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장난감 유통 업체였던 토이저러스가 막대한 부채와 실적 부진을 견디지 못하고 몰락했다. 사진 블룸버그

“나는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아요. 나는 토이저러스 키드예요(I don’t want to grow up, I’m a Toys R Us kid).”

세계 최대 장난감 유통 업체였던 토이저러스가 몰락했다. 미국의 모든 아이들이 따라불렀던 토이저러스의 테마송은 20세기의 추억이 됐다. 토이저러스는 미국 내 모든 점포를 폐쇄하기로 했지만, 토이저러스와의 추억만큼은 한동안 많은 미국인들의 마음속에 남아 있을 것 같다.


미국 신생아 수 매년 사상 최저 기록

이렇게나 많은 사랑을 받은 유통 업체가 어떻게 파산까지 이르게 된 걸까. 왜 많은 미국인이 토이저러스에서의 추억을 떠올리면서도 더 이상 장난감을 사러 가지 않는 걸까.

토이저러스라는 유통 공룡을 쓰러뜨린 세 명의 사냥꾼이 있었다.

토이저러스 몰락의 배경에는 아이가 예전만큼 많지 않다는 사실이 있다. 스스로를 ‘토이저러스 키드’라고 부르며 매장을 뛰어다닐 아이가 미국에는 예전만큼 충분하지 않은 것이다.

미국의 신생아 수는 매년 사상 최저를 기록하고 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2016년 태어난 신생아는 395만 명에 불과했고, 지난해에는 384만 명으로 더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CDC에 따르면 인구 1000명당 출생아 수가 1909년 30명에서 2016년 12.2명으로 줄었다.

워싱턴포스트(WP)는 토이저러스 몰락의 숨겨진 원인을 분석한 기사에서 출생률을 가장 중요한 이유로 꼽았다. WP는 “토이저러스 매출은 결국 신생아 수가 얼마나 많이 유지되느냐에 달려 있는데, 미국의 출산율은 꾸준히 하락해 왔다”며 “제프리 기린(토이저러스 마스코트)이 직면한 실존적 위협 중 하나가 낮은 출생률”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토이저러스 연간 매출은 미국의 12세 이하 아동의 숫자와 밀접한 상관관계를 보였다. 12세 이하 아동의 수가 증가했던 1991년부터 1999년까지는 토이저러스 연간 매출액도 매년 늘었다. 반면 아동 수가 감소했던 2000년대 초반의 몇 년 동안 토이저러스 실적도 주춤했다. 2000년대 후반 아동 수가 늘면서 토이저러스 매출이 회복하는 기미를 보였지만, 2010년대 들어 아동 수와 토이저러스 매출 모두 바닥을 뚫고 내려가고 있다.

토이저러스의 몰락은 저출산으로 산업 구조조정이 일어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가장 분명한 사례다. 여기서 중요한 건 저출산이라는 사냥꾼이 토이저러스만 잡고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아이를 고객으로 한 산업이 제일 먼저 파도를 맞고 있다.

하기스 기저귀와 크리넥스 티슈로 유명한 미국의 킴벌리 클라크는 지난 1월 전체 인력의 13%에 달하는 5000명의 직원을 감축한다고 발표했다.

전 세계 91개 공장 가운데 10개를 폐쇄하고 2021년까지 20억달러를 절감하는 구조조정 방안도 함께 내놨다. 톰 포크 킴벌리 클라크 최고경영자(CEO)는 프록터앤드갬블(P&G)이나 아마존 같은 경쟁사의 공세보다 출생률 저하 현상이 더 당혹스럽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세계적인 완구 업체인 레고도 지난해 전년 대비 8% 감소한 350억덴마크크로네(약 6조2000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매출이 감소한 건 2004년 이후 처음이다. 바비 인형으로 유명한 마텔도 지난 몇 년간 실적 부진을 겪으면서 계속 매각설이 나오는 상황이다.



