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21세기는 2000년 한 해 동안 무려 2600만장이 팔려나간 유니클로의 ‘후리스(fleece·폴리에틸렌으로 만든 양털처럼 부드러운 섬유)’ 선풍에서 시작됐다. 21세기 첫 10년은 2008년 한 해 2800만벌이 팔려나간 유니클로의 속옷 ‘히트텍(Heattech)’ 선풍으로 마무리됐다. 베이직한 유니클로 디자인이 튀는 것을 꺼리는 일본인 성향에 꼭 들어맞는 것일까. 아기부터 노인까지, 유니클로는 실로 ‘국민 유니폼’이다.

미국 ‘포브스’는 2009년 일본의 최고 부자로 야나이 다다시 회장을 꼽았다. 재산(대부분 보유주식)은 61억달러(약 6조9000억원), 회사 시가총액은 1조1710억엔( 2009년 9월 9일 기준)으로, 도쿄 증시에서 샤프(전자)·후지쓰(전자)·스미토모(住友)상사·스즈키(자동차) 등과 같은 반열이다. 그는 “바닥이 무너진 건물에서 시작한 옷장사 사장이 일본 최고 부자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말했다.

일본에선 이미 의류산업이 1980년대 급속한 쇠퇴 국면에 들어선 사양(斜陽)산업으로 꼽힌다. 특히 ‘패션성’이 약한 일본의 ‘베이직(기본형)’ 분야는 저임금 국가의 대두로 추락 속도가 훨씬 빨랐다. 고령화·저출산 현상으로 젊은층이 날로 줄어드는 일본의 시장 환경도 어패럴 산업의 몰락 속도를 더욱 빠르게 했다. 유니클로는 바로 ‘어패럴+베이직’, 쇠퇴 요소를 두루 갖춘 브랜드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기업이 어떻게 성공한 것일까. 유니클로가 특히 주목받는 이유다.

8월 26일 도쿄 구단키타(九段北)의 ‘패스트리테일링(유니클로의 지주회사)’ 집무실에서 야나이 다다시(柳井正) 회장(겸 사장)을 만났다. 사실상 창업자인 그는 유니클로의 지주회사 ‘패스트리테일링’의 대표이사 회장 겸, 사장 겸, 상품 본부장이다.


올해 일본 최고 부자로 선정됐는데, 다른 사업가와 무엇이 달랐다고 생각하나.
“나도 깜짝 놀랐고, 여지껏 꿈도 못 꿨다. 사양산업에서 최고 부자가 나올 줄은 누구도 예상 못했을 것 같다. 돌이켜 보면 회사와 집을 오가면서 골프는 휴일에만 치고 그냥 착실하게 살았지만, 미래에 어떻게 할 것인가를 줄곧 생각하는 것이 좀 달랐던 것 같다. 사람들은 대개 지금 하는 일에 너무 붙잡혀 산다.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 것은 옛 방식대로 가는 것을 말한다. 사양산업이든, 성장산업이든 그러면 안 되는 것이 비즈니스의 법칙이다.”

유니클로는 아주 특이한 기업이다. 경제위기가 시작된 2008년 10월 이후에도 성장세를 이어갔다. 하강하던 일본 경제 상황과 정반대 그래프를 그린 것이다. 위기 의식이 최고조에 달했던 2008년 11월에는 매출액이 무려 32%(전년 11월 대비) 늘었다.

일본 언론은 불황 속 염가 의류 업체의 침몰과 대비해 유니클로를 ‘히토리가치(一人勝ち·단 한 명의 승자)’라고 말하는데.
“크게 동의하지는 않는다. 일단 ‘가치(勝ち·승리)’가 아니다. 매출이 작년의 2배가 됐다든가, 아니면 30% 성장, 50% 성장이 계속 이어진다면, ‘승리’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우리도 연간 평균으로 볼 때 (매출 성장세가) 10%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다소 뜨는 정도일 뿐, 상대적으로 다른 기업이 너무 (경영 실적이) 나빠서 눈에 띄는 것이다. 그리고 불황이든, 호황이든 크게 다르지 않다. 잠재 수요를 현실로 내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소비자의 수요가 현실로 나타났을 때는 이미 늦은 것이다. 손님이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가를 여러 각도에서 생각해 먼저 내보여야 한다.”

로드사이드 패션이 명품거리인 긴자(銀座)에서도 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일본 소비자에게 세상의 옷이란 두 종류밖에 없었다. 값비싼 브랜드 의류와 값싼 노(no)브랜드 의류. 값싼 브랜드 의류, 결국 싸고 좋은 옷을 제공하지 못하면 도심에서 성공할 수 없었다. 유니클로 1호점을 히로시마(廣島)에서 만든 것은 1984년. 1990년쯤 중국에 생산기지를 만들면서 ‘SPA(speciality store retailer of private label apparel·대형 의류 제조 소매업)’ 체제가 확립됐다. 이 체제로 지금까지 19년 동안 ‘싼 것=나쁜 것’ 이미지를 불식시켜 나가다 보니 교외 로드사이드 점포가 일본 1등이 됐다.”

일본 제품은 물건은 좋지만 경기 영향을 많이 받는데, 마케팅 기술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손님에게 무슨 물건이 좋은가’라는 생각은 결국 마케팅하는 사람이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경영자, 장사를 하는 ‘머천트(merchant·상인)’ 자신이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일본엔 원래 ‘직인(職人)’ 기질의 사람들이 많다. 직인 기질보다 상인 기질이 더 필요하다. 이런 물건을 혹시 이렇게 팔아 보면 어떨까, 이런 방식으로 광고를 해서 이렇게 팔면 팔리지 않을까 하는 상상력과 실행력을 가진 토털 프로듀서가 필요한 것이다.”

제2기는 해외 진출이라고 선언했다. 왜 해외에 진출해야 하는가.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은 고령화, ‘소자화(少子化·저출산)’가 진행되면서 인구가 점점 줄고 있다. 국내뿐만이 아니라 해외로 진출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다. 삼성· LG도 한국 국내 매출보다 해외 매출이 압도적으로 많다. 소매업은 (문화가 다른 곳에서 성공하기 힘든) 지역 밀착형인 업태이긴 하다. 그래도 해외로 가는 길밖에 없다.”

의류 이외 사업을 다른 영역으로 확대할 계획은.
“없다. 우리는 역시 어패럴로 소비자들의 기대를 받는 기업이므로 사업의 종류를 늘리는 것보다 사업의 영역을 지금부터 글로벌로 확대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게 우리 사명이다.”


▒ 야나이 다다시 柳井正
유니클로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