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와 유럽을 대신해 아시아가 세계 패션 산업의 새로운 중심지로 떠오르고 있다. 홍콩 카르티에 매장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사진 : 블룸버그>

“2017년은 북미와 유럽 등 서구 사회가 패션 산업을 지배하던 시대에 마침표를 찍은 한 해였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인 맥킨지와 영국 패션 전문 매체 비즈니스오브패션(BOF)은 최근 공동으로 발간한 ‘2018년 패션 산업 전망(The state of fashion 2018)’ 보고서에서 “올해 사상 처음으로 북미와 유럽을 제외한 다른 지역에서 발생하는 패션 산업 매출액이 북미와 유럽을 따라잡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올해가 세계 패션 산업의 중심축이 북미와 유럽 등 선진국 지역에서 아시아, 라틴아메리카 등 신흥국 지역으로 넘어가는 변곡점이 될 것이라는 말이다.


북미·유럽에서 아시아로 중심축 이동

패션 산업 중심지의 세대 교체는 예견된 일이었다. 선진국 패션 시장은 정체된 상태인 데 비해 신흥국 패션 시장은 꾸준한 성장을 거듭했기 때문이다. 맥킨지에 따르면 지난해 북미와 유럽의 패션 산업 매출 증가율은 1~3%에 불과했다. 반면 신흥시장 패션 산업 매출 증가율은 5% 이상을 기록했다. 라틴아메리카 5~6%, 중동·아프리카 5~6%, 유럽 신흥국 5.5~6.5%, 아시아 신흥국 6.5~7.5%를 각각 기록했다.

앞으로 신흥국 패션 산업은 빠른 속도로 선진국과 격차를 벌릴 전망이다. 맥킨지는 전 세계 패션 산업 매출에서 북미와 유럽을 포함한 서구 사회가 차지하는 비율이 2025년에 45%까지 낮아질 것으로 봤다. 2011년에만 해도 이 비율은 60%에 달했다. 맥킨지는 “서구 사회가 패션 산업을 지배하던 시대는 2017년으로 종지부를 찍게 됐다”며 “이제는 아시아나 라틴아메리카 신흥국이 글로벌 패션 산업의 성장을 이끌 것”이라고 했다.

이미 글로벌 패션 업체들은 신흥시장 공략을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프랑스의 명품 브랜드인 생로랑(Saint Laurent)은 지난해 6월 세계 최대 온라인 명품판매 업체인 파페치(Farfetch)와 손잡고 중국 전자상거래 시장 진출을 본격화했다. 파페치는 중국 2위 전자상거래 업체인 JD닷컴이 최대주주다. 생로랑은 다른 명품 브랜드에 비해 중국 전자상거래 시장에 소극적이었다. 중국의 짝퉁 명품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었다. JD닷컴과의 제휴로 짝퉁 명품에 대한 우려를 해소할 수 있었고, 적극적인 시장 개척에 나선 것이다.


2018년 패션 산업 3대 키워드

맥킨지와 BOF는 글로벌 패션 업체 CEO 223명을 대상으로 ‘2018년 가장 큰 도전 과제가 무엇인지’를 물었고, CEO들의 답변을 바탕으로 ‘2018년 패션 산업 3대 키워드’를 꼽았다. 이에 따라 선정된 키워드는 △불확실한 세계 경제 △디지털 플랫폼 시대 △기술 혁신이었다.



파페치가 지난해 영국 런던에서 선보인 ‘미래의 상점’. 소비자가 자신에게 어울리는 패션 아이템을 터치스크린 등 첨단 기술을 통해 고를 수 있게 했다. <사진 : 블룸버그>

키워드 1 | 불확실한 세계 경제

지난 10일 세계은행(WB)은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3%에서 3.1%로 상향 조정했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의 투자가 살아나고 있고, 브라질이나 러시아 같은 원자재 수출국의 수출이 증가하는 것도 낙관적인 전망의 이유였다. 동시에 세계은행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 같은 보호무역주의의 강화와 중동 분쟁 등 지정학적 리스크가 세계 경제의 위협 요인이라고 밝혔다.

