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자동차 제조업체인 다이하쓰의 생산 공장에서 자동화 로봇이 자동차를 조립하고 있다. <사진 : 블룸버그>
일본 자동차 제조업체인 다이하쓰의 생산 공장에서 자동화 로봇이 자동차를 조립하고 있다. <사진 : 블룸버그>

최근 전 세계 주요 전자상거래 업체들이 피킹 로봇(picking robot) 개발을 서두르고 있다. 피킹 로봇은 물류창고에서 고객이 주문한 물건을 집어서 박스에 넣는 작업을 수행한다. 단순한 반복 작업이지만 이 분야의 자동화 기술은 개발이 쉽지 않았다. 전 세계적으로 전자상거래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물류창고의 자동화가 시급해졌지만, 피킹 로봇 개발이 늦어지면서 물류창고의 완전 자동화는 아직까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전자상거래 업체들은 물류창고 근무 인력을 늘릴 수밖에 없었고, 이는 고스란히 인건비 부담으로 돌아왔다. 지난 5년간 미국의 물류창고 근무 인력은 26만2000명 증가했다. 컨설팅업체인 MWPVL인터내셔널의 마크 울프랫 대표는 “피킹 로봇이 상용화되면 온라인 주문 처리에 드는 인건비를 5분의 1로 절감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피킹 로봇 개발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면서 물류창고의 완전 자동화도 멀지 않았다.


법률·행정·의료도 로봇이 대체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국의 전자상거래 업체인 JD닷컴이 올해 4월부터 중국 상하이 물류창고에서 피킹 로봇 테스트를 진행 중이라고 보도했다. JD닷컴은 내년 말까지는 피킹 로봇 개발을 마무리하고 물류창고를 완전 자동화할 계획이다.

전자상거래 시장을 이끌고 있는 아마존도 피킹 로봇 개발에 발 빠르게 나서고 있다. 아마존은 이 분야의 기술 개발을 위해 매년 ‘피킹 로봇 챌린지’라는 대회를 열고 있고, UC버클리에 자금을 지원해 기술 개발에도 나서고 있다.


로봇 시대 경영진이 유념해야 할 것들

로봇과 인공지능(AI) 기술이 나날이 발전하면서 사람의 일자리를 대체하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인 맥킨지는 2055년까지 50% 정도의 업무 활동이 로봇과 AI에 의해 자동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른 연구 기관의 전망도 맥킨지와 크게 다르지 않다. 2013년 영국 옥스퍼드대 연구진은 10~20년 안에 로봇에 의해 사라질 가능성이 큰 직업들을 분석했다. 미국의 702개 직업을 대상으로 로봇 대체 가능성을 분석한 결과, 전체 직업의 47% 정도가 로봇에 의해 자동화될 수 있다고 나왔다. 6400만개 정도의 일자리가 로봇으로 대체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영국 중앙은행(영란은행)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앤디 홀데인도 “영국에 있는 직업의 절반 정도는 자동화가 가능하다”고 예측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나 포레스터 리서치의 보수적인 전망치를 인용하더라도, 로봇은 최소한 10% 정도의 일자리를 사람에게서 빼앗아갈 것이 분명하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노동연구원이 2015년 말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에 있는 전체 고용 인원의 55~57%는 로봇에 의해 자동화될 가능성이 큰 직업군에서 일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로봇이 빼앗는 일자리가 단순하고 반복적인 작업에 국한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하지만 공장에서의 생산직처럼 단순 반복 작업뿐만 아니라 법률, 행정, 의료 같은 분야도 로봇에 의해 대체될 수 있다. 예컨대 옥스퍼드대 연구진은 로봇이 회계감사와 같은 업무의 98% 정도를 대체할 수 있다고 예측했다. 본격적인 로봇 시대가 열리면 회계사라는 직업은 전화교환원처럼 ‘사라진 직업’ 리스트에 이름을 올릴 수도 있다. 기자도 마찬가지다. 가디언, 포브스, LA타임스 등 전 세계 주요 언론은 로봇 저널리즘을 속속 도입하고 있다. 사람 대신 로봇이 쓴 기사는 스포츠, 날씨, 주식 같은 분야를 시작으로 점점 더 많은 영역으로 확장하는 중이다. 미국의 ‘내러티브 사이언스’는 스탯몽키라는 로봇 저널리즘 기술을 개발해 2013년 한 해에만 150만편의 스포츠 기사를 생산했다. 이 회사의 공동창립자인 크리스천 해먼드는 정보기술(IT) 전문매체 와이어드와의 인터뷰에서 “15년 안에 로봇 저널리즘이 작성한 기사가 전체 기사의 90% 이상을 차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세계적인 로봇 전문가 마틴 포드는 자신의 저서인 ‘로봇의 부상’에서 로봇으로 인해 노동시장이 변화하면서 약학대학원, 법학대학원, 경영대학원처럼 전문 인력을 배출하는 대학원들이 직격탄을 맞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로봇에 의해 일자리가 사라지는 건 막을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다. 로봇 자동화에 찬성하든 반대하든 로봇은 이미 많은 사람의 일자리를 대체하고 있다. 특히 한국은 전 세계에서 로봇을 가장 적극적으로 생산 현장에 도입한 나라다. 국제로봇연맹(IFR)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제조업 노동자 1만명당 로봇 수는 531대로 전 세계 평균인 69대의 8배에 달한다. 일본(305대), 독일(301대), 미국(176대) 등 다른 국가와도 큰 격차를 보인다. 이제 기업을 경영하는 입장에서 로봇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인 시대다. 맥킨지는 로봇의 시대를 맞이해 기업 최고경영자(CEO)가 세 가지를 유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IBM이 개발한 인공지능 ‘왓슨’은 의학, 법률, 보험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업무처리를 돕고 있다. <사진 : 블룸버그>
IBM이 개발한 인공지능 ‘왓슨’은 의학, 법률, 보험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업무처리를 돕고 있다. <사진 : 블룸버그>

