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탈릭 부테린 이더리움 창시자. <사진 : 블룸버그>
비탈릭 부테린 이더리움 창시자. <사진 : 블룸버그>

세계가 가상화폐(Cryptocurrency) 열풍을 앓고 있다. 가상화폐 정보제공업체 코인데스크는 1비트코인이 9월 28일 현재 4200달러대에 거래되고 있다고 밝혔다. 첫 거래 당시 0.003달러였던 1비트코인의 가치는 7년 만에 140만 배 올랐다. 2위 가상화폐로 각광받는 ‘이더(ether)’ 가격도 급등세다. 올해 1월 9000원 선에 거래되던 1이더의 가격은 지난 7월 30만원을 돌파했다.

실리콘밸리의 가상화폐 관련 직업이 최근 6개월 사이 100% 늘고 보수도 다른 기술 기업에 비해 10~20% 높다는 보도가 나온다. 한국에서도 넥슨이 9월 26일 국내 3대 가상화폐 거래소로 꼽히는 ‘코빗’ 지분 65%를 912억원에 인수하는 등 투자 열풍이 일고 있다.


월스트리트, 가상화폐 버블 논쟁 한창

‘세계 금융의 심장’ 미국 월스트리트의 거물들은 가상화폐가 ‘21세기의 튤립’일지 아닐지를 놓고 입씨름을 벌이고 있다.

미국 최대 은행인 JP모건 체이스의 제이미 다이먼 회장이 먼저 포문을 열었다. 다이먼 회장은 9월 12일(현지시각)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 광풍은 17세기 네덜란드에서 일어난 튤립 버블(Tulip Bubble)과 다를 바 없다”며 “사기와 다름없는 가격 폭등의 끝이 좋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다이먼 회장은 “베네수엘라, 에콰도르, 북한이 마약상·살인자라면 미국 달러보다 비트코인 거래가 나을 것”이라며 “우리는 절대 가상화폐에 투자하지 않겠다”고 했다.

다이먼 회장의 공격이 먹힌 탓일까? 9월 초까지 4900달러대였던 비트코인 거래 가격은 다이먼 회장의 비판과 중국의 거래소 중단 소식이 전해지면서 3200달러대(9월 14일)로 폭락, 올해 들어 4배 이상 치솟던 폭등세가 꺾였다.

비트코인은 확실히 일시적 유행을 넘어섰다. 하지만 보름 뒤 제임스 고먼 모건스탠리 최고경영자(CEO)가 다이먼 회장의 주장을 정면 반박했다. 고먼 CEO는 9월 27일 열린 월스트리트저널 주최 행사에서 “비트코인 열풍은 분명 투기적 현상이지만 본질적으로 나쁜 것은 아니다”며 “블록체인 기술의 자연적인 결과"라고 주장했다. 고먼 CEO는 “익명의 통화라는 개념은 사생활 보호와 그것을 통제하는 중앙은행 시스템에 대한 대응 의미에서 흥미롭다”고 했다.

가상화폐 논쟁이 뜨거운 가운데 가상화폐의 핵심 기술인 ‘블록체인계의 아이돌’로 불리는 비탈릭 부테린(Vitalik Buterin·23) 이더리움 창시자가 9월 25일 한국을 방문했다.

그는 ‘제15회 서울 이더리움 밋업’ 기조연설을 통해 “법정화폐가 가상화폐보다 안정성이 높아, 월급을 받거나 물건을 사는 등 전통 산업에서 가상화폐가 법정화폐를 완전히 대체하기는 어렵다”며 가상화폐가 “사물인터넷이나 인터넷 거래에서 법정화폐를 보완하는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가상화폐 가격의 폭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버블이 맞다. 언제 시작돼 언제 끝날지 예측하기 정말 어렵다”고 했다.

가상화폐 가격 폭등으로 가장 큰 이득을 볼 장본인이 가상화폐 가격에 거품이 있고 한계가 있다고 ‘쿨’하게 인정해, 관중을 놀라게 했다. 그가 이끄는 이더리움의 시가 총액은 267억달러(약 30조원). 비트코인(622억달러)에 이어 2위다.


10세에 독학으로 컴퓨터 코딩 배워

부테린이 창시한 이더리움은 한창 뜨고 있는 오픈소스 분산형 컴퓨팅 플랫폼이다. 대부분의 인터넷은 서버-클라이언트 구조다. 수십억 명이 이용하는 서비스가 몇 개의 핵심 중앙 서버를 중심으로 운영된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 아마존 등 글로벌 디지털 기업들은 수억 명에 달하는 이용자의 트래픽을 감당하기 위해 거대한 서버와 데이터센터를 운영한다. 만일 이들 서버가 전쟁, 자연 재해 등으로 작동하지 않으면 인터넷은 한순간 마비된다. 글로벌 기업들이 엄청난 돈과 인력을 투입해 해킹, 지진 등에 대비하는 이유다.