저출산의 여파로 장난감·기저귀 등 유아 관련 산업이 타격을 입고 있다. 미국의 킴벌리 클라크 공장. 사진 블룸버그

“아마존 때문에 망한 27번째 대기업”

많은 전문가가 토이저러스의 몰락이 아마존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글로벌 신용평가사인 피치는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에서 “토이저러스가 아마존이나 월마트, 타깃 같은 대형 유통 업체에 점유율을 계속 뺏기고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 시장조사기관인 리오그퍼스트데이는 “토이저러스는 아마존 때문에 망한 27번째 대기업”이라고 했다.

처음부터 토이저러스와 아마존이 경쟁자였던 건 아니다. 1948년 설립된 토이저러스는 베이비붐을 타고 미국 전역으로 사업을 확장했고, 20세기 말에는 세계 최대 장난감 유통 업체의 반열에 올랐다. 1990년대 아마존 같은 온라인 유통 업체가 등장했지만, 그때만 해도 토이저러스가 경쟁 우위에 있었다.

아마존은 장난감 시장에서 다른 온라인 유통 업체들을 누르기 위해 2000년 토이저러스와 독점 판매 계약을 했다. 토이저러스가 10년 동안 아마존에서 장난감과 어린이 용품을 독점적으로 판매하고, 그 대신 아마존은 매년 5000만달러의 수수료를 받는 조건이었다. 10년 동안 토이저러스는 별도의 온라인 쇼핑몰을 만들지 못한다는 조건도 함께였다.

토이저러스의 인지도에 아마존의 온라인 쇼핑 플랫폼이 더해지면서 많은 소비자가 아마존으로 몰렸다. 시간이 지나자 아마존은 독점 판매 계약을 무시하고 다른 장난감 판매 업체들에 온라인 쇼핑 공간을 열기 시작했다.

토이저러스는 이에 반발해 2004년 소송을 제기했고, 결국 승소했다. 토이저러스는 2006년 독자적인 온라인 쇼핑몰을 만들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이미 아마존에 익숙해진 소비자들은 토이저러스의 쇼핑몰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미국의 정보기술(IT) 전문 매체인 쿼츠는 “10년 독점 계약이 토이저러스의 디지털 전환을 힘들게 했다”고 분석했다. 토이저러스 몰락 원인을 분석한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은 “유통 산업이라는 거대한 바다에서 조수의 흐름이 바뀌는데, 토이저러스는 그저 가만히 서있기만 했다”고 지적했다.

물론 토이저러스가 아무것도 안 한 건 아니었다. 그저 너무 늦었을 뿐이었다. 토이저러스는 2015년 데이브 브랜던을 새 CEO로 선임했다. 도미노피자를 이끌었던 기업 회생 전문가다. 브랜던은 취임한 이듬해 랜스 윌스를 최고기술책임자(CTO)로 영입했다. 70년 가까운 회사 역사에서 첫 CTO였다. 윌스는 취임 직후 인터뷰에서 “토이저러스의 혁신이 경쟁사보다 10년 정도 뒤처져 있다”고 인정했고, 토이저러스 자체 온라인 쇼핑몰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실패로 끝났다.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의 유통 산업 전문가인 마크 코헨은 “유통 업체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자신들의 전략을 수정하고 바꿔야 한다”며 “토이저러스는 시장이나 소비자의 변화에 맞춰서 제대로 팔 한 번 휘두른 적이 없었기 때문에 파산은 피할 수 없는 결과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토이저러스의 몰락은 오프라인에 기반한 대형 유통 업체가 온라인 유통 업체와의 경쟁에서 이기기 쉽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아마존 같은 온라인 유통 업체는 임대료나 인건비를 아낄 수 있기 때문에 가격 경쟁에서 오프라인 유통 업체를 압도한다. 페이리스·짐보리·라디오셱·HH그레그 등 아마존과의 경쟁에서 밀려난 오프라인 유통 업체의 명단은 끝도 없다.