패션 업체 CEO들은 세계은행의 상반된 전망 중 위협 요인에 좀 더 신경을 쓰는 모습이다. 맥킨지와 BOF의 설문조사에 응답한 CEO의 12%가 올해 패션 산업의 가장 큰 도전 과제로 ‘글로벌 경제의 유동성과 불확실성’을 골랐다. CEO들이 고른 도전 과제 중 가장 많은 지지를 얻은 것이다. CEO들은 2017년 패션 산업을 표현할 수 있는 적당한 단어를 골라 달라는 질문도 받았는데, 절반 이상인 53%가 ‘불확실한(Uncertain)’을 택했다.

칩 버그(Chip Bergh) 리바이 스트라우스 회장 겸 CEO는 맥킨지와 인터뷰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는 워싱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는 예측 불가능성”이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다만 디지털 세계에서는 국가 간 장벽이 갈수록 허물어질 것으로 보인다. 맥킨지는 전 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민족주의와 보호무역주의 열풍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세계에서는 세계화가 더 빠르게 진전될 것이라며 패션 업체들이 이런 변화의 흐름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키워드 2 | 디지털 플랫폼 시대

맥킨지의 조사에 따르면 동남아시아 소비자들은 하루 평균 8시간을 디지털 플랫폼에 머문다. 이들은 오프라인 매장보다 온라인 매장이 더 익숙하고, 디지털 기반 콘텐츠를 더 능숙하게 활용한다. 맥킨지는 “알리바바나 아마존, 자포스 같은 디지털 플랫폼 업체들이 패션 업체를 더 거세게 몰아붙일 것”이라며 “디지털 플랫폼 업체와의 협력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강조했다.

패션 업계 CEO들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맥킨지의 설문조사에서 패션 업체 CEO의 60%가 2018년에 가장 중점을 두고 추진할 업무로 ‘옴니채널의 통합과 전자상거래, 디지털 마케팅’을 꼽았다. 옴니채널은 소비자가 온라인·오프라인·모바일 등 다양한 경로를 넘나들며 상품 정보를 찾아보고 구매까지 할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를 말한다.

옴니채널 전략을 가장 잘 구사하는 패션 업체는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인 구치와 명품 브랜드 온라인 판매 업체인 육스 네타포르테(YOOX Net-a-Porter)다. 구치는 2015년 무명 디자이너였던 알렉산드로 미켈레를 크리에이티브디렉터(CD)로 발탁한 이후 디지털 플랫폼을 강화하고, 긱 시크 패션(geek chic·컴퓨터와 기술 마니아의 괴짜 패션 트렌드)을 선보였다. 이런 노력 덕분에 밀레니얼 세대의 지지를 받으며 매출이 늘었다.

육스 네타포르테는 명품 브랜드 온라인 판매 시장을 꽉 잡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인 딜로이트에 따르면 전체 명품 온라인 판매의 80% 정도를 육스 네타포르테 같은 전문 판매 업체가 차지하고 있다. 육스 네타포르테는 소비자들에게 최선의 경험을 제공하는 데 집중한다. 자신들의 온라인 사이트와 애플리케이션(앱)을 이용하는 소비자를 위해 ‘디 에디트(The Edit)’라는 매거진 형식의 디지털 카탈로그를 제공하고 있고, 2014년부터는 프린트 매거진도 발간한다. 프린트 매거진은 앱과 연동된다. 육스 네타포르테는 IBM과 협업하는 등 첨단 기술 분야에도 투자를 늘리고 있다. 페데리코 마르케티(Federico Marchetti) 육스 네타포르테 CEO는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런던과 볼로냐에 1000명의 엔지니어를 고용해 명품 브랜드와 기술을 융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모바일도 디지털 플랫폼의 부상과 함께 패션 산업의 중요한 화두로 떠올랐다. 모바일은 밀레니얼 세대를 공략하기 위한 핵심적인 디지털 플랫폼이다. 명품 브랜드들은 중국 시장 공략을 위해 위챗(Wechat) 같은 소셜미디어를 활용한다. 위챗은 중국 최대 소셜미디어로 이용자가 10억 명에 달한다. 티파니·버버리·샤넬 같은 글로벌 명품 브랜드는 위챗에 공식 계정을 만들고 중국 소비자에게 제품 정보를 전달하고 피드백을 받고 있다. 티파니나 버버리 공식 계정을 구독하는 사람만 30만 명이 넘을 정도로 인기다. 지난해부터는 위챗에서 명품 제품을 직접 구매할 수 있는 쇼핑몰도 열렸다.



