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은 다보스포럼에서 제4차 산업혁명을 이끌 기반기술 중 하나로 선정됐다.
블록체인은 다보스포럼에서 제4차 산업혁명을 이끌 기반기술 중 하나로 선정됐다.

미국 동부의 델라웨어주(州)는 인구가 100만명 이하인 작은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기업 금융법에 있어서는 항상 선도적인 역할을 했다. 델라웨어주가 미국 전역에서 가장 발달된 기업법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포천 500대 기업 중 3분의 2가 이곳에서 법인을 개설했고, 기업공개(IPO) 85%의 소재지로 선택됐다. 여전히 많은 스타트업이 법인을 설립할 때 델라웨어주를 찾는다.

이 때문에 델라웨어주가 앞으로 월스트리트를 어떻게 변화시킬지 업계 관계자들은 주목하고 있다. 델라웨어 주정부는 지난해 말 델라웨어 소재 금융사에 대해 블록체인(Block Chain)을 활용한 비즈니스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IT업계는 블록체인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IT업계는 블록체인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월가 은행들 기술적으로 낙후”

이 파일럿(시험용) 프로그램을 주도하는 블록체인 업체 심비온트(Symbiont)의 케이틀린 롱 사장은 “델라웨어는 미국 기업법 역사에서 중요한 지역”이라며 “델라웨어가 블록체인과 관련해 새로운 규제를 만든다면, 이는 미국 전체 산업에 영향을 미칠 것이며, 월스트리트를 통째로 흔들 수 있다”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의 예상과 달리 월스트리트는 기술적으로 상당히 낙후됐다고 롱 사장은 밝혔다. 많은 은행이 밀레니얼 세대를 잡기 위해 뱅킹 애플리케이션을 출시하고, 외부적으로 핀테크(금융과 IT를 융합한 서비스)를 적극 활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금융사의 사무실 업무 절차를 들여다보면 불필요하고 불편한 점투성이다. 모건스탠리와 크레디트스위스 등 월스트리트에서 22년간 일해온 롱 사장은 “얼마나 많은 금융기관이 스마트폰과 태블릿PC로 대체할 수 있는 단순 업무에 대해 여전히 종이 서류를 고수하는지 모른다”며 “심지어 시대에 맞지도 않는 오래된 프로그래밍 언어인 코볼(Cobol)을 여전히 사용 중이다. 이는 충격적인 수준이다”라고 말했다.

따라서 델라웨어주가 이번 블록체인 파일럿 프로그램을 통해 관련 기업법을 제정한다면, 보다 효율적인 월스트리트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기업 간 거래의 결제 등 금융 서비스가 훨씬 빠르게 이뤄질 것이고, 장부 관리 역시 쉬워지는 것뿐 아니라 더 정확해질 것이다. 케이틀린 롱 사장은 “블록체인 기술은 진정한 ‘게임 체인저(game changer·어떤 일에서 흐름의 판도를 뒤바꿔놓을 만한 중요한 사건)’가 될 것”이라며 “이 기술이 잘 정착된다면, 사실 은행 업무를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20년쯤 뒤 금융 서비스 업체들은 ‘단순한 소프트웨어’로 전락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국내 IT 업계와 금융권을 중심으로 시작한 핀테크 열풍이 블록체인으로 옮겨붙었다. 블록체인은 디지털 가상 화폐인 비트코인(Bitcoin)의 보안 기술이다. 제3의 신용기관 없이 P2P(Peer-to-Peer·개인 간 연결) 방식의 분산된 네트워크로 거래 내역을 암호화한 것이다. 참여자 간 동일한 블록체인을 가지며, 각 블록에는 같은 거래 내역이 담겨 있다.


블록체인 개발로 가상화폐 시대 ‘성큼’ 

은행이나 증권 등 금융회사들은 거래 내역을 담은 장부를 안전하게 보관하는 게 큰일 중 하나다. 만약 거래 내역이나 장부가 외부로 유출되면 금융시장에 막대한 혼란이 벌어지게 된다. 그래서 외부 해킹 등을 막기 위해 원장(Ledger·회계 정보를 일정한 형식으로 기록·취합한 장부)을 한곳에 모아 관리하는 신뢰할 수 있는 제3의 기관(TTP·Trusted Third Party)을 설립하고 해당 기관에 대한 신뢰를 확보하는 중앙집중형 방식으로 원장을 보관해왔다. 중앙집중형 서버에 거래 기록을 보관하는 이 방식은 막대한 돈이 든다.

그런데 최근 분산원장(Distributed Ledger) 기술이 발전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개개인의 거래 기록을 마치 레고 블록처럼 분산 보관해 관리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분산원장 기술은 거래 정보를 기록한 원장을 특정 기관 중앙 서버가 아닌 P2P 네트워크에 분산, 참가자가 공동으로 기록하고 관리하는 기술을 뜻한다. 분산원장 기술은 중앙집중형 방식에 비해 효율적이고 안전하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는 평가다.

