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대중 정치 플랫폼을 만든 리드 호프만 링크드인 회장(왼쪽)과 마크 핀커스 징가 공동 창업자. <사진 : 블룸버그>
디지털 대중 정치 플랫폼을 만든 리드 호프만 링크드인 회장(왼쪽)과 마크 핀커스 징가 공동 창업자. <사진 : 블룸버그>

‘미래를 거머 쥐자(WTF·Win the Future).’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실리콘밸리 기업인들 사이에 갈등의 골이 깊고 격렬해지고 있다.

지난 6월 트럼프 대통령이 파리 기후협약 탈퇴를 결정하자 존 쿡 애플 최고경영자 등 실리콘밸리 기업인들은 일제히 반대 성명을 냈다. 전기자동차, 화성 정복 프로젝트 등을 통해 ‘혁신의 아이콘’으로 부상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는 “합리적인 대화와 설득이 불가능하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자문위원직을 내던졌다.

이런 가운데 실리콘밸리의 억만장자 기업인 리드 호프만(Reid Hoffman·50)과 마크 핀커스(Mark Pincus·51)가 ‘정치 개혁과 민주당 재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리드 호프만은 비즈니스 인맥 관리 소셜미디어인 ‘링크드인(LinkedIn)’ 창업자 겸 회장, 마크 핀커스는 세계 최대의 온라인 소셜 게임 회사인 ‘징가(Zinga)’의 공동 창업자다.


“대중과 멀어진 민주당부터 바꿔야”

두 억만장자는 “우리가 어젠다를 선택하고 지도자를 뽑는 현대적인 방식이 필요하다”며 미국 독립기념일(7월 4일)에 맞춰 ‘미래를 거머 쥐자’는 WTF 프로젝트를 시작했다고 비즈니스 인사이더 등 외신들이 보도했다.

2018년 의회 중간선거, 2020년 대선을 염두에 둔 ‘디지털 대중 정치 플랫폼 실험’이라고 외신들은 전했다. 호프만과 핀커스는 각각 50만달러(약 5억7000만원)를 초기 출연금으로 냈고 추가 자금을 모금하고 있다.

핀커스는 “우리가 관심 갖는 이슈들이 선거에서 다뤄지기를 기다리고, 자비로운 지도자가 나타나기를 앉아서 고대할 수만은 없다”며 “개방적이고 포괄적인 민주적 과정을 통해 최고의 아이디어와 지도자를 끌어내는 정치 네트워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부를 쌓아 올린 기업인들답게 두 사람의 새로운 정치 실험은 인터넷을 통해 대중이 어젠다를 제안하고 다수의 지지를 받은 어젠다와 후보를 뽑는 등 모든 과정이 디지털 플랫폼상에서 진행되고 결정된다.

가령 참가자들이 인터넷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어젠다를 제출하고 트위터 같은 소셜미디어에서 ‘좋아요’나 리트윗을 통해 충분한 지지를 얻으면 WTF의 정책으로 채택된다.

핀커스는 “가장 인기 있는 정책은 워싱턴D.C.의 공항 근처 옥외광고에 게재해 법안을 제정하는 의원들이 출퇴근할 때마다 볼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핀커스는 “공대에 진학한 이들에게 무료 교육을 시행해 학사 학위를 받을 수 있도록 할 것인지, 트럼프 즉각 탄핵에 동참하지 않는 의원에 대한 반대 운동을 벌일지 여부도 토론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WTF는 정책이나 법률 제안에 그치지 않고 선거에 나설 후보를 직접 선출할 계획도 추진할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은 한때 민주당 하원 원내총무인 낸시 펠로시 의원에게 도전할 후보를 공개 모집할 계획을 추진하다가 현역 정치인들의 반발을 의식해 잠정 중단한 상태라고 IT 매체 리코드는 전했다.

부러울 것도, 고민할 것도 없어 보이는 성공한 억만장자들이 정치 운동을 시작한 이유는 뭘까? 리코드는 “두 억만장자가 포퓰리스트적 정치 플랫폼을 만든 이유는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의 대선 패배에서 뼈저린 교훈을 얻었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호프만 회장은 페이팔 마피아… 핀커스와 절친

두 사람은 클린턴 후보의 패배가 클린턴이 자신의 승리를 점치는 친민주당 미디어들의 잘못된 보도에 도취돼 나머지 패배를 막을 수 있었던 여러 인터넷 제안들을 외면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리코드는 “두 억만장자들은 결국 트럼프의 독주를 막으려면 민주당을 재건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보도했다.

