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2월 취임 직후 도드-프랭크법의 타당성을 검토하라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사진 : 블룸버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2월 취임 직후 도드-프랭크법의 타당성을 검토하라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사진 : 블룸버그>

미국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나타난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2010년 7월 제정한 금융개혁법인 도드-프랭크법(Dodd-Frank Act) 폐기를 앞두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금융규제 폐지를 공약한 바 있다. 공화당이 장악한 미 하원은 지난 6월 도드-프랭크법의 대체 법안인 ‘금융선택법(Financial Choice Act)’을 통과시켰다.

월가 대형 은행들의 ‘대마불사(大馬不死)’ 관행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도드-프랭크법은 금융지주회사에 대한 감독 강화 방안의 하나로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역할을 분리한 볼커룰(Volcker Rule)이 포함돼 있어 1930년대 글래스-스티걸법의 부활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볼커룰은 미국 내 은행과 은행 계열사 자기 계정의 증권, 파생상품 거래와 헤지펀드 및 사모펀드와 특수관계를 맺거나 투자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규제안을 말한다. 폴 볼커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최초로 제안했다.

월가는 도드-프랭크법이 금융회사에 대한 ‘오바마케어(전 국민 건강보험개혁법)’라며 강력히 비판해왔다.


금융제도 맹점 개선하기 위해 탄생

JP모건 체이스의 제이미 다이먼 최고경영자(CEO)는 “대형 은행을 파산하지 않게 하려는 이 금융법안이 오히려 성장을 방해한다”며 “미국의 대형 은행들을 관에 처넣고 못을 박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규제 완화와 경제 성장을 외치는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월 취임하자마자 도드-프랭크법의 타당성을 검토하라는 행정명령에 서명함으로써 금융 부문에 대한 규제 완화에 착수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도드-프랭크법을 폐지하려 하고, 민주당 의원들이 격렬하게 반대하는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도드-프랭크법이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도드-프랭크법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만든 광범위한 금융개혁법이다. 정식 명칭은 ‘도드-프랭크 월스트리트 개혁 소비자 보호법(Dodd-Frank Wall Street Reform and Consumer Protection Act)’이다. 월스트리트로 대변되는 대형 금융 회사들에 대한 규제와 감독을 강화하는 한편, 금융 소비자를 보호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2009년 말, 미국의 금융 혼란과 경제 불황을 이겨내기 위한 대안으로 당시 상원 은행위원장이었던 크리스토퍼 도드(Christopher Dodd) 의원과 바니 프랭크(Barney Frank) 당시 하원 금융서비스위원장에 의해 금융 선진개혁 방안이 발의됐고, 이 두 사람의 이름을 따서 ‘도드-프랭크법’으로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2010년 7월 21일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이 이 법안에 서명하면서 법이 발효됐다.

도드-프랭크법이 월스트리트 개혁에 착수하게 된 이유는 미국을 강타한 금융위기가 바로 월스트리트에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의 대형 투자회사들이 과도하게 ‘서브프라임 모기지’ 즉 비우량 주택담보 대출에 투자했는데 거품이 꺼지면서 집값이 하락하자 투자자들이 큰 손실을 보면서 파산하기 시작했고, 결국엔 경제적 손실을 정부가 떠안게 됐다.


글로벌 금융위기는 미국 월스트리트에서 시작됐다. <사진 : 블룸버그>
글로벌 금융위기는 미국 월스트리트에서 시작됐다. <사진 : 블룸버그>

금융사의 고위험 투자 금지하는 내용 담겨

당시 금융시장의 붕괴를 막기 위해 미국 정부는 국민의 세금으로 조성된 약 7000억달러의 구제금융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금융위기의 책임자라고 할 수 있는 대형 금융회사 최고경영자들이 법적인 처벌을 받기는커녕 거액의 연봉과 퇴직금을 챙긴 정황이 드러나면서 이들에 대한 비판 여론이 일었고, 이런 금융 제도의 맹점을 개선하기 위해 도드-프랭크법이 탄생하게 됐다.