로봇시대 경영전략 1 | 시야를 넓혀라

로봇에 의한 자동화는 생산 현장에 일대 혁신을 가져올 수 있다. 단순히 인건비를 줄이는 차원을 넘어서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혁신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기업의 CEO는 로봇 자동화로 인해 어떤 변화가 생기고 어떤 혁신이 가능한지 충분히 검토하고 주도면밀하게 계획을 세워야 한다.

맥킨지는 로봇에 의한 생산 현장 자동화로 인건비뿐만 아니라 생산 효율이 눈에 띄게 극대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예컨대 항공기 유지보수업에 자동화 기술을 접목하면 인건비 절약 외에도 25%의 이익을 추가로 낼 수 있을 것이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맥킨지는 “모든 산업 분야에서 자동화로 인해 이익이 추가로 발생한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며 “인건비를 절감하는 것보다 이런 효과가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

로봇에 의한 자동화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기업을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돕는다. 미국의 금융회사인 시티은행은 이메일을 활용한 마케팅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스타트업인 퍼사도(Persado)와 협력하고 있다. 퍼사도는 소비자별로 적합한 언어를 선택해 추천해주는 AI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퍼사도와의 협력을 통해 시티은행 이메일 마케팅의 클릭률은 114% 증가했다.

다국적 자원개발업체인 리오 틴토는 호주 필바라의 광산에 자동 견인 트럭과 시추장비를 도입했고, 10~20% 정도 작업 효율성을 높일 수 있었다. 제약회사인 글락소스미스클라인과 자동차 제조업체인 BMW는 AI와 머신러닝 기술을 도입해 기업 의사 결정 과정에 걸리는 시간과 비용을 대폭 줄일 수 있었다.

맥킨지는 “CEO는 자동화를 통해 어떤 것을 달성할 수 있을지 미리 계획하고 우선 순위를매길 수 있어야 한다”며 “단순히 인건비를 절감하는 것 외에도 사업과 서비스의 속도·질·유연성 등이 얼마나 나아질 수 있을지 파악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일본의 전자제품 제조업체인 히타치가 만든 로봇이 박스를 옮기고 있다. <사진 : 블룸버그>
일본의 전자제품 제조업체인 히타치가 만든 로봇이 박스를 옮기고 있다. <사진 : 블룸버그>

로봇시대 경영전략 2 | 공존을 준비하라

옷가게에 자동화 기술이 도입된다고 가정해보자. 새로 입고된 옷을 매장에 배치하고, 계산하는 등의 업무는 로봇이 맡아도 큰 무리가 없다. 하지만 고객의 기분을 파악하고 지금 기분 상태에 맞는 옷을 추천하고 옷과 상관없는 이야기를 나누며 고객의 기분을 편하게 해주는 건 로봇이 할 수 없는 일이다. 최소한 가까운 시일 안에는 불가능하다.

앞으로 많은 일자리가 로봇으로 대체되겠지만, 기술적으로 짧으면 5년, 길면 20~30년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지금 당장은 생산 현장의 일부 반복적인 작업만 로봇이 대신할 수 있다. 상당 기간을 사람과 로봇이 함께 작업 현장에서 공존해야 한다는 뜻이다. 맥킨지는 “앞으로 사람과 기계가 함께 일하는 모습이 표준적인 직장 생활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렇게 되면 기존의 노사관계, 인사관리 시스템의 많은 부분이 무의미해진다. 사람만을 대상으로 하는 인사관리 시스템 대신 사람과 로봇이 함께 일하는 상황을 감안한 인사관리 시스템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로봇 직원을 가르치고 관리하기 위해서는 관리자 직급에 자동화에 대한 충분한 지식을 갖춘 로봇 전문가가 있어야 한다. 인지 기술이나 자연 언어 분야의 전문가와 로봇이 작업을 수행하면서 쌓이는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하고 처리할 데이터 과학자도 필요하다. 사람 직원이 로봇 직원을 편하게 대할 수 있게끔 적절한 근무 환경을 조성하는 것도 경영진이 해야 할 일이다.


