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 지요다구 가스미가세키에 있는 재무성(낮은 건물)과 금융청(뒤편 높은 건물). / 조선일보 DB

“가슴 만져도 되냐.” 30여 년간 성공의 길을 달려온 엘리트 관료의 어이없는 발언에 ‘주식회사 일본’을 이끄는 핵심 정부부처 재무성이 흔들리고 있다. 20여 년 만에 재무성을 다시 해체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얼마 전 일본에서 수년간 여기자에게 성희롱을 일삼던 후쿠다 준이치(福田淳一·58) 재무성 사무차관이 경질됐다. 너무나 저열한 수준의 성희롱을 했으니 경질은 당연한 수순이지만 그 과정은 매우 느렸고 한국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도 있었다.

4월 12일, 일본 시사 주간지 ‘주간신초(週刊新潮)’는 후쿠다 전 차관이 회식 등의 자리에서 복수의 재무성 출입 여기자에게 성희롱을 일삼았다고 보도했다. 그는 “무슨 실례되는 말을 하냐”라며 화를 내며 부인했다. 그러자 다음 날 ‘주간신초’는 성희롱 발언이 담긴 녹취 파일을 공개했다. 재무성의 초기 조사에서 그는 “(녹취 파일 속 목소리가) 내 음성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며 역시 부인했다. 여론이 악화되자 4월 18일 사표를 제출했다.

하지만 사임하면서도 ‘보통 자기 목소리는 안다’라는 기자의 질문에 “어렸을 때부터 내 목소리가 테이프 녹음기에서 나오면 잘 모르겠더라” “전체 음성 파일을 다 들으면 성희롱 발언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말해 구설수에 올랐다. 일본 정부는 사건이 터진 뒤 12일이 지난 4월 24일에야 각의에서 후쿠다 전 차관의 면직을 정식으로 결정했다.

후쿠다 전 차관에서 시작된 불똥은 아소 다로(麻生太郞) 재무장관으로 튀었다. 그는 4월 17일 “후쿠다에겐 인권이 없느냐”라며 후쿠다 전 차관을 감쌌다. 비단 이번 건만 아니라 아소 장관은 ‘막말’로 유명하다. 90세가 돼서도 노후가 걱정된다는 고령층에게 “언제까지 살아 있을 셈이냐”라고 말했을 정도다. 하지만 아소 재무장관은 자민당에서 두 번째로 큰 파벌인 ‘아소파’를 이끄는 수장이고, 아베 정권을 떠받치는 핵심이다. 그래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도 정권 유지를 위해 아소 장관에게 불만을 말하지 않는다.

이런 아소 장관에게 신임을 받은 후쿠다 전 차관은 누구의 통제도 받지 않는 존재였다. 그러나 파문이 커지자 야당뿐 아니라 여당에서도 ‘아소 책임론’이 나왔고, 결국 후쿠다 전 차관이 사표를 제출했다. 아소 장관은 후쿠다 전 차관의 면직을 결정한 4월 24일 “세상엔 (후쿠다 전 차관이) 함정에 빠져 (여기자에게) 속은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이미 아소 장관에 대한 여론은 좋지 않았다. 본업인 경제정책 때문이 아니라, 아베 정권의 ‘모리토모(森友)학원’ 스캔들 때문이다. 아베 총리와 부인 아키에(昭惠) 여사가 국유지를 모리토모학원에 헐값에 매각하도록 직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이다.



아소 다로 일본 재무장관이 3월 12일 기자회견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 블룸버그

도쿄대 법학부 인재 몰리는 ‘최강 관청’

재무성은 야당이 제기하는 의혹을 막기 위해 국회에 문서를 제출했는데, 이 문서가 조작됐다는 사실이 지난 3월 밝혀졌다. 이 때문에 아베 정권과 아소 재무장관, 재무성은 더욱 위기에 몰렸다. 이미 아베 총리에게 반대하는 시위대는 아소 장관의 퇴임도 요구하고 있다. 여기에 후쿠다 전 차관이 기름을 부은 꼴이 됐다.

