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을 위한 음주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지난해 발생한 세계 최대 차량공유 업체 ‘우버’의 성추문 논란에서 한국의 비즈니스를 위한 술자리 문화가 때 아닌 구설수에 올랐다. 트래비스 칼라닉 우버 최고경영자(CEO)가 사내 여성 직원들을 차별하고 사내 직원 간 성관계를 부추기는 부적절한 내용의 이메일을 전 직원에게 보낸 사실이 드러났는데, 여기다 칼라닉의 전 여자친구인 가비 홀즈워스가 “2014년 칼라닉이 우버 고위 임원 5명과 함께 서울 ‘룸살롱(Escort-Karaoke Bar)’에 갔다”며 “남성들이 경매시장 소처럼 번호가 붙어 있는 여성을 고른 뒤 자신의 옆에 앉게 했다”고 폭로한 사실까지 더해진 것이다.

칼라닉은 투자자들의 사퇴 압박 끝에 결국 사실상 퇴임이나 마찬가지인 무기한 휴직에 들어갔고, 그의 최측근인 에밀 마이클 부사장도 책임을 지고 회사를 떠났다.

칼라닉의 룸살롱 방문 폭로를 계기로 ‘포브스’의 한국 전문 기고가 일레인 라미레즈는 한국 비즈니스 생태계에 뿌리 깊게 자리잡은 술자리 문화를 분석했다. 그는 “한국에서는 평일에도 엄청난 양의 소주를 마시며 비즈니스 관계를 구축하는 일이 흔하다”며 “동료들과 유대감을 쌓아 승진의 기반을 닦기 위한 목적도 있고, ‘도우미’를 이용해 비즈니스 파트너의 변덕을 달래기 위한 목적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퇴근 후 술자리에 참석하지 않은 이들은 커리어가 제한되거나 중요한 업무 기회를 박탈당하기 일쑤”라고 덧붙였다.

비즈니스를 위한 모임에서 술을 곁들이는 것은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풍경이다. 그러나 업무를 위한 음주가 정말 효과가 있는지에 대해선 여전히 결론이 나지 않았다. 먼저 효과가 있다고 보는 쪽은, 사업 파트너와 술을 통해 친분을 쌓아두면 나중에 수월하게 거래를 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사업 파트너를 취하게 만들면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거래를 주도할 수 있다는 이유도 있다.



