샨타누 나라옌 어도비 CEO는 마케팅과 IT 부서의 경계를 허물었다. <사진 : 어도비>
샨타누 나라옌 어도비 CEO는 마케팅과 IT 부서의 경계를 허물었다. <사진 : 어도비>

디지털 혁신으로 금융 업계가 혼란에 빠지기 시작한 2000년대 후반, 미국 금융그룹 캐피털원(Capital One Financial Corp.)은 ‘정보기술(IT) 회사가 설립한 것 같은 금융사’를 만들기로 결정했다. 선두 은행이 되기 위해선 무엇보다 IT 역량 재정비가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기 시작했고,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도 자체적으로 양성하기 시작했다. IT 부서 운영 모델도 재구성했다.

이에 따라 2010년 캐피털원의 IT 조직 이름은 밋밋한 ‘IT 부서’가 아닌 ‘캐피털원 테크놀로지(Capital One Technology)’로 바뀌었다. 롭 알렉산더 당시 캐피털원 최고정보관리책임자(CIO)는 이와 관련해 “단순히 부서의 명칭만 바꾼 것이 아니다”라며 “전통적인 은행의 IT 업무를 벗어나 캐피털원을 테크놀로지 회사로 바꾸겠다”고 말했다.

이후 여러 금융사들이 ‘IT 기업’ 색채를 덧입기 시작했다. 골드만삭스의 로이드 블랭크페인 회장은 2015년 “골드만삭스는 IT 회사”라고 선언했다. 이미 구글·페이스북 등 쟁쟁한 실리콘밸리 IT 기업과 어깨를 견줄 회사로 변신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블랭크페인 회장은 작년 말 인사에서 사내 IT 기술을 책임졌던 마틴 차베스를 CFO(최고재무책임자)로 승진시켰다. 차베스는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창업자 출신이다.


기업 매출·이익 좌우하는 CIO 리더십

IT 부서의 영향력 강화는 거의 모든 기업에서 나타나는 보편적인 현상이 됐다. 최근에는 인터넷 전문은행의 출현과 IT 기반 물류 회사의 등장 등으로 이런 움직임에 가속도가 붙었다. IT 전문 기업들의 전통적인 역할은 새로운 기술에 대한 정보를 습득해 현업에 전파하는 것이었다. ‘벤더 드리븐(업체 주도)’이란 용어가 널리 쓰이게 된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기업이 IT 사업을 발주하면 IT 서비스 업체들이 이를 수주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IT 서비스 업체들이 먼저 기업에 필요한 기술과 서비스 접목 솔루션을 제시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디지털화와 ‘초연결’을 기반으로 하는 4차 산업혁명의 도래로 이런 관행에도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이제 IT 기술은 업종과 규모를 불문하고 기본적으로 갖춰야 하는 기업의 핵심 경쟁력이 된 것이다.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이나 골드만삭스처럼 제조업과 금융업의 거인들이 IT 기업으로 변신을 천명하고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이제 어느 누구도 IT 업무를 그저 ‘지원 업무’의 하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경영진이 IT가 비즈니스 전략의 필수 요소라로 인식하면서 기업 내 CIO의 위상이 전에 없이 높아졌다. 이제 CIO는 디지털 혁신을 통해 IT 역량과 기업 경영을 조화시켜야 하는 중책을 맡게 됐다. 이를 위해 ‘IT 전문가’의 틀에서 벗어나, 전략적인 관점에서 IT 업무를 바라봐야 하는 과제를 떠안게 됐다.

시장조사기관 IDC의 최근 조사 결과를 보면, 기업의 IT 역량은 매출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IDC가 매출 5억달러(약 5600억원) 이상인 전 세계 391개 기업을 조사한 결과, 디지털 경쟁력과 CIO의 역량이 뛰어난 기업 매출이 업계 평균보다 9%, 영업이익은 20% 많았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 매출은 평균 대비 4%, 영업이익은 26% 떨어졌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CIO가 직면한 가장 큰 도전은 기존 IT 시스템의 운영 효율성을 제고하는 동시에 비즈니스 혁신을 주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직까진 대다수 기업에서 인프라, 프로세스 등 IT 시스템이 비즈니스 혁신과 동떨어져 운영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소프트웨어 등 IT를 중심으로 비즈니스 프로세스를 변경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마치 ‘꼬리가 개를 흔든다’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황당하게 들릴 수도 있다. 기업이 효율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비즈니스를 지원하는 업무에 IT가 머물러야 한다고 믿는 이들이 여전히 많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CIO는 기업의 기술 경쟁력 강화는 물론 일선 부서와 협력해 조직의 디지털 혁신을 가속하고, 안정적인 경영과 수익 창출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이를 운영하는 책임까지 짊어지게 됐다.