구치는 밀레니얼 세대를 공략하기 위해 파격적인 시도를 선보이고 있다. <사진 : 구치>

키워드 3 | 기술 혁신

미국의 패션 스타트업인 스티치픽스(Stitch Fix)는 패션 산업의 미래로 불린다. 2011년 설립된 패션 스타일링 업체인 스티치픽스는 7년 만에 매출액 10억달러를 눈앞에 두고 있다. 기업 가치는 40억달러에 달한다. 스티치픽스는 인공지능(AI) 기술을 패션 스타일링에 적극 접목해 주목받았다. 고객의 취향과 체형, 라이프스타일, 소셜미디어 활동 기록 등을 AI가 분석해서 가장 어울리는 옷을 추천해준다.

스타트업뿐 아니라 전통적인 패션 브랜드들도 AI 기술을 활용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타미 힐피거는 최근 미국의 명문 패션스쿨인 FIT(Fashion Institute of Technology), IBM과 손잡고 리이매진 리테일(Reimagine Retail)이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고 발표했다. 리이매진 리테일은 패션 디자인 과정에 AI 기술을 접목해 소비자가 원하는 디자인을 발 빠르게 내놓는 것이 목적이다.

패션 업계가 AI 기술에 관심을 가지는 건 밀레니얼 세대가 맞춤형 디자인을 원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IBM의 조사에 따르면 밀레니얼 세대 여성 소비자의 52%가 자신만을 위한 맞춤형 패션 아이템을 원했다. 맥킨지는 “변화에 적응해서 성장하는 업체와 그러지 못하는 업체 간의 격차가 갈수록 커지는 한 해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plus point

“전자상거래 업체와 협력하라”

2017년 패션 산업을 정리하면.
“전자상거래 업체들의 등장으로 패션 산업은 어마어마한 규모의 붕괴를 경험하고 있다. 미국의 아마존, 중국의 알리바바 같은 전자상거래 업체 덕분에 소비자는 과거 어느 때보다 빠르게 정보에 접근할 수 있게 됐다. 모든 패션 업체들이 소비자의 취향 변화를 빠르게 잡아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 시대다.”

전통적인 패션 업체는 전자상거래 업체를 어떻게 대해야 하나.
“아마존은 미국에서 리바이 스트라우스의 옷을 가장 많이 팔아주는 플랫폼이다. 알리바바의 티몰이나 유럽의 잘란도(Zalando), 인도의 플립카트(Flipkart)도 우리에게 중요한 플랫폼이 됐다. 이런 전자상거래 플랫폼에서는 우리가 원하지 않더라도 우리의 청바지가 거래되고 있다. 이 사실을 무시하기보다는 우리가 최대한 많은 부분을 통제할 수 있도록 전자상거래 업체와 협업해 나가는 게 차라리 나을 것이다.”

전자상거래 업체가 직접적인 경쟁자가 되지는 않을까.
“우리에게 가장 큰 도전은 아마존이 자가상표(PB) 의류 사업에 뛰어들었다는 점이다. 아마존의 의류 사업 규모는 갈수록 커질 것이다. 아마존의 의류 사업 규모가 벌써 200억달러에 달한다. 그들은 소비자로부터 엄청난 양의 정보를 축적하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이 모으는 데이터가 큰 힘이 될 것이다. 이건 시간 문제일 뿐이다. 그들이 경쟁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면서, 그들과 함께 일하고 싶은 파트너가 돼야 한다.”


plus point

“밀레니얼 세대 이해해야 한다”

패션 산업에서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인가.
“소비자가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기술이 발전한 덕분에 소비자들은 더 많은 정보에 대한 접근권을 가질 수 있게 됐다. 그들은 이제 앱을 켜기만 하면 제품 가격을 전 세계적으로 비교할 수 있다. 소비자들은 그 어느 때보다 실용적인 지식과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다.”

