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G그룹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본사에서 한 직원이 자신의 컴퓨터를 통해 회사 정보를 확인하고 있다. ING그룹은 디지털 혁신을 통해 변신한 전통적 기업으로 통한다. <사진 : 블룸버그>
ING그룹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본사에서 한 직원이 자신의 컴퓨터를 통해 회사 정보를 확인하고 있다. ING그룹은 디지털 혁신을 통해 변신한 전통적 기업으로 통한다. <사진 : 블룸버그>

“나이 든 세인트버나드가 날렵한 그레이 하운드로 변신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네덜란드 금융그룹인 ING은행의 실적 턴어라운드를 이렇게 표현했다.

ING은행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격탄을 맞았다. 경영 악화로 한국 ING생명을 비롯해 미국·영국·캐나다의 ING다이렉트를 매각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6년 후인 2014년 이후 ING은행의 고객 수는 매년 150만명씩 늘고 있다. 지난해 세전이익은 2015년 실적(10억유로)을 훌쩍 뛰어넘은 12억유로(약 1조5100억원)를 기록했다.


디지털 혁신에 가장 중요한 것은 리더 역량

독일에서의 성과는 더 놀랍다. 도이체방크 등 독일계 주요 은행들이 저금리와 저성장으로 수익성이 악화된 것과 반대로 ING은행의 독일 지사인 ING-디바(DiBa)의 실적은 고공행진이다. 고객 수는 800만명으로 늘어났으며 독일에서 세 번째로 큰 소매 은행이 됐다. 독일에는 협동조합 은행들이 많기 때문에 대형 은행이 돈 벌기가 쉽지 않다. 유럽중앙은행(ECB)의 마이너스금리 정책으로 수많은 은행들이 소매 고객 계좌 수수료 부과를 고민할 때 ING는 지난해 1190억유로의 예금을 추가 유치했다. 137년 전통의 ING은행이 실적을 반전시킨 비결은 무엇일까.

업계는 ING은행의 부활 비결로 ‘디지털 혁신’을 꼽는다. ING은행은 온라인·모바일 등 디지털에 투자해 비용을 최소화하면서 고객 기반을 늘렸다. ING은행은 독일에 오프라인 지점을 한 군데도 두지 않고 있다. 2014년까지만 해도 독일에서 ING은행 계좌를 개설하려면 우체국에 가서 신분증을 보여주고 본인 확인을 해야 했다. ING는 2015년 컴퓨터 웹캠 기술을 도입해 온라인상으로 계좌개설이 가능하게 했다. 스마트폰 결제는 지문만 등록하면 보안카드 없이 구동되도록 했다.

하지만 ING은행의 사례는 매우 드문 케이스다. 전 세계 수많은 기업들이 구글·페이스북·우버·넷플릭스·아마존과 같은 디지털 신흥 기업의 역동성과 고객우선주의를 모방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기업들이 디지털화를 위해 이에 적합한 최고경영자(CEO)를 외부에서 영입하는 등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결과는 마뜩잖다. 외부 영입 CEO들은 회사의 관리자급 임원의 디지털 역량이 떨어지고 조직 시스템도 디지털화하는 데 부족하다고 불만을 토해 낸다. 오랜 역사의 대기업에 디지털 DNA를 심는 것은 과연 가능한 일일까.

대기업의 조직 운영 방식을 바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변화의 성공 여부는 조직의 리더, 특히 CEO에게 달려 있다. 특히 기업의 디지털화를 위해서 CEO의 역할은 더 중요하다. 기업을 디지털화하는 것은 단순히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조직 운영 방식을 들여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디지털화를 시도하는 대부분의 회사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대체적으로 기술적 노하우라기보다는 리더십일 때가 많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ING은행·레고그룹 등 대기업의 사례를 통해 디지털 변환을 시도하는 CEO가 따라야 할 5가지 황금법칙을 소개했다.