로이드 블랭크페인 골드만삭스 회장은 “골드만삭스는 IT 회사”라고 선언했다. <사진 : 블룸버그>
로이드 블랭크페인 골드만삭스 회장은 “골드만삭스는 IT 회사”라고 선언했다. <사진 : 블룸버그>

부서 간 ‘장벽’ 사일로를 깨라

‘사일로(silo)’는 농장에서 곡식을 저장해두는 원통형의 저장고를 말한다. 유럽의 시골길을 가다 보면 원통형의 창고인 사일로를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여기에서 유래된 ‘사일로 이펙트(silo effect)’는 기업이나 조직에서 각 부서들이 사일로처럼 담을 쌓고 자기 부서만의 이익을 추구하는 현상을 뜻한다. 자기 부서의 이익에만 치중할 경우 부서 간 협업과 소통에 소홀하게 되며, 이는 결국 기업의 경쟁력을 갉아먹는 원인이 된다.

디지털 혁신 시대에 기업이 살아남기 위해선 IT 기술을 중심으로 조직 내의 ‘사일로’들을 무너뜨려야 한다. 지금까지 기업은 마케팅, 전략, 운영, 인사 등 기능적인 사일로를 중심으로 구성됐다. 사업 전략을 짜는 과정에서 IT 개발자가 다른 부서와 팀을 이루는 경우도 있었지만 IT 부서와 비즈니스 리더 간의 지속적인 협력은 드물었다.

금융 전문가이자 인류학자이기도 한 질리언 테트는 그의 저서 ‘사일로 이펙트’에서 일본 소니의 몰락이나 글로벌 금융위기의 근본 원인은 다름 아닌 조직 내 의사 소통의 단절에 있다고 단언한다.

예를 들어 오늘날의 금융 산업은 현물과 선물, 파생상품 시장 등 서로 다른 영역이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따라서 한쪽 면만 바라봐서는 문제의 본질에 접근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미국과 영국 등 글로벌 금융 업계는 거시적인 관점에서의 조망과 통합을 통한 분석보다는 미시적인 전망이나 분석에 매몰되기 일쑤였다. 일종의 ‘전문가 집단의 함정’에 빠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글로벌 금융위기의 중요한 원인이 됐다.


디지털 혁신 시대에 기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IT 기술을 중심으로 조직 내의 ‘사일로’ 를 무너뜨려야 한다.
디지털 혁신 시대에 기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IT 기술을 중심으로 조직 내의 ‘사일로’ 를 무너뜨려야 한다.

어도비, 마케팅과 IT 벽을 허물다

사일로 이펙트를 차단하기 위해서는 CIO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기술을 통해 거대한 조직의 소통이 원활해지면 부서 간의 장벽, 즉 사일로도 허물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CIO는 무엇보다 조직의 공동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공감과 협조를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아울러 IT 부서가 조연이 아닌 주연으로 거듭나기 위해 기획과 디자인, 개발 등의 순서로 이어지는 업무 과정 전반에 IT 전문가가 참여하도록 시스템이 구성돼야 한다.

글로벌 소프트웨어 기업 어도비에는 부서 간 벽이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IT와 마케팅 부서의 업무 우선 순위는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더 큰 목표를 향해 각자의 역할을 통합하고 조화시켜 더 큰 성과를 이끌어낸다. 어도비(Adobe)의 CIO 신디아 스토다드는 이런 이유 때문에 마케팅과 IT가 별개의 업무 부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마케팅은 어도비 사업에서 특히 중요한 역할을 하며, 상당 부분 IT의 역할과 중복된다. 어도비의 마케터는 세련된 IT 사용자다. 마케팅 캠페인 성과 측정을 위해서는 IT 기술을 기반으로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해야 하는 것도 물론이다.

스토다드 CIO는 “기업 IT 부서는 무수한 정보를 다룬다. 기업은 어떤 의미에서 빅데이터의 ‘수호자’다. 이런 정보를 마케팅 팀과 공유해 마케팅과 IT가 협업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마케팅 부서는 빅데이터 활용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트렌드 변화를 파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어도비 IT 부서에는 마케팅 부서와 협력하면서 데이터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전담 팀이 있다. 또 마케팅 관련 시스템을 관리하는 팀도 있다. 이들은 마케팅 부서의 어려움을 파악하고 시장 흐름을 분석하며 관련 시스템의 성과를 높이는 데 선수들이다.

어도비는 어느 부서에서나 IT 기술을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노력도 이어 가고 있다. 결국 IT 부서의 궁극 목표는 IT 부서를 ‘없애는’ 것이기도 하다. 셀프 서비스 툴을 개발하고 이 툴을 어떤 기기에서든 사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도 이런 노력의 일부다. 물론 마케팅 분석과 클라우드 서비스 등 여전히 접근이 쉽지 않은 기술 분야도 있다.

