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크 형제는 정책 네트워크를 통해 정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형인 찰스 코크(오른쪽)와 동생 데이비드 코크. <사진 : 코크산업>

“미국이 우리를 막을 수는 없다”(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미국과 지구 미래에 대한 큰 실수”(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월 2일 파리 기후협약 탈퇴를 발표하자 비난이 쏟아졌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이자 세계은행 부총재를 지낸 조지프 스티글리츠가 “불량 국가(rogue state) 미국이 지구를 파괴하도록 내버려두면 안 된다”며 분개했다. 중국은 조용히 웃었고, 북한은 “미친 짓”이라 조롱했다. 데이비드 링크 주중 미국대사 대리는 사표를 던졌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제프리 이멜트 GE CEO 등 미국을 대표하는 기업인들은 “미국의 번영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허탈해했다. 30대 대기업 경영자들이 지난달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등 일간지 전면 광고를 통해 파리 기후협약 준수를 호소했지만 허사였다.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 이반카 트럼프 등 측근들의 설득도 소용없었다고 미국 언론들은 보도했다.

트럼프는 모두가 반대하는 결정을 내린 것일까?

“데이비드 코크와 찰스 코크, 두 사람의 승리다. 이게 현실 정치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제프리 삭스 컬럼비아대학 교수는 미국의 기후협약 탈퇴 소식을 전해 듣고 “공화당 지도부를 매수한 코크 형제의 작품이다. 트럼프는 단지 도구에 불과하다”고 탄식했다. 셸던 화이트하우스 민주당 상원의원도 “코크 형제와 그들의 선전 네트워크가 트럼프를 조종했다”고 비난했다.

뉴욕타임스는 ‘공화당 지도부가 어떻게 기후 변화를 가짜 과학(Fake Science)으로 생각하게 됐나’라는 장문의 기사(6월 3일 자)에서 “코크 형제의 정교한 캠페인에 따라 공화당 의원들이 움직이고 있다”고 했다. 뉴욕타임스는 “심지어 트럼프가 읽어 내린 탈퇴 발표문의 문장 하나하나가 코크 형제의 평소 주장과 놀라울 정도로 일치한다”고 보도했다.


미국서 두 번째로 큰 비상장 회사 경영

흔히 ‘코크 형제들(Koch Brothers)’로 불리는 찰스 코크(82)와 데이비드 코크(77)는 미국 캔자스주 위치토에 본사를 둔 코크산업(Koch Industries)의 CEO와 수석부사장이다. 지분 42%씩을 나눠 가진 오너 경영자들이다.

코크산업은 정유·화학·비료·광산·종이·목재·카펫·광섬유·산림·목장·금융·벤처투자사를 거느린 다국적 석유 재벌 기업이다. 60개국에서 종업원 12만명이 일하며 하루 정제 능력 9534만 리터(60만배럴), 미국 전역에서 6400㎞에 달하는 파이프라인을 운영한다.

2013년 매출 1150억달러(약 126조원)로 ‘곡물 메이저’ 카길에 이어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비상장 회사다. ‘포천 500대 기업’ 순위 17위에 해당하는 거대 기업이다.

두 형제의 재산은 각각 487억달러(2017년 2월 현재)다. ‘포브스 선정 억만장자 순위’ 공동 8위다. 형제의 재산을 합하면 974억달러(약 110조원)로, 1위인 빌 게이츠(860억달러)를 가볍게 뛰어넘는다. 2016년에는 각각 396억달러로 공동 9위였다.

‘권력에 취한 억만장자들’(해리 리드 전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 ‘행동하는 기업가’ 등, 형제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을 달린다.

찰스 코크는 고전적인 자유주의 신봉자다. 알렉시스 토크빌, 애덤 스미스, 조지프 슘페터 사상에 크게 영향받았다. ‘국가 개입은 노예제로 가는 길’이라 설파한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루드비히 폰 미제스 등 오스트리아 학파를 신봉한다.

“정부 역할이 커질수록 시장과 자유기업 시스템은 질식하고, 장기적으로 사회와 경제 번영을 위협한다.”

코크 형제는 “거대 공공 기관은 소송으로 먹고사는 변호사들의 먹잇감일 뿐”이라며 큰 정부, 정치 계급을 경멸한다. ‘창조적인 파괴’ ‘혁신’이 살아 숨 쉬는 자유시장경제와 기업가 혁신이 개인의 자유를 지킨다는 신념이 확고하다.


