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 대상으로 한국을 찍은 메리 바라 GM 회장. <사진 : 블룸버그>

글로벌 메이저 자동차업체인 GM(제너널 모터스)의 한국 잔류 여부가 한국 경제 최대 현안으로 부상한 가운데 메리 바라(Mary Barra) GM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에게 시선이 모아지고 있다. 그의 결정에 따라 한국GM의 운명, 30여만 개의 자동차 관련 일자리는 물론, 한국 자동차 산업, 나아가 한국 제조업 전체가 큰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바라 회장은 군산 공장 폐쇄 발표 직후, “아직 어떤 조치를 단행할지 말하기에 이른 단계지만 지금과 같은 비효율적인 구조로는 사업을 이어가기 어렵다”고 공언했다.


한국 정부의 대대적인 지원, 강성 노조의 양보 등 한국 제조업의 고질적인 고비용, 저효율 구조가 확 바뀌지 않으면 더 충격적인 조치가 나올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로이터 등 외신들은 “GM이 중국을 중심으로 아시아 시장을 재편하면서 한국의 중요성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며 ‘한국의 GM 잡아두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GM DNA’ 간직한 경영인

메리 바라 회장은 2014년 1월 대니얼 애커슨 회장 후임으로 GM의 최고 수장이 됐다.

110년 GM 역사상 첫 여성 CEO이자 미국 메이저 자동차 회사 총수에 오른 첫 여성 기업인이다.

그는 39년간 폰티악 자동차 공장 노동자였던 부친을 따라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GM에 취직했다. GM의 사내 대학(케터링대)을 졸업하고 GM 장학금으로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MBA)을 졸업한 뒤 GM의 모든 직급을 밟아 정상에 오른, 뼛속까지 GM의 DNA가 박혀 있는 경영자다.

1980년 입사 이후 엔지니어링과 관리직에서 경력을 쌓았고 2008년 글로벌 생산 담당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2009년 이후 글로벌 인력 담당 부사장으로 글로벌 자동차 플랫폼 감축 작업을 진두지휘했다. 2013년엔 글로벌 구매와 공급 담당 업무까지 겸하면서 차기 CEO로 부상했다. 애커슨 전 회장 등 외부 인사들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내부 경쟁자들을 따돌렸다고 한다.

2013년 6월 그가 차기 CEO로 지명되자 “장식적이거나 정치적인 이유가 아니라 우연히 여성일 뿐, 현명하게 선택된 리더의 좋은 예”(제프리 소넨펠드 예일대 경영학과 교수) 등 호평이 많았지만 “위기의 GM이 총알받이로 여성 경영인을 내세웠다”는 비판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올해로 CEO 취임 4년째인 바라 회장은 대담하고 신속한 결정으로 기업 문화와 사업 구조를 혁신하면서 GM 재건을 주도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14년 바라 회장이 물려받은 GM은 ‘빈털터리 거인’이었다. 2008년 발발한 글로벌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아 2008년 309억달러 적자를 내고 2009년 법원에 파산 보호를 신청했다. 500억달러에 달하는 연방정부의 구제금융을 받기 위해 새턴, 허머, 폰티악 등 4개 브랜드를 포기했다. 14개 공장을 폐쇄하고 직원 2만 명을 내보냈다. 강력한 구조조정을 통해 2010년 증시에 재상장하고 2011년 겨우 흑자를 냈지만 북미와 중국 시장을 뺀 대부분의 글로벌 시장에서 적자를 기록했다. GM에는 관료주의, 무사안일, 비효율 같은 오명이 따라 다녔다. ‘회의에서 고개를 끄덕인 뒤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는 뜻인 ‘GM nod’ 같은 신조어가 나올 정도로 GM은 조롱거리였다.

