앱티브의 CEO 케빈 클라크는 지난해 1380만달러의 연봉을 받아 직원 연봉 중간값의 2526배를 기록했다. 사진 앱티브

미국 자동차 부품 업체 ‘델파이’에서 지난해 분사한 자율주행차량 기술 업체 ‘앱티브’가 최근 신기술 개발 성공 같은 호재가 아닌, 다소 껄끄러운 일로 언론의 관심을 받고 있다. 바로 최고경영자(CEO)인 케빈 클라크가 지난해 앱티브 전 직원 보수의 중간값보다 2526배 많은 보수를 받아 지금까지(3월 28일 기준) 공개된 기업 중 가장 높은 비율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클라크는 지난해 1380만달러(약 147억5200만원)를 벌었다.

미국이 임금 불평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 미국은 2010년 만든 금융개혁법인 ‘도드-프랭크의 월스트리트 개혁과 소비자 보호법(이하 도드-프랭크법)’의 후속 조치로, 2017년 회계연도부터 CEO와 일반 직원 간 임금 격차 정보를 공개하기로 2015년 8월 결정했다. 소기업이나 신성장 기업으로 분류되는 회사 등을 제외한 상장사는 이에 따라야 한다. 회계연도 종료일로부터 3개월 이내에 공개해야 하는 만큼, 미국 기업들은 3월 들어 어쩔 수 없이 CEO-직원 간 임금 격차 자료를 내놓고 있다. 정부·민간 연구소들이 각 기업의 임금 불평등 수준을 조사한 적은 있었지만, 기업이 직접 공식적으로 해당 수치를 공개하는 것은 미 역사상 이번이 처음이다.

기업들이 내놓은 수치는 충격적이었다. 글로벌 인력 파견 업체인 ‘맨파워’의 일반직원 중간 연봉 대비 CEO 보수 비율은 2483 대 1을 기록했고, 과일 주스로 유명한 ‘델몬트’는 1465 대 1이었다. ‘더 노스페이스’ ‘팀버랜드’ ‘반스’ 등을 보유하고 있는 의류 기업 ‘VF’는 1353 대 1로 나타났다. 영국 가디언은 “이 회사들의 직원이 CEO(보수)를 따라잡으려면 1000년 이상을 더 일해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자본주의의 원칙과 장점을 신봉하는 이들에게조차도 이 숫자는 (자본주의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소리로 들릴 것”이라며 “임금 불평등에 대한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고 했다.



버크셔 해서웨이 CEO 워런 버핏. 사진 연합뉴스

‘연봉 대박’ 부르는 잘못된 통념들

미국 경제정책연구소(EPI)에 따르면, CEO와 직원의 평균 연봉 비율은 2000년 376.1 대 1로 최고치를 기록한 이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196.6 대 1로 크게 떨어졌다. 그러나 이후 2010년 230.3 대 1로 다시 상승을 시작, 2014년 298.7 대 1까지 올라섰다. 2016년엔 271 대 1로 2015년 286 대 1에서 소폭 하락했다. 그러나 현대 경영학의 창시자 피터 드러커가 제시한 이상적 수치인 ‘20 대 1’에 비하면 CEO 보수는 여전히 높다. 미국은 1965년 20.2 대 1을 기록한 바 있다.

경영 리더십 분야의 세계적 구루 맨프레드 케츠 드 브리스 프랑스 인시아드 경영대학원 교수는 CEO를 둘러싼 잘못된 사회적 통념이 이들의 ‘연봉 대박(pay bonanza)’을 가능케 한다고 분석했다.

그가 제시한 첫 번째 잘못된 통념은 ‘CEO들이 높은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선 연봉을 많이 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 통념이 옳다고 생각하는 이들의 입장은 이렇다. 만약 CEO들이 돈을 적게 받는다면 회사를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지 않을 것이고, 이 경우 회사 전체의 수익이 하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케츠 드 브리스 교수는 “높은 성과를 내는 CEO들은 그들이 얼마의 연봉을 받는지와 상관없이 열심히 일한다”고 했다.

그는 기업 경쟁에 관심 있는 CEO들은 대체로 높은 성취도를 보이고, 대부분의 CEO들은 이 유형에 해당한다고 봤다. 케츠 드 브리스 교수는 “이러한 유형의 CEO들과 일해본 결과, 그들은 보수의 수준과 관계없이 열심히 일한다”며 “CEO들에게 지나치게 많은 보수를 주는 회사들은 더 좋은 곳에 쓸 수 있는 자원을 낭비하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CEO의 연봉을 줄인다고 해서 최종 수익이 함께 줄어들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했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이 대표적이다. 그가 이끄는 ‘버크셔 해서웨이’는 지난해 290억달러(약 31조10억원)를 더 벌어 총 650억달러(약 69조4850억원)의 수익을 기록했다. 이 가운데 회사 운영으로 인한 수익은 360억달러였고, 나머지 290억달러는 트럼프 정부의 대규모 감세 정책으로 인한 추가 이익이었다. 그러나 그의 지난해 연봉은 10만달러(약 1억690만원)에 불과했다. 10만달러가 적은 돈은 아니지만, 버크셔 해서웨이 직원 보수의 중간값이 5만3510달러(약 5720만2200만원)인 것과 비교하면 갑절도 안 된다. 그는 1980년부터 40년 가까이 10만달러씩만 받아왔다. 찰스 멍거 부회장의 연봉 역시 수년째 10만달러에 머물러 있다.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세계 휴대전화 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사진 위키미디어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는 특수 케이스

