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는 중국의 뒤를 잇는 거대 시장으로 주목받고 있다. 사진은 인도 전자상거래 업체인 페이티엠(PayTM). <사진 : 블룸버그>

인터넷 산업은 변화의 속도가 워낙 빨라 정답이 없다고들 한다. 정답이 없으니 교과서가 있을 리 만무하지만 전 세계 인터넷 산업 종사자들이 빼놓지 않고 찾아 읽는 보고서가 하나 있다. ‘인터넷의 여왕’ 메리 미커(Mary Meeker)가 매년 발간하는 ‘인터넷 트렌드(internet trends)’ 리포트다. 미국 벤처캐피털인 클라이너 퍼킨스(KPCB)의 투자 매니저 메리 미커는 1995년부터 매년 인터넷 산업을 분석한 보고서를 내고 있다. 올해 보고서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테라니아 리조트에서 열린 ‘코드 콘퍼런스’에서 공개됐다. 메리 미커 보고서는 공개되자마자 전 세계 미디어에 주요 내용이 전해졌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도 화제가 됐다. 올해 보고서는 355쪽으로 작년(213쪽)보다 분량이 크게 늘었다. 그만큼 인터넷 산업의 성장과 변화가 빠르고 다양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의미다. 메리 미커 보고서에서 눈여겨봐야 할 주요 내용을 꼽아봤다.


트렌드1 |
모바일·공유 서비스에 꽂힌 중국

중국은 인터넷 산업에서도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시가총액 상위 20개 인터넷 기업 중 7개가 중국 기업이다. 미국(12개)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20위에 겨우 이름을 올린 야후재팬을 제외하면 미국과 중국 기업뿐이다. 중국 텐센트의 시가총액이 3350억달러로 애플(8010억달러), 알파벳(구글·6800억달러), 아마존(4760억달러), 페이스북(4410억달러)에 이어 다섯 번째로 많았다. 알리바바(3140억달러), 바이두(660억달러), 앤트파이낸셜(600억달러), JD닷컴(580억달러), 디디콰이디(500억달러), 샤오미(460억달러) 같은 중국 기업도 순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중국 인터넷 산업의 성장을 이끌고 있는 분야는 모바일인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지난해 중국 모바일 인터넷 이용자가 7억명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전년 대비 12% 증가한 규모다. 2014년을 기점으로 모바일을 통한 인터넷 이용 시간이 데스크톱(랩톱 포함) 인터넷 이용 시간을 넘어섰다. 지난해에는 모바일 인터넷 이용 시간이 하루에 3.1시간으로 데스크톱(2.2시간)보다 한 시간 가까이 많았다. 중국 인터넷 산업에는 이런 흐름이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중국의 모바일 인터넷 이용 시간 총합은 하루 25억 시간으로 전년 대비 30% 증가했다.

중국에서는 차량 공유 서비스에 이어 자전거 공유 서비스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중국 대표 자전거 공유 기업인 모바이크의 자전거들이 상하이 길가에 서있다. <사진 : 블룸버그>
중국에서는 차량 공유 서비스에 이어 자전거 공유 서비스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중국 대표 자전거 공유 기업인 모바이크의 자전거들이 상하이 길가에 서있다. <사진 : 블룸버그>

중국 모바일 인터넷 이용자는 주로 게임이나 전자상거래를 이용하고 있다. 전체 모바일 인터넷 이용 시간의 대부분을 텐센트, 알리바바, 바이두의 서비스를 이용하는 데 쓰고 있다. 모바일 인터넷 이용 시간 증가는 모바일 결제 시장의 급성장으로 이어졌다. 중국의 모바일 결제 시장 규모는 지난해 5조달러(약 5650조원)로 1년 만에 두 배 이상 늘었다.

공유경제도 중국 인터넷 산업을 설명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단어가 됐다. 중국 최대 차량 공유 업체인 ‘디디콰이디’는 글로벌 인터넷 기업 시가총액 15위에 이름을 올렸다. 최근에는 자전거 공유 서비스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올 3월 중국 공유 자전거 서비스 이용자는 2000만명을 넘었는데 불과 한 달 만에 두 배나 증가했다. 중국의 차량 공유 서비스와 자전거 공유 서비스는 전 세계 시장의 67%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규모가 크다. 보고서는 “GPS(위성항법장치), QR코드, 모바일 결제 등을 접목해 손쉽게 공유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한 것이 성공 비결”이라고 분석했다.


