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에 유출된 수천만 명의 이용자 정보 때문에 페이스북이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페이스북을 덮친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CA)’ 스캔들은 20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케임브리지대 심리학과 교수인 알렉산더 코건이 데이터 기반 정치 컨설팅 기업인 CA의 요청으로 ‘디스이즈유어디지털라이프(thisisyourdigitallife)’라는 심리테스트 서비스를 만들었다. 코건 교수팀은 페이스북에 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게임 애플리케이션(앱)을 올렸고, 27만 명이 자신의 개인 정보를 제공하는 데 동의하고 앱을 이용했다.

문제는 코건 교수팀이 개인 정보 제공에 동의한 27만 명뿐만 아니라 그들의 친구까지 포함한 5000만 명의 개인 정보를 끌어모았다는 것이다. 코건 교수팀은 5000만 명이 페이스북을 이용하면서 쓴 댓글과 공유한 게시물, ‘좋아요’를 누른 게시물과 위치 정보까지 엄청난 데이터를 수집했고, 이 데이터는 고스란히 CA로 넘어갔다. 27만 명은 코건 교수팀에게 개인 정보를 제공하는 데 동의했지만 그 정보를 CA로 넘기는 데는 동의하지 않았다. 나머지 4973만 명은 물을 것도 없다.

CA는 2016년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의 선거 운동을 도우면서 이 데이터를 활용했다. CA가 미국 대선에서 얼마나 큰 영향력을 행사했는지 분석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들이 불법으로 수집한 데이터 때문에 단 한 명이라도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경영대학원(MBA) 와튼스쿨의 론 버만(Ron Berman) 교수는 “미국의 대선은 대개 아주 적은 득표 차이로 결정된다”며 “단 1%의 유권자만 영향을 받았더라도 선거 결과에는 엄청난 영향을 끼쳤을 수 있다”고 말했다.

4년간에 걸쳐 진행된 CA 스캔들을 이해하는 건 생각보다 복잡한 일이다. 정보기술(IT) 업계에서 잊을 만하면 발생하는 일반적인 개인 정보 유출 사태보다 훨씬 근본적인 문제를 들여다봐야 하기 때문이다. 트럼프나 러시아, CA 같은 흥미로우면서도 복잡한 이름들은 곁가지다. CA 스캔들의 핵심은 페이스북 그리고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다. 그리고 이 사태를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2014년에서 시계를 더 되돌려 2010년까지 가야 한다.



CA의 페이스북 이용자 정보 불법 유출을 내부 고발한 크리스토퍼 와일리. 사진 블룸버그

저커버그 “프라이버시 시대 끝났다” 선언

2010년 1월 8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IT 전문 매체인 테크크런치의 행사가 열렸다. 이 행사에서 저커버그는 테크크런치 CEO인 마이클 애링턴과 짧은 인터뷰를 했다. 6분 정도의 짧은 인터뷰에서 저커버그는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던졌다. 바로 프라이버시의 시대가 끝났다는 선언이었다. 페이스북의 프라이버시 정책을 묻는 애링턴의 질문에 저커버그는 “지난 5~6년 동안 블로깅은 엄청난 방법으로 이뤄지고 있고, 사람들은 더 많은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며 “(프라이버시에 대한) 사회적 규범은 시간이 지나면서 진화했고, 현 시대의 사회적 규범에 맞게 시스템을 업데이트하고 지속적으로 혁신하는 게 우리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저커버그가 말하는 프라이버시에 대한 새로운 사회적 규범은 뭘까. 저커버그의 발언이 있기 한 달 전, 페이스북은 프라이버시 정책에 대대적인 변화를 줬다. 이용자의 ‘소셜 그래프(Social Graph)’에 대한 정보를 공개해서 외부에 제공하기로 한 것이다. 소셜 그래프는 이용자가 페이스북에서 활동하면서 생긴 다양한 정보를 말한다. CA에 유출된 5000만 명에 대한 정보가 바로 소셜 그래프다. 페이스북은 소셜 그래프를 오픈하면서 외부의 웹 개발자들이 이 정보를 활용해 다양한 서비스를 만들도록 했다. 이용자 데이터를 미끼 삼아 수많은 외부 서비스 기업을 페이스북 생태계에 끌어들인 것이다.

저커버그는 개방과 연결이 세상을 더 살기 좋게 만들 것이라는 신념이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신념을 실현하기 위해 약간의 ‘부작용’은 감수하겠다는 고집도 있었다. 저커버그의 이런 태도는 3월 29일 미국의 온라인 뉴스 매체인 버즈피드가 폭로한 페이스북 부사장 앤드루 보즈워스의 메모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공개 직후 ‘추악한 메모(The Ugly)’라는 이름이 붙은 이 메모에서 보즈워스는 “우리는 사람들을 연결한다. 더 많은 소통을 위한 모든 시도들이 사람들을 연결하기 위한 것”이라며 “누군가가 이를 악용한다면 좋지 않은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적었다.