서울의 한 유흥가 풍경. / 조선일보 DB

비즈니스 술모임, 득일까 실일까

실제로 음주가 비즈니스 협상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싱가포르 난양기술대와 중국 남서재경대 공동연구팀이 114명의 실험자를 두 그룹으로 나눠 각각 맥주, 주스를 먹인 뒤 협상에 임하게 한 결과, 협상을 잘한 집단은 맥주를 마신 그룹이었다. 이외에도 조지 콜플래시 일리노이대 시카코캠퍼스 교수팀은 적당량의 음주가 업무 도중 창의성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평소 적당량의 음주를 즐기는 이들은 술을 전혀 입에 대지 않는 사람보다 인지능력이 더욱 뛰어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반면 음주가 업무 능력 저하로 이어진다는 주장도 있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직장인 음주 실태와 기업의 대책’ 보고서에 따르면, 소주 1병이 체외로 방출되는 데는 12시간 이상 소요된다. 즉 저녁 6시 이후 술을 마신 직장인들은 다음 날 취중 근무를 하는 셈이다. 연구소는 “과도한 음주는 근로자의 생산성에 직접적 영향을 미친다”며 “빈번한 결근, 근무시간 중 자리 이탈 등 측정 불가능한 비용도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경우, 업무를 위한 음주가 적당량이 아닌 ‘과음’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여러가지 사회적 문제를 야기한다는 지적도 있다. 라미레즈는 키스방·안마방·노래방 도우미 등 다양한 종류의 성매매 서비스가 활성화된 이유를 한국식 접대 문화에서 찾았다. 비즈니스 목적의 술자리에선 과음하는 경향이 강하고, 결국 이는 성매매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성매매가 수반된 남성 중심적 비즈니스 술자리 문화는 여성들의 사회 진출을 가로막는 유리천장으로도 작용한다. 라미레즈는 “모든 저녁 식사와 술자리가 성매매로 이어진다고 말할 순 없지만, 여성은 일반적으로 남성 중심 업무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양측 의견이 팽팽한 가운데, 오라시오 팔카오 프랑스 인시아드 경영대학원 의사결정학 교수는 ‘술을 곁들인 비즈니스 모임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쪽의 손을 들어줬다. 그는 동료 교수들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술을 마신 협상가는 상대방에게 모욕·위협 등 공격적 화법을 사용하는 경향이 많고, 맑은 정신의 협상가에 비해 더 많은 실수를 저지른다”며 “이 같은 행동은 결국 가치가 낮은 거래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팔카오 교수는 ‘협상자 행동에 미치는 알코올의 영향’이라는 모리스 슈바이처 와튼스쿨 교수의 논문을 주장의 근거로 제시했다. 첫 번째 실험에서 연구진은 42명의 실험자를 모집했다. 술을 마시지 않은 실험자끼리, 술을 마신 실험자끼리 두 명씩 짝을 지었다. 술을 마신 실험자의 혈중 알코올 농도는 0.06%에 맞춰졌다. 0.06% 수준에서 운전할 경우 한국에서는 면허 정지 처분을 받는다. 한 팀을 이룬 이들은 각각 사업체를 운영하는 고용주와 그 사업체에 고용될 직원을 대리하는 에이전트 역할을 나눠 가졌다. 연구진은 이들이 협상할 내용을 5가지 쟁점으로 나눴고, 협상 결과에 따라 양측 모두에게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는 기회도 부여했다.



한국은 사업 협상을 위해 술자리를 갖는 경우가 많다. / 조선일보 DB

술 마신 협상가, 공격적 되기 쉬워

결과는 술을 마시지 않은 맑은 정신의 실험자들로 이뤄진 팀의 승리였다. 그들의 협상 결과는 172.1점을 얻었다. 반면 술에 취한 실험자들로 이뤄진 팀은 이보다 9.1점 낮은 163점을 얻었다. 연구진은 양측 모두 최선의 결과를 도출했는지 여부를 따로 측정했는데, 여기서도 술을 마시지 않은 실험자들은 1.122점을 올린 반면, 술에 취한 실험자들은 0.707점을 얻는 데 그쳤다. 이처럼 명확한 결과에도 불구하고, 술에 취한 실험자들은 자신들의 협상 결과가 좋지 않은 데 대해 ‘알코올의 영향 때문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두 번째 실험에서는 50명의 실험자가 참여했는데, 여기서는 술을 마시지 않은 실험자와 술을 마신 실험자가 한 팀을 이뤘다. 이들은 각각 논알코올 맥주와 진짜 맥주를 마신 뒤 협상을 시작했다. 즉 자신이 취했는지, 상대방이 취했는지 알 수 없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실험 결과는 명확했다. 연구진은 “술에 취한 실험자들은 모욕적이고 무례하고 퉁명스러운 말투를 사용하는 경향이 높았다”며 “상대방을 위협하는 등 공격적인 전술을 사용하기도 했으며, 이들의 발음은 부정확했다”고 설명했다.

팔카오 교수는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술에 취한 실험자끼리 협상하는 것보다 술에 취하지 않은 실험자가 술에 취한 실험자를 상대할 때 협상 결과가 더욱 나빠진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협상 과정에서 술에 취한 실험자들은 맑은 정신의 실험자들만큼 많은 질문을 했는데, 이 질문은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윈윈’ 내용이 아니라, 공격적이면서도 협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 내용들이었다. 팔카오 교수는 “맑은 정신의 협상가들은 술 취한 파트너를 이성적으로 설득하는 데 실패한 나머지, 지금까지의 협상 내용을 완전히 잃어버리는 것보다는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어떻게든 거래를 체결하려 하고, 이는 결국 가치가 낮은 거래로 이어진다”고 강조했다.