트렌드2 |
글로벌 인터넷 기업의 격전지 된 인도

올해 메리 미커 보고서에서 눈에 띄는 특징 중 하나는 인도다. 보고서는 인도의 인터넷 산업을 별도로 분석했다. 지난해 미커의 보고서에서 개별 국가를 따로 분석한 건 중국이 유일했는데, 이제 인도가 중국만큼이나 중요한 시장으로 성장했다는 얘기다.

보고서는 지난해 인도의 인터넷 이용자가 3억5500만명으로 전년 대비 28% 증가한 것으로 분석했다. 같은 기간 전 세계 인터넷 이용자 증가율이 10%인 것에 비하면 인도의 성장세가 가파른 것을 알 수 있다. 인도 인터넷 산업의 성장은 거시경제의 안정과 정책적인 지원 덕분에 가능했다. 지난해 인도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6.8%로 중국(6.7%)보다 높다. 전 세계가 저성장의 늪에서 허우적거릴 때도 인도는 예외였다. 경제 성장은 소비 계급의 증가로 이어졌다. 보고서에 따르면 인도 전체 인구 가운데 생계 유지를 위한 필수 지출 이상의 소비가 가능한 인구 비율이 2005년 7%에서 2015년 27%로 증가했다. 규모로 보면 1400만명에서 6600만명으로 늘어났다. 여기에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도 인터넷 산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인도가 제2의 중국으로 떠오르면서 전 세계 인터넷 기업들의 격전지가 되고 있다. 전자상거래 시장에서는 플립카트(Flipkart), 아마존, 페이티엠(PayTM) 같은 기업이 경쟁하고 있고,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삼성전자, 샤오미, 오포, 비보 등이 맞붙고 있다. 인도의 인터넷 산업은 매년 성장을 거듭하고 있기 때문에 선두 업체도 수시로 바뀌고 있다. 이동통신 시장이 대표적인 경우다. 작년 상반기까지만 해도 인도의 이동통신 시장은 바티 에어텔, 보다폰, 아이디어가 삼파전을 벌이고 있었다. 그런데 작년 3분기 신규 사업자인 릴라이언스 지오가 뛰어들면서 판도가 급변했다. 릴라이언스 지오는 인도 최대 기업 중 하나인 릴라이언스의 이동통신 브랜드로 4세대 이동통신(4G) 서비스와 통신비 무료 행사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앞세워 단숨에 1위 사업자로 뛰어올랐다. 올해 1분기에는 지오의 이동통신 가입자가 1억800만명으로 바티 에어텔(4900만명), 보다폰(3800만명), 아이디어(2500만명)를 크게 앞서고 있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시장도 경쟁이 치열하다.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의 경우 다운로드 상위 10개 중에 미국이 4개, 중국이 2개, 인도가 2개씩을 차지하고 있다. 스웨덴(Truecaller)과 한국(MX Player)도 이름을 올렸다. 인도 현지 스타트업과 글로벌 기업들의 주도권 다툼은 현재진행형이다.

보고서는 “인도인의 모바일 이용 시간이 TV 이용 시간의 7배에 이르고 있다”며 “모바일 인터넷 이용이 일상화하면서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를 즐기는 방식도 근본적으로 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10월 미국 로스앤젤레스 스테이플스센터에서 열린 리그오브레전드 월드 챔피언십 현장. 전 세계에서 4300만명이 대회를 지켜봤다. <사진 : 블룸버그>
지난해 10월 미국 로스앤젤레스 스테이플스센터에서 열린 리그오브레전드 월드 챔피언십 현장. 전 세계에서 4300만명이 대회를 지켜봤다. <사진 : 블룸버그>