재무성은 한국의 기획재정부에 해당하는 일본 중앙정부 부처다. 일본에선 ‘최강 관청’ ‘관청 중의 관청’이라고 부른다. 한국의 행정고시에 해당하는 ‘1종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사람 중에서 가장 우수한 인재가 지망하는 곳이다. 후쿠다 전 차관과 함께 1982년 대장성(재무성의 전신)에 들어온 27명 중 도쿄대 법학부 출신이 16명, 도쿄대 경제학부 출신이 6명이다. 그 외에 지방 명문 국립대인 교토(京都)대·오사카(大阪)대, 도쿄의 사립 명문 와세다(早稲田)대·게이오(慶應)대, 도쿄의 인문·사회계열 국립 명문대인 히토쓰바시(一橋)대가 각각 1명씩이었다. 한국은 법학과를 나오면 법조계로 진출하지만, 일본에선 도쿄대 법학부를 나온 관료가 재무성에서 더 인정받는 분위기가 있다. 후쿠다 전 차관도 역시 도쿄대 법학부를 졸업했고, 대학교 재학 중 사법고시에도 붙은 초(超)엘리트다.

후쿠다 전 차관의 동기 중 한 명은 사가와 노부히사(佐川宣壽) 전 국세청장이다. 그는 모리토모학원 관련 국회 제출 문서 조작에 연루돼 지난 3월 사임했다. 2017년 2월 재무성이 문서를 국회에 제출할 때 담당 국장이었다. 도쿄대 경제학부를 졸업하고 1982년 대장성에 들어가 오랜 기간 후쿠다 전 차관과 함께 일했다.


후쿠다 준이치 전 일본 재무성 사무차관. / 유튜브

후쿠다 전 차관처럼 도쿄대 법학부를 졸업한 사코타 히데노리(迫田英典) 전 국세청장도 모리토모학원 스캔들에 연루돼 있다. 그는 모리토모학원에 국유지를 매각할 때 협상을 담당한 재무성 이재국장이었다.

동기 중엔 가타야마 사쓰키(片山さつき) 일본 참의원 의원(자민당 소속)도 있다. 그는 4월 19일 “성폭력 문제는 상대방이 (성폭력이라고) 느꼈는지가 중요하다. 변호의 여지가 없다. 사임은 당연하다”라고 말했다. 가타야마 의원도 역시 도쿄대 법학부를 졸업했다. 2005년 재무성을 나와 같은 해 총선에서 중의원에 당선되며 정계에 입문했다.

한편 동기 중엔 1992년 자살한 사람도 있다. 일본 언론은 “상사에게 괴롭힘을 당한 것 같다”라는 말이 있었다고 했다. 1998년 대형 증권사와 은행으로부터 퇴폐 유흥업소에서 지나친 접대를 받았다는 이유로 체포된 동기도 있고, 다른 동기 한 명도 옷을 벗었다. 이 사건으로 대장성은 해체돼 현재의 재무성·금융청으로 변신했다. 금융 감독 기능이 신설된 금융청으로 이관됐고, 대장성이란 이름을 떼고 재무성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한국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부부처의 이름이 바뀌곤 한다. 기획재정부도 과거엔 재무부, 재정경제원, 재정경제부 등의 이름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일본은 거의 부처 이름이 바뀌지 않는다. 대장성이 재무성으로 명칭을 바꾼 것은 그만큼 일본에서 대장성의 비리를 심각하게 바라봤다는 뜻이다. 동기 두 명이 대장성의 간판을 내리게 하고 조직을 떠난 사건이 발생한 20년 뒤, 이번엔 후쿠다 전 차관의 사건으로 재무성 해체 주장이 나오게 됐다.

재무성의 전신 대장성(大蔵省)의 뜻은 ‘큰 창고(일본어로 ‘오쿠라’)’라는 뜻이다. 메이지 유신 이후 정부를 운영할 자금을 조달할 기관으로 조정에 ‘금곡출납소(金穀出納所)’가 설치됐다. 몇 차례 이름이 바뀌다가 1년 뒤인 1869년 정부 조직을 개편하면서 ‘대장성’이란 이름을 얻었다. 이후 국가의 재정·통화·금융에 관한 사무를 담당했다.