신임 바라 회장에게 닥친 첫 시련은 대규모 리콜 사태였다. “불량 점화 스위치 때문에 엔진이 꺼지거나 에어백 작동을 차단, 인명 사고가 빈발하다는 것을 알고도 57센트에 불과한 부품 교체 비용을 아끼려고 10년간 쉬쉬했다”(뉴욕타임스) 등 GM에 대한 고발 기사와 비난이 쏟아졌다. 바라 회장은 139명의 사망자와 3000만 대에 달하는 리콜 사태의 책임자로 지목돼 미 의회 하원 청문회에 서야 했다. 하지만 철저한 내부 조사를 통해 직원 20여 명을 해고하고 백지수표에 가까운 소비자 보상책을 내놓으면서 시장과 소비자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계기로 활용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미국 언론들은 바라 회장이 매출 규모와 시장 점유율 늘리기에만 혈안이던 GM을 수익성 중심으로 바꾸는 데 성공하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바라 회장 스스로 “수익을 낼 수 없다면 시장에서 철수하거나 비즈니스 모델을 바꿀 것”이라 강조하고 ‘GM 2020’ 등을 통해 영업 이익률 10%짜리 사업에 집중하겠다고 공언했다.

바라 회장은 취임 직후부터 ‘돈 안 되는’ 해외 생산 시설을 잇따라 정리하고 있다. 2015년 러시아·태국·인도네시아 공장 문을 닫았고 2017년에는 인도·아프리카(남아공)·호주에서 발을 뺐다. 이 때문에 회장 취임 당시보다 GM의 자동차 생산 능력이 150만 대 이상 줄었지만 2016년 매출 1660억달러(약 182조원), 영업이익 94억달러(약 10조3000억원)를 달성하면서 주가는 25%, 매출은 전년보다 9.2% 상승했다.


전기차 등에 과감한 투자

그렇다고 바라 회장을 ‘무자비한 구조조정형 경영자’로 보기는 어렵다. 자율주행차, 전기차, 자동차 공유경제 등 자동차 산업의 패러다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막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GM은 2016년 우버에 이은 2위 차량공유 서비스 기업인 리프트(Lyft)에 5억달러(약 5500억원)를 투자하는 등 자동차 소유 개념의 변화에 대비하기 위해 60억달러(약 6조6000억원)를 투자하고 있다.

같은 해 자율주행차 스타트업 기업인 크루즈오토메이션을 5억달러에 인수하고 지난해 10월 빛으로 거리와 물체를 감지하는 라이더(LiDAR) 기술을 보유한 스타트업 스트로브를 사들였다. 현재 샌프란시스코, 뉴욕의 거리에선 자율주행 기능이 탑재된 볼트 자동차가 시험 운행 중이다.

전기자동차 분야에서는 이미 상당한 성과를 내고 있다. 2016년 하반기 출시한 쉐보레 볼트 EV는 보급형 전기차 시장에서 베스트셀러 자동차가 됐다. 테슬라의 고급 전기차에 탑재되는 자율주행 기능인 오토파일럿에 대항하기 위해 캐딜락에 ‘수퍼 크루즈’ 기능을 탑재할 예정이다.

바라 회장은 미시간 출신 특유의 콧소리가 약간 섞인 악센트를 구사하는 온화한 인상이다. 사내 별명은 ‘The consummate coach’로 알려졌다. ‘능수능란한 감독 또는 지휘자’ 정도로 번역될 수 있는 이 별명에는 고교 출신의 ‘공장 쥐(Factory rat·본인 표현)’로 출발, 미국의 간판 경영자에 오른 바라 회장의 역량에 대한 경외감이 배어 있다. 한국이 결코 만만하게 볼 수 없는 강적을 만났다는 뜻이다.


plus point

카메로·파이어버드 좋아해


바라 회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 정책 자문 위원을 맡기도 했다. <사진 : 블룸버그>

바라 회장은 1961년 미국 미시간주 로열 오크에서 핀란드계 미국인인 레이 마켈라의 딸로 태어났다. 부친은 39년간 폰티악 자동차용 다이스 제조공으로 일했다.

2016년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 정책 자문 위원회에 참여했다가 2017년 샷롯의 인종차별 시위 관련 발언에 항의, 위원직을 사임했다. 2017년 월트디즈니 이사회 멤버가 됐다.

2014년 시사주간지 ‘타임’이 뽑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2015년 ‘포천’이 선정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위에 선정됐다. 케터링대에서 만난 토니 베라와 결혼했으며, 두 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2016년 연봉은 2260만달러(약 250억원)로 자동차 기업 CEO 가운데 1위였다. 쉐보레 카메로와 폰티악 파이어버드를 가장 좋아하는 자동차로 꼽았다.

방성수 조선비즈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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