CEO의 높은 보수엔 이들의 뛰어나고 독특한 경영 기법에 대한 시장 수요와 기업의 수익에 대한 기여도가 모두 반영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케츠 드 브리스 교수는 이 역시 잘못됐다고 지적한다. 이들의 논리에 따르면 뛰어난 CEO들은 인상적이면서도 보기 드문 리더십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높은 보수는 단지 수요와 공급이라는 시장의 법칙에 따른 것인데, 이처럼 뛰어난 CEO들이 과잉 공급된다면 시장 법칙에 따라 이들의 보수는 낮아져야 한다.

케츠 드 브리스 교수는 이들의 논리가 현실과 다르다고 봤다. 그는 “대부분의 CEO들은 비범하지 않다”며 “애플의 스티브 잡스나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와 같은 성과를 내는 이들은 드물다”고 했다. 그러면서 “뛰어난 경영 기법을 갖춘 CEO들은 시장에 드물게 공급될 뿐, 상당수는 굉장히 평범하며 오류에 빠지기 쉬운 ‘인간’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현 CEO 시장이 ‘공급 과잉’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그는 “매년 전 세계 경영대학원이 수십만 명의 경영학 석사(MBA)를 쏟아내고 있으며, 이들 중 많은 이들이 기업 CEO를 꿈꾼다”고 말했다.

CEO들이 성과와 관계없이 고액 연봉을 챙겨가는 데 대한 경고음은 한국에서도 울리고 있다. 최근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이 2016년 5억원 이상의 보수를 수령한 CEO 263명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이들의 보수에서 성과에 따라 지급액이 변하는 변동상여 비율은 25.8%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즉 74%는 경영 성과와 무관하게 받아가는 돈인 것이다.

한국은 2013년 ‘자본시장 및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개정을 통해 총 5억원 이상을 받는 상장사 등기임원의 개별 보수를 공개하고 있다. 올해 사업보고서부터는 보수총액 기준 상위 5명에 대한 정보 또한 포함해야 한다. 5억원 이상을 받는 상장사 CEO는 2014년 222명에서 2016년 263명으로 41명 늘었다.

CEO라면 고액 연봉을 받아야 한다는 잘못된 사회적 통념이 계속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CEO와 기업 내 이사회의 보상위원회 위원들은 ‘평균 이상’이라는 허상에 빠져 있는 것이 주된 원인이라고 케츠 드 브리스 교수는 분석했다. 즉 이사회는 자신의 CEO가 업계에서 평균 이상의 성과를 낼 것이라고 믿고 싶어 하며, 이 때문에 CEO의 보수 역시 업계 평균 이상이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CEO 역시 임금 협상에서 자신이 평균 이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양측이 ‘평균 이상’의 보수에 쉽게 합의하는 이유다. 해가 거듭될수록 이러한 과정이 반복되면서 CEO 연봉 상승률이 점차 높아진다.

케츠 드 브리스 교수는 “CEO들이 자체적으로 연봉을 조정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며 “이사회가 평균 이상의 함정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CEO 고액 연봉을 제지하는 첫걸음”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는 CEO의 고액 연봉 논란에 임하는 자세에 불과한 만큼, 실질적 효과를 이끌어 낼 수 있는 물리적 제도가 필요하다. 케츠 드 브리스 교수는 가장 먼저 CEO 보수 계획에 대해 주주들이 의견을 표시할 수 있는 제도인 ‘세이 온 페이(Say on pay·이하 SOP)’가 더욱 강력하게 시행돼야 한다고 봤다.



케츠 드 브리스 교수는 주주 표결을 통해 CEO 고액 연봉 상승률을 억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업 감시’ 주주 목소리에 힘 실어줘야

영국에서 시작된 SOP는 주주의 찬반 투표를 통해 CEO 보수의 정당성을 높이고, 주주 동의를 받지 못한 보수 계획은 자율적으로 수정을 유도하기 위한 취지에서 2010년 도드-프랭크법에 포함됐다. 상장법인은 최소 3년에 1번 이상 경영진의 개별보수에 대해 주주총회의 심의를 받아야 한다.

