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세계대전 당시 식량으로 사용할 돼지들을 몰고 가는 독일 병사들. <사진 : 핀터레스트>
제2차세계대전 당시 식량으로 사용할 돼지들을 몰고 가는 독일 병사들. <사진 : 핀터레스트>

군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물자가 적시에 공급돼야 한다. 그중 군에서 보급품을 구분하는 10가지 분류 코드에서 제1종인 식량은 대단히 중요하다. 국보의 번호 순서가 단지 관리 편의를 위해 부여된 것처럼 굳이 1이라는 숫자에 의의를 두기는 힘들지만 그래도 식량이 가장 먼저 그리고 많이 취급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아무리 뛰어난 용사라도 굶고 싸울 수는 없다. 그래서 식량은 격렬하게 전투가 벌어지는 최전선까지 탄환과 더불어 가장 먼저 공급돼야 하는 물자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무기보다 중요하다. ‘삼전도 굴욕(1637년 병자호란 발발 45일 만에 인조가 청 태종에게 항복)’처럼 식량이 공급되지 않도록 외부에서 포위만 하면 굳이 싸우지 않고도 상대방의 항복을 받아 낼 수 있다.

전시라도 아주 급박한 경우가 아니라면 전투력과 사기 유지를 위해 병사들에게 최대한 신선한 음식물을 공급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래서 전쟁이 발발하면 보급부대가 식량으로 사용할 소·돼지·양·닭 같은 가축을 몰면서 전투부대와 함께 이동하곤 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육류를 장기간 보관할 방법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시장이나 상가에서 생닭을 팔거나 직접 잡아서 요리하는 것을 보기 힘들지만 냉장고와 냉장 운송 방법이 일반화되지 않았던 1970년대까지만 해도 닭을 산 채로 유통하고 소비하는 것이 오히려 당연했다. 전쟁 중 군대가 살아있는 가축을 몰고 다니는 것도 이처럼 신선도를 유지해 병사들을 잘 먹이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하지만 여타 식량도 마찬가지지만 운송 수단이 나빴던 시대에 가축을 몰고 다니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고 전쟁의 규모가 커지고 장기화되면 이마저도 어려웠다. 때문에 필연적으로 점령지에서 약탈 행위가 벌어졌다. 오히려 식량의 현지 조달이 당연한 전략이었고 사실 현대에 와서도 흔하게 벌어지는 현상이다.


통조림, 인류 식량난 해소에 큰 역할

이처럼 전쟁을 지휘하는 입장에서 식량의 조달은 골치 아픈 문제다. 곡물이나 미숫가루 같은 가공품이 장기간 보관에 편리하지만 이것만으로 충분한 영양을 공급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전투 중인 병사들이 즉시 취식할 수 있도록 조리된 육류나 채소를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했다.

일생의 대부분을 전쟁터에서 보낸 나폴레옹은 누구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했던 인물이다. 결국 엄청난 포상금을 건 공모전을 통해 1804년 니콜라 아페르(Nicola Appert)의 병조림 저장법이 발명됐다. 그리고 10년 후에는 피터 듀랜드(Peter Durand)가 보다 튼튼하게 보관할 수 있는 통조림용 캔을 만들었다.

통조림은 오늘날 그저 그런 싸구려 음식 정도로 취급받지만 냉장고와 더불어 인류의 식량난 해소에 엄청난 역할을 한 위대한 발명품이다. 아무리 많은 식량을 생산해도 이를 장기간 보관할 방법이 없다면 결국 아무런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병조림·통조림은 인류사를 바꿨지만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탄생했다.


미 육군의 대표적인 전투식량(MRE). 전투식량 보관 용도로 개발된 레토르트 파우치는 간편한 즉석 식품 포장재로 대중화됐다. <사진 : 위키피디아>
미 육군의 대표적인 전투식량(MRE). 전투식량 보관 용도로 개발된 레토르트 파우치는 간편한 즉석 식품 포장재로 대중화됐다. <사진 : 위키피디아>

전투식량 무게 가벼워지고 섭취 편리해져

최초의 현대식 전투식량인 통조림 식품이 등장하면서 전쟁의 방법도 상당히 많이 바뀌었다. 일단 식량 공급을 위해 투입해야 할 병력이나 조직을 대폭 감축할 수 있었다. 지금은 전투병력과 지원병력의 구조가 65 대 35 정도지만 예전에는 거의 1 대 1이었던 점을 고려한다면 그만큼 집약적으로 전력을 운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비록 전투식량은 맛이 없다는 평가를 받지만 고열량을 위생적으로 가공했기에 음식물로 인한 비전투손실을 최대한 억제할 수 있다. 실전이 벌어지면 병사들이 위생이 나쁜 상황에 쉽게 노출되므로 질병에 걸릴 가능성이 급증한다. 그래서 최근에는 음식물을 현지에서 조달하는 행위를 최대한 금한다.

보급 능력이 최고라고 평가받는 미군 같은 경우는 생수까지도 공수할 정도인데, 상한 음식물을 섭취해 싸워보지도 못하고 부대 전체의 전투력이 상실되는 최악의 경우까지 생각한다면 당연한 조치라 할 수 있다. 오히려 미군 당국은 통조림에 만족하지 않고 보다 더 편리한 보관 수단을 찾는 데 많은 공을 들였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또 하나의 획기적인 발명품이 레토르트 파우치(retort pouch)다. 1969년 일본의 오오츠카식품(大塚食品)이 만든 ‘본 카레’는 최초의 레토르트 식품이었는데, 비닐 팩에 진공 포장한 형태여서 유통 기간이 상당히 제한됐다. 그렇게 제약이 많았던 레토르트 식품이 오늘날처럼 일반화되는 데 크게 일조한 포장재가 바로 레토르트 파우치다.

성질이 각기 다른 필름이나 알루미늄 포일 등을 3겹 이상 붙여서 유연하지만 기밀성과 내구성이 강한 레토르트 파우치는 1970년대 중반 미 육군 나틱(Natick) 연구개발(R&D)사령부의 주도로 레이놀즈 금속(reynolds metals company), 콘티넨털 포장재(continental flexible packaging) 등의 민간 업체가 참여해 개발했다. 전투식량 제조에 이를 본격 이용하면서 전투식량의 무게가 통조림보다 가벼워졌고 음식 섭취도 편해졌다.

하지만 더 큰 이익을 누린 곳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생활 패턴이 변화하면서 간편식의 생산과 소비가 계속 늘어나는 추세의 덕을 본 민간 식품업체들이다. 전쟁은 살육과 파괴의 장이지만 여기서 이기기 위해 탄생한 각종 방법이 현재를 살아가는 인류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할 뿐이다. 아마도 전쟁의 역설이 아닐까 생각된다.


▒ 남도현
럭키금성상사 근무, 현 DHT에이전스 대표, 군사칼럼니스트, ‘무기의 탄생’ ‘발칙한 세계사’등 저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