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스파고 은행 이사회 의장에 선출된 엘리자베스 듀크. <사진 : 블룸버그>
웰스파고 은행 이사회 의장에 선출된 엘리자베스 듀크. <사진 : 블룸버그>

‘벳시(Betsy)가 위기의 웰스파고를 구할 수 있을까?’

월스트리트에서 ‘벳시’란 애칭으로 불리는 엘리자베스 듀크(Elizabeth Duke·65) 웰스파고 은행 이사회 부의장이 8월 15일 만장일치로 165년 된 웰스파고 은행 차기 이사회 의장에 선출됐다. 미국 역사에서 대형 은행 이사회 의장에 여성 경영인이 선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웰스파고 은행 이사회는 차기 의장에 듀크 부의장을 선임하는 동시에 신시아 밀리건, 수전 스웬슨 등 2명의 이사, 싱어 의장의 내년 1월 퇴진을 결정했다. 2003년부터 이사회 의장을 맡은 스티브 싱어 의장, 1990년대부터 이사로 활동했던 밀리건과 스웬슨 이사의 퇴진으로 웰스파고의 경영진과 이사회 개편 작업이 속도를 낼 전망이다.


웰스파고 은행, 최고에서 최악으로 추락

퇴임이 확정된 스티브 싱어 이사회 의장은 “규제 등과 관련한 듀크 부의장의 경험이 지금 웰스파고 은행에 무엇보다 소중한 자산이라는 데 이사진 전원이 공감했다”고 말했다. 외신들은 듀크 차기 의장이 경영과 감시 기구 분리 등 경영 투명성 확보와 산적한 규제 문제를 해결할 역할을 부여받았다고 평가하고 있다.

1852년 헨리 웰스와 윌리엄 파고가 창업한 웰스파고 은행은 JP모건, 시티그룹, 뱅크 오브 아메리카와 함께 ‘미국의 4대 은행’으로 꼽힌다. 미국 주택 담보 대출의 34%를 차지할 정도로 서민과 중산층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은행이다.

웰스파고 은행은 20년간 웰스파고에 270억달러(약 30조원)를 투자해 지분 10%를 보유한 최대 주주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이 한때 “통째로 사고 싶다”고 극찬한 초우량 은행이었다. 2010년 미국 최대 은행(시총 기준)이 됐고, 2015년 시가 총액 3000억달러(약 342조원) 고지를 점령함으로써 중국 공상은행(ICBC)을 누르고 세계 최대 은행 자리를 차지했다.

특히 2007년 월스트리트를 쑥대밭으로 만든 금융위기 때 모두의 부러움과 찬사를 받았다. 서브 프라임 모기지 등 리스크 큰 파생상품에 ‘올인’했던 리먼 브러더스 등 투자은행들이 줄줄이 파산하고 시티그룹 등 대형 은행들이 구제금융을 받을 때 웰스파고는 와코비아를 148억달러(약 16조8700억원)에 인수하며 승승장구했다.

개인 우량 고객에 대한 프라임 모기지 등 소매 영업에 강점을 가진 수익구조, 미국 전역에 거미줄같이 퍼진 8000여 개의 지점 등 탄탄한 영업망 덕분이었다.

2007년 미국 유일의 AAA-등급 기업이었고, 2014년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은행에 2년 연속 선정됐다. 미국은 물론 한국과 유럽 금융가에서 ‘웰스파고 따라하기’가 유행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2016년 터진 유령 계좌 파문으로 순식간에 ‘최고의 은행’에서 ‘최악의 은행’으로 추락했다. 투자자와 고객이 떠나고 주가는 속절없이 빠지는 가운데 금융 감독 기관들의 조사와 제재의 칼날 위에 서 있는 처지가 됐다.

경영진의 실적 지상주의와 통제 시스템의 부재가 원인이었다. 예대마진(예금 금리와 대출 금리 차이) 중심의 수익구조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경영진은 고객들에게 펀드·보험·신용카드 등 금융 상품 가입을 유도해 수수료 수입을 높이는 교차 판매(cross-selling) 확대 전략을 밀어붙였고, 당장은 성공하는 듯 보였다.


경영진·이사회 개편 속도 낼 전망

하지만 창구 직원 등 5300여 명(전체 직원 26만 명)이 6년 동안 고객 몰래 200만여 개의 유령 계좌를 개설하고 6만여 개의 신용카드를 불법 발급한 사실이 드러나 연방정부에 과징금 1억8500만달러(약 2100억원)를 물어야 했다.