로봇시대 경영전략 3 | 사람에게 투자하라

기술 발전은 항상 노동인구의 재배치로 이어졌다. 1900년에 미국 전체 노동인구에서 농업 분야 종사자의 비율은 40%에 달했다. 하지만 이 비율은 1970년에 2% 밑으로 뚝 떨어졌다. 산업화가 급진전되면서 농업 분야에서 제조업 분야로 인력이 재배치된 것이다. 농업에서 제조업으로의 전환이 성공적으로 이뤄진 덕분에 이 기간 미국 사회 전체의 생산성과 소득은 증가할 수 있었다.

로봇의 부상도 대대적인 인력 재배치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공장의 경우 로봇이 아직 처리하기 힘든 업무 위주로 기존 노동자의 재배치가 이뤄질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맞게될 인력 재배치는 앞선 사례들과 달리 낙관적이지 않다. 그동안의 기술 발전이 생산성 향상과 일자리 증가로 이어졌다면, 로봇과 AI에 의한 자동화는 ‘고용 없는 성장’이라는 유례 없는 새로운 시대를 열어젖혔기 때문이다. 미국 노동통계국의 보고서에 따르면, 1998년 미국 민간 부문의 총근로시간은 1940억시간이었다. 2013년에도 미국 민간 부문의 근로시간은 똑같이 1940억시간이었다. 하지만 같은 기간 미국 민간 부문이 생산한 상품과 서비스는 42% 증가했다. 사람이 일하지 않고도 생산성이 올라가는 시대다. 이런 경향은 로봇 기술이 발달할수록 더 뚜렷해질 것이다.

고용 없는 성장은 사회적인 불안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로봇에 일자리를 빼앗기는 노동자들의 불만이 사회적인 문제로 불거질 수 있다. 영국의 자선단체인 서튼트러스트는 로봇에 의한 자동화가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부채질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노동자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기업 차원에서 인력 재배치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제공해야 한다. 사회적인 불안이 확산되면 기업의 입장에서도 자동화로 인한 과실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게 된다. 로봇의 생산성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사람에 대한 투자를 늘려야 하는 것이다. 맥킨지는 “기업의 경영진은 미래의 일자리 문제에 목소리를 내고 공론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며 “기업 차원에서 평생 학습 프로그램같이 인적 자본을 강화하는 교육에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Plus Point

로봇세와 기본소득 찬반 논란

지난 6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소프트뱅크 월드 2017’에서 인공지능 로봇인 ‘페퍼’가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다. <사진 : 블룸버그>
지난 6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소프트뱅크 월드 2017’에서 인공지능 로봇인 ‘페퍼’가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다. <사진 : 블룸버그>

로봇에 의한 생산 현장 자동화의 가장 큰 맹점은 로봇이 사람의 일자리를 뺏는다는 데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로봇을 사용해 인건비를 줄이고 생산성을 높일 수 있지만, 큰 맥락에서 보면 인건비가 줄어드는 만큼 제품을 살 수 있는 소비자도 줄어든다는 뜻이다. 기업 입장에서 노동자는 곧 고객이기도 하다. 미국의 자동차왕인 헨리 포드 1세만큼 이 사실을 분명히 알았던 사람도 없다. 그는 1914년 ‘모델 T’ 생산량을 급격히 늘리면서 공장 노동자의 임금을 두 배 늘렸다. 포드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모델 T를 살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헨리 포드 1세의 결정은 적중했고, 포드는 새로운 산업 시대의 문을 열었다.

100년이 더 지난 지금 전 세계 경제 전문가들은 원점으로 돌아왔다. 헨리 포드 1세 시절보다 문제는 더 복잡해졌다. 로봇이 사람의 일자리를 대체하는 시대에 어떻게 해야 소비 계층을 유지할 수 있을지를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와 ‘21세기 자본’으로 유명한 토마 피케티는 로봇세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빌 게이츠는 “연봉 5만달러를 받는 노동자는 연봉에 비례하는 소득세와 건강보험료를 낸다”며 “로봇이 5만달러어치의 일을 하면 로봇도 그에 상응하는 세금을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로봇에 세금을 매겨서 확보한 재원으로 로봇에 일자리를 빼앗긴 노동자의 재교육을 지원하자는 것이다. 로봇세에 대해서는 반발도 적지 않다. 기술의 발전에 인위적인 제동을 걸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는 “항공기 탑승권 기계도 일자리를 줄였지만, 이런 기술에는 과세하지 않았다”며 “로봇을 일자리 약탈의 주범으로 몰아 과세할 근거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기본소득 보장제도가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로봇 전문가인 마틴 포드는 “경제 성장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구매력을 직접 재분배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기본소득 보장제도는 개인의 선택의 자유를 보장하면서도 최소한의 안전망을 만드는 시장 지향적인 해결책”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