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2일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차기 의장에 제롬 파월 연준 이사를 공식 지명했다. <사진 : 블룸버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2일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차기 의장에 제롬 파월 연준 이사를 공식 지명했다. <사진 : 블룸버그>

미국 연방준비제도 이사회(연준·FRB) 차기 의장에 제롬 파월(Jerome H. Powell·64) 연준 이사가 2일(현지시각) 지명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제이(파월 이사의 닉네임)는 강하고 소신 있고 똑똑하다”며 “제이는 내가 확고하게 믿고 있는 통화·재정 정책의 합의 도출형 리더다. 그가 연준을 이끌 적임자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대통령 기자회견에 동석한 파월 지명자는 “고용을 최대한 끌어올리고 낮은 물가를 유지하는 연준의 두 가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며 “가능한 최대의 근거와 통화 정책 독립이라는 오랜 전통에 기초한 객관성을 갖고 (통화 정책을) 결정하겠다”는 소감을 밝혔다. 새 연준 의장 지명 현장에 전임자가 동석하는 관례를 깨고 재닛 옐런(Janet Yellen·71) 의장은 기자회견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파월 지명자는 상원 인준을 거쳐 내년 2월 제16대 연준 의장에 취임한다. 임기는 4년이다.

파월 지명자는 게리 콘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 케빈 워시(Kevin Warsh·47) 전 연준 이사가 초반 탈락하고 공화당 내 ‘옐런 의장 불가론’이 확산되면서 유력 후보로 급부상했다. 골드만삭스 출신인 스티브 므누신 재무장관의 적극적인 추천을 바탕으로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후원하는 존 테일러 스탠퍼드대 교수와 막판 경합을 벌였다.

‘트럼프의 안전한 도박(Safe Gamble)’(월스트리트저널), ‘옐런(연준 의장)의 공화당 버전’(뉴욕타임스) 등 현지 언론들은 예상했던 무난한 인사라는 반응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급진적 변화나 모험보다는 ‘안전한 방향 전환’를 선택했다는 평가다. ‘공화당 버전의 옐런’이란 평가처럼 파월 지명자가 점진적인 금리 인상과 단계적인 연준 보유 자산 축소 등 옐런 의장의 정책 기조를 이어갈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 월스트리트 등 금융 시장은 안도하는 분위기다.


시장에선 ‘중도적 실용주의자’로 평가

파월 지명자는 통화 긴축을 선호하는 ‘매파(Hawks)’와 통화량 공급을 늘려 경기 부양을 추구하는 ‘비둘기파(Doves)’로 분류되는 다른 연준 주요 인사들과 달리 ‘중도파(centrist)’ 또는 ‘실용주의자(pragmatist)’로 분류된다. 연준 이사진 가운데 유일한 공화당 몫 인사로 규제 완화를 주장하면서도 완만한 금리 인상을 주도하는 옐런 의장 등 비둘기파들의 입장에 대체로 동조한다. 이 때문에 그를 ‘비둘기파’로 분류하는 학자들도 많다. 그는 지난 5년간 소수 의견을 자주 냈지만 정작 투표에서는 연준 전체 이사회 결정에 배치되는 반대표를 던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중립 성향의 합의 도출형 리더’란 의미의 ‘현명한 올빼미’(리처드 피셔 전 댈러스 연준 총재) 등 긍정적인 평가도 받고 있지만 ‘예스 맨’이란 부정적인 이미지도 있다. 급진적인 금융 규제 완화보다는 은행의 부담을 줄이는 방향으로 규제를 보다 효율적으로 개선하고 과도한 연준의 자산을 줄여야 한다는 소신을 밝히는 등 트럼프 대통령과 코드가 가장 잘 맞는 인사라는 평가다. 일찍부터 트럼프 대통령의 재정·통화 정책을 지지했다.

프린스턴대에서 정치학을 전공하고 조지타운대 로스쿨을 졸업한 파월 지명자는 칼라일그룹에서 부동산 투자 담당 파트너로 경력을 쌓은 변호사 출신 금융인이다. 레이건 행정부 시절 폴 볼커 전 연준 의장 이후 40년 만에 경제학 박사 학위가 없는 연준 의장이다.

