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루 휴스턴 드롭박스 창업자. <사진 : 블룸버그>
드루 휴스턴 드롭박스 창업자. <사진 : 블룸버그>

‘또 하나의 괴물이 출현할까?’

클라우드 기반 파일 공유·저장 서비스의 대명사 ‘드롭박스’가 올가을 기업공개(IPO)를 추진할 것이란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월스트리트는 올 하반기 최대 IPO가 될 것이란 기대감에 부풀고 있다.

로이터 통신은 7월 1일(현지 시각) “드롭박스가 상장 주관사를 물색 중이다. 올가을쯤 증시에 상장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드롭박스는 공식 확인을 거부했지만 최근 부쩍 잦아진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 드루 휴스턴(Drew Houston·34)의 언론 인터뷰 등에 비추어 상장을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2007년 설립된 드롭박스는 가장 먼저, 가장 확실한 클라우드 파일 공유·저장 서비스를 제공, 5억명의 이용자를 확보한 대표적인 클라우드 스토리지 서비스 기업이다.


14세에 첫 스타트업, 24세 드롭박스 창업

PC·스마트폰·태블릿 등 인터넷에 연결된 온갖 기기로 자유롭게 파일을 저장하고 불러내며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있다. 사진이나 문서를 ‘드롭박스’ 폴더에 집어넣으면 사용자가 등록한 모든 기기에 동기화되고 여러 사람이 한 계정에 접속하여 실시간으로 공동 작업을 할 수도 있다. USB메모리 등 이동저장 장치를 들고 다닐 필요가 없고 사이트 접속 등 번거로운 절차도 필요없다. 드롭박스는 2015년 매출 5억달러(약 5700억원)를 돌파했고 올해는 10억달러(약 1조1400억원)를 돌파할 전망이다. 2014년 10월 기업 가치 평가액이 100억달러에 달해 ‘자동차 공유’ 기업 우버, ‘숙박 공유’ 기업 에어비앤비 등과 함께 대표적인 ‘유니콘 기업(비상장 기업 가운데 기업 가치가 10억달러 넘는 기업)’으로 꼽힌다. 상장을 통해 100억달러 가치를 갖는 ‘데카콘’ 기업으로 등극할지 관심을 모은다.

스물네 살에 드롭박스를 창업한 휴스턴은 ‘실리콘밸리의 록 스타’로 통하는 젊은 창업자다. 그의 성장과 창업 스토리는 실리콘밸리에서 대박 신화를 쓴 쟁쟁한 선배 창업자들의 축약판과 다름없다.

휴스턴은 1983년 보스턴에서, 하버드대를 졸업한 엔지니어 아버지와 도서관 사서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풍족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5살 때 선물 받은 어린이용 IBM 컴퓨터로 프로그램을 짜기 시작했고, 열두 살 때 게임하다가 찾은 버그를 제작사에 알려 임시 직원으로 발탁됐다. 열네 살에 첫 스타트업 기업 창업을 시도했고, 고교 시절 친구들과 록 밴드 ‘앵그리 플래널’을 조직해 기타를 쳤다. 그러면서도 SAT(미국 대입 평가시험) 1600점 만점을 받아 매사추세츠공대(MIT) 컴퓨터공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1학년 때 스타트업 기업 창업을 위해 휴학했다. 고교 은사와 힘을 합쳐 모의 SAT 시험 사이트를 만들었지만 실리콘밸리 최고의 스타트업 인큐베이팅 기업 ‘Y콤비네이터(YC)’에서 퇴짜 맞고 첫 ‘좌절’을 맛봤다.

기막힌 아이디어가 떠오른 곳은 버스 안이었다. 어느 날 보스턴에서 뉴욕으로 가는 버스를 탄 휴스턴은 작업 내용이 담긴 USB메모리를 집에 두고 온 사실을 뒤늦게 알고는 잠시 낭패감에 휩싸였다.

‘기기에 상관없이 간편하게 파일을 공유하는 서비스를 만들면 히트할 것이다!’

휴스턴은 바로 노트북을 열고 드롭박스 프로그램의 첫 코드를 짜기 시작했다.