스토다드 CIO는 “이제는 직원이 더 효과적으로 업무를 처리할 수 있도록 모든 기업이 IT와 현업 부서의 벽을 허물어야 한다”며 직원들이 처음에는 두려움을 가질 수 있지만, 일단 벽을 허물면 IT와 현업 부서가 모두 더 풍부한 경험을 누릴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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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하나의 플랫폼을 통해 다수의 고객에게 소프트웨어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고, 사용자는 이용한 만큼 돈을 지급하는 모델을 말한다. 신규 소프트웨어 구매 비용을 대폭 줄여주기 때문에 인프라 투자와 관리 부담을 줄일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Plus Point

2017 IT 트렌드
전 세계 1200명 CIO가 뽑은 중요 IT 기술 세 가지

배정원 기자

CIO는 우수한 보안 기술 인재를 찾는 일이 가장 어렵다고 말했다.
CIO는 우수한 보안 기술 인재를 찾는 일이 가장 어렵다고 말했다.

딜로이트 컨설팅은 지난해 말 전 세계 CIO 1200명을 대상으로 2017년 IT 트렌드 전망을 묻는 설문조사를 했다. 이들은 올해 가장 주목해야 할 IT 기술로 보안, 애널리틱스, 클라우드를 꼽았다.


기술 1 | 보안

미국 뉴욕에 있는 리서치 기업 글로벌 스트레티지 그룹(Global Strategy Group)의 앤드루 호 부사장은 늘 보안이 중요하지만 특히 선거가 많은 해에는 그 중요성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그는 이와 관련해 “우리는 미국 민주당 전국위원회(DNC)와 협력하기 때문에 항상 보안을 중요하게 다루지만 다중 요소 인증과 같은 도구를 사용해 보안을 더욱 강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호 부사장은 “보안의 핵심은 문화”라고 강조한다. “새로운 기술 도입도 중요하지만, 보안의 70%는 문화적인 요소가 좌우한다. 이 때문에 해킹과 관련한 심리적 요소를 분석해 사람들의 행동을 바꾸거나, 비밀번호 설정과 변경의 중요성 등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것 등이 강력한 방화벽을 설치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하다.

인력을 늘리는 것도 보안 문제 해결에 중요하다. 올해 신규 직원 채용 계획이 있는 기업의 30%는 인력 증원 이유가 보안 강화라고 답했으며 그중 26%는 보안, 규정 관련 신규 채용을 계획 중이라고 답했다.


기술 2 | 애널리틱스

기업들이 고객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노력하면서 고객 관련 데이터 분석도 중요해졌다. 기업마다 웹 트래픽과 제품 선호도, 구매 행동, 실제 환경의 제품 성능 등에 대한 데이터를 축적해서 잠재적인 ‘통찰력의 금맥’을 만들고 있다. 적절한 전략과 분석 도구를 사용해 데이터의 의미를 보다 충실하게 파악할 수 있다면 그 금맥은 비로소 엄청난 결실을 가져다 줄 것이다.

딜로이트 설문에 응한 CIO의 65%는 올해 빅데이터, 엔터프라이즈 분석, 비즈니스 인텔리전스 도구 등 데이터 분석에 대한 지출을 늘릴 계획이라고 답했다. 응답자들이 선정한 현재 추진 중인 가장 중요한 기술 프로젝트 순위에서 데이터 분석이 1위를 기록했다.

캐나다 앨버타주의 에드먼턴은 올해 시 정부 차원에서 데이터 분석 역량을 높이기로 했다. 브루스 랜킨 에드먼턴 데이터 책임자는 “부서 간 장벽을 허물어 정보 공유와 이용을 원활히 하고 이를 통해 더 나은 의사 결정을 하도록 돕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기술 3 | 클라우드

기업들이 디지털 혁신을 위해 IT 인프라를 재정비함에 따라 클라우드 컴퓨팅 관련 수요는 꾸준히 늘어날 것이다.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software-as-a-service)’ 선호가 두드러지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설문조사 결과 CIO의 33%는 조직이 내년에 SaaS 투자를 늘릴 계획이라고 답했다. 아울러 29%는 클라우드 또는 SaaS 시스템이 향후 3~5년 동안 비즈니스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파괴적 기술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보스턴 지역에 20개의 매장을 거느린 식료품 체인점인 로슈 브라더스(Roche Bros.)는 최대한 많은 인프라와 애플리케이션을 SaaS 모델로 전환 중이다. 이 회사는 인사와 인증, 백업, 복구, 생산성 관련 애플리케이션까지 모두 클라우드로 전환한 덕분에 비용을 절감할 수 있었다. 로슈 브라더스의 IT 담당 부사장인 존 로더바크는 “사내 IT 직원은 4명인데, 서버를 관리하고 백업과 복구까지 처리하려면 버겁다”며 “초기 변화에 적응하는 데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전산처리를 클라우드화하면서 안정적으로 정보를 관리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