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11일 프레스 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사진 : 조선일보 DB>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11일 프레스 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사진 : 조선일보 DB>

180㎝가 넘는 큰 키, 화려한 은발 머리, 주변을 물들이는 다홍색 정장, 허리까지 내려오는 대담한 나비 무늬 스카프, 사슴 눈망울 같은 진주 귀걸이, 화려한 에르메스 버킨백···.

1조달러(약 1130조원)의 자금을 쥐고 웬만한 나라의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국제 금융계의 여성 대통령’ 크리스틴 라가르드(Christine Lagarde·61)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9월 5일 방한했다. 6박7일간 그의 한국 방문 일정은 화려했다. 문재인 대통령,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강경화 외무부 장관,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 정·재계 인사들과 연쇄 회동했다. 여성 포럼 기조 연설자로 나섰고 여대에서 학생들과 토론도 했다.


‘유리 천장’ 깬 수퍼우먼

라가르드 총재는 문 대통령에게 “한국의 공정경쟁 정책이 유망 기업의 신규 진입을 촉진하고 재벌의 과도한 시장 지배를 막아 생산성을 제고하고 포용적 성장에 기여할 것”이라는 덕담을 건넸다. “한국의 올해 경제 성장률은 3%, 실업률은 3.5%, 물가상승률은 1.9%로 전망된다”며 “한국 경제는 탄탄하다”고 말하는 등 한국 경제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도 내놨다.

라가르드 총재는 “소득 주도 성장 정책은 수요를 창출하는 정책인데 그렇게 하려면 공급도 같이 맞춰야 한다. 프랑스 재무장관 시절을 생각해보면 균형과 신중을 기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며 현 정부의 소득 주도 성장론에 대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사상 첫 프랑스 재무장관, 사상 첫 G8 국가의 재무장관, 사상 첫 여성 IMF 총재 등 ‘최초’ 타이틀을 달고 다니는 라가르드 총재는 국제 경제를 움직이는 ‘수퍼우먼’이다.

‘세계 여성 파워랭킹 5위(포브스 2014년)’에 올랐고 강력한 차기 프랑스 대통령 후보로 거론된다.

여성의 사회적 성공을 막는 ‘유리 천장’을 깬 인물답게 그는 한국 방문 중에도 여성의 경제 활동에 대한 인식 전환, 육아 정책 등 여성의 사회 진출을 촉진할 사회 안전망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지난 6일 ‘한국 여성 금융인 국제 콘퍼런스’에 참석, ‘한국의 성평등 역할과 과제’ 기조 연설을 통해 “여성의 경제 참여율을 높이면 여성과 남성 간 임금격차나 불평등을 해소해 지속가능한 성장을 도모하고 경제 다양화도 실현할 수 있다”며 “여성의 참여가 많아지면 (기업) 수익 면에서도 더 좋은 결과를 낳는다”고 주장했다.

라가르드 총재는 “고령화에 대응해 세계에서 효과가 있었던 방안은 여성 노동력의 비율을 높이는 것”이라며 “노동 시장에서 성별 격차를 해소하면 국내총생산을 일본은 9%, 한국은 10%, 인도는 27%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고 말했다.

“나의 어머니는 아버지가 38세에 돌아가신 뒤 힘든 인생을 살았다”며 고달팠던 개인사를 털어 놓았고 “젊은 시절 로펌 파트너였을 때 자격 요건을 갖췄음에도 커피를 타야 했다”며 성차별 경험도 고백했다.

그러면서 “예전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수중발레) 국가대표 시절 감독님이 ‘어려울 때는 이를 악물고 얼굴엔 미소를 띠고 전진하라’고 했다”며 “고난과 어려움을 겪을 때는 이를 악물고 친구와 멘토의 도움을 받아 꿋꿋이 걸어 가라. 항상 미소를 잃지 말라”고 충고했다.


‘포용 성장’ 강조하는 자유주의자

라가르드 총재는 1946년 프랑스 파리의 교육자 집안에서 3남 1녀의 장녀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대학의 영어 교수였고 어머니는 라틴어, 그리스어, 프랑스어를 가르치는 교사였다. 열일곱 살 때 부친이 사망하는 아픔을 겪었다. 10대 시절 프랑스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 대표를 지냈고 대학입학 자격시험(바칼로레아)을 본 뒤 장학금을 받고 미국 메릴랜드주 베데스다의 홀론-암스 스쿨을 다녔다. 미국 의회에서 인턴으로 일하면서 워터게이트 사건 관련 청문회를 가까이에서 지켜봤다.

