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직장’ 개념이 무너진 지 오래다. 자의든 타의든 퇴사는 현대 직장인의 가장 큰 걱정거리다. 이런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탁월한 실력을 갖춰야 한다.
‘평생 직장’ 개념이 무너진 지 오래다. 자의든 타의든 퇴사는 현대 직장인의 가장 큰 걱정거리다. 이런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탁월한 실력을 갖춰야 한다.

‘이태백(20대 태반이 백수), 삼팔선(고용 불안을 느끼는 38세), 사오정(45세가 되면 정년퇴직), 오륙도(50~60세가 돼서도 회사를 다니면 도둑).’ 세대별 직장 수명을 가리키는 이 용어들은 이제 진부하기까지 하다. 우리는 평생을 바쳐 회사를 다니며 ‘안정’과 ‘충성’을 외쳤다. 그러나 평생직장 개념이 무너진 지 오래다. 자의든 타의든 퇴사 물결은 우리 사회의 범상한 풍속도다.

퇴직자는 ‘이러려고 평생 청춘을 바쳐 직장을 다녔나?’라며 가슴속 깊이 애환을 토한다. 조직에선 ‘청춘을 바치긴? 그동안 준 녹(祿)이 얼마인데, 고마운 줄 알아야지’ 하는 공치사를 애써 삼킨다.

각각 입장에 따라 동상이몽을 꾼다. 당신은 직장 다니면서 스스로의 몸값에 대해 생각해본 적 있는가. 직장을 뛰쳐나오더라도 지금의 몸값 내지 그 이상으로 팔릴 자신이 있는가. 밥값, 돈값, 몸값은 묘한 삼각관계를 형성한다. 밥값이 조직에 소속해 받는 보수라면, 돈값은 프로젝트에 기반한 일에 대한 가치 지급 의미가 더 크다. 몸값은 개인의 브랜드에 상응하는 가격을 의미한다.

‘밥값을 하자.’ 기성세대에게 ‘밥값을 하자’는 말은 마치 새마을 운동의 빛과 그림자 같은 양면의 추억이다. 나를 옥죄기도 하고 일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대학 졸업 후 입사한 첫 직장에서 멘토에게 들은 가장 기억에 남는 조언 역시 그 궤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네가 밥값만큼만 일하겠다고 생각하면 회사에선 기대에 못 미친다고 생각할 것이며, 밥값의 3배는 일했다고 생각하면 밥값을 겨우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조금 놀았네 하면 농땡이 부린다고 생각하고 자를 것이다.”


밥줄 위해 일해야 명줄도 강해

좀 처연하지만 그 말만큼 조직 생활을 관통하는 진리는 없었다. 필자가 중간관리자가 돼 보곤 더욱 실감했다. 위에선 절대 모를 거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등에 있는 티끌까지 다 보였다. 잘하는 것은 모를 수 있지만 못하는 것은 모르기 힘든 게 직장의 묘한 이치다. 다만 모르는 척하는 게 조직 운영에 더 유리할 것인가를 계산할 뿐이었다.

직장인에게 밥값은 비루함과 엄숙함의 양면을 가진 말이다. 생계는 비루한 것이지만 그것만큼 엄한 것도 없다. 퇴근하면서 스스로에게 ‘밥값은 했는가’라고 물어보면 고단함과 함께 착잡함이 피어오르곤 한다. 힘들고 지루한 일을 견디게 하는 것은 거대한 대의명분이 아니라 당장의 호구지책인 경우가 더 많다. 주위를 살펴보면 ‘일은 생계가 아니라 자아실현을 위한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치고 정상에 오르는 경우는 드물다. 밥줄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명줄도 강했다. 생활은 생계, 생존과 같은 유전자를 갖고 있다. 공산주의 사상가 카를 마르크스는 “진정으로 자유로운 일이야말로 가장 진지하고 맹렬한 노력을 필요로 한다”고 말했다. 탁월함은 맹렬한 독기를 먹고 자란다.

