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로봇은 바이올린도 연주하고 노인을 목욕탕까지 모시고 갈 수 있다. 하지만 정작 위기의 순간에 일본을 지키지 못했다.”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전 일본 방위상은 “후쿠시마 원전에 들어갈 로봇이 ‘로봇 대국’ 일본에 없었다는 것이 가장 큰 충격이었다”고 말했다.

후쿠시마 원전의 폐허 속을 뚫고 들어가 고농도 방사선에 오염된 잔해를 수거해 구원의 길을 연 로봇. 그것은 청소기 회사로 유명한 미국 아이로봇(iRobot)의 ‘팩봇(PackBot)’과 ‘워리어(Warrior)’였다. 군사용으로 제작된 이 두 로봇은 직육면체 몸통(길이 68㎝, 너비 40㎝), 탱크형 캐터필러 다리, 180㎝의 포클레인형 외팔로 지금까지 원전 내부의 ‘방사선 지옥’을 청소하고 있다.

미국 매사추세츠주 베드포드의 본사에서 아이로봇의 창업자 콜린 앵글(Colin Angle·44) CEO를 위클리비즈가 인터뷰했다. 앵글 CEO는 “(우리가 만든 로봇은) 목숨을 걸고 적과 폭탄이 있는 건물에 인간 대신 들어간다. 테러 현장에서도 여러 구조 임무를 수행했다. 후쿠시마 원전에서 그랬듯, 그들은 인간의 위험을 대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류의 생명을 지키는 로봇
아이로봇 1층 응접실에는 반쯤 부서진 팩봇이 전시돼 있었다. 안내판에는 이렇게 써있다. “이 팩봇은 이라크에서 임무 수행 중 파괴됐다. 파괴되기 전까지 폭발물 19개를 제거했다.” 앵글 CEO는 군사용로봇을 ‘인류의 생명을 지키는 로봇’이라고 불렀다.

군사용로봇이 어떻게 인류의 생명을 지키나.
“팩봇은 건물이나 동굴에 숨어 있는 적군을 찾아내고 폭발물을 해체한다. 수색대원이 자신의 목숨을 걸고 뛰어들 필요가 없다. 폭발물 처리반도 마찬가지다. 최대 800m 떨어진 곳에서 컴퓨터 게임하듯이 원격 조종하면 된다. 팩봇이 적군을 죽이는 일은 없다.”

전장(戰場)이 아닌 곳에서도 활동할 수 있나.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에서 보지 않았나. 팩봇은 9·11테러에도 구조 활동에 투입됐다.”


아이로봇은 산업용로봇도 만든다. 깊은 바닷속에 들어가 해양 정보를 수집·전송하는 ‘시글라이더(Sea Glider)’가 대표 상품이다. 작년 멕시코만 원유 유출 사고 당시 심해(深海) 정보를 제공한 로봇이 바로 시글라이더였다. 충전 배터리 1개로 9개월 동안 바닷속을 다닐 수 있다. 앵글 CEO는 “해양연구요원이 심해에 들어가지 않고도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역시 인류의 생명을 지키는 로봇이다”라고 했다.

아이로봇의 로봇기술은 앵글 CEO가 대학원 재학 시절 개발한 다리 6개 달린 로봇 ‘징기스(Genghis)’에서 출발했다. 복잡한 중앙통제장치 없이 각각의 다리에 달린 센서를 이용해 장애물을 피해가며 움직이는 로봇이다. 징기스는 워싱턴의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 콜린 앵글 Colin Angle
아이로봇 C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