트렌드3 |
게임이 인터넷 혁명의 미래

올해 메리 미커 보고서에서 한국 기업의 이름을 찾기가 쉽지 않다. 한국을 대표하는 인터넷 기업인 네이버나 카카오의 이름은 어디에도 없다. 대신 게임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생소할 수 있는 ‘온게임넷(OGN)’과 ‘한국e스포츠협회(KeSPA)’에 대한 설명이 들어갔다. 한국e스포츠협회는 ‘리그오브레전드’ ‘스타크래프트’ 같은 온라인 게임 대회를 주최하는 단체고, 온게임넷은 2000년에 개국한 게임 전문 방송이다. 네이버나 카카오가 빠진 메리 미커 보고서에 온게임넷이나 한국e스포츠협회가 들어갔다는 사실은 그만큼 인터넷 산업에서 게임이 차지하는 위상이 커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실제로 보고서는 “게임이 인터넷 혁명의 미래를 이끌 것”이라고 전망했다.

인터넷에서 게임을 즐기는 인구는 1995년 1억명에서 올해 26억명으로 증가했다. 초창기 게임은 집에서 혼자 즐기는 방식이었는데 최근에는 인터넷을 통해 여러 사람과 동시에 게임을 할 수 있게 되면서 게임 산업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세계 최대 게임사 중 하나인 블리자드의 온라인 게임을 즐기는 월간 이용자 수(MAU)는 2015년 1분기에 2100만명에서 올해 1분기에 4100만명으로 증가했다. 다른 사람의 온라인 게임 영상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트위치(Twitch) 같은 서비스도 덩달아 인기를 얻고 있다. 트위치의 전체 방송 시간은 2012년 12억 시간에서 2016년 49억 시간으로 늘었다. 온게임넷은 2012년부터 리그오브레전드 토너먼트 경기를 방송하기 시작했는데, 지난해 리그오브레전드 월드 챔피언십의 경우 총시청자가 4300만명이나 됐다. 전 세계 e스포츠 월간 시청자 수도 2012년 5800만명에서 지난해 1억6100만명으로 급증했다.

글로벌 게임 산업의 성장을 주도하는 지역은 아시아다. 게임 시장 전문 조사기관인 뉴주(NEWZOO)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게임 산업 매출액 가운데 47%가 아시아 지역에서 나왔다. 아시아에서도 중국의 성장이 가장 눈부시다. 중국 온라인 게임 시장 규모는 2011년 538억위안(약 8조9400억원)에서 지난해 1789억위안(약 29조7400억원)으로 세 배 이상 증가했다. 코트라 중국 난징무역관 관계자는 “중국 정부가 e스포츠 시장을 적극적으로 육성하고 있고 중국 게임 순위에서도 e스포츠를 할 수 있는 게임이 상위권에 오르고 있다”며 “중국 e스포츠 분야에 진출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안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트렌드4 |
말로 검색하는 시대 박두

말이 글보다 빠르고 편하다는 건 당연한 사실이다. 글을 쓸 경우 사람이 1분에 입력할 수 있는 단어는 보통 40개 정도다. 반면 말을 할 경우에는 1분에 150개까지도 입력할 수 있다. 음성인식 기술의 정확도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아마존의 음성인식 비서인 알렉사가 TV 뉴스 앵커의 말을 듣고 장난감을 실수로 주문한 해프닝은 잘 알려져 있다. 음성인식 기술의 정확도가 높아지면서 이런 해프닝은 과거의 일로 남을 가능성이 커졌다. 보고서는 “음성인식 기술의 정확도가 2016년 90%에서 2017년 95%까지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음성인식 기술이 보편화하면서 글 대신 말로 검색하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구글 쿼리(Query·검색 엔진에 이용자가 올리는 질의)에서 음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20%까지 증가했다. 아마존의 음성인식 비서인 알렉사를 탑재한 에코의 설치 대수는 올해 1분기에 1000만대를 넘어섰다.