보즈워스는 ‘좋지 않은 결과’의 사례로 테러리스트의 공격으로 누군가가 죽을지 모른다고 했지만, 현실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으로 이어졌다.

저커버그나 페이스북이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을 예상하지는 못했겠지만, 최소한 자신들의 프라이버시 정책에 빈틈이 있고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만은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페이스북은 이용자 정보가 불법으로 유출된 사실을 몰랐을까. 그렇지 않다. 페이스북은 이미 2015년 코건 교수팀이 이용자 정보를 CA에 제공한 사실을 확인했다. 페이스북은 CA 측에 이용자 정보를 삭제하라고 요구했고, CA 역시 그러겠노라고 했다. 하지만 CA는 이용자 정보를 지우지 않았고,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을 돕는 데 활용했다. 자신들의 프라이버시 정책이 악용될 가능성도 알고 있었고 실제로 빈틈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는데, 페이스북은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이다. 카라 알라이모 미국 호프스트라대 교수는 블룸버그 기고문에서 “페이스북이 이용자 정보 유출 사실을 확인한 2015년에 관련 내용을 공개했으면 문제가 이렇게 커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IT 전문가들은 페이스북 창업자이자 CEO인 저커버그를 모든 문제의 중심으로 본다. 연결과 개방에 대한 저커버그의 고집이 페이스북을 더 닫히고 폐쇄적인 회사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페이스북의 초기 투자자이자 저커버그와 셰릴 샌드버그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COO)의 멘토였던 로저 맥너미는 지난 3월 미 공영라디오(NPR)와의 인터뷰에서 “이 사건의 본질은 페이스북이 이용자의 프라이버시를 무시하고 그들의 정보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다는 것”이라며 “이런 문제가 터질 가능성을 몇 년 전에 경고했지만 그들(저커버그와 샌드버그)은 제3자가 우리 플랫폼에서 무슨 일을 하든 우리에게는 책임이 없다고 답할 뿐이었다”고 말했다.

저커버그가 경영자의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스콧 스트링거 뉴욕시 감사원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페이스북은 20억 명의 이용자를 보유하고 있지만 그들이 보유한 이용자 데이터를 지키는 데 소홀했다”며 “페이스북이 독립적인 인물을 회장으로 선임하고, 데이터 이용과 윤리에 대한 전문지식을 갖춘 독립적인 이사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스트링거 원장이 관리하는 뉴욕시 연기금은 페이스북 주식 10억달러어치를 보유하고 있다.

자신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고 있지만 저커버그는 물러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저커버그는 지난 2일 인터넷 매체인 복스미디어와의 인터뷰에서 “연결을 통해 더 좋은 미래를 만들겠다는 신념은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번 사태를 해결하는 데 수년이 걸릴 수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는 이용자 정보 보호를 소홀히 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소셜미디어 생태계의 분수령 될 것

CA 스캔들은 이제 겨우 시작 단계다. 페이스북은 지난 4일 CA가 불법으로 확보한 페이스북 이용자 정보의 규모가 8700만 명에 달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당초 알려진 5000만 명을 훨씬 웃도는 숫자다. 페이스북은 “코건 교수의 심리테스트 앱을 다운로드받은 이용자 27만 명의 친구 권한을 가진 사람들을 모두 합산한 결과 8700만 명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미국 상원 청문회를 앞두고 미리 이실직고하는 모습이다.

미국과 영국 등 세계 각지에서 페이스북 이용자 정보 유출에 대한 조사가 진행될수록, 이런 식으로 사건의 규모가 커질 가능성이 있다. 또 예상치 못한 영역으로 불똥이 튈 수도 있다. 미국 상원뿐만 아니라 미국 정부 차원에서도 조사가 진행 중이고, 영국을 비롯해 유럽연합(EU) 차원에서도 페이스북을 압박하고 있다. 3월 27일 영국 하원 언론위원회 청문회에서는 CA가 페이스북 이용자 정보를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투표에도 활용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미얀마에서도 페이스북이 로힝야족에 대한 인종 대학살을 이끄는 도구 중 하나로 활용됐다.