협상 단계 따라 음주 필요성 달라져

팔카오 교수는 이 같은 실험 결과를 종합할 때, 거래 체결을 위해 술을 마시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조언했다. 그러나 그는 협상 진행 정도에 따라서는 달라질 수도 있다고 봤다. 모든 협상은 ‘파트너와의 관계 구축’ ‘협상을 위한 의사소통’ ‘거래의 본질에 대한 접근’이라는 3단계 과정을 거치는데, 술은 파트너와의 의사소통과 거래의 본질에 접근하는 것을 방해할 수 있지만 관계 형성에는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팔카오 교수는 “만약 당신이 상대방이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그를 충분히 포용할 수 있고, 해당 모임이 주로 관계 형성을 위한 것이라면 적절한 수준의 음주는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팔카오 교수는 술을 마시지 말아야 할 순간도 명확하게 제시했다. 그는 “기술적 측면 등 다소 어렵고 까다로운 내용을 논의하는 자리에선 날카로운 의견을 제시해야 하는데, 이 경우엔 금주하는 것이 현명하다”며 “명쾌한 의사소통이 필요하고 토론이 필요한 자리 역시 마찬가지”라고 조언했다. 이 외에도 자신보다 높은 직위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자리에서 좋은 인상을 줘야 하는 경우, 갈등이 발생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자리에서도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이 좋다.

필요하다면 술을 마실 수 없는 이유를 말하고, 파트너의 양해를 구하는 것도 방법이다. 팔카오 교수는 “의사의 금주 지시가 있었거나, 약을 복용 중이거나, 몸 상태에 문제가 있다면 파트너에게 충분히 설명해야 하고, 합리적인 파트너라면 이를 이해할 것”이라며 “만약 이러한 상황에서도 파트너가 술을 강권한다면 그들의 협상 의도에 대해 의심을 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Plus Point

세계 각국의 음주 협상 문화


세계 각국의 접대 문화는 차이가 있다.

한국 기업가들이 해외로 진출할 때 가장 어려워하는 점 중 하나는 외국인 사업 파트너를 어떻게 접대해야 하는 가에 대한 문제다.

중국인들의 경우, 술을 즐기고 좋아하지만 술자리를 통해 ‘자기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비즈니스를 진행하는 편이다. 술자리를 통해 서로 동등해지고 친밀해진다고 생각하는 점은 한국과 비슷하다. 다만 ‘첨잔’에서 다소 갈린다. 한국은 잔을 끝까지 비운 뒤에 술을 따라주지만, 중국은 잔을 다 비우기 전에 미리 술을 채워줘야 한다. 한국에서는 자신의 빈 잔을 닦아 ‘제가 한잔 올리겠습니다’라며 상대방에게 권하는 경우가 많은데, 중국인들은 이 역시 굉장히 큰 결례로 받아들인다.

베트남은 한국과 비슷한 면이 많다. 음식과 함께 반주를 곁들이는 것을 즐기며, 상대에게 술을 권하고 같이 즐기면서 관계를 구축한다. 그러나 베트남에서 주의할 점은 베트남인들이 안주를 꼭 채워둔다는 점이다. 만약 베트남인이 안주를 더 시킬지 물어봤을 때 배가 불러 거절한다면 베트남인들은 술을 더 이상 마시지 않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렇다면 유럽은 어떨까. 프랑스에서는 점심 식사라 할지라도 해당 지역의 와인을 마시는 데 관대하다. 그러나 프랑스를 제외한 다른 유럽 국가에서는 비즈니스 자리에서 술을 마시는 습관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특히 오스트리아에서는 회사 업무가 끝난 뒤 거래처와의 저녁 만찬은 ‘최악’의 경우로 꼽힌다고 한다. 김현준 코트라 오스트리아 빈 무역관 과장은 “각자 주량에 따라 자신의 술만 주문하거나, 상대방의 잔이 빈 경우 가볍게 한 번 정도만 권해야 한다”며 “절대로 술을 강권해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