하지만 이더리움은 서버-클라이언트 구조가 아닌 P2P(개인과 개인) 네트워크상에서 프로그램을 작동시키기 때문에 별도의 중앙 서버가 필요없다. 금융화폐 기능에 초점을 맞춘 비트코인과 달리 확장형 블록체인을 쓰기 때문에 금융은 물론, 주식 발행, 상품 계약에 사용될 수 있다. 중앙 서버의 개입 없이 개인들의 필요에 따라 부동산 주식 발행, 집과 자동차 등 상품 매매 계약 등 거의 모든 상거래가 가능하다. 가령 A가 B에게 한 달 뒤 10만원을 주겠다는 계약서를 프로그래밍해서 이더리움에 올려놓으면 별도의 중개기관 없이 거래가 성사되고 대금이 지불된다. 이더리움상에서 사용료로 지불되는 가상화폐가 바로 ‘이더’다. 이더는 이더리움에서 정보를 옮기기 위한 사용권 역할을 하기 때문에 비트코인과 유사한 화폐 기능을 갖는다.

부테린의 별명은 ‘외계인’이다. 쫑긋한 귀, 움푹 들어가고 찢어진 눈, 깡마른 얼굴 등 공상과학 영화에 나오는 외계인을 연상시키는 외모에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천재적 재능’과 ‘뛰어난 성취’ 때문이다.

10세 때 독학으로 컴퓨터 코딩을 배워 온라인 게임을 만들었고 17세 때 친구와 함께 ‘비트코인 위클리’라는 비트코인 블로그를 만들었다. 컴퓨터 프로그래머였던 아버지의 소개로 비트코인을 처음 알게 됐다고 한다. 이더리움은 암호화 화폐인 비트코인의 핵심 기반 기술인 블록체인을 화폐가 아닌 다른 상거래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그의 아이디어에서 탄생했다. 19세에 이더리움의 기본 설계도를 완성해 발표했고, 20세이던 2014년 이더리움 재단을 세워 공개 모금을 통해 165억원을 모았다.

이미 억만장자 반열에 올랐지만 한국을 방문할 때 이코노미석을 타고 다닐 정도로 소박한 생활을 하며, 이더리움 로고가 들어간 분홍색 티셔츠에 고무줄 바지를 즐겨 입는 애띤 청년의 모습을 하고 있다. 오픈 소스 플랫폼의 창시자답게 “굳이 큰 돈을 벌 욕심은 없다. 이더리움 프로젝트를 통해 모은 돈은 직원 40명의 월급과 사무실 운영비용으로 쓰고 있고 나도 월급받고 일한다”고 말한다.

이더리움 본사는 스위스, 베를린, 런던 등 유럽에 분산돼 있는데 부테린은 “캐나다보다 유럽이 가상화폐에 대한 규제도 적고 개발자 간 소통도 쉽다”고 말했다.


Plus Point

‘외계인’으로 불리는 러시아계 캐나다인

부테린이 4세 때 컴퓨터를 사용하고 있다. <사진 : 블룸버그>
부테린이 4세 때 컴퓨터를 사용하고 있다. <사진 : 블룸버그>

1994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태어난 부테린은 올해 만 23세이다. 캐나다로 이민 간 아버지를 따라 6세 때 캐나다로 이민했다.

고교 때 국제 수학올림피아드 정보 부문에서 동메달을 땄고 영어·러시아어·프랑스어·독일어·중국어 등 5개 국어를 구사한다. 여름 휴가 두 달 동안 중국어를 익혔다고 한다.

고교 시절, 글 한 편에 5비트코인을 받고 비트코인 잡지에 글을 기고하고 20비트코인(당시 가치 12달러)을 모아 티셔츠를 샀다는 일화도 있다. 20비트코인의 현재 가치는 900만원이 넘는다. 워털루대학에 진학했으나 1학년 때 중퇴한 뒤 피터 틸 팔란티어 회장이 만든 ‘틸 장학금’ 수상자로 선정돼 10만달러를 받았다.

부테린은 2014년 ‘타임’과 ‘포브스’가 공동 선정하는 ‘월드 테크놀로지 어워드’를 수상하며 유명세를 탔다. 뉴테크놀로지 분야의 ‘노벨상’으로 꼽히는 상이다. 당시 부테린의 경쟁 후보가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였다.

‘포천’이 선정한 ‘40세 이하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40인(10위)’ ‘세계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100대 러시아인’에 선정됐다. 두 분야 모두 최연소였다. 그가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 이더는 50만 개로 시가 1억5000만달러(약 1700억원)에 달한다. 비트코인 등 다른 가상화폐 보유 내역에 대해서는 ‘노 코멘트’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