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아이칸 아이칸 엔터프라이즈 회장 <사진 : 블룸버그>
칼 아이칸 아이칸 엔터프라이즈 회장 <사진 : 블룸버그>

‘냉혹한 기업 사냥꾼’ ‘기업 인수·합병(M&A)의 예술가’ ‘협상의 귀재’ ‘소액 주주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전사’···.

1980년대부터 미국 월스트리트를 휘젓고 다니며 적대적인 기업 M&A를 통해 돈을 긁어모은 ‘억만장자 투자자’ 칼 아이칸(Carl Icahn·81) 아이칸엔터프라이즈 회장이 검찰 수사의 칼날 위에 섰다.

아이칸 회장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규제 개혁 담당 특별 보좌관(Special Advisor)’이란 지위를 이용, 수천만달러 상당의 부당 이득을 취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고 뉴욕타임스, 블룸버그 통신 등이 11월 8일(현지시각) 일제히 보도했다.

뉴욕 맨해튼을 관할하는 뉴욕 남부지검이 최근 아이칸 회장을 소환 조사키로 하고 조사 일정을 조율하고 있다고 현지 언론들이 보도했다.

아이칸 회장은 올해 2월 바이오 연료 규제 완화를 골자로 하는 일명 ‘에탄올 법’ 개정을 건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이칸 회장의 제안대로 법률이 개정되면서 자신이 지분 82%를 보유한 텍사스 정유 업체 ‘CVR 에너지’의 주가 상승을 통해 수천만달러 상당의 이익을 본 혐의를 받고 있다.

작년 12월 트럼프 대통령의 특별보좌관에 임명된 아이칸 회장은 지난 8월 일부 민주당 의원들이 정유사 등 규제 대상 기업의 대주주인 아이칸 회장이 정부 정책에 관여한 행위는 ‘이해충돌(conflict of interests)’에 해당할 수 있다고 문제를 제기하자 특별보좌관직을 사임했다.

아이칸 회장은 “정책을 결정할 지위에 있지 않았다. 규제 완화 관련 대통령 자문은 정유 업계를 위한 행동이었지 사적인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며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아이칸 회장은 환경 규제 완화 정책을 주도하는 스콧 프루이트 환경보호청 청장 등의 임명에 개입하는 등 인사 개입 의혹도 받고 있다.


‘트럼프 귀 잡은 절친’ 소문 속 승승장구

아이칸 회장은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회장, 피터 틸 팰런티어 회장과 함께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으로 ‘가장 뜬’ 기업인으로 알려져 있다.

같은 뉴욕 퀸스 출신인 트럼프 대통령과 1980년대부터 사업 파트너였던 ‘절친’이자 대선 운동 초기부터 트럼프 후보를 지원한 열성 지지자다. 트럼프 후보 측에 선거 운동 자금 2억달러(약 2240억원)를 지원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트럼프 대통령 만들기’에 공을 들였다.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으로 큰돈도 벌었다. 작년 11월 9일 트럼프 후보가 당선되자 아이칸엔터프라이즈의 주가가 급등했다. 트럼프 당선 파티에 초대받은 아이칸 회장이 모두가 승리의 기쁨에 취해 있는 힐튼호텔 파티장을 빠져나와 주가 선물 옵션에 10억달러를 투자한 일화는 ‘전설’이 됐다. 트럼프의 예상 밖 승리에 실망한 투자자들 때문에 주식시장이 맥을 추지 못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인 때였다.

하지만 주가는 아이칸 회장의 예상대로 트럼프 당선 이후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며 수직 상승, 주가 상승에 돈을 건 아이칸 회장은 떼돈을 벌었다. 아이칸 회장이 “여기저기에서 닥치는 대로 자금을 끌어모았다. 내가 동원할 수 있는 돈이 10억달러밖에 안 돼 안타까웠다”고 했을 정도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선 이후에 “아이칸은 재무장관감”이라고 공언하는 등 아이칸 회장에 대한 덕담과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아이칸 회장은 “나는 재무장관을 할 만한 인물이 아니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너스레를 떨었고 작년 12월 특별보좌관에 임명됐다.

워싱턴 정가에서 아이칸 회장은 ‘대통령의 귀를 잡고 있는 인물’로 지목됐고 그의 영향력은 곧 입증됐다. 아이칸 회장은 트럼프의 첫 행정부 구성 작업이 물밑에서 진행되던 작년 11월 15일 개인 트위터를 통해 “스티브 므누신이 재무장관, 윌버 로스가 상무장관이 될 것이다. 두 사람은 내가 아는 한 가장 똑똑한 사람들”이라고 했고, 보름 뒤 그 예측은 ‘실제 상황’이 됐다.

