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라스베이거스를 컨벤션과 카지노의 도시로 변신시킨 아델슨 라스베이거스 샌즈 그룹 회장. <사진 : 블룸버그>

“미국은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한다. 미국 대사관도 예루살렘으로 옮기겠다.”

지난해 12월 6일(현지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전격적인 발표 직후 ‘트럼프가 이번엔 중동의 화약고를 들쑤셨다’는 비난 여론이 거셌다. 중동 국가들이 항의 성명을 쏟아냈고 분노한 군중들이 들고 일어나 20여명이 사망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친이스라엘 행보는 거침이 없다. 미국 언론들은 2월 23일 “미국 대사관이 이스라엘 독립 70주년인 오는 5월 14일 예루살렘에서 개관식을 가질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2019년 정식 개관에 앞서 임시 대사관으로 먼저 이사할 예정이란 보도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시리아·예멘 내전 등으로 가뜩이나 꼬이고 있는 중동 정치를 뒤흔드는 파격 행보를 강행하는 배경은 뭘까?

현지 언론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오는 11월 예정된 미국 중간 선거 승리를 위해 자신과 공화당을 지탱하는 기독교 복음주의 세력(Evangelist)과 ‘유대계 돈줄’의 지갑을 열려는 ‘정치적 결단’으로 해석하고 있다. 선거에서 이기려면 지지층을 결집시켜야 하고 지지층 결집을 위해서는 거액의 정치 자금을 후원할 ‘돈줄’의 마음부터 잡아야 한다는 ‘정치적 타산’이 작용했다는 시각이다.

복잡하게 얽힌 미국과 중동 정치에서 요즘 가장 주목받는 인물은 셀던 아델슨(Sheldon Gary Adelson·85) 라스베이거스 샌즈그룹 회장이다. ‘공화당의 가장 큰 돈줄’이자 트럼프 대통령의 ‘절친’인 그가 대통령을 움직여 미국 외교의 물줄기를 바꾼 사실은 미국 정·재계에선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트럼프 행정부 초대 이스라엘 대사’(AP통신) 물망에 오르고 있는 아델슨 회장은 5억달러(약 5500억원)로 추정되는 미국 대사관 이전 비용을 모두 부담하겠다는 제안을 했다고 이스라엘 언론들이 전하고 있다.


컨벤션 사업하다 카지노에 눈 떠

아델슨 회장은 유대인 택시 운전기사의 아들로 태어나 세계적인 억만장자 반열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열두 살 때 삼촌에게 200달러를 빌려 신문 가판 사업을 시작한 뒤 사탕 가게, 아이스크림 판매원, 대출 브로커, 투자 자문가, 벤처 캐피털리스트, 잡지 경영인 등을 거쳐 컨벤션, 복합 리조트, 카지노 사업을 통해 ‘수퍼 리치’가 됐다. 30대에 백만장자가 됐지만 두 번이나 파산하고 평생 50개 직업을 전전했다.

‘카지노와 리조트의 황제’로 통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신화가 탄생한 세계 최대 정보기술(IT)박람회인 ‘컴덱스(COMDEX)’가 그의 손에서 탄생했다. ‘황량한 도박 도시’ 라스베이거스를 컨벤션, 테크놀로지, 휴양의 중심지로 바꾼 ‘도시 재생의 혁신가’로도 꼽힌다.

월스트리트에서 주식 거래로 돈을 번 아델슨 회장이 컨벤션 산업에 눈 뜬 계기는 역설적으로 파산이었다. 1960년대 초 뉴욕 월스트리트에서 돈을 번 아델슨 회장은 고향 보스턴으로 귀향, 기업 투자자로 성공가도를 달리다 1960년대 말 주식 폭락으로 빈털터리가 됐다. 재기를 노리던 그는 1971년 조그만 컴퓨터 잡지사를 인수한 뒤 한 아파트 전시회에서 컨벤션 산업이 돈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잡지사 지분과 아파트를 처분해 1975년 매사추세츠주 니드엄에서 인터페이스그룹을 창업하고 1979년 라스베이거스 MGM그랜드호텔 컨벤션센터에서 첫 컴덱스쇼를 열었다. 컴덱스쇼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1980년대 후반 순이익 2억5000만달러를 올리는 등 컨벤션 산업의 1인자(컴덱스는 1995년 8억6500만달러를 받고 소프트뱅크에 매각)가 됐다.