황금법칙 1 |
고유의 기업문화를 유지하라

조직의 디지털 혁신을 바란다면 기본적으로 기술 혁신을 받아들여야 한다. 우버나 에어비앤비, 스포티파이와 같은 디지털 공유경제 기업은 기술 혁신을 활용해 새로운 방식으로 택시 운송, 숙박, 음악 산업 소비자들에게 성공적으로 파고들었으며, 새로운 기업 운영 모델과 문화를 만들어냈다.

디지털 혁신을 이루려면 신생 기업의 성공 방식을 배워야 한다. 하지만 신생 기업의 성공 방식을 그대로 적용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각자 기업의 상황에 맞는 새로운 업무 방식, 새로운 수준의 고객 서비스와 새로운 기술 플랫폼을 조직에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 디지털화를 하겠다고 미국의 실리콘밸리나 인도 벵갈루루로 이른바 ‘기술 출장’을 다녀오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특히 기업 고유의 장점과 기업 문화를 포기해선 안 된다. 50년 혹은 100년 이상 사업을 영위한 기업은 디지털 시대에도 통용되는 자질을 분명히 갖고 있다. 예를 들어 레고그룹의 부활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디지털 미래를 잇는 중요한 사례가 된다.

1980년대 레고는 장난감 업계의 명실상부한 전 세계 1위 기업이었다. 승승장구하던 레고는 1990년대 중반부터 이익이 줄어들기 시작했고, 2003년에는 15억크로네(약 2000억원)라는 사상 최악의 적자를 기록했다. 이후 잠깐 이익이 회복세를 보였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실적은 다시 휘청했다.

예르겐 비그 크누스토르프(Jørgen Vig Knudstorp) CEO는 “레고가 중심(Focus)과 핵심(Core)을 잃고 표류하고 있을 때 과거 레고가 다른 회사보다 잘나갈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는지에 집중했다”고 말했다. 레고는 디지털 작업을 통해 충성 소비자의 목소리를 들었다. 크누스토르프는 “레고 브랜드는 엄청난 커뮤니티를 보유하고 있었지만, 이를 제대로 육성하지 않았다”며 “레고가 팬층을 관리하기 시작하자 그 파급 효과는 상상도 못 할 만큼 커졌다”고 말했다.

2000년대 후반 이후 레고는 캐릭터를 바탕으로 제작된 콘텐츠를 여러 가지 플랫폼에서 활용하는 전략을 도입했고, 현재 레고의 비즈니스 모델은 단순한 장난감 회사가 아니라 소프트웨어 회사처럼 변모했다.


황금법칙 2 |
장기 비전을 세우고 우선순위를 정하라

CEO가 디지털 전환에 앞서 가장 먼저 깊이 고민해야 할 것은 ‘비전 세우기’다. 조직을 변화시키는 것은 매출 목표를 잡고 달성하는 것과는 다른 작업이다. 디지털화도 마찬가지다. 종착지를 정해놓고 여기까지라고 할 수 없단 뜻이다. 이 경우에는 목표를 ‘비전’으로 대체해야 한다.

CEO는 조직의 구성원들에게 변화의 목적과 배경을 밝혀야 한다. 고객과 파트너사의 피드백에도 개방적이어야 한다. 이를 적응력 있는 리더십(Adaptive Leadership)이라고 한다. 적응력 있는 리더십은 우유부단한 리더십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진행 상황을 자주 검토하고, 잘못된 길을 바로잡는 것이 포인트다. 연도별로 했다면 분기별로, 매월 대신 매일 상황을 개선해 나가야 한다. 직원들과 비전을 공유하기 위해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도록, 면대면 회의를 늘리는 것도 한 방법이다.

ING은행은 디지털 전환을 위한 ‘오베야 방(大部屋⋅대회의실)’을 만들었다. ING은행의 최고기술담당(CTO) 로엘 루보프(Roel Louwhoff)는 “이 방이 바로 ING 변화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 방에서 회의를 열면 모든 프로젝트의 상태를 전체적으로 파악하고 신속하게 해결할 수 있다”며 “5분 안에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고 말했다.