토이저러스를 무릎 꿇게 만든 또 다른 사냥꾼은 사모펀드다. 토이저러스가 미국 버지니아주 리치먼드 파산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한 지난해 11월 당시 부채 규모는 50억달러(약 5조3500억원)에 달했다.


사모펀드로 인해 이자 비용 급증

막대한 부채의 시작은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0년대 초반 토이저러스는 월마트와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었다. 월마트는 오프라인 장난감 시장을 장악하기 위해 가격 인하 공세를 펼쳤고, 2004년 말에는 시장 점유율을 25%까지 끌어올렸다. 토이저러스의 점유율은 17%에 그쳤다.

토이저러스의 경영 사정이 악화되자 사모펀드들의 공격이 시작됐다. 결국 2005년 3월 미국의 유명 사모펀드인 베인캐피털과 콜버그크라비스로버츠(KKR) 컨소시엄이 부동산 신탁 회사인 보나도와 손잡고 66억달러에 토이저러스를 인수했다. 언론에서는 이들 회사를 사모펀드 3인조라고 불렀다.

문제는 사모펀드가 토이저러스를 인수한 방식이다. 사모펀드 컨소시엄은 66억달러에 달하는 인수 자금 중 50억달러를 차입매수(LBO·인수 대상 기업의 자산을 담보로 빌린 자금으로 기업을 인수하는 방식)로 마련했다. 차입금 50억달러에서 발생하는 이자 비용만 연간 4억달러에 달했다.

디지털 전환에 투자해야 할 돈이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이익을 낼 때는 이런 방식이 문제되지 않지만 이익을 내지 못하면 문제가 커진다. 가뜩이나 손해 보는 상황에서 막대한 이자 비용을 지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블룸버그는 “토이저러스가 사내 보유금의 절반을 이자 비용에 써야 했다”며 “디지털 부문의 성장을 위한 새로운 시도를 할 여력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했다.


Plus Point

아마존 시대의 생존자들

‘여전히 희망은 있다(There’s Still Hope).’


저렴한 가격과 고격 편의를 앞세워 달러제너럴이 성장하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토이저러스의 몰락을 분석한 와튼스쿨 보고서의 마지막 단락 소제목이다. 아마존이 오프라인 유통 업계를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지만 무너지기는커녕 오히려 세를 넓히는 오프라인 유통 업체도 있다.

예컨대 저가 상품을 주로 판매하는 달러제너럴은 아마존이 장악한 미국 유통 시장에서 이례적인 성장세를 보여주고 있다. 달러제너럴은 미국 전역에 1만4000여 개의 매장이 있는데 5년 만에 35%가 증가했다. 달러제너럴 주가는 2013년 50달러대에서 지금은 90달러대까지 올랐다.

달러제너럴이 단순히 싼 가격으로만 성공한 건 아니다. 소비자의 경험과 편의를 중시하는 전략이 주효했다. 달러제너럴은 매장 구조를 동일하게 만드는 걸 원칙으로 한다. 전체 판매 제품의 95%가 미국 전역의 어느 매장을 가나 같은 위치에 진열돼 있다. 처음 매장을 방문하는 고객도 원하는 제품을 손쉽게 찾을 수 있게 한 것이다.

곰인형 매장인 빌드어베어워크숍(Build-A-Bear Workshop)도 소비자의 경험을 중시하는 전략으로 아마존 시대에 살아남은 대표적인 유통 업체다. 1997년 미국 세인트루이스에서 처음 문을 연 빌드어베어워크숍은 자신이 원하는 인형을 소비자가 매장에서 직접 만들 수 있도록 했다.

아마존에서는 불가능한 나만의 인형 만들기 체험이 아이들을 사로잡았고, 빌드어베어워크숍은 꾸준한 실적을 내고 있다. 와튼스쿨 보고서는 “소비자에게 다양한 쇼핑 경험을 선사하는 게 오프라인 유통 업체에 중요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이종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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