밀레니얼 세대가 중요한 소비자층으로 부상했다.
“밀레니얼 세대는 온라인에서 쇼핑한다. 우리는 13년 전에 온라인 판매를 시작했는데, 이제 전체 매출에서 온라인 판매가 차지하는 비율이 22%까지 늘었다. 그들은 정말로 하루 종일 가능한 시간을 모두 온라인 쇼핑에 쓴다. 더 흥미로운 건 그들이 분명한 목적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늘날의 소비자들은 그냥 물건을 사기만 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이나 세상을 위한 목적 있는 쇼핑을 원한다.”

혁신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혁신은 모든 것이다. 우리는 새로운 시도를 망설이지 않는다. 10년 전에 온라인 매거진을 처음 선보였다. 광고 없이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서 모든 종류의 소셜미디어를 다 활용했다. 지금은 중국 전자상거래 시장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우리의 전자상거래 사업 대부분은 미국을 기반으로 하는데, 중국에는 거대한 시장이 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중국 소비자에게 우리를 더 알릴 수 있을지를 놓고 고민하고 있다. 위챗 같은 플랫폼을 이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오프 프라이스(견본용 제품을 싸게 파는 것) 시장이 커지고 있는데, 어떻게 보나.
“우리는 토리버치의 로고를 보호해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가 가장 집중하는 건 제값을 다 받는 일이다. 사실 많은 브랜드가 이 부분을 소홀히 한다. 우리는 옳은 방식으로 장기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사업에 집중하려고 한다.”


plus point

“중국 고유 브랜드 해외에 팔겠다”

중국의 소비자들은 어떻게 달라지고 있나.
“소비자들은 니치(niche·틈새) 브랜드를 찾고 있다. 사람들은 똑같은 스타일, 똑같은 가방을 들고 다니기를 원치 않는다. 과거 중국의 2선, 3선 도시의 저임금 근로자들은 패션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저 생필품 사듯이 옷을 샀다. 이제는 달라졌다. 임금이 낮아도 젊은 근로자들은 자신만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는 브랜드를 찾는다. 이게 니치 브랜드다.”

이런 변화에 JD닷컴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나.
“JD닷컴은 단순한 판매 플랫폼이 아니다. 우리는 브랜드의 이미지를 만들어줄 수 있는 플랫폼이다. 많은 브랜드가 자신만의 정체성을 정립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시간과 비용을 투입해서 이벤트를 열고 패션쇼를 개최한다. JD닷컴은 패션 브랜드를 도와 이런 역할을 할 수 있다.”

JD닷컴은 최근 럭셔리 시장을 겨냥하고 있다.
“럭셔리 브랜드를 위해서는 특별한 서비스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소비자 경험부터 일반적인 브랜드와는 달라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럭셔리 브랜드 제품만을 위한 특별한 창고를 만들었고, 배달부도 바꿨다. 럭셔리 브랜드 배달을 맡은 이들을 ‘하얀 장갑 배달부(white glove delivery man)’라고 부른다. 이들은 럭셔리 브랜드의 양복을 입고 하얀 장갑을 낀 채 고급 차로 물건을 배달한다. 작년에는 세계 최대 온라인 명품판매 업체인 파페치에 4억달러를 투자했다.”

JD닷컴의 다음 계획은.
“과거에 우리는 해외 브랜드를 중국에 소개하는 데 집중했다. 이제 우리는 글로벌 판매 채널을 가지고 있다. 앞으로는 중국 고유의 브랜드를 해외에 판매하게 될 것이다. 동남아시아와 미국, 유럽 같은 해외 시장을 공략할 계획이다. 중국 로컬 브랜드는 질이 좋으면서도 가격은 저렴하기 때문에 이들 지역에서 인기가 많을 것이다.”

이종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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