애플의 10억달러 인수 제안 거절

2007년 패기와 통찰력이 넘치고 간결하면서도 강력한 메시지가 담긴 휴스턴의 프레젠테이션을 본 ‘Y콤비네이터’의 폴 그레이엄은 만족해했다. 하지만 뜻밖의 요구를 했다.

“지원을 받으려면 공동창업자를 구해 오게.”

다급해진 휴스턴은 동업자를 구한다는 동영상을 만들어 새벽 3시에 해커스 뉴스 사이트에 올렸다. MIT 동문인 아라시 페르도시(Arash Ferdowsi·32)가 관심 있다는 이메일을 보냈고, 대학 학생회관에서 만난 지 두 시간도 안 돼 의기투합했다.

시드머니는 ‘Y콤비네이터’가 연결해준 세콰이어캐피털의 마이클 모리츠가 지원했다.

드롭박스는 2008년 11월 론칭했다. 유머 넘치는 코멘트와 함께 시제품을 홍보하는 동영상을 찍어 얼리어답터들이 자주 찾는 사이트에 올렸고, 지인을 추천하면 무료 저장 공간을 추가로 제공하는 인센티브 추천 시스템 등 기발한 마케팅으로 젊은 사용자를 사로잡았다.

휴스턴에게 가장 공포스러웠던 순간은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와의 만남이었다.

2009년 어느 날, 휴스턴은 잡스에게서 만나자는 연락을 받았다. 사실상 ‘강제 소환’이었다. 애플 본사에서 그를 맞이한 잡스는 창업 초창기의 어려움 등을 장황하게 얘기하다가 대뜸 10억달러짜리 인수 제안을 했다.

“멋진 제품을 만들었더군. 팔 생각이 없나?”

“지금 하는 일이 매우 재미있습니다. 독립 회사로 남고 싶습니다.”

“그래? 그럼 너희들 제품을 죽여야겠네.”

“······.”

공포에 휩싸인 휴스턴은 “잡스를 자극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빠져 나올 궁리만 했다”고 회고했다.

드롭박스를 사장시키겠다는 잡스의 ‘협박’은 2년 뒤 잡스의 사망으로 실현되지 않았으나 애플은 드롭박스와 유사한 기능인 아이클라우드를 모든 애플 제품에 기본 탑재했고, 구글도 클라우드 서비스를 시작했다. 드롭박스가 맞서기에 다소 벅찬 상대들이다. 하지만 탄탄한 사용자층을 확보하고 있는 점에 주목한 골드만삭스, 블랙록 등 세계적인 금융기관들이 11억달러(약 1조2540억원)를 투자했다.

드롭박스는 상장을 통해 확보한 자금으로 구글, 애플 등과 본격적인 클라우드 경쟁에 나설 채비를 하고 있다.


Plus Point

아라시 페르도시 공동창업자 두 시간 만에 MIT 중퇴 결심

아라시 페르도시 드롭박스 공동창업자.
아라시 페르도시 드롭박스 공동창업자.

이란계 미국인인 아라시 페르도시는 1985년 캔자스주 오버랜드에서 태어났다. 2013년 MIT 졸업식 연사로 나선 휴스턴은 “아라시 없이 드롭박스 창업과 성공은 불가능했다”며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5명(circle of 5)’으로 아라시를 꼽았다.

휴스턴은 “공동창업자를 먼저 구하라는 폴 그레이엄의 지시는 1~2주일 안에 신부를 구하라는 요구와 다를 바 없었고, 만나자마자 대학 중퇴를 결심하고 회사에 합류한 아라시의 결정은 맞선 보고 바로 신랑을 정한 신부와 같았다” 고 했다.

드롭박스 주식의 5%를 보유한 아라시의 개인 자산은 5억달러(약 5700억원)에 달한다. 2016년 말 드롭박스 최고기술책임자(CTO)에서 물러나 경영 전반에 대해 조언하고 있다. 드롭박스 주식의 13%를 보유한 휴스턴의 개인 자산은 10억4000만달러(약 1조1800억원·40세 이하 기업인 부자 순위 18위)라고 ‘포브스’는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