89억달러(약 10조1500억원·2016년)를 올리는 시가총액 373억달러(약 42조5000억원·2017년)짜리 회사로 성장했다.

이베이가 사업 초기 포털 시장을 장악한 야후, 온라인 상거래 강자인 아마존, 아메리카 온라인(AOL) 등과의 경쟁에서 승리한 비결은 온라인 상거래에서 핵심적인 신뢰 구축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오미디아는 2002년 인터넷 결제 서비스 기업인 페이팔(Paypal)을 16억달러(약 1조8000억원)에 인수, 온라인 신용 불안을 단숨에 해결했다.

당시 이베이에 페이팔을 매각한 인물들이 최근 시가총액에서 GM을 추월한 테슬라 자동차 창업자 일론 머스크, 빅데이터 기업 팔란티어 창업자이자 트럼프 행정부의 ‘실리콘밸리 두뇌 은행’으로 부상한 피터 틸, 사진 공유 사이트인 슬라이드 창업자 맥스 레브친, 유튜브 창업자 채드 헐리와 스티브 첸, 인맥 관리 서비스인 링크드인 창업자 리드 호프만, 지역정보 사이트 엘프 창업자 제레미 스트프만 등이다. 이들은 페이팔 매각 자금을 바탕으로 실리콘밸리의 혁신을 상징하는 기업들을 잇따라 창업, 성공시키며 ‘페이팔 마피아’로 부상했다.

오미디아가 여자 친구에게 잘 보이려고 고민하다가 온라인 경매 아이디어를 생각해냈고, 이를 통해 벼락부자가 된 일화는 디지털 시대 가장 유명한 ‘전설’이다. 오미디아는 1995년 사탕을 담아 두는 페즈통을 수집하는 여자 친구에게 잘 보이려고 개인 홈페이지에 ‘페즈통 사고팝니다’라는 메뉴를 만들었다. 반응이 좋자 ‘옥션 웹(Auction Web)’이란 서비스를 만들고 소액의 커미션을 받으며 대박을 직감한 그는 온라인 경매 사이트인 이베이(www.ebay.com) 사업을 시작했다. 당시 나이 스물여덟 살이었다.

“하루아침에 부자가 됐으면, 사업을 생각하듯 자선 사업도 생각해야 한다.”


2013년 퍼스트 룩 미디어 창업

오미디아는 2000년 ‘포브스’와 인터뷰에서 서른세 살짜리 억만장자답지 않게 자선 사업에 전념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벼락부자가 된 ‘첫 끗발’을 믿고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하기보다 전문 경영인에게 경영을 맡기고 사회에 도움 되는 일을 찾아 하겠다는 ‘어려운 결심’을 실행에 옮겼다.

오미디아가 최근 주력하는 분야는 탐사 저널리즘이다. 그는 2010년 하와이에서 ‘호놀룰루 시빌 비트(Honolulu Civil Beat)’라는 온라인 뉴스 미디어를 론칭, 허핑턴 포스트 등과 협력, 지역 뉴스를 제공하고 있다. 2013년 미국과 영국 정부의 각국 정부에 대한 도청 등 불법 감시 활동을 폭로한 에드워드 스노든에게 자극받아 5000만달러를 들여 ‘퍼스트 룩 미디어(First Look Media)’를 창업하고, 2014년부터 디지털 뉴스 사이트인 ‘인터셉트(The Intercept)’ 발행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스노든의 폭로를 가디언에 처음 보도한 ‘가디언’ 출신 글렌 그린벨트, 뉴욕대 저널리즘 교수인 제이 로젠 등이 인터셉트에서 활동하고 있다.


Plus Point

“가짜 뉴스에는 진짜 뉴스가 특효약” 탐사 보도 지원 위해 1억달러 기부

오미디아 부부
오미디아 부부
프랑스 태생의 이란계 이민 1.5세대

오미디아는 1967년 프랑스 파리에서 공부하던 이란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이란계 1.5세대다. 존스홉킨스대 메디컬센터에 근무하게 된 아버지를 따라 여섯 살 때 미국 메릴랜드주로 이주했다. 수업을 빼먹고 시간당 6달러를 받고 학교 도서관 목록을 정리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컴퓨터에 재능을 보였다. 1988년 터프츠대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한 뒤 애플 하청 기업인 클라리스 소프트웨어 개발부에서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 부인 파멜라 커 오미디아와 세 명의 자녀가 있다. 2017년 3월 현재 개인 자산 81억달러로, ‘포천’ 억만장자 순위 166위(미국 59위)에 올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