1300년 전 율령제에 기원 둔 ‘대장성’

‘대장성’이란 이름의 유래는 고대 일본이 당(唐)의 율령제를 받아들여 8개의 성(省)을 설치했을 때인 13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법·행정·입법을 담당하는 국가 기관 ‘태정관’이 ‘대장’이라고 불린 조정의 창고를 관할하고 금·은과 공물의 출납 및 보관 등의 업무를 맡은 것이 기원이다. 부처 이름에 ‘창고’라는 단어를 쓰는 건 흔한 일이다. 한국에서 ‘재무부’라고 번역하는 미국의 행정기관의 영문 이름은 ‘Department of the Treasury’다. ‘트레저리(treasury)’는 금고 또는 곳간이라는 뜻이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고 권한도 막강하며 일본 최고의 엘리트가 모이는 재무성 관료가 모리토모학원 스캔들과 같은 의혹에 줄줄이 휩싸이고 있다. 아베 정권이 2014년 내각인사국을 신설하고 관료들의 인사권을 손에 넣은 게 그 원인으로 꼽힌다. 과거 각 부처의 판단에 맡겼던 정부부처 간부 직원 600명의 인사를 총리관저가 사실상 장악했고, 절대적인 인사권 앞에 관료 사회에선 충성 경쟁이 벌어졌다.

그러면서 등장한 단어가 ‘남의 마음을 미뤄 헤아림’이라는 뜻의 ‘손타쿠(忖度)’다. 즉, 고위 관료가 정치 권력에 ‘알아서 기는’ 행태가 벌어진 것이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郎) 전 총리는 3월 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무성 고위 관료가 문서를 조작한 것에 대해 “아베 총리가 ‘나와 아내가 모리토모학원과 관계가 있다면 총리직과 국회의원을 그만두겠다’고 했다”며 “총리의 답변과 (국회에 제출할 문서를) 맞춰야겠다는 생각에 조작을 시작했다고 본다. (재무성이) ‘손타쿠’를 한 것”이라고 말했다.

아베 총리가 연루된 스캔들뿐만 아니라, 국가 정책에 대해서도 고위 관료가 유력 정치인의 주장을 그대로 따르는 경향이 나타났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이 중시하는 ‘고향 납세(응원하고 싶은 지방자치단체에 세금을 내는 것)’ 확충에 대해 신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총무성 담당국장이 좌천됐다. 총무성에선 ‘잘렸다’라는 얘기가 나왔다.

하지만 과거엔 그러지 않았다. 마에가와 기헤이(前川喜平) 전 문부과학성 사무차관이 과장이던 2005년, 고이즈미 내각이 추진하던 의무교육비 국고부담금 폐지에 격렬하게 반대했다. 실명을 내건 블로그도 만들어 ‘내 해고와 맞바꿔 의무교육을 지킬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한다’라는 글도 썼다. 국고보조금은 폐지 대신 감축되는 것으로 결론 났고, 그는 문부과학성 내 최고 보직인 사무차관까지 올랐다. 그는 지난 3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문서 조작은) 정치에 ‘손타쿠’한 것이다. 무언가 정치적인 힘이 움직이고 있다”라며 사가와 전 국세청장에 대해 “그만둘 거면 더 자유롭게 발언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3월 13일 밤 일본 도쿄의 총리관저 앞에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게 반대하는 시위대가 모여 있다. 아소 다로 일본 재무장관에게 반대한다는 의미의 ‘NO ASO’ 현수막도 있다. / 블룸버그

20년 만에 재무성 해체론 부상

재무성 고위 관료들이 스캔들과 성추문에 휘말리자, 야당은 물론 여당에서도 재무성을 해체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자민당 내 행정개혁본부를 중심으로 재무성 개편안이 검토되고 있다고 한다. 모리토모학원 스캔들에서 논란이 된 국유재산 관리 업무를 재무성에서 분리하자는 것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자민당의 아오야마 시게하루(青山繁晴) 참의원이 지난 3월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재무성의) 세금 부분만 떼어 세금관리청을 만들고, 내각부 산하에 두면 어떤가”라고 말했다. “재무성이 과거의 잘못된 모습을 그대로 갖고 있어 주권자(국민)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오쓰카 고헤이(大塚耕平) 민진당 대표는 4월 19일 기자회견에서 후쿠다 전 차관의 사임에 대해 “재무성의 신뢰는 땅에 떨어졌다. 해체를 정말 논의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Plus Point