도드-프랭크법은 우선 금융위기에 대한 책임을 국민이 아닌 월스트리트가 지게 한다는 것이 주요 목적이다. 따라서 금융감독 체계를 개편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를 시행하기 위해 금융안전감시위원회(FSOC·Financial Stability Oversight Council)가 설립됐다. 미국의 경제 안정성에 위협이 되는 요인들을 감지하고 필요할 경우 제재를 권고할 뿐 아니라 미국의 금융 체계를 위협하는 요인들에 대한 대응 계획을 세우는 기관이다.

도드-프랭크법의 핵심은 법률 제619조에 담긴 볼커룰이라고 할 수 있다. 볼커룰은 금융기관들이 자기자본으로 파생상품 같은 고위험 자산에 투자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자기자본은 회사의 자본금이자 채권자를 보호하기 위해 회사가 보유해야 할, 최소한도의 자금이다. 금융위기가 닥치기 전 리먼브러더스 또는 골드만삭스 같은 미국의 대형 금융사들은 자기자본의 수십 배에 달하는 빚을 내가며 무분별한 투자를 했고 결국 투자 거품이 빠지면서 금융위기를 가져왔다.

도드-프랭크법은 또한 기업의 파산을 국가가 도와주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도 담고 있다. 경제학에 ‘대마불사’라는 표현이 있는데, ‘큰 말은 죽지 않는다’는 뜻으로, 규모가 너무 큰 회사가 망하면 나라 경제 전체의 재앙이 되기 때문에 정부가 어떻게든 돕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하지만 도드-프랭크법은 아무리 부실해도 덩치가 너무 커서 파산시키지 못하는 ‘대마불사’를 막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를 위해 대형 금융회사에 부실이 발생하면 회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할 수 있는 일종의 ‘장례식 계획(funeral plan)’을 세워서 감독 당국에 정기적으로 보고하도록 하고 있다. 또 대형 금융회사의 해체로 인해 발생하는 손실을 해당 회사가 책임지게 함으로써 국민의 세금이 들어가는 걸 최소화한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미국 은행 수익성 2010년 이후 하락세

트럼프 대통령이 도드-프랭크법에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볼커룰’ 때문이다. 볼커룰은 미국 금융시장의 안정 및 건전화를 추구하는 법규정으로 은행의 자기매매(Proprietary trading) 및 헤지펀드 보유 등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트럼프와 공화당원들은 여기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그들은 볼커룰이 은행의 비즈니스를 무리하게 제약함으로써 은행의 수익성을 악화시켰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미국 은행들의 명목순이자마진(NIM·Net Interest Margin)은 도드-프랭크법을 공표한 2010년부터 하락세를 이어 가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2010년 1분기에 3.83%까지 회복했지만 이후 지속적인 감소세를 보였고 결국 작년 말 3.05%까지 하락했다. 특히 은행의 자기매매 금지로 인해 트레이딩 부문을 중심으로 순익이 감소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두 번째로 공화당과 트럼프 대통령은 도드-프랭크법하에 설립된 미국 금융소비자보호국(CFPB·Consumer Financial Protection Bureau)의 해체를 주장하고 있다. CFPB는 도드-프랭크법 발효 이후 FRB 내에 독립조직으로 신설된 연방정부기구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재발 방지를 위해 신설됐으며 소비자 보호를 위해 관련법의 시행령 제정, 금융기관에 대한 감사, 금융교육을 담당하는 기구다.

공화당은 CFPB가 금융기관들에 지나치게 까다로운 기준으로 제재를 가하고 천문학적 규모의 벌금을 부과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CFPB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당시 모기지 상품의 불완전 판매 혐의로 JP모건에 130억달러(약 14조7000억원)의 벌금을 부과한 바 있다. 또 고객 동의 없이 몰래 1500만 개의 허위 계좌 개설로 문제가 된 미국 최대 은행 웰스파고 역시 1억8500만달러(약 2100억원)의 벌금을 낸 적 있다. CFPB 신설 이후에 접수된 신고 건수를 보면 모기지와 대여금 회수, 신용평가와 관련된 내용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대형 은행을 고발한 빈도수도 높았다. 이를 근거로 트럼프와 공화당 의원들은 CFPB로 인해 대형 금융기관을 중심으로 피해를 보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은 미국 금융안정감시위원회(FSOC)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입장이다. FSOC는 시스템 리스크 감시, 시스템상 중요한 금융회사(SIFI) 지정을 통한 추가적인 자본건전성 규제 부과, 정기적인 스트레스 테스트 실시, 대형 금융기관 규제 강화, 상업은행과 투자은행 업무 영역을 분리한 볼커룰 등을 주로 수행한다. 그런데 트럼프와 공화당 의원들은 FSOC가 은행뿐 아니라 보험사와 같은 비은행 금융기관에 대해서도 SIFI를 지정함으로써 거대 금융기관에 대한 포괄적인 규제를 가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 때문에 트럼프와 공화당 의원들은 FSOC를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은행의 부실 위험 높아질 가능성 커

