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차기 의장으로 떠오르고 있는 제롬 파월(왼쪽) 연준 이사와 존 테일러 스탠포드대 교수. <사진 : 블룸버그>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차기 의장으로 떠오르고 있는 제롬 파월(왼쪽) 연준 이사와 존 테일러 스탠포드대 교수. <사진 : 블룸버그>

‘세계의 경제 대통령’으로 불리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RB) 이사회 차기 의장 지명이 임박했다. 백악관 관계자들은 11월 3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 출발 이전 차기 연준 의장을 지명할 것이라고 전한다. 재닛 옐런(Janet Yellen·71) 현 연준 의장의 임기는 내년 2월 3일 만료된다. 미국 연준 의장은 ‘세계의 수퍼 파워’ 미국의 재정 정책 기조를 결정하고 ‘국제 금융의 심장부’ 월스트리트에 대한 감시·규제 권한을 행사하는 막강한 자리다.

현재 차기 의장 후보는 옐런 의장, 제롬 파월(Jerome Powell·60) 연준 이사, 존 테일러(John Taylor·71) 스탠퍼드대 교수 등 3인으로 압축됐다고 미국 언론은 보도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워싱턴포스트가 10월 26일(현지시각) “트럼프 대통령이 파월 이사와 테일러 교수 가운데 한 명을 차기 연준 의장으로 임명할 것”이라고 보도해, 옐런 의장의 연임 가능성을 낮게 봤다.

정치 전문 미디어 ‘폴리티코’도 같은 날 익명의 트럼프 대통령 측근의 말을 인용, “옐런 의장의 연임은 트럼프 대통령의 고려 대상이 아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옐런 의장은 매우 훌륭하다. 정말 좋아한다”고 치켜세우고 있지만 연준 의장이 대통령의 통치 업적과 관련된 자리임을 고려하면 민주당 행정부가 지명한 옐런 의장의 연임보다 자신과 ‘코드’가 맞는 새 인물을 기용할 것이란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워런 데이비슨, 테드 버드, 알렉스 무니 등 공화당 하원의원 3명이 최근 트럼프 대통령에게 ‘연준의 새 수장이 필요하다’는 내용의 공개서한을 보내는 등 공화당 안에서도 민주당과 선 긋기를 위한 ‘옐런 의장의 연임 불가론’이 나오고 있다.


‘비둘기파’ 파월, 현 금리정책 유지할 듯

스티브 므누신 재무장관이 추천한 인물로 알려진 파월 이사는 양적 완화, 재정 확대 등에 대해 우호적인 ‘비둘기파(온건파)’로 분류된다. 저금리 기조 속 최근 주가 상승에 만족하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파월 이사는 무난한 선택으로 간주되고 있다.

파월 이사는 워싱턴D.C. 출신으로 1975년 프린스턴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뒤 1979년 조지타운대 로스쿨을 졸업했다. 투자은행 ‘딜런, 리드 앤드 코(Dillon, Read & Co)’에서 사회 생활을 시작했고 주요 경력의 대부분을 부시 가문과 연계된 사모펀드 칼라일그룹(1997~2005년)에서 쌓았다. 조지 W. 부시 행정부 재무 차관으로 니콜라스 브래디 재무장관과 호흡을 맞춰 재정 기관과 채권 시장 규제를 담당했다.

그는 중도파로 연준 이사회 표결에서 대체로 다수 의견에 동조했다는 평을 받고 있으며, 2008년 재정 위기 이후 마련된 각종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을 지지하고 있다.

파월 이사가 임명될 경우 옐런 의장의 점진적이고 신중한 긴축 스타일을 이어받는 등 현재 금융 시스템을 크게 흔들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2012년 연준 이사에 임명된 뒤 2014년 연임에 성공했으며 연준 이사 가운데 가장 부유한 자산가로 알려져 있다.


‘매파’ 테일러 교수, 공화당 지지 받아

테일러 교수는 ‘노벨 경제학상 수상을 예약한 경제학자(블룸버그 통신)’이자 통화 정책에 대한 연방정부 개입과 연준의 재량을 축소해야 한다는 소신이 강한 ‘매파(강경파)’로 분류된다. 그가 만든 ‘테일러 룰(Taylor Rule)’은 현대 통화 이론과 정책의 토대를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으며 미국 연준은 물론, 한국은행 등 각국 중앙은행들의 통화 정책을 평가하는 지표로 사용되고 있다.