Plus Point

‘술 냄새만 맡아도 취해요’ 변명 아니다


술은 마시지 않고 냄새만 맡아도 인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술을 잘 못 마시는 사람들은 흔히들 ‘술 냄새만 맡아도 취한다’고 한다. 이를 두고 음주를 피하기 위한 변명이라고 치부하는 이들이 많지만, 실제로 술이 약한 사람들은 술 냄새만 맡아도 취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레베카 몽크 영국 에지힐대 심리학 박사 연구팀은 술 냄새가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기 위해 40명의 실험자를 두 그룹으로 나눴다. 한 그룹은 술을 뿌린 마스크를 쓰게 하고, 다른 한 그룹은 귤 용액을 뿌린 마스크를 쓰게 했다. 이후 실험자들에게 컴퓨터 화면을 보게 한 뒤, 알파벳 ‘K’가 나오거나 맥주 사진이 나오면 버튼을 누르도록 했다. 연구진이 두 그룹의 반응 시간과 정확도 등을 비교한 결과, 술이 뿌려진 마스크를 쓴 그룹이 귤 마스크를 쓴 그룹에 비해 반응 시간이 늦고 정확도가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술을 마시기 전이나 술을 마시지 않은 사람도 술 냄새만으로 행동 조절이 어려워질 수 있다”며 “특히 술이 약한 사람들은 정보를 이해하거나 자신을 통제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데이비드 카라켄 미 인디애나대 교수팀도 같은 연구 결과를 내놨다. 평균 연령 25세인 남성 49명을 세 팀으로 나눠 맥주와 스포츠음료, 물을 각각 15㎖씩 제공했다. 이들은 냄새를 맡고, 적은 양을 맛봤다. 연구진이 15분 뒤 실험자들의 뇌를 검사한 결과, 맥주 냄새를 맡고 맛을 본 남성들의 도파민 분비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도파민은 신경전달물질의 하나로 뇌신경 세포의 흥분 전달 역할을 한다. 카라켄 교수는 “이 연구를 통해 단순히 술 냄새를 맡거나 맛을 보는 것만으로도 도파민 분비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Plus Point

매일 적당량 마시는 술, 건강에 좋을까?


매일 적당량의 음주는 오히려 건강에 좋다는 속설이 있다.

매일 적당량 마시는 술은 건강에 좋다는 말이 있다. 적당량의 술이 혈관을 활력 있게 만들어 술을 전혀 마시지 않는 사람보다 심장병과 뇌졸중 사망률 등을 낮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연구 결과를 뒤집는 또 다른 연구 결과가 나왔다.

적당량의 음주가 좋다는 것은 혈액에 좋은 콜레스테롤로 알려진 ‘고비중지단백(HDL)’ 성분을 높여주기 때문이다. HDL 콜레스테롤은 혈액 내에서 40mg/dL 이상 유지돼야 혈관 건강에 이로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루 2잔 정도 적당히 술을 마시는 사람은 전혀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이나 과도하게 마시는 사람보다 HDL 저하 속도가 느리다는 것이 기존 연구 결과였다.

캐나다 빅토리아대 연구팀은 적당한 음주가 건강에 긍정적인 효과를 준다고 주장한 논문을 모아 재검토했다. 연구진은 기존 연구의 표본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술을 전혀 안 마신다는 사람 중에서는 술을 마셨다가 건강이 나빠져 끊은 사람 상당수가 포함돼 있었다. 즉 이미 술을 끊은 ‘건강이 좋지 않은 사람’과 적당히 술을 마신 ‘건강한 사람’이 비교 대상으로 선택돼 결과가 편향됐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이들을 제외하고 다시 음주 효과를 분석했다. 그 결과, 일주일에 한 잔 미만으로 술을 마시는 사람들의 사망률이 가장 낮게 나타났다. 즉 술을 거의 마시지 않는 사람이 제일 건강하다는 것이다.

알코올 분해 효소가 적은 한국인은 더욱 조심해야 한다. 숙취는 ‘아세트알데히드’라는 성분 때문에 생기는데, 한국인의 40%는 유전적으로 아세트알데히드 분해요소인 ‘아세트알데히드 탈수소효소(ALDH)’가 적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전문가들은 적정량의 음주라 할지라도 체질에 따라 알코올 분해 능력에 차이가 있고, 술이 약한 사람은 더 위험할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윤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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