대표적인 분산원장 기술이 현재 주목받고 있는 블록체인이다. 블록체인 기술이 상용화되면 거래 내역을 보관할 서버 구축과 관리·운영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은행, 증권거래소가 막대한 비용을 들여 중앙집중형 서버를 구축·관리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컴퓨터가 10분에 한 번씩 개인 거래 기록을 검증하면서 은행과 거래자들은 개인 거래 내역을 실시간 대조해 거래와 관련된 데이터 위조를 방지할 수 있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 맥킨지앤드컴퍼니는 “중앙집중형 시스템의 분산화에 따른 절감 효과가 연간 약 23조원에 달할 것”으로 분석했다.

블록체인의 가장 큰 장점은 비트코인과 같은 가상화폐의 사용을 가능하게 해준다는 것이다. 블록체인이 알려지게 된 계기가 비트코인 거래를 위한 보안기술로 화제를 모았기 때문이다. 비트코인은 중앙통제기관이 없는 P2P 기반의 디지털 화폐다. 2009년 나카모토 사토시(본명 크레이그 스티븐 라이트)라는 호주 프로그래머가 개발했으며, 2013년 가격이 전년 대비 90배 이상 급등하면서 대중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비트코인과 같은 가상화폐가 활성화되면 앞으로 지폐나 동전 같은 실물 화폐는 필요없게 된다. 

이는 상상만의 일이 아니다. 중앙은행에서 찍어내는 동전과 지폐로 물건을 구매하던 과거에서 신용카드 한 장으로 모든 거래를 대체하는 시대가 왔듯이, 미래에는 가상화폐가 경제를 지배할 가능성이 크다. 일부 국가의 중앙은행들은 이미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고유의 가상화폐 발행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스웨덴 중앙은행은 현재 블록체인을 활용해 토지 소유권과 이전 내용을 기록하는 스마트계약 플랫폼을 만드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영국 은행은 블록체인을 결제, 어음 교환, 정산에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고심하고 있다.

블록체인에 의한 변화는 이미 시작됐으며, 금융산업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세계경제포럼(WEF)은 올해 말까지 전 세계 은행의 80%가 블록체인을 도입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컨설팅사 액센추어(Accenture)는 최근 블록체인 기술이 10대 투자 은행 중 8곳의 인프라 비용을 평균 30% 절감해 ‘연간 80억~120억달러의 비용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공개했다.

JP모건체이스·골드만삭스·시티그룹·바클레이스·UBS 등 40여개 주요 글로벌 금융회사는 ‘R3CEV’라고 불리는 블록체인 컨소시엄을 구성해 상용화를 진행 중이다. IBM·인텔·체인(Chain)·에리스인더스트리(Eris Industry)·이더리움(Ethereum) 등의 기업은 블록체인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포브스(Forbs)’ 등 세계 주요 언론은 미국 월스트리트에서 블록체인을 경험할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전했다.


최근 랜섬웨어 공격으로 비트코인의 익명성을 둘러싼 논란이 대두됐다.
최근 랜섬웨어 공격으로 비트코인의 익명성을 둘러싼 논란이 대두됐다.

비트코인 거래 늘면서 랜섬웨어 공격도 급증

그러나 블록체인 기술이 상용화되기 위해서는 극복해야 할 난제들도 있다. 최근 비트코인 등 익명성을 보장하는 가상화폐가 빠른 속도로 보급되며 컴퓨터 해킹 피해자에게 돈을 요구하는 ‘랜섬웨어(Ransomware)’ 사이버 공격이 급증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특히 비트코인 가격이 오르면서 해커들의 범죄 동기를 자극한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랜섬웨어를 앞세운 사이버 공격이 지난해 하루 평균 4000건에 달했다며 1년 전에 비해 무려 4배가량 증가했다고 보도했다. 랜섬웨어는 영어로 몸값(Ransom)과 소프트웨어(Software)를 합친 용어로, 컴퓨터 시스템을 잠그거나 데이터를 암호화해 사용할 수 없도록 한 뒤 돈을 요구하는 악성 프로그램이다.

지난 12일 랜섬웨어 사이버 공격을 받은 영국·독일·프랑스를 비롯한 피해국의 정부 기관, 민간 기업의 컴퓨터에는 ‘당신들의 파일은 접근할 수 없도록 암호화됐다’는 메시지와 함께 비트코인으로 300달러를 지불하라는 전달 사항이 올라왔다. 이 돈을 송금해야 컴퓨터와 파일을 풀어주겠다는 위협이었다.

이 악성 프로그램이 등장한 것은 1980년대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이 공격이 지난해 이후 급증한 데는 익명성에 기댄 가상화폐 보급이 한몫한 것으로 분석된다. 비트코인이 중앙의 통제를 배제하는 특성 탓에, 이슬람국가(IS), 범죄 단체, 부패 공무원 등이 당국의 추적을 피하기 위한 자금 세탁 수단으로 비트코인을 활용한다는 의혹이 꼬리를 물고 있다.

