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차세계대전 때 대서양·태평양에서 활동한 독일의 중형 잠수함 ‘유보트’ . <사진 : defence of the realm>
제1·2차세계대전 때 대서양·태평양에서 활동한 독일의 중형 잠수함 ‘유보트’ . <사진 : defence of the realm>

북대서양은 거칠고 차갑기로 유명하다. 그리고 칠흑처럼 어둡다. 사실 망망대해는 다 그렇지만 밤의 대해는 지독하게 검다. 그런 어둠을 이용해서 화물선단의 한복판에 중형 잠수함 ‘유보트(U-boat)’가 불쑥 부상한다. 잠수함 전투를 다룬 영화에서는 잠수함이 멀찍이 떨어진 바닷속에서 어뢰를 발사하곤 하지만, 실제로 유보트의 함장이 제일 선호하고, 또 선단에 공포를 줄 수 있는 방식은 선단 가운데 잠입해 부상하는 것이다.

이것은 그야말로 닭장 속에 늑대가 나타난 격이었다. 경호함대는 오히려 닭장 밖에 있어 제대로 손을 쓸 수도 없다. 유보트는 어뢰가 떨어질 때까지 마음껏 포식을 즐긴다.

유보트의 황금기였던 1940년 소위 영광의 여름이라고 불린 6월부터 10월까지 대서양에서 유보트가 수장시킨 연합군 선박은 274척, 139만5000t이었다.


지독한 냄새, 습기 견딘 유보트 승선원

유보트의 집요하고 무자비한 공격은 이유가 있었다. 제2차세계대전 개전과 함께 독일군은 6주 만에 프랑스를 점령하고 영·불 연합군을 덩케르크에서 알몸으로 쫒아버리는, 빛나는 승리를 거뒀다. 그러나 영국의 전략적 위치를 오판해서 영국 침공의 기회를 놓쳐버린 것이 치명적인 실수였다. 독일이 영국을 점령했더라면 노르망디 상륙작전도 불가능했을 것이고, 노르웨이에서 프랑스에 이르는 저항군의 활동도 곤란했을 것이다. 독일의 대도시들이 공습경보에 떨지 않아도 됐고, 대서양 연안에 배치한 수백만의 병력을 중동 유전지대나 소련 전선으로 돌릴 수도 있었다.

또 하나의 오판은 미국의 산업과 생산 능력이었다. 고립된 섬나라 영국이 대륙을 위협할 수 있었던 비결은 영국으로 들어오는 미국의 엄청난 군수물자였다. 실은 영국인의 식량까지도 미국의 상선이 실어 날았다.

독일이 실수를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다. 남은 방법은 화물선을 대서양에 수장시키는 방법뿐이었다. 유보트의 함장들도 자신들의 막중한 사명감을 알았기에 필사적이었다. 그들은 고향이 공습으로 폐허가 됐다거나 가족, 친지가 폭격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자신들이 화물선을 충분히 저지하지 못해 발생한 일이라고 자책하며 전의를 불태우곤 했다.

화물선단이 무방비 상태로 당하는 것 같지만, 유보트의 사냥도 알고 보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일단 이때의 잠수함 생활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습기와 냄새는 보통 사람은 1시간도 못 버티고 토할 정도였다. 요동치는 잠수함이 주는 멀미는 롤러코스터 이상이었다. 아무리 노련한 잠수함 선원도 버틸 수가 없어서 하루에 일정 시간은 해저로 내려가 정지 상태로 휴식을 취해야 했다. 그러면 습기와 냄새는 더 심해지지만 참아야 했다.

더 힘든 일은 선단과의 승부였다. 닭장 속으로 뛰어들기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선단은 고속으로 항해하면서 자주 방향을 바꿨다. 유보트는 수상에서는 디젤 엔진으로 기동하므로 제법 빨랐지만 잠항을 하면 전기 모터로 달려야 하므로 최고 속도가 5노트 이내로 뚝 떨어졌다. 그러다 보니 선단을 놓치기 일쑤였고, 속도 경쟁에서 밀려 버리면 방법이 없었다. 연합군은 이 약점을 노려 화물선을 개조한 간이 항모를 선단에 배치했다. 공중 정찰의 위력은 대단했다. 이때부터 유보트와 항공기 간에 시간 싸움이 벌어졌다. 항공기를 발견하고 10여초 내에 잠항하느냐 못하느냐가 생사를 갈랐다. 하루에 10여번 이상 항공기의 공격을 받으며 잠항을 반복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다 보면 화물선단을 쫒아갈 수 없는 곳으로 멀어져 갔다.