후쿠다, 행시·사시 합격
공직에서도 서핑 즐겨

후쿠다 전 차관은 오카야마(岡山)현에서 태어났지만, 자란 곳은 도쿄 인근인 가나가와(神奈川)현 쇼난(湘南)이다. 고등학교는 가나가와현립 쇼난고교를 졸업했다. 졸업생들의 대입 결과가 좋아 입학하기 어려운 가나가와현의 명문 고교 중 하나다. 소설가이면서 한국인에겐 ‘극우 정치인’으로 유명한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慎太郎) 전 도쿄도지사와 고교 동문이다. 대학은 도쿄대 법학부를 졸업했고, 1982년 재무성의 전신인 대장성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주간신초’는 후쿠다 전 차관에 대해 ‘공부를 잘한 타입은 아니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일간 겐다이’는 전 재무성 관료의 말을 인용해 “국가공무원시험에 5등으로 합격하고, 도쿄대 재학 중 사법시험에 합격했을 정도의 대단한 수재였다. 일찍부터 동기 중에서 차관이 될 만한 후보로 두각을 나타냈다”고 보도했다.

그가 자란 쇼난은 자유로운 분위기의 독특한 문화가 탄생한 곳이다. 1970년대부터 미국에서 유입된 서핑 문화가 꽃을 피웠고, 지금도 일본의 서핑 중심지다. 친숙한 일본 만화 ‘슬램덩크’의 배경도 쇼난이다.

후쿠다 전 차관은 때때로 ‘관료답지 않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지난해 7월 그가 차관에 임명된 사실을 전하는 기사에서 “공직의 길에 들어선 뒤에도 시간이 나면 서핑에 빠져들었다”라며 “대장성에 들어가기 전 도쿄대에 뿌려진 자신의 사법시험 합격 수기엔 가죽 점퍼를 입고 등장한다”라고 했다. 공직 생활 중엔 사회보장 분야를 오래 담당했다. 민주당 정권 시절엔 내각관방(총리를 돕는 내각부 소속의 기관)에서 공무원 제도 개혁을 담당했다. 아소 재무장관은 그에 대해 “최근 수년간 지켜보았다. 능력이 극히 뛰어나다”라고 임명 배경을 밝혔다.


Plus Point

장관보다 중요한 사무차관

한국에서 정부 중앙부처의 중심은 장관이다. 차관은 어디까지나 장관을 보좌하는 역할을 한다. 일본은 의원내각제이기 때문에 한국과 다르다. 모든 장관은 현직 국회의원이 맡는다. 재무성의 경우 간부로는 장관·부장관(2명)·장관정무관(2명)·사무차관·비서관·재무관 등이 있다. 이 중 장관과 부장관·정무관은 정치인이 맡는다. 사무차관은 관료로 커리어를 시작한 사람이 올라갈 수 있는 최고의 자리다. 아무래도 정치인 출신의 장관은 전문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업무는 차관이 이끄는 경향이 있다. 후쿠다 전 차관이 일본의 경제정책을 실질적으로 총괄한 셈이고, 이런 중요한 직책에 있는 사람의 성 관념이 어처구니없을 정도라는 사실에 일본인들은 분노했다.

주요한 국가 정책도 차관들이 모여서 결정하는 구조다. ‘사무차관회의’는 일본에서 내각제도가 확립된 다음 해인 1886년 시작돼, 제2차세계대전이 끝난 후 자민당 정권에서 정책 결정 핵심 기구 역할을 했다. 법적인 근거가 없는 회의지만, 장관들의 회의인 ‘정례 각의’ 하루 전 열려 사실상 각의 안건을 결정했고 여기서 조정되지 않은 안건은 각의에 올라가지 못했다. 이 때문에 사실상의 정책 결정기구는 사무차관회의이고 장관은 ‘거수기’에 불과해 의원내각제의 취지와 달리 직업 관료들이 국가 정책을 좌지우지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래서 민주당 정권 출범 이후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전 총리가 ‘관료의 발호를 막는다’라며 사무차관회의를 폐지했으나,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전 총리가 부활시켰다. 동일본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겪으면서 행정 경험이 없고 전문성이 부족한 정치인들이 관료의 도움 없인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손덕호 기자

  • 목록
  • 인쇄
  • 스크랩
ⓒ 조선경제아이 & econ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