300여 명의 쟁쟁한 경제학 박사 학위 소지자들이 득실대는 연준의 이사가 된 뒤 다른 이사들보다 보다 두세 배 이상의 관련 자료를 준비하는 등 ‘이론적 공백’을 메우기 위해 노력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공화당 의원들을 상대로 미국 정부의 재정적자 한도를 확대하려는 민주당 정책을 막후에서 설득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2년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이 연준 이사에 지명했고, 2014년 연임에 성공하는 등 초당적인 인맥을 구축한 인사로 알려져 있다.

자기 주장을 앞세우기보다 남의 말을 경청하고 종합한 뒤 비판하는 능력이 뛰어난 인물이라고도 한다. 필 셔틀 국제금융협회(IIF) 수석이코노미스트는 “파월은 자기 주장이 강하지 않지만 다른 사람들의 연구 결과를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평가했다. 재치와 유머 감각으로 주위 사람들을 편하게 하는 능력이 뛰어나다고 지인들은 전한다.

파월 지명자의 앞날이 밝지만은 않다는 지적이 많다. 미국 경제가 호조를 보이고 있지만, 지속 성장을 위해 적정 목표치로 설정한 물가 상승률이 2%에 미달하는 상황에서 기준금리를 어느 수준까지 올리느냐 라는 난제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물가 상승률은 현재 1.3% 수준에 머물고 있다. 연준은 10월 1일 통화 정책 회의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 직후 만장일치로 1.00~1.25%인 현 기준금리를 유지키로 했다. 하지만 미국 경제가 “견고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고 밝혀 오는 12월 기준금리 인상을 예고했다. 일부에서는 현재 주식시장과 부동산 가격이 고공 행진을 보이고 있지만 기준금리 인상이 부동산 시장의 붕괴로 이어져 자칫 경기 침체를 유발할 수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독자적인 리더십 구축 과제

연준이라는 막강한 권한을 가진 거대 조직의 수장으로 파월 지명자가 어떤 리더십을 보일지도 관심이다. 폴 볼커 전 연준의장(1979~1987년), 앨런 그린스펀 전 의장(1987~2006년)은 강력한 카리스마로 조직을 이끌었다. 벤 버냉키 전 의장(2006~2014년), 옐런 의장(2014~2017년)은 연준 이사진들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리더십을 발휘했다. 파월은 버냉키나 옐런보다 훨씬 더 합의를 도출하는 협력적인 리더십으로 조직을 이끌 것으로 월스트리트는 전망하고 있다.

공화당과 민주당이 갈수록 극단적인 대결로 치닫고 있는 험악한 정치 상황도 부담이다. 민주당 행정부 시절 버냉키와 옐런 의장의 통화 정책을 노골적으로 비판했던 일부 공화당 의원들이 그들의 정책을 지지한 파월 지명자에 대해서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과거 연준 의장들은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 고도의 정치력을 발휘했다. ‘현명한 올빼미’ 파월 지명자가 앞으로 어떤 리더십으로 난제를 극복할지 주목된다.


Plus Point

변호사 출신 금융인
자전거 마니아

제롬 파월 차기 의장은 40년 만에 경제학 박사 학위 없이 연준 의장에 지명된 인물이다. <사진 : 블룸버그>
제롬 파월 차기 의장은 40년 만에 경제학 박사 학위 없이 연준 의장에 지명된 인물이다. <사진 : 블룸버그>

파월 지명자는 1953년 워싱턴D.C.에서 변호사인 제롬 파월과 패트리샤 파월 사이에서 태어났다. 외조부인 제임스 헤이든은 콜럼버스대 로스쿨 학장을 지냈다.

조지타운대 로스쿨을 졸업한 뒤 뉴욕 법률 사무소에서 일하다가 1984년 뉴욕의 투자은행 딜런, 리드 앤드 코(Dillon, Read & Co)에서 기업 인수·합병과 재무 담당 업무를 맡았다. 이후 사모펀드 칼라일그룹(1997~2005년)에서 부동산 투자 담당 파트너로 일했다. 1990년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니콜라스 브래디 재무장관과 호흡을 맞춰 재정기관과 채권시장 규제를 담당했다. 브래디 전 장관은 딜런, 리드 앤드 코 회장 출신으로 2008년 존 매케인 공화당 대통령 후보를 위해 3만달러를 기부한 공화당원이다.

파월은 자전거를 타고 메릴랜드주 셰비체이스 자택에서 연준 사무실까지 26㎞를 왕복하는 유명한 자전거 마니아다. 1985년 결혼한 부인 엘리샤 레오나드와 세 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개인 자산 5500만달러(뉴욕타임스 추정)로 연준 이사 가운데 가장 부유한 인사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