‘텔레비전 리얼리티 쇼’를 방불케 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도 아이칸 회장의 영향력을 배가시키는 계기가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몇 명의 공직 후보를 공개 거론한 뒤 개별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후보를 압축하는데, 일부 후보는 대통령 인터뷰 직후 아이칸 회장과 ‘최종 면접’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월스트리트 변호사 출신으로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이 된 제이 클레이튼도 트럼프 대통령의 지명을 받은 날 아이칸 회장 사무실에서 ‘최종 인터뷰’를 했다고 ‘뉴요커’가 보도했다. 아이칸 회장도 “수십 년간 누가 최고경영자로 적합할지를 결정해온 내가 누구를 추천하는 것이 잘못인가”라고 반문하며 “대통령이 항상 내 말을 듣는 것은 아니다”고 말해 대통령 인사에 깊이 개입했음을 굳이 부인하지 않았다.


“2013년 이후 자산 27% 날려”

하지만 호사다마였을까? 아이칸 회장은 작년에 매입한 자동차 렌털 업체 헤르츠글로벌홀딩스(HTZ)의 주가 폭락으로 올해 8월까지 22억달러 손실을 입는 등 2013년 이후 자산의 27%를 날렸다고 시사 주간지 ‘타임’이 보도했다.

검찰 수사선상에 오른 아이칸 회장을 보는 워싱턴 정가와 언론들의 시각은 곱지 않다.

조지 부시 행정부 시절 백악관 윤리 담당 변호사를 지낸 리처드 페인터는 “아이칸 회장은 특별보좌관 제의를 사양했어야 했다”며 “공식 지위가 아니며, 정책 결정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페인터 변호사는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이 공직을 맡은 것 자체가 범죄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한때 그와 함께 일한 익명의 소식통은 “그의 프린스턴대학 포커 친구였던 리온 블랙 아폴로글로벌매니지먼트 전 회장, ‘정크본드의 제왕’ 마이클 밀켄 모두 부정행위로 감옥에 갔다”며 “아이칸도 그들과 다르지 않은 일들을 해왔다”고 밝혀 아이칸 회장의 미래가 밝지 않음을 시사했다.


Plus Point

자수성가한 유대인 투자자

칼 아이칸과 게일 고든 부부. <사진 : 블룸버그>
칼 아이칸과 게일 고든 부부. <사진 : 블룸버그>

아이칸 회장은 1936년 뉴욕 퀸스의 펄록카 웨이의 가난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러시아계 유대인으로 오페라 가수의 꿈을 이루지 못한 아버지는 교회 성가대 활동에만 관심이 있었고 어머니의 수입은 적어 사립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공립학교를 다녔다. 그는 포커로 생활비를 벌면서 프린스턴대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뉴욕대 의과대학원에 진학했으나 2년 만에 퇴교했다.

군 제대 후 1961년 뉴욕 드레퓌스 앤드 컴퍼니(Dreyfus & Company)의 견습 주식거래인으로 월스트리트 생활을 시작, 1968년 빌린 돈 40만달러로 ‘아이칸 앤드 코(Icahn & Co)’를 설립했다. 1978년부터 기업 M&A 사업에 뛰어들어 1985년 미국의 대형 항공사인 TWA에 대한 적대적인 M&A에 성공, 1993년까지 직접 운영한 뒤 되팔아 ‘명성’ 얻었다. 이후 ‘공격적 주식 매입 후 분할 매각(Raid and Break-up)’을 모토로 하는 ‘행동주의 투자자’를 자처하며 RJR나비스코, 타임워너, 애플, 넷플릭스, 모토롤라, 이베이 등의 주식을 공격적으로 매집, 거액의 시세 차익을 남겼다.

월스트리트의 비열한 이면을 그린 올리버 스톤 감독의 영화 ‘월스트리트(1987년)’에 나오는 냉혹한 투자자 ‘고든 게코(마이클 더글러스 분)’의 실제 모델로 알려져 있다.

첫 부인과 두 명의 자식을 뒀고, 1999년 개인 비서였던 게일 골든과 재혼했다. 포커와 테니스 마니아다. 개인 자산 166억달러(약 18조6000억원)로 ‘포브스 400대 억만장자’ 26위(2017년 1월)에 올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