매년 봄과 가을, 두 차례에 걸쳐 애틀랜타, 라스베이거스를 오가며 컴덱스쇼를 개최하던 아델슨 회장은 1980년대 후반 호텔과 카지노 사업에 진출한다. 미국·유럽· 일본에서 컴덱스쇼를 통해 돈을 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라스베이거스 호텔들이 대관료를 턱없이 높여 부른 게 계기였다. 차라리 호텔을 사기로 결심한 아델슨 회장은 1988년 샌즈호텔을 1억2800만달러(약 1400억원)에 인수한 뒤 컨벤션 센터(투자비 1억5000만달러), 대형 전시관(6000만달러), 대형 쇼핑몰을 추가로 지어 1989년 재개장했다.

1991년 두 번째 결혼한 부인과 이탈리아 베네치아로 신혼 여행을 떠났다가 ‘물의 도시’ 베네치아를 ‘사막의 도시’ 라스베이거스에 재현하자는 아이디어를 구상한 일화도 유명하다.

아델슨 회장은 샌즈호텔을 허물고 16억달러(약 1조7000억원)를 들여 3000개의 객실, 초대형 컨벤션센터, 호화 쇼핑몰, 대형 카지노가 들어선 베네치안 테마파크 호텔 & 리조트를 1999년 개장했다. 사막 위 물길에서 뱃사공이 노래를 부르며 노를 젓는 곤돌라로 유명한 이 복합 리조트에 관광객이 몰리면서 그는 ‘돈방석’에 올라앉았다. 이후 복합 리조트 호텔 건설 붐이 불면서 그는 ‘환락의 도시’ 라스베이거스에 지식, 예술, 테크놀로지, 혁신의 공기를 불어넣었다는 명성을 얻었고 라스베이거스 샌즈그룹은 세계 최대의 카지노, 컨벤션, 업체로 성장했다.


마카오에 120억달러 투자

21세기 마카오와 아시아는 그에게 도약의 무대였다. 2001년 마카오에 카지노 시장이 열리자 2004년 2억4000만달러(약 2600억원)를 들여 ‘샌즈 마카오 카지노’를 개장, 1년 만에 투자비를 모두 회수했다. 2007년 24억달러(약 2조6000억원)를 들여 ‘베네치아 마카오’를 짓고 ‘포시즌 호텔’ ‘샌즈 코타이 센트럴’ ‘파리지앵 호텔 리조트’를 개장하는 등 마카오의 카지노와 리조트 사업에 120억달러(약 13조2000억원) 이상을 투자했다.

싱가포르에 35억달러(약 3조8000억원)를 들여 지은 ‘마리나베이 샌즈’ 카지노 리조트까지 합쳐 아시아에서 카지노와 리조트로 가장 돈을 많이 버는 기업인이 됐다.

아델슨 회장은 최근 카지노 시장을 개방한 일본에 100억달러(약 11조원) 투자를 제안하고 한국 카지노 시장 진출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plus point

수천억 기부 ‘공화당 돈줄’


아델슨 부부. <사진 : 블룸버그>

아델슨 회장은 1933년 보스턴 인근 도체스터에서 아서 아델슨과 사라 아델슨 사이에서 태어났다. 우크라이나-리투아니아 유대계 이민자였던 아버지는 택시 운전, 영국계인 모친은 뜨개질 가게를 운영했다.

법원 속기사가 되기 위해 직업학교를 다니다 군대에 입대했고 제대 후 뉴욕시립대에 입학했다가 중퇴했다. 평생 욕실용품, 스프레이 판매업 등 50개 직업을 전전했다.

젊은 시절 민주당 지지자였으나 1990년대 초 이스라엘과 노조 정책 등을 이유로 공화당 지지자로 변신했다. 2012년 대선에 9200만달러(약 1000억원), 2016년 트럼프 선거 운동에 2500만달러(약 275억원)를 기부했다.

열렬한 시온주의자로 2007년 유대계 미국 청소년의 이스라엘 방문 지원 사업에 1억4000만달러(약 1500억원)를 기부하고 보스턴의 병원, 라스베이거스 교육기관에 1000만달러 단위의 거액을 쾌척하는 ‘통 큰 기부’로 유명하다.

2013년 마카오 진출 성공으로 1년 만에 재산이 150억달러(약 16조5000억원) 늘었고 2018년 개인재산 394억달러(약 43조원)로 세계 억만장자 순위 20위에 올라 있다.

1988년 첫 부인과 이혼하고 1991년 블라인드 데이트를 통해 현 부인(미리암 아델슨)과 만나 재혼했다. 첫 부인과의 사이에 입양한 세 명, 현 부인의 자녀 두 명 등 다섯 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방성수 조선비즈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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