다만 투표 결과는 권고사항일 뿐, 법적 구속력은 없다. 일각에서는 CEO 연봉이 여전히 높은 수준인 것은 SOP의 강제성 미비 때문이라고 본다. 미국 연봉자문 업체인 ‘컴펜세이션 어드바이저리 파트너스(Compensation Advisory Partners)에 따르면, S&P500 기업 중 SOP 결과를 발표한 기업은 1월 기준 491곳이었다.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SOP는 시행 자체만으로도 효과를 낸다. 미 조지아대 연구팀이 SOP를 도입한 국가들과 도입하지 않은 국가들의 상장사 중 1만7000개 기업의 재무정보를 분석한 결과, SOP를 채택한 기업들의 CEO 임금은 그러지 않은 기업보다 평균 7% 감소했고, 기업 성과에 대한 민감도는 5%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 성과에 더욱 민감해졌다는 것은 그만큼 기업 가치가 높아졌다는 것을 뜻한다. 낮은 성과를 기록한 회사일수록 CEO 보수 감소폭은 상대적으로 더 크게 나타났다. 기업 성과가 최저 수준에 해당하는 곳의 CEO는 연봉이 9.1% 깎였다.

케츠 드 브리스 교수가 제시한 또 다른 해결책은 ‘세금 공격’이다. 고액 연봉을 받는 CEO들에게 더 많은 소득세를 물리고, 일반 직원 대비 CEO 연봉 비율이 높은 회사에 법인세를 더 많이 부과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 정부는 ‘감세’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케츠 드 브리스 교수의 주장이 힘을 얻기 힘든 상황이다. 올해 발효된 감세법에 따라 미국 법인세 최고세율은 35%에서 21%로 영구적으로 낮아졌다.

개인 소득세 최고세율도 39.6%에서 37%로 떨어졌지만, 2025년까지 한시적이다. 현재 트럼프 정부는 2차 감세안을 준비 중이다. 한시적인 소득세 인하를 법인세처럼 영구화하는 안이 포함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Plus Point

“엄청난 책임 지는 CEO, 고액 연봉 정당”


마티아스 뮐러 폴크스바겐 CEO. 사진 블룸버그

CEO 고액 연봉 논란을 가장 반기지 않는 이는 바로 CEO 자신일 것이다. 최근 독일 폴크스바겐의 CEO 마티아스 뮐러가 불편한 기색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뮐러는 3월 24일(현지시각) 독일 시사 주간지 ‘슈피겔’과의 인터뷰에서 “(CEO들은 항상) 한 발을 감옥에 걸치고 있다”며 “이러한 책임을 감안할 때 우리의 월급은 정당하다”고 말했다.

폴크스바겐은 2015년 배기가스 조작 소프트웨어를 장착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디젤 게이트’를 겪었다. 폴크스바겐 임직원 두 명은 미국에서 장기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며, 몇몇 경영진은 여전히 조사 중이다. 그러나 폴크스바겐은 지난해 역대 최고 매출인 114억유로(약 15조1800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했고, 뮐러는 지난해 전년 대비 40% 증가한 1014만유로(약 133억1100만원)의 연봉을 받았다.

디젤 게이트 이후 폴크스바겐은 CEO의 총연봉을 1000만유로로 제한했고, 이사회 구성원은 550만유로를 넘을 수 없도록 했다. 올해의 경우 뮐러는 현금 이외 특전이 포함되고 퇴직 규정이 적용돼 예외적으로 1000만유로 이상을 벌 수 있었다. 뮐러와 폴크스바겐의 계약은 2020년까지다.

최근 독일에서 CEO 고액 연봉 논란이 벌어진 것은 컨설팅 업체 HPK그룹이 발표한 독일 내 CEO 연봉 조사 결과 때문이다. 1000만유로를 넘게 번 뮐러는 5위에 그쳤다. 1위는 세계 최대 기업용 소프트웨어 업체인 SAP의 CEO 빌 맥더모트, 그는 지난해 2180만유로(약 286억1800만원)를 벌었다. 그러나 미국 등과 비교하면 독일 CEO의 연봉 수준은 비교적 낮은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Plus Point

한국, 정규직 임금도
비정규직에게 공개 추진


3월 24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비정규직 철폐’ 전국 노동자대회. 사진 연합뉴스

한국은 최근 정규직 임금도 비정규직에게 공개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차별을 줄이기 위한 조치다.

고용노동부는 3월 22일 “비정규직 근로자가 동일 또는 유사 업무를 하는 정규직 근로자 등의 임금 정보를 알 수 있도록 ‘임금 정보 제공청구권’ 조항을 신설해 올해 중 법제화를 마무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기간제·단시간 근로자보호법과 파견근로자보호법 등을 개정해 비정규직 근로자가 정보 제공을 청구하면, 사용자 측은 비교 대상 근로자(동일·유사 업무 정규직 등)의 임금 내역을 제공하도록 의무화하겠다는 것이다.

현행 기간제법과 파견법 등에 따르면 ‘같은 사업장 내에서 동일·유사 업무’를 하는 비정규직이 정규직에 비해 차별 처우를 받을 경우 6개월 이내에 노동위원회에 시정 신청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비정규직들이 비슷한 일을 하는 정규직의 임금을 알기 어렵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차별 시정 요구가 어렵다는 지적이 있었다.

일각에서는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사용자의 경우 인사관리가 어려워져 인건비 부담이 커질 수 있으며, 비정규직과 정규직 간 노-노 갈등이 심화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개인 정보 침해 논란도 예상된다.

이윤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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