파리 낭테르 대학을 졸업하고 영어, 노동법, 사회법 전공으로 석사를 받았다. 프랑스 엘리트 양성소인 국립 행정학교(ENA)에 입학하려 했으나 두 해 연속 입학을 거절당했다.

1981년 미국 시카고 기반 대형 로펌인 베이커 앤드 맥켄지(Baker and McKenzie)에 입사해 반독점법과 노동 사건 분야에서 능력을 발휘, 6년 만에 파트너로 승진했다. 1995년 이사가 된 뒤 1999년 로펌 사상 첫 여성 최고경영자가 됐다.

관계에 입문한 뒤 상무장관(2005~2007년), 농업장관(2007), 재무장관(2007)에 잇따라 임명되는 등 탄탄대로를 걸었다. 2009년 ‘파이낸셜 타임스’가 선정한 ‘유로존 최고의 재무장관’에 뽑히기도 했다.

그가 ‘사상 첫 여성 IMF 총재’가 된 계기는 전임자인 스트로스 칸의 성추행 사건이다. 2011년 뉴욕을 방문한 스트로스 칸이 호텔 웨이트리스를 성추행한 혐의로 체포되는 등 성추문으로 낙마하자 ‘구원 투수’로 나섰다.

유럽과 미국의 독주를 견제해야 한다는 아구스틴 카르스텐스 멕시코 중앙 은행 총재가 강력한 경쟁자였으나 그리스 재정 위기 등 유럽 경제 파탄을 우려한 미국의 강력한 지지로 총재가 됐다. 영국, 독일, 인도, 브라질, 러시아, 중국도 라가르드를 지지했다.

IMF 총재 취임 이후 그리스 재정 위기 처리 과정에서 긴축과 산업 구조 조정을 요구하는 독일의 강경 드라이브를 견제하면서 그리스 채무 삭감 등을 주도했고 2016년 7월 연임에 성공했다.

스스로는 ‘아담 스미스를 지지한다’고 말하는 등 시장 경제와 자유를 옹호한다고 밝혔지만 공공 투자 등 재정 지출 확대, 고용 중시 등 ‘포용적 성장’과 ‘양극화 해소’에 주력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노벨상 수상자인 조셉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는 나의 IMF 총재 임명을 지지했지만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는 나의 총재 임명을 반대했다”는 일화를 공개하기도 했다.

두 번 결혼하고 두 번 이혼했으며 두 아들을 두고 있다. 2006년 이후 마르세이유 출신 기업가인 자비에르 지코칸티와 연인 사이라고 공개했지만 연인의 자세한 신상에 대해서는 말을 아낀다.


Plus Point

샤넬 옷 입고 에르메스 백 드는 명품 애호가

크리스틴 라바르드 총재가 11일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사진 : 조선일보 DB>
크리스틴 라바르드 총재가 11일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사진 : 조선일보 DB>

“회견장을 떠나는 그의 뒷모습에서 강렬한 붉은 대지 위에 사뿐히 내려 앉은 나비의 날갯짓이 떠올랐다.”

지난 8일 그의 기자회견을 취재한 어느 기자가 감탄했을 만큼 라가르드 총재의 패션은 항상 화제를 모은다.

서류가 잔뜩 든 에르메스의 버킨백(Birkin Bag), 대담한 색상과 크고 화려한 스카프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로 꼽힌다.

‘파워 드레싱(Power Dressing·부와 권력을 갖춘 이들이 자신의 지위와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입는 격식 있는 복장)의 교과서’라 불릴 만큼 때와 장소에 맞는 패션을 소화한다는 호평을 받지만 ‘고가 사치품 중독자’란 비판도 만만치 않다.

2011년 패션 잡지 ‘보그’와의 인터뷰에서 프랑스의 유명 브랜드 샤넬과 발렌티노, 영국의 오스틴리드에서 옷을 주로 구입한다고 밝혔다.

그는 “최고의 드레스와 슈트를 만드는 회사들이고 내 치수와 취향, 예산을 속속들이 아는 담당 직원들이 있어 매장에 가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IMF 총재 연봉은 46만8000달러(약 5억3000만원)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