저커버그와 페이스북은 뒤늦게 사과하며 사태 수습에 나섰지만, 사람들의 시선은 싸늘하기만 하다. 미국과 유럽 등에서는 페이스북 삭제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페이스북 삭제를 의미하는 해시태그(#deletefacebook)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미국의 전기차 업체인 테슬라와 이 회사의 CEO인 일론 머스크도 페이스북 삭제 운동에 동참했고, IT 업계 종사자들을 중심으로 페이스북 보이콧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가뜩이나 젊은층을 중심으로 페이스북 이용자가 줄어드는 추세에서 보이콧은 불에 기름을 끼얹는 격이 될 수 있다. 페이스북 주가도 급락했다. 3월 16일 185.09달러였던 페이스북 주가는 150달러대(5일 기준)로 떨어졌다. 불과 보름여 만에 시가총액이 700억달러(약 74조원) 정도 사라졌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페이스북의 위기에서 그치지 않고 소셜미디어 생태계 전체에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용자들이 소셜미디어를 바라보는 인식 자체에 변화가 생기고 있다는 것이다. MIT 슬론스쿨의 시난 아랄 교수는 “사람들은 이제 소셜미디어가 그저 재미있는 장난감이나 골칫거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며 “소셜미디어가 우리 사회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걸 깨달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실 CA가 한 것처럼 소셜미디어에서 이용자의 개인 정보를 추출하고 이를 마케팅에 활용하는 건 한두 해 사이에 생긴 일이 아니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주인공 톰 크루즈가 쇼핑몰에 들어가자 그를 겨냥한 홀로그램 광고들이 이어진다. 영화의 배경은 2054년이지만 기술적인 측면만 놓고 보면 개인화된 홀로그램 광고는 지금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론 버만 교수는 “오늘날 온라인 광고는 타깃팅과 예측의 측면에서 ‘마이너리티 리포트’에 나온 홀로그램 광고와 거의 같은 수준의 정교함을 보여준다”며 “인터넷 이용자들은 그들이 원하는 걸 광고주가 어떻게 알아내는지 인식하지 못했을 뿐인데, CA 스캔들로 이 거대한 세계의 일부가 드러난 것”이라고 말했다.

소셜미디어 이용자들은 개인 정보를 보호하기 위한 방법들을 적극적으로 공유하고 있다. 자신의 개인 정보가 잘못된 방향으로 쓰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한 결과다. 페이스북 타임라인 클리너나 트위터의 트윗 삭제 기능을 활용해 소셜미디어 플랫폼에 과거보다 적은 양의 데이터를 보관하려고 한다. 또 소셜미디어의 작동 원리와 영향력에 대해 학교에서부터 교육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제니퍼 골벡 메릴랜드대 교수는 “소셜미디어에 대해 사람들이 읽고 쓰는 능력을 향상시켜야 한다”며 “소셜미디어의 데이터를 가지고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사람들이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Plus Point

CA, 32개국 선거판에 데이터 컨설팅


CA 부사장을 지냈던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 사진 블룸버그

지난달 세계에서 가장 악명을 떨친 기업을 단 하나만 고르라면 많은 사람이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CA)를 택할 것이다. 페이스북을 고르는 사람도 있겠지만, 정보기술(IT) 업계에서는 ‘페이스북은 원래 그런 기업’이라는 반응이 다수다. 그보다는 수면 아래 있다 갑자기 악의 화신으로 떠오른 CA에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CA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정치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이다. 영국의 컨설팅 업체인 ‘스트래티직 커뮤니케이션 랩(SCL)그룹’이 CA의 모기업이다. 미국의 IT 전문 매체인 쿼츠는 SCL그룹의 내부 문서를 분석한 결과, SCL그룹이 32개국, 100여 회가 넘는 선거에서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CA는 2013년 SCL그룹에서 분사돼 설립됐다. 일종의 미국 지사 같은 성격으로, 정치 컨설팅에 특화됐다. 흥미로운 건 CA 설립을 주도한 인물이다. CA 설립에 돈을 댄 건 헤지펀드 르네상스 테크놀로지스의 최고경영자(CEO)인 로버트 머서다. 머서는 최소 1500만달러 정도를 CA에 투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컴퓨터 과학자 출신인 머서는 헤지펀드로 큰 돈을 벌었고, 미국의 우익 단체에 거액을 기부하면서 정치적인 영향력을 키웠다. 미국의 우익 매체 브레이트바트의 편집장이었던 스티브 배넌도 머서가 후원하던 우익 인사 중 한 명이다.

배넌은 2014년 6월부터 CA에서 부사장으로 근무했는데 CEO였던 알렉산더 닉스보다 권한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CA 스캔들을 폭로한 크리스토퍼 와일리는 워싱턴포스트(WP)와의 인터뷰에서 페이스북 이용자 정보 수집을 위해 100만달러를 사용하는 지출안을 승인한 장본인이 배넌이라며 “배넌이 닉스의 상관이었다”고 말했다. 배넌은 CA에서 일하다 2016년 트럼프 캠프로 자리를 옮겼고, 이후 트럼프가 승리하자 수석전략가로 백악관에 입성했다.

CA는 공화당 대선 후보를 뽑는 경선 과정에서는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을 도왔다. 하지만 크루즈가 낙마한 뒤 본선에서는 트럼프를 지원하게 됐다. CA 주요 투자자인 머서와 배넌의 긴밀한 관계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종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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