이렇게 임직원들이 공유하는 비전을 세웠다면 비전을 바탕으로 거시적 프로젝트 목록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목록을 분석해 우선순위를 지정해서 일정을 짜야 한다. 조직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비용의 효율성을 갖고, 점진적으로 지속가능하게 진행해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단기간에 성과를 낼 수 있는 파일럿팀에서 시작해 우선 순위가 높은 사례부터 처리하고, 장기적으로 조직의 디지털 역량 프로그램을 구축하는 각론을 짜는 방식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예르겐 비그 크누스토르프 레고 최고경영자(CEO)가 영국 런던 사무실 앞 조형물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 블룸버그>
예르겐 비그 크누스토르프 레고 최고경영자(CEO)가 영국 런던 사무실 앞 조형물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 블룸버그>

황금법칙 3 |
‘플랜B’를 만들어라

리더가 디지털 전환을 위해 비전을 수립하고, 적응력 있게(유연하게) 대응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중요한 게 있다. 하나 이상의 대안, 즉 ‘플랜B’를 미리 생각해 두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처럼 기술적 진보가 빠르게 진행되는 시대에 시장을 예측하고 결정을 내리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떤 기술을 어떻게 분석하고 획득하느냐에 대한 결정을 내릴 때 최소한 두 가지 옵션, 오픈이노베이션과 포트폴리오 구성 전략을 갖고 진행해야 한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자체적으로 이 같은 변화를 이끌어낼 역량이 충분히 있다. 다만 시장 경쟁이 심해져 전환 속도를 높여야 한다거나 자원이 부족하다면 외부 전문가 조직의 힘을 빌릴 수도 있다.

실제 디지털화에 성공한 기업을 보면 대개 조직 밖을 잘 활용한다. 외부인들이 제품과 서비스를 향상시킬 수 있도록 허용했다는 뜻이다. 일례로 글로벌 은행들은 기술 벤처 즉 핀테크 기업들이 부가 서비스를 개발할 수 있도록 API(응용프로그램 인터페이스)를 개설하고, 소프트웨어를 활용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그렇다고 수많은 대안을 모두 다 고려하라는 뜻은 아니다. 거래를 성사시킨다는 측면에서 조직의 디지털 전환은 수많은 선택을 수반한다. 디지털 전환을 위해 수십, 수백 가지의 다양한 접근법과 파트너십을 평가하고, 또 결정해야 한다. 결정해야 하는 것이 파일럿 프로그램이 될 수도 있고, 디지털 역량 강화가 될 수도 있다.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않을지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진행하는 모든 것을 안고 갔다가는 소중한 자원만 낭비할 수도 있다.


황금법칙 4 |
조직을 민첩하게 바꿔라

ING은행은 조직 혁신을 위해 2013년 구글, 넷플릭스, 스포티파이의 조직 운영 방식인 이른바 ‘애자일(agile)모델’을 도입했다. 애자일 조직 운영은 해결이 필요한 사안이 있으면, 관련된 사람들이 한데 모여 ‘소규모 팀’을 만들고, 과제에 집중해 단기간에 문제를 해결하는 조직 운영 방식을 뜻한다.

팀의 리더는 팀 외부와 내부 관계자를 오가며 해결 가능성이 높은 아이디어를 추려내고, 중요한 순서로 의사를 결정한다. 업무팀은 주어진 과제를 작은 모듈로 구분해 짧은 기간에 무엇을, 어떻게 성취할지를 의논한다. 문제가 해결되면 팀은 해체한다.

ING은행은 13개 부서를 나누고, 부서당 9명으로 구성된 스쿼드팀을 350개의 애자일 팀으로 구성했다. 이 같은 조직 운영은 직원의 몰입도를 높이고,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렸다. 랠프 해머스 ING그룹 회장은 “소규모 팀들은 기술 개발을 통해 어떻게 하면 은행 업무를 더 쉽게 할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한다”며 “ING에서는 온라인 은행 업무에 필요한 클릭 수를 2개만 줄이면 파티를 연다”고 말했다.

전통적으로 관료주의적 대기업들은 조직을 바꾸려고 할 때 CEO나 수석임원이 이를 전담해 장기적으로 달성해 나가는 것을 가장 이상적이라고 본다. 그러나 디지털화를 막 시작한 회사의 경우에 이는 틀린 접근이다.