모 제약 업체의 T 부사장은 “예전에는 사표 낸다는 직원이 있으면 붙잡았다. 그러나 지금은 헤드헌터를 만나 몸값부터 알아본 후 결정하라”고 말한다고 털어놓았다. 헤드헌터들도 같은 이야기를 한다. “직장인들의 자기 평가에는 거품이 껴 있다. 자신의 몸값 기대가와 시장가의 차이에 놀라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고 말한다. 몸값은 밥값, 돈값을 한 후에 오른다.

요즘은 직장 시대를 넘어 직업 시대다. 성실한 직장인을 넘어 탁월한 직업인의 시대에 밥값을 대체하는 용어는 돈값이다. 밥값이 엄숙하다면 돈값은 엄격하다. 한 번 더 일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 직장의 시대에선 못하면 넘어지지만 직업의 시대에선 아예 흔적 없이 사라진다. 최선을 다한 것만으로는 면피되지 않는다. 최고가 돼야 한다. 성실함만으론 부족하다. 탁월해야 한다.


카를 마르크스는 “진정으로 자유로운 일이야말로 가장 진지하고 맹렬한 노력을 필요로 한다”고 말했다. <사진 : 위키피디아>
카를 마르크스는 “진정으로 자유로운 일이야말로 가장 진지하고 맹렬한 노력을 필요로 한다”고 말했다. <사진 : 위키피디아>

직장인, 목적·지구력·인내심 갖춰야

필자가 처음 책을 낼 때의 일이다. 편집 담당자가 끊임없이 원고 수정을 요구했다. ‘일필휘지 정도는 아니지만 이만하면 꽤 괜찮은데’ 하는 마음과 함께 귀찮기도 하고 자존심도 상했다. 모든 일이 그렇지만 수정이 더 수고스럽고 손이 더 가는 법이다. 오히려 초고를 쓸 때보다 시간이 더 걸렸다. 결국 참다못해 너무 까탈스러운 것 아니냐며 항의했다.

이에 대한 편집자의 답은 명쾌했다. “책값 1만5000원은 결코 적은 돈이 아닙니다. 저자인 당신이라면 지갑을 열겠습니까?” 등골이 서늘했다. 이후 그 말은 내게 금과옥조가 되고 있다. ‘나라면 지갑을 열겠는가?’ 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가 머리에서 가슴에 이르는 거리라면, 세상에서 가장 힘이 드는 것은 남의 지갑을 열게 하는 힘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돈값을 했는가?’이다. 돈 전(錢) 자를 보라. 쇠 금(金)에 창 과(戈)가 두 개나 붙어 있지 않은가. 파르라니 날선 창이 쟁쟁 맞부딪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지 않은가.

중국의 리더십 전문가 친닝 추는 이 두 개의 창을 ‘외적 투쟁과 내적 투쟁의 창’으로 풀이하며 “외적 싸움에서 승리하기 이전에 먼저 내적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설명한다. 그는 “금전을 정직하고 명예스럽게 획득하는 한 당신이 추구하는 어떤 물질적 보상도 누릴 자격이 있다”며 목적(Purpose), 지구력(Perseverance), 인내심(Patience)의 3P를 갖출 것을 강조한다. 지금 당신은 조직에서 밥값, 일에서 돈값을 어떻게 해내고 있는가. 당신이라면 당신과 같은 사람과 일하고 싶겠는가. 과연 당신은 무엇을 다르게 해낼 수 있는가. 돈값을 해내기 위한 3P를 갖추고 있는가.

밥값, 돈값을 해낸 과정이 쌓여 몸값이 높아진다. 밥값, 돈값의 질문에 가슴이 열리고, 허리가 꼿꼿이 펴진다면 부르는 게 몸값인 사람이 될 가능성이 크다.


▒ 김성회
연세대 국문학과 석사,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경영학 박사, 주요 저서 ‘성공하는 ceo의 습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