사실 트럼프 집권 이후 미국 유력 미디어들의 논조는 더욱 거세지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 취임 이후 치러진 모든 선거에서 공화당이 연승을 거두고 있다.

미국의 파리 기후협약 탈퇴 결정 이후인 6월 20일 실시된 조지아주 하원의원 선거가 대표적이다. 대다수 미디어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잘못된 결정에 대한 중간 평가’라며 민주당에 유리한 보도를 쏟아냈지만 결과는 공화당의 승리였다.

억만장자들이 민주당 개혁에 나섰다는 소식에 민주당은 반기는 기색이 아니다. 새로운 정치 실험은 곧 기성 정치에 대한 비판, 나아가 세대 교체 주장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 일각에선 벌써부터 ‘억만장자들의 또 하나의 애완동물 프로젝트’라는 비판적 반응이 나오고 있다고 허핑턴포스트 등은 보도했다.

1967년 미국 캘리포니아 팔로알토 태생인 호프만 회장은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넓고 깊은 네트워크를 가진 인물’로 꼽힌다. 2003년 틸 팔란티어 회장과 함께 ‘링크드인’을 공동 창업해 2016년에 현금 262억달러(약 30조원)를 받고 마이크로소프트(MS)에 매각했다. MS 이사를 겸하고 있다. 스탠퍼드대를 졸업하고 ‘마셜 장학생’으로 옥스퍼드대에서 철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또 링크드인 창업 이전 일론 머스크, 피터 틸 등과 함께 페이팔을 창업, 수석 부사장을 지낸 ‘페이팔 마피아’의 일원이다. 현재까지 페이스북 등 50여개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자신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을 성공하게 만들어 인기가 높고 존경받는다는 평이다. 개인 자산 31억달러(약 3조5000억원)로 2017년 ‘포브스’ 선정 억만장자 순위 631위다.

1966년 시카고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마크 핀커스는 호프만 회장의 절친이다. 호프만 회장이 초기 페이스북에 투자할 수 있는 지분의 절반을 핀커스 회장에게 떼줬다. 결국 두 사람은 5만달러씩을 투자했는데 현재 가치는 수억달러에 이른다. 핀커스가 2007년 징가를 설립하자 호프만 회장은 초기 투자자로 나섰고, 징가가 나스닥에 상장하면서 큰돈을 벌었다. 핀커스는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하버드 경영대학원(MBA)을 졸업했다. 2013년까지 징가 최고경영자(CEO)를 지내고 물러났는데 2015년 다시 CEO로 복귀했다가 1년 만에 사임했다.


Plus Point

유명인 대거 투자한 ‘체인지’에 2억명 참여

국제 서명 운동 사이트 ‘체인지’를 설립한 벤 라트레이. <사진 : 블룸버그>
국제 서명 운동 사이트 ‘체인지’를 설립한 벤 라트레이. <사진 : 블룸버그>

‘디지털의 발상지’답게 미국의 디지털 정치 운동은 상당히 활성화돼 있다.

2007년 벤 라트레이(Ben Rattray)가 설립한 국제 서명운동 사이트 ‘체인지’가 대표적이다. 호프만 회장, 빌 게이츠 MS 창업자, 샘 알트만 Y콤비네이터 대표 등 실리콘밸리 유명 인사들이 3000만달러(약 340억원)를 투자했다. 버진그룹 창업자인 리처드 브랜슨, 유명배우 애쉬튼 커처, 트위터 공동 설립자 에반 윌리엄스도 자금을 지원했다.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2억명이 참여해 인권, 환경, 교육, 보건 문제 등을 정부에 청원하거나 온라인 서명 운동을 진행했다.

‘체인지’는 얼핏 비영리단체로 보이지만 엄연한 기업이다. 청원의 성공적 진행을 위해 회사와 비영리 단체에 비용을 청구한다. 다만 사업성이 떨어져 직원 30%를 감원했다. 최근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수백만달러 매출을 올렸다.

호프만 회장은 “집단 행동을 위한 글로벌 허브인 ‘체인지’는 21세기의 중요한 민주화 세력”이라며 “정책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비싼 돈 주고 로비스트를 고용할 필요가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