미 연방소비자금융보호국(CFPB)은 보험·펀드 가입, 신용카드 신규 발급 등 교차 판매 실적과 성과급, 인사 평가를 연계한 실적 지상주의 때문에 일선 직원들이 유령 계좌 개설, 금융 상품 끼워 팔기 등 광범위한 부정을 저질렀고, 경영진은 위험 징후를 감지하고도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웰스파고의 부정 스캔들은 올해도 계속되고 있다. 캘리포니아주 보험국은 최근 웰스파고 은행의 자동차 보험 강매 혐의에 대해 집중 조사를 시작했다.

웰스파고는 본인 명의 자동차 보험을 가진 자동차 담보대출(오토론) 고객 50만여 명에게 자동차 담보보험(CPI)을 추가로 가입시키고, 융자 상환액에 보험료를 더해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뉴욕타임스가 지난 7월, 웰스파고의 자동차 담보보험 강매 때문에 최소 2만 명의 고객이 자동차를 차압당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소비자의 분노를 사고 있다.

웰스파고는 보도 직후 8000만달러를 환불하겠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캘리포니아 금융 당국은 “심각한 불법 혐의가 있다”며 조사에 착수했다.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도 웰스파고의 보험 상품 부정 판매 관련 조사를 별도로 진행하고 있다.

유령 계좌 관련 집단 소송이 잇따르는 가운데 감독 기관들의 조사 결과에 따라 과징금, 영업 제재 등 추가 규제가 예상되는 등 웰스파고의 악몽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웰스파고는 유령 계좌 파문 이후 부정 행위 관련자를 전부 해고하고 관리 책임을 물어 존 스텀프 전 CEO(2800만달러), 캐리 톨스테드 전 웰스파고 커뮤니티은행 책임자(4700만달러) 등 전 경영진에서 1억8000만달러의 환수금(clawbacks)을 받아 내는 등 사태 수습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하지만 최근 활황 장세 속에서도 웰스파고 주가는 ‘나 홀로 추락’을 계속하고 있고, 투자 기관들의 목표 주가도 계속 하락하고 있다.

‘철밥통 거수기 이사회’에 대한 책임론도 거세다. 엘리자베스 워런 민주당 상원의원(매사추세츠주) 등은 “최고경영자가 이사회 의장을 겸하고 이사진 평균 임기가 10년이 넘는 등 안일한 지배 구조가 부정 스캔들의 중요한 원인”이라며 은행 이사진 13명 전원을 교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올해 4월 웰스파고 은행 이사회 이사 전원 연임이 성공하자 분노에 가까운 비판 여론이 일었다.


Plus Point

연준 이사 시절 규제 담당 버냉키의 초저금리 정책 지지

엘리자베스 듀크 웰스파고 은행 차기 의장은 2008년부터 5년 동안 연방준비위원회에서 벤 버냉키 의장과 함께 일했다. <사진 : 블룸버그>
엘리자베스 듀크 웰스파고 은행 차기 의장은 2008년부터 5년 동안 연방준비위원회에서 벤 버냉키 의장과 함께 일했다. <사진 : 블룸버그>

1952년 버지니아주 포츠머스에서 태어난 듀크 차기 의장은 버지니아 해안가에서 성장했다.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 물리학과에 입학했다가 노스캐롤라이나대 채플힐 캠퍼스로 옮겨 드라마 미술을 전공했다. 1983년 버지니아주 올드도미니언대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대학 졸업 후 돈을 벌기 위해 한때 은행 창구 직원으로 일했고 버지니아 비치은행을 거쳐 타이드워터 은행 최고경영자(1987~2001년)에 오르는 등 지방 은행에서 경력을 쌓았다.

사우스트러스트은행과 타이드워터 은행 합병(2001년), 와코비아와 사우스트러스트 은행 합병(2004년), 웰스파고와 와코비아 합병(2008년) 등 21세기 초 미국 은행의 거듭된 합병·인수 과정에서 수완을 발휘해 승진을 거듭했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 시절인 2008년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위원회 이사(Governer)에 임명돼 2013년까지 일했다. 벤 버냉키 당시 연준 의장과 호흡을 맞춰 양적 완화 등 경기 부양 정책, 기준금리를 0∼0.25%로 유지하는 초저금리 기조를 지지한 대표적인 ‘비둘기파’였다. 온건, 합리적인 성품으로 연준 이사 시절 금융 회사에 대한 규제를 담당, 월스트리트와 금융 감독 기관에 탄탄한 인맥을 구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