거래의 익명성을 보장하는 이러한 기술의 핵심에는 블록체인이 자리 잡고 있다. 미국 조지 메이슨 대학의 메르카투스센터에서 금융기술을 연구하는 브라이언 나이트 선임 연구원은 “어떤 중앙 기구도 (비트코인 사용) 접근을 차단할 수 없다”면서 “당신은 벨라루스나 말레이시아, 심지어 달(moon)에서도 누군가로부터 비트코인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범죄자들이 신원을 노출하지 않고도 돈을 송금받을 수 있어 사이버 공격이 증가하고 있다는 뜻이다.

비트코인의 가격 급등도 범죄를 부추겼다. 비트코인 정보 업체인 코인데스크(Coindesk)에 따르면 비트코인 가격은 지난 11일 1비트코인당 1800달러(203만원)를 넘어섰다. 지난해 말까지만 하더라도 1000달러에도 못 미쳤지만, 현재는 연초 대비 100% 가까이 치솟았다. 전 세계에 있는 비트코인의 가치는 500억달러(약 57조원)를 넘어 섰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를 두고 “비트코인 가격 급등이 범죄자의 배를 불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블록체인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기술 개발만큼 관련 규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아울러 ‘블록체인 만능주의’로까지 확대되는 지나친 환상 역시 경계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블록체인이 기존 IT 인프라를 혁신할 가능성이 높은 기술인 것은 맞지만, 블록체인이 모든 문제를 개선할 수는 없다는 것, 블록체인 기술을 냉정하게 바라보고 바람직한 적용을 고민해야 한다는 의미다.


블록체인이 적용될 분야는 금융뿐 아니라 물류·항만·의류 등 무궁무진하다.
블록체인이 적용될 분야는 금융뿐 아니라 물류·항만·의류 등 무궁무진하다.

금융뿐 아니라, 물류·항만 등 적용 분야 다양

전문가들은 블록체인이 적용될 분야는 금융뿐 아니라 물류·항만·의류·헬스케어 등 무궁무진하다고 말한다. 레이저가 처음에 군사용으로 쓰였다가 지금은 미용·의료·산업·예술 등에 널리 사용되는 것처럼 용도가 확대될 것이란 의미다.

이미 산업 전반에서는 블록체인을 활용한 기술 개발을 위한 움직임이 활발하다. 유통업체 월마트는 식음료 운송·판매 과정을 추적하기 위해 블록체인 기술을 도입했다. 중국 시장에서 돈육 추적용으로 개발된 파일럿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며, 미국 시장에서도 다른 품목에 대해 실험을 전개해나갈 계획이다. 세계 최대 해운사 머스크라인은 물류 계약·선적·운반 등 전 과정에 블록체인을 도입하는 실험을 진행 중이다. 현재 일부 계약에 대해 적용 중이며 연말까지 전면 확대하는 것이 목표다. 이를 통해 거래 투명성과 효율성을 높이고 서류 업무를 획기적으로 줄여 연간 수십억달러의 비용을 감축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IBM 왓슨 헬스(IBM Watson Health)와 미 FDA는 민감한 전자 의료 기록, 임상시험, 모바일 장치 및 웨어러블(Wearable)로부터 도태된 데이터를 포함하여 안전한 환자 데이터 교환을 위해 블록체인을 활용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두바이 정부는 2020년까지 모든 정부 문서를 블록체인으로 관리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인도 자동차 제조 업체 마힌드라는 IBM과 협력해 인도 전체 금융 공급망을 재편하기 위한 블록체인 솔루션을 개발하고 있다. IT 서비스 기업 젠팩트(Genpact)의 전략 부사장 사랍 굽타는 “블록체인과 분산형 원장은 결국 상업 세계 전체의 기록 보존을 통합하는 방법일 수 있다”고 말했다.


keyword


블록체인(Block Chain) 공공 거래 장부라고도 부르며 가상화폐로 거래할 때 발생할 수 있는 해킹을 막는 기술이다. 기존 금융회사의 경우 중앙집중형 서버에 거래 기록을 보관하는 반면, 블록체인은 거래에 참여하는 모든 사용자에게 거래 내역을 보내 주며 거래 때마다 이를 대조해 데이터 위조를 막는 방식을 사용한다. 블록체인은 대표적인 온라인 가상화폐인 비트코인에 적용돼 있다.
비트코인(Bitcoin) 지폐나 동전과 달리 물리적인 형태가 없는 온라인 가상화폐(디지털 통화)다. 미국발(發)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8년 나카모토 사토시라는 이름으로 위장한 정체불명의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창안했다. 특히 2009년은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막대한 양의 달러를 찍어내 시장에 공급하는 양적완화가 시작된 해로, 달러화 가치 하락 우려가 겹치면서 비트코인이 대안 화폐로 주목받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