뉴욕주 용커스 출신으로 프린스턴대 학부(정치학)를 졸업하고 스탠퍼드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컬럼비아대, 프린스턴대 교수를 지낸 뒤 스탠퍼드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부시 행정부 시절 재무차관으로 일했다.

정부의 과도한 개입이 미국의 미래를 위협하고 있다는 소신이 강하며 양적 완화 정책을 주도한 래리 서머스 전 재무장관과 최근까지 공개 설전을 벌이는 등 재정 위기 타개를 위한 오바마 행정부의 정책을 꾸준히 비판한 인물이다.

공화당 행정부의 새 재정 정책 방향을 상징할 적임자로 지목되면서 일부 공화당 의원들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다. 그를 직접 면담한 트럼프 대통령도 강한 호감을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테일러 교수가 차기 연준 의장이 될 경우 미국 금리가 상대적으로 가파르게 상승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옐런 현 의장은 학계, 월스트리트, 언론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고 있지만 민주당 행정부가 지명한 인사라는 ‘태생적 한계’가 약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옐런 의장은 3명의 후보 가운데 가장 검증되고 경험이 풍부하며 정책 연속성을 가진 적임자로 꼽힌다. 100년 연준 역사상 최초의 여성 의장이란 상징성에다 지난 4년 동안 미국 경제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Plus Point

연준 의장 지명 ‘리얼리티 쇼’

차기 연준 의장에서 탈락한 케빈 워시(왼쪽) 전 연준 이사와 게리 콘 위원장. <사진 : 블룸버그>
차기 연준 의장에서 탈락한 케빈 워시(왼쪽) 전 연준 이사와 게리 콘 위원장. <사진 : 블룸버그>

‘대통령 트럼프가 각본 · 감독 · 주연을 맡은 원 맨 리얼리티 쇼.’

언론들은 이번 차기 연준 의장 선임 과정이 트럼프 대통령이 출연해 인기를 얻은 텔레비전 리얼리티 쇼와 흡사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2년 NBC방송의 리얼리티 쇼 ‘디 어프렌티스(The Apprentice)’에 출연, 대중 인지도를 한껏 끌어올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 직장을 구하는 젊은이들을 매회 한 사람씩 탈락시키면서 “You are fired!(당신 해고야)”라고 말해 시청률을 끌어올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10월 17일 옐런 의장, 파월 이사, 테일러 교수, 케빈 워시(Kevin Warsh·47) 전연준 이사, 게리 콘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 등 5명이 차기 의장 후보냐는 질문에 대해 “다섯 명 중에서 여러분이 답을 얻게 될 것”이라고 답변, 후보군을 공식 확정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후 후보들과 면담하고 소감을 밝히면서 화제를 몰고 다녔다.

가장 먼저 탈락한 사람은 당초 가장 유력한 후보였던 콘 위원장이다. 미국 정계 최대 현안으로 부상한 공화당 세법 개정안의 의회 통과를 책임지고 있고 금리와 재정 정책 경험이 없는 점이 한계로 작용했다. 지난 8월 버지니아주 샬러츠빌에서 일어난 인종차별 폭력 시위 직후 애매모호한 태도를 보인 트럼프 대통령과 각을 세운 뒤 눈 밖에 났다는 분석도 나왔다.

케빈 워시 전 이사도 강력한 후보였다. 뉴욕주 알바니 출신인 워시 이사는 스탠퍼드대, 하버드 로스쿨, MIT 슬론 경영대학원 출신이다. 모건스탠리에서 7년간 근무한 뒤 부시 전 대통령의 경제정책 특보로 일했다. 2006년 사상 최연소(35세) 연준 이사가 됐고 재정 위기 당시 월스트리트와 연방정부 간 정책 조정 역할을 맡았다. 2002년 글로벌 화장품 회사인 에스티 로더의 상속녀인 제인 로더와 결혼했다. 부인의 재산이 20억달러로 알려져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오랜 친구인 장인 로널드 로더와 본인이 연준 의장직을 강력하게 원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경험 부족 등이 약점으로 작용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후 언론 인터뷰, 공화당 의원들과의 만남에서 “누가 적임자라고 생각하느냐” “파월 이사와 테일러 교수 가운데 누가 적임자라고 생각하느냐”고 공개적으로 묻는 등 차기 연준 의장 임명에 대한 미디어와 대중의 관심을 유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누구에게 ‘You are hired!(당신 취직됐어)’라고 말할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