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악과 빈곤의 소굴로 그려져 왔다. 고아(孤兒) 올리버 트위스트가 소매치기를 하다 붙잡힌 곳은 런던의 뒷골목이었고(소설 ‘올리버 트위스트’) 난장이 아버지가 개발·투기 열풍에 밀려 자살을 택한 곳도 도시였다(소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도시는 환경오염·소득불평등 같은 사회문제와도 연결된다.

에드워드 글리저 하버드대 교수는 “이제 도시에 갖다 붙인 온갖 누명을 벗겨 낼 때”라며 “도시는 경제성장과 문명의 진보를 이끈,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라고 했다.

2011년 4월 6일, 하버드 교정에서 만난 그는 뉴욕의 대표적 부촌인 맨해튼 이스트 사이드에서 태어나 40년 가까이 도시에만 살았다.


도시의 빈곤층 증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도시가 가난을 유발하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오는 것이다. 도시에는 부자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열려 있기 때문이다. 미국 경제가 긴 침체기에 들어섰던 2009~2010년 맨해튼의 평균 임금은 12% 상승했다. 교통·통신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더 가까이 모여 살려고 한다. 2011년 현재 세계 절반 이상의 인구가 도시 거주자이며, 가난한 나라들도 도시만큼은 빠르게 팽창하고 있다.”

사람들이 대도시로만 몰려들면 언젠가 한계에 부딪히지 않을까.
“고층건물이라는 멋진 발명품이 있다. 일조권 침해를 우려하는 이들도 있지만, 건물주에게 적정 비용을 내도록 하면 된다. 이들이 고도제한을 피해가려고 정치권에 로비하는 대신 세금을 내면, 그 혜택은 시민 모두에게 돌아간다. 파리 같은 곳은 도시 보존을 이유로 엄격하게 개발을 제한하고 있다. 이 경우 ‘시내 5000개 보존 대상 건물’ 같은 식으로 수를 제한하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 뉴욕·시카고·파리 같은 도시가 엄청난 성장을 이루고 있을 때 이들 도시는 새로운 아이디어, 새로운 인재들이 머물 공간을 계속 공급하고 있었다.”

도시·지방 간 격차는 어떻게 줄여야 하나.
“교육의 기회를 넓히는 데 돈을 써야 한다. 가난한 지역 아이들이 더 나은 기회를 찾을 수 있도록 말이다. 허리케인 카트리나 이후,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은 뉴올리언스 재건에 2000억달러(약 226조원)를 쓰겠다고 선언했다. 천문학적인 액수다. 하지만 복구 후에 뉴올리언스가 전보다 나아질 것 같지 않다. 이 도시는 한때 항구도시로 경제적 번영을 누렸지만, 산업구조의 변화에 발맞춰 변신하지 못했다. 1960년대 이후 계속 인구가 빠져나가는 쇠락한 도시가 돼버렸다. 도시 자체도 가난한 시민들을 위해 제 기능을 전혀 하지 못했다. 도시 재건이 아닌 이 지역 주민들에게 돈이 쓰여야 한다. 부시가 제안한 돈을 뉴올리언스 주민에게 나눠주면, 1인당 40만달러(약 4억5000만원)가 돌아간다는 계산이 나온다.”

뉴올리언스 얘기를 했는데, 왜 어떤 도시들은 반짝했다 사라지고 어떤 도시들은 계속 번영을 누리는 것인가.
“도시의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것은 사람이다. 똑똑한 사람들을 끌어들여 교육시키고, 이들이 섞여 협업하게 해야 살아남는다. 이는 특히 가난한 나라에서 더 그렇다. 이런 나라에서 인재는 대개 교육받지 못했지만 똑똑하고 정력적인 기업가들인 경우가 많다. 이런 사람들이 모여 있으면 도시는 시대 변화에 빠르게 대처하고 더 나아가 변화를 이끈다.”

예를 들면 어떤 것이 있나.
“뉴욕은 18세기에 중요한 무역항 역할을 했고 그 덕에 19세기 중반까지 제조업(설탕 가공, 의류, 출판)이 엄청나게 발전했다. 인구도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20세기 들어 교통기술이 발달하고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제조업이 서서히 죽어갔다. 그러나 제조업을 통해 축적된 기업가 정신은 죽지 않고 남아 뉴욕을 부활시켰다. 그 기업가 정신은 ‘리스크를 감수하라’였다. 그리고 제조업자의 후손들은 이를 금융산업에 적용했다. 이들이 한 장소에 모이고 아이디어를 주고받으면서, 금융상품은 정교해지고 혁신을 거듭한다. 또 뉴욕은 출판업이 번성했던 탓에 지적·창조적 아이디어에 대한 욕구가 늘 팽배했다. 현재 맨해튼 페이롤(payroll·급여 지불 총액)의 40%를 금융서비스 산업이 차지한다. 2010년 맨해튼의 주 평균 급여는 2404달러(약 270만원)로, 이는 미국 전체 평균보다 170%가 많은 액수다.”

번영을 누리다 쇠퇴하는 도시들은 어떤 특징을 보였나.
“뉴욕의 예에서 보듯 도시는 세상 변화에 끊임없이 스스로를 재발명(reinvention)해야 한다. 디트로이트는 그러하지 못했다. 도시의 재발명은 교육받은 인력, 작은 기업들 그리고 서로 다른 산업 간 창조적인 상호작용에 의해 가능해진다. 20세기 후반에 디트로이트는 수십만 명의 비숙련 노동자들을 고용하는 단일 산업에 의해 지배되고 있었다. 성장의 필수 조건인 다양성과 경쟁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제조업 도시들은 교육기관에 절대 투자하는 법이 없다.”

그렇다면 이런 실패한 도시가 다시 도약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일단 ‘소비도시’로 변신해야 한다. 고급 인력은 생활의 질과 여가·오락(entertainment)을 중시한다. 도시가 일종의 테마파크 같은 곳이 돼야 영리한 기업가들이 모인다. 둘째, 기업 하기 쉬워야 한다. 창업하기 쉽도록 규제를 완화하라는 말이다. 시설 개선도 중요하다. 디트로이트는 부동산 가격이 저렴하지만, 많은 시설과 건물들이 ‘여기가 21세기인가’ 싶을 정도로 열악하다. 이런 도시들은 세금으로 새 건물을 짓기보다 개발업자들이 스스로의 필요에 의해 도시 공간을 개보수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교육이다. 도시 재건에 있어 좋은 학교, 양질의 교육만큼 빠른 길은 없다.”

아시아 도시 중 성공한 도시를 꼽자면.
“싱가포르다. 지난 40년간 싱가포르는 매년 8%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세계 최고 수준이다. 싱가포르는 경쟁력 있는 정부시스템 아래 똑똑한 사람들이 모일 때 어느 정도의 혁신과 번영이 가능한지 보여주는 예다. 리콴유 전 총리는 자본주의와 정부 주도 산업화를 절묘하게 이뤄냈다. 의류 제조업에서 전자로, 생물의학으로 주력 산업을 옮겨갔다. 공무원에게 높은 연봉을 주고, 부정부패는 엄하게 다스려 정부 투명성과 효율성을 높였다. 교육에도 엄청나게 투자하는 동시에 신뢰할 수 있는 법과 정책을 기반으로 외국 인재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 에드워드 글리저 Edward Glaeser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