다만 CFPB와 FSOC의 해체 주장은 기존 기득권층과 대형 금융기관을 위한 것이 아니냐는 반대 여론도 거세다. 게다가 이러한 규제완화로 은행의 수익성 개선 효과를 기대할 수는 있겠지만, 반대로 은행의 부실위험은 커질 가능성이 많다. 즉 트럼프와 공화당의 입장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리스크 관리가 소비자 보호라는 흐름으로 흘러가는 것과 배치되는 결정인 것이다. 트럼프가 도드-프랭크법 폐기를 위해 첫발을 내디뎠음에도 불구하고 우려의 목소리가 큰 이유다.


Plus Point

도드-프랭크법 폐지, 신흥국 증시에 호재 전망

도드-프랭크법이 사라지고 금융선택법이 발효되면 일단 주식 투자가 활성화될 것으로 보인다. 도드-프랭크법 발효 이후 미국 은행의 주식 거래가 위축됐다. 은행 및 은행 계열사의 자기계정거래 금지와 위험자산 대비 자기 자본비율 규제, 스트레스 테스트 등으로 인해 위험자산에 대한 투자가 감소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도드-프랭크법하에서는 신용등급이 높은 국채와 회사채에 대한 투자가 증가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금융규제가 완화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그동안 규제라는 테두리에 손발이 묶여 있었던 금융회사들은 규제가 해소되면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 차입금을 크게 늘리고, 공격적인 투자를 펼칠 것이 자명하다.

게다가 도드-프랭크법 발의 당시보다 미국 은행들의 초과준비금(실제 보유 지급준비금에서 필요 지급준비금을 차감한 것)이 두 배 가까이 증가해 2조달러(약 2260조원)에 육박하는 등 여유 자금도 충분하다.

특히 글로벌 금리가 오르는 국면에 진입한 상황에서 글로벌 자금이 채권보다는 주식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최근 채권형 펀드의 자금이 주식형 펀드로 유입되고 있는 상황이다.

주식 중에서는 그동안 소외받았던 신흥국 주식이 수혜를 볼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도드-프랭크법 발의 이후에 신흥국 주식시장으로의 자금 유입은 더뎌졌다. 위험자산 대비 자기자본 비율 규제와 스트레스 테스트로 인해 주식 중에서도 변동성이 큰 신흥국 주식에 대한 투자가 감소했기 때문이다. 도드-프랭크법 발의가 있었던 2010년 이후 7년간 선진국 증시가 80% 가까이 오른 것에 비해 신흥국 증시는 5% 상승에 그쳤다. 따라서 위험 선호 심리가 살아나고 있는 가운데 저평가 매력이 뒷받침되면서 신흥국 증시가 수혜를 볼 가능성이 크다. 

국내 증시에도 호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무엇보다 국내 증시는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신흥국(EM) 지수 중에서 중국 다음으로 높은 편입 비율(약 15%)을 차지하고 있어 자금이 신흥국 증시로 유입될 경우 수혜를 볼 가능성이 높다.

김병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도드-프랭크법이 실질적으로 수정되거나 완화된다면 글로벌 자금은 단기 환차익을 노리는 데 그치지 않을 것”이라며 “그중에서도 볼커룰의 완화는 글로벌 금융자산의 상승세를 부추기고 신흥국과 한국으로 자금이 유입되어 증시가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