이미지도 글을 대체하고 있다. 구글은 지난달 마운틴뷰에서 열린 연례개발자회의에서 ‘구글 렌즈’를 선보였다. 구글 렌즈는 카메라에 포착된 이미지와 관련된 정보를 실시간으로 제공하는 서비스다. 예컨대 꽃을 찍으면 어떤 종류의 꽃인지 알려주고, 음식점 간판을 찍으면 메뉴와 이용자 리뷰를 보여주는 식이다. 보고서는 “이미지와 음성을 데이터에 결합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트렌드5 |
웨어러블 시대 헬스케어 정보 급증

메리 미커 보고서는 클라우드와 헬스케어도 주목해야 한다고 밝혔다. 클라우드와 관련해서는 전통적인 데이터 센터의 비중이 줄고 공개형 클라우드(Public Cloud)와 폐쇄형 클라우드(Private Cloud)의 비중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헬스케어 시장에서는 웨어러블(Wearable)이 각광받고 있다. 2014년까지만 해도 웨어러블 기기 출하량은 2600만대에 머물렀지만 지난해에는 1억200만대로 증가했다. 미국인 네 명 중 한 명이 웨어러블 기기를 사용하고 있다. 웨어러블 기기 덕분에 건강과 관련된 정보량도 매년 48%씩 증가하는 추세다.

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은 “메리 미커 보고서는 글로벌 벤처캐피털이 어떤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어디에 투자하는지 가늠할 수 있는 시금석”이라며 “메리 미커 보고서에 소개된 글로벌 트렌드는 시차를 두고 한국 시장에도 영향을 주기 때문에 인터넷 기업이나 스타트업은 유념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Plus Point

메리 미커, 넷스케이프 발굴한 인터넷의 여왕

미국 벤처캐피털 클라이너 퍼킨스(KPCB)의 투자 매니저 메리 미커(Mary Meeker). <사진 : 블룸버그>
미국 벤처캐피털 클라이너 퍼킨스(KPCB)의 투자 매니저 메리 미커(Mary Meeker). <사진 : 블룸버그>

메리 미커(Mary Meeker)는 ‘인터넷의 여왕’ 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1959년 미국 포틀랜드에서 태어난 그녀는 1982년 메릴린치에서 애널리스트로 근무하며 투자 업계에 뛰어들었다. 평범한 애널리스트였던 메리 미커의 인생이 바뀐 건 1994년 뉴욕타임스(NYT)에서 ‘모자이크 커뮤니케이션’ 이라는 스타트업에 대한 기사를 접하면서부터다. 당시 모건스탠리에서 일하고 있던 미커는 모자이크의 성장 가능성을 알아봤고, 모자이크의 설립자들을 만나 기업공개(IPO) 작업을 주도했다. 1995년 나스닥에 상장한 이 회사의 주가는 첫날 공모가의 세 배 가까이 올랐다. 상장 과정에서 모자이크는 회사 이름을 바꿨는데 바로 ‘넷스케이프’ 다. 넷스케이프의 성공으로 미커의 이름도 함께 유명해졌다. 이후에도 그녀는 컴팩, 마이크로소프트 등 정보통신(IT) 기업에 대한 족집게 분석으로 이름을 날렸다. 경제지 ‘배런스(Barrons)’ 가 1998년 기사에서 미커를 ‘인터넷의 여왕’ 이라고 지칭했고, 이후 그녀의 별명이 됐다.

2000년대 초반 미국의 닷컴버블이 끝나면서 힘든 시기도 있었다. IT 기업에 대한 전망을 부풀렸다는 이유로 여러 애널리스트가 투자자들에게 소송을 당했고 검찰 조사를 받기도 했다. 미커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만 그녀에 대한 검찰 조사는 무혐의로 결론 났다. 미커의 보고서는 다른 애널리스트와 달리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닷컴버블이 끝난 뒤에도 미커는 모건스탠리의 애널리스트로 근무하며 IT 기업에 대한 분석과 투자를 담당했다. 2004년 구글의 기업공개 작업에도 참여했다.

1982년 메릴린치를 시작으로 줄곧 월가에서 일해온 미커는 2010년 실리콘밸리로 자리를 옮겼다. 벤처캐피털인 클라이너 퍼킨스(KPCB)에 파트너로 합류한 것이다. 미커는 KPCB에서 페이스북, 스포티파이, 슬랙, 사운드클라우드 등에 대한 투자를 이끌며 매년 전 세계 인터넷 업계의 현황을 분석한 보고서를 내고 있다. 경제 전문지 ‘포천’ 은 2010년 미커를 ‘전 세계에서 가장 명민한 IT 업계 10대 인물’ 에 꼽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