디지털화를 시도할 때는 선임급 임원이 진두지휘하기보다는 애자일 방식처럼 디지털화에 필요한 파일럿 팀을 조직해 그 팀의 운영을 맡길 사람을 일시적으로 구하는 게 낫다. 물론 관료적 조직에서 한 계단씩 승진하며 CEO 자리에 오른 리더들은 아무래도 ‘애자일’을 도입하는 것이 어색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애자일은 빠른 의사결정 구조에 자기주도적 장점을 갖고 있어 디지털화에 필요한 조직이다. 애자일을 조직하는 것은 물론, 글로벌 조직이 좀 더 빠르게 움직일 수 있도록 조직을 짜는 노력도 필요하다. 전환과정이 혁신적이고 파괴적일수록, 조직을 오랜 관습에서 해방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새로운 비즈니스 아이디어를 위한 조직 구도를 만들어야 한다.

팀에서 오래된 습관은 버려야 한다. 애자일팀은 관료주의나 거버넌스 조직보다는 직원의 역량 강화를 기반으로 구축된다. 팀장은 독립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권한을 줘야 한다. 통제와 자치 간에 균형을 찾는 것이 디지털 전환에 있어 리더십이 가져야 할 덕목이다.


황금법칙 5 |
디지털 인재를 양성하라

마지막으로 CEO는 주도적으로 사내 디지털 인재 양성을 고민해야 한다. 이는 단순히 인재뿐만 아니라 인프라 전반으로 확대해서 생각해 볼 문제다. 회사가 신규 데이터 분석 기술에 투자하기 전에, 기존의 데이터 분석 작동 방식을 숙지해야 한다.

회사의 현재 상황이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측정한 다음에, 신규 인재 영입이나 아웃소싱을 결정해야 한다. 디지털 전환 작업을 독점적 형태로 외부에서 들여올 수도 있지만, 이보다는 현직 직원을 교육해 디지털 능력을 갖추도록 육성하는 게 낫다.

몇몇 글로벌 대기업들은 인공지능(AI) 기능 분석과 같은 특수 활동뿐 아니라, 애자일팀 프로세스와 같은 디지털화에 도움이 되는 새로운 작업 스킬을 직원들에게 교육하는 사내 교육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2~3개월의 사내 연수를 받은 직원들은 본래 업무로 복귀해, 새로운 접근 방식을 전파하게 된다. 물론 일부 특수 직책은 외부에서 인재를 수혈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현직자들의 기술적인 배경이 충분하다는 것을 고려해, 외부 수혈은 제한적으로 하는 것이 낫다.


Plus Point

랠프 해머스 ING그룹 회장

ING그룹 디지털 혁신 이끈 랠프 해머스 회장. <사진 : 블룸버그>
ING그룹 디지털 혁신 이끈 랠프 해머스 회장. <사진 : 블룸버그>

랠프 해머스 ING그룹 회장은 2013년 10월 46세의 나이에 그룹 회장으로 임용됐다. 당시 그는 ING은행 벨기에 법인장을 맡고 있었다. 해머스 회장은 25살에 ING은행의 전신인 NMB포스트뱅크에 입사한 ING맨으로 통한다.

해머스 회장은 ‘해결사’ 로 불린다. 1999년 최악의 실적을 기록하던 루마니아 지점에 지점장으로 옮겨 실적을 개선했고, 3년마다 자리를 옮기며 승승장구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10년 소매은행 부문 글로벌 대표로 ING를 일으켜 세웠다. 2011년 ING은행의 최대 법인인 벨기에·룩셈부르크 법인 CEO로 승진했다.

ING그룹의 디지털 혁신은 해머스 회장 취임 전후로 나뉜다. 애자일팀을 만들어 권한을 위임하고, 기술 개발을 통해 비점포 면대면 서비스를 대폭 확대했다. 회사 내부에서는 자신보다 직원들의 의견을 듣는 ‘경청’ 의 리더십과 전 세계에 걸친 고객 네트워크를 그의 성공 비결로 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