이외에도 잠수함에 대항하는 전술과 기술은 신속하게 발전했다. 유보트 영광의 시기가 지나고 침몰 속도가 빨라지기 시작했다. 평균 생존율도 7번에 1번, 3번에 1번꼴로 급속히 줄었다.

유보트의 몰락은 연합군의 암호해독, 독일군의 전술착오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한때는 첨단이었던 유보트의 기술이 뒤처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잠깐 유보트를 변호하자면 잠수함으로서 유보트는 연합군의 어떤 잠수함보다도 뛰어났다. 특히 견고함과 폭격에 대한 저항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다. 잠수함 성능의 척도 중 하나가 잠항심도인데, 생존한 유보트 함장의 표현을 빌면 그건 아무도 몰랐다고 한다. 대략 권장 기준은 있었지만, 대부분의 배가 더 깊은 심도도 버텨냈다. 그래서 아무도 한계수치를 알지 못했고, 그것을 아는 사람은 바닷속에 잠들어 있다.


기업이 지속 성장하기 위해선 변화의 흐름을 읽고, 그에 맞는 연구개발과 품질관리를 해야 한다. <사진 : 조선일보 DB>
기업이 지속 성장하기 위해선 변화의 흐름을 읽고, 그에 맞는 연구개발과 품질관리를 해야 한다. <사진 : 조선일보 DB>

기술개발 소홀히 해 몰락한 유보트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보트의 개량이 대잠기술의 발전을 따라가지 못했다. 유보트도 지속적인 성능개량을 했다. 압축공기로 발사해서 수면에 궤적을 드러내지 않는 어뢰를 만들었고, 믿기지 않지만 음파로 적함을 추적하는 유도어뢰도 발명했다. 제일 혁신적인 발명은 공기흡입장치를 개발, 수중에서도 디젤 엔진을 가동하며 산소결핍을 걱정하지 않고 무한정으로 잠항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오늘날에는 핵잠수함이 이 기술을 활용하고 있지만 당시 무한잠항은 모든 잠수함장의 꿈이었다.

이 모두가 혁신적인 업적이었지만 유보트의 몰락을 막지 못했다. 그 이유는 대잠기술의 발전은 잠수함 분야가 아니라 레이더, 항공기, 음파탐지 같은 다른 분야에서 이뤄졌기 때문이다.

20년 전만 해도 CEO를 대상으로 하는 교육에서 제일 강조하던 내용이 현재의 실적에 만족하지 말고 기술개발과 연구투자를 소홀히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기술투자를 소홀히 하다가 후발주자에게 역전당한 케이스를 사례로 들곤 했다. 그러나 이제는 보다 중요한 것이 인접 분야, 연관 분야의 혁신이다. 20여년 전 S사는 음반분야에서 세계적인 기업이었다. 기술개발과 품질관리를 소홀히 하지 않는 모범적인 기업으로도 명성이 높았다. 그러나 CD가 등장하면서 운명을 바꿔 놨다. 그런데 CD도 처음에는 영원히 유지될 제품처럼 생각됐지만 벌써 사라지고 있다.

기업인을 만나면 이런 문제는 충분히 인식하고 있지만 실제 기업 활동 중 다른 곳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다고 한다. 유보트의 선원은 심해에서 잠시도 쉬지 않고, 인간 한계 이상의 고통을 이겨내며 싸웠다. 그러나 정작 승부는 바다 밖에서 결정되고 있었다. 분투하는 전사들이 있다고 해서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은 아니다. 승부의 추는 시대에 따라 변한다. 변화하는 세상을 볼 수 없다면 그것을 볼 수 있는 시스템과 인력을 양성해야 한다. 유보트의 몰락이 주는 교훈이다.


▒ 임용한
경희대 대학원 사학 박사, 경희대·공군사관학교 한국사·군제사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