공화당에 네트워크·자금 지원

“경제 자유를 침해하는 정책들로 엄청난 돈을 국가에 귀속시켰다”며 ‘오바마 케어’를 관철하고 클린 파워 플랜을 추진한 오바마 대통령에게 적대적이었다. 공화당이 지배하는 지방 정부들이 연방 정부 명령에 반대해 소송전을 벌이도록 자금과 조직을 제공했다고 뉴욕타임스는 보도했다.

동생 데이비드 코크는 사회적 자유주의자다. 1980년 대선에서 리버테리언당 에드 클라크의 러닝 메이트로 출마, 연방준비위원회(FRB) 폐지, 사회 보장 보험 폐지 등을 공약으로 내걸고 1% 가까운 득표를 했다.

코크 형제는 정책 네트워크를 통해 정책 어젠다와 이슈를 개발하고 막대한 자금과 단단한 조직으로 지지 후보를 당선시킨다. ‘번영을 위한 미국인(AFP·Americans for Prosperity)’은 코크 형제의 강력한 정치 네트워크다. 2004년 버지니아주 알링턴에 설립된 뒤 2010년 공화당의 하원의회를 장악하고, 2014년 상원 선거 승리의 핵심 동력이란 평가가 나올 정도로 영향력이 막강하다. 연간 예산 4000만달러, 35개 주에서 활동하는 회원이 190만명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트럼프 선거대책본부장이었던 코리 루언다우스키가 AFP 국장 출신이다.

2004~2008년 2억4600만달러를 들여 자유주의 이념 확산을 위한 공공정책 연구, 교육 프로젝트를 지원한 코크 형제는 2012년 대선에 2억4000만달러, 2016년 대선에 9억달러(약 1조원) 가까운 돈을 공화당 후보와 지지 단체들에 지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2년에는 미트 롬니 후보를 공개 지지했지만 2016년 대선에서는 트럼프와 거리를 뒀다.

트럼프의 ‘무슬림 미국 입국 금지’ 공약을 “괴물스럽다”고 비난하고 “이슬람국가(IS)의 영역에 융단 폭격을 해야 한다”는 크루즈 상원의원의 주장을 “끔찍한 허풍”이라고 일축했다. 해외 전쟁 개입, 반이민 정책과 분명한 선을 긋고 있다.

대선 기간 ‘트럼프와 힐러리 클린턴 중 누구를 지지하느냐’는 질문을 받자 “암(Cancer)과 심근경색(Heart Attack) 중 반드시 한쪽을 골라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하지만 그들이 오랫동안 후원한 마이크 펜스가 부통령이 되는 등 ‘코크 형제의 사도’들이 트럼프 주변에 여럿 포진해 있다.



코크산업은 60개국에 종업원 12만명을 둔 다국적 기업이다. <사진 : 코크산업>

plus point

네덜란드 이민 3세…
동생은 1980년 부통령 출마

캔자스주 위치토 태생인 코크 형제는 네덜란드 출신 이민자로 서부 텍사스에서 언론과 철도 사업으로 부자가 된 해리 코크의 손자다. 아버지 프리드 코크는 1940년대 ‘록아일랜드 정유’ 등의 경영에 참여, 텍사스 중질유에서 가솔린을 추출하는 정제법을 발명해 부자가 됐다. 찰스 코크는 “부유했지만 가난한 집 아이들처럼 일해서 돈을 벌어야 했다”고 어린 시절을 회고했다.

두 형제 모두 매사추세츠공과대(MIT) 학부를 나와 석사 학위(찰스 코크는 기계공학·화학공학 등 2개, 데이비드 코크는 화학공학 석사)를 받았다.

찰스 코크는 1967년 부친 사망 직후 경영자로 나섰고, 데이비드 코크는 1970년에 합류했다. 정유·화학을 기반으로 사업 다각화에 성공, 46년 만에 회사 규모를 2500배 키웠다. 4형제인 코크 형제들은 1980~90년대 재산 다툼을 벌였다. 1983년 차남(찰스)과 3남(데이비드)이 다른 형제들의 지분을 11억달러에 인수했다.

코크 형제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링컨센터, 뉴욕 장로회병원, 자연사박물관의 주요 후원자다. 데이비드 코크는 2008년 뉴욕시티발레단 극장 개조 비용으로 1억달러를 내기도 했다. 데이비드 코크는 동성 결혼을 지지하며 교도 행정 개혁과 줄기세포 연구를 지원한다.

방성수 조선비즈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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