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엇이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에 관여하겠다고 발표한 4월 4일 서울 양재동 현대차그룹 본사. / 조선일보 DB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가 다시 뉴스의 중심에 섰다. 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은 4월 23일 공개한 현대자동차그룹 지배구조 개편 제안서에서 “현대모비스와 현대차를 합병해 지주사로 전환하고 순이익의 40~50%를 배당해야 한다”고 했다. 앞서 현대차그룹은 순환출자 구조 해소를 위해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를 분할·합병하는 내용의 지배구조 개편안을 발표했는데, 엘리엇이 “현대차그룹의 개편안은 주주에게 세금 부담을 줄 수 있다”며 새로운 안을 내놓은 것이다. 엘리엇은 현대차와 기아차, 현대모비스 등 3개사 주식을 10억달러어치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엘리엇은 또 지난 2일에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한국 정부의 부당한 개입으로 손해를 봤다”며 한국 정부를 상대로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ISD는 외국 투자자가 투자국 정부의 부당한 정책 변화나 개입으로 손해를 입었을 때 제기하는 국제 소송이다.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반대하며 삼성과 치열하게 표 대결까지 펼쳤던 엘리엇이 3년 만에 다시 한국에 태풍을 몰고 오는 양상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인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이 모두 태풍의 영향권에 들어 있다. 태풍 피해를 줄이려면 태풍의 진행 속도와 중심기압, 최대풍속 같은 구체적인 정보를 알아야만 한다. 상륙을 앞두고 있는 엘리엇이라는 태풍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할 것들을 정리했다.


2015년 7월 17일 삼성물산 임시 주주총회에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안이 통과됐다. / 블룸버그


엘리엇은 어떻게든 이긴다

“수박만 아니었으면, 엘리엇이 한국에서 승리했을지도 모른다.”

지난해 12월 엘리엇을 집중 분석한 미국 경제 전문지 ‘포천’의 기사는 수박으로 시작했다.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놓고 엘리엇은 삼성그룹과 치열한 표 대결을 펼쳤다. 엘리엇은 삼성물산보다 제일모직의 기업 가치를 높게 평가한 삼성그룹의 합병안이 오너 일가에게 유리하고 다른 주주들에게는 불리하다고 주장했다. 양측은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했고, 결국 삼성물산 임시 주주총회에서 표 대결이 펼쳐졌다. 승자는 삼성그룹이었다. 삼성물산 직원들은 임시 주주총회를 앞두고 한 표라도 모으기 위해 ‘수박’을 들고 소액주주를 찾아다녔다. ‘포천’이 이야기한 바로 그 수박이다. 물론 수박은 단순히 과일만 의미하는 건 아니다. 삼성그룹은 여론을 유리하게 조성하기 위해 엘리엇을 ‘돈을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벌처펀드(Vulture Fund)’로 묘사했다. 결국 엘리엇이 삼성그룹의 여론전에 무릎을 꿇었다는 게 ‘포천’의 분석이다.

삼성그룹과 엘리엇의 대결이 ‘포천’의 관심을 끈 이유는 간단하다. 지난 5년간 엘리엇이 유일하게 패배한 싸움이었기 때문이다. 엘리엇은 지난 5년 동안 적어도 50개 기업에 행동주의 방식으로 투자했다. 지난해 1년 동안 투자한 기업만 19개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엘리엇이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한 유일한 곳이 바로 한국,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안이었다.

바꿔 이야기하면 엘리엇은 50번의 싸움 중 49번은 이겼다는 말이다. 지난 5년간 삼성그룹을 제외하면 모든 기업이 엘리엇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같은 기간 글로벌 헤지펀드 전체의 연평균 수익률이 4.7%였는데, 엘리엇의 대표 펀드인 ‘엘리엇 어소시에이츠’의 연평균 수익률은 9.7%였다. ADP를 공격했다가 실패한 빌 애크먼이나 제너럴모터스(GM)와의 대결에서 참패를 당한 데이비드 아인혼 같은 사례가 행동주의 펀드에서는 수두룩하다. 그런데도 엘리엇 혼자 독야청청 압도적인 승률을 유지하고 있다. 포이즌 필을 고안해 행동주의 펀드의 저승사자로 불리는 마틴 립튼 변호사마저도 “엘리엇의 실전 지침서(book of deals)가 행동주의 투자 분야에서는 가장 유익할 것”이라고 말할 정도다. 도대체 엘리엇은 어떤 방법을 쓰는 걸까.

행동주의 투자는 기업 가치가 오르기를 가만히 기다리는 게 아니라, 투자 회사의 사업 전략에 변화를 주거나 구조조정, 지배구조 개편 등 경영 전반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방식이다. 이런 행동주의 펀드 가운데 가장 좋은 성과를 내는 게 엘리엇이다. 영국의 투자 정보 업체인 액티비스트 인사이트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행동주의 펀드’ 순위에서 엘리엇은 2015년과 2016년 두 해 연속 1위에 올랐다.

엘리엇은 글로벌 기관투자자나 소액주주의 마음을 잘 읽는다. 소수 지분을 가지고도 판을 흔들고 승리를 쟁취하는 비결이다. 예컨대 세계 최대 광산 업체인 호주의 BHP빌리턴은 셰일오일 붐이 일자 미국 텍사스주 일대의 땅을 거액을 주고 사들였다. 이후 국제 유가가 하락하면서 큰 손실을 입었지만 BHP빌리턴은 셰일 사업을 오히려 확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때 엘리엇이 제동을 걸었다. BHP빌리턴 지분 4.1%를 매입한 엘리엇은 셰일 사업을 포기하라고 BHP빌리턴 경영진을 압박했다. 글로벌 기관투자자들은 엘리엇의 요구가 합리적이라고 판단했고, 날이 갈수록 엘리엇의 우호세력이 늘어났다. 결국 BHP빌리턴은 지난해 셰일오일을 포함한 미국 투자자산을 구조조정하겠다고 선언했다.

미국의 대형 로펌인 깁슨 던(Gibson Dunn)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엘리엇은 2015년과 2016년 두 해 동안 미국에서 10개 기업에 행동주의 투자를 했다. 이 중 8개 기업에서 엘리엇은 투자 시행 6개월 만에 수익을 내는 데 성공했다. 엘리엇이 개입하면 기업의 실적이 좋아지고 주가가 오르는 게 공식처럼 굳어지면서 글로벌 기관투자자와 소액주주들은 기꺼이 엘리엇의 우군이 되고 있다. 액티비스트 인사이트는 “엘리엇이 투자한 기업에 엘리엇을 따라 투자했을 경우 얻을 수 있는 동행수익률이 26.3%에 달했다”며 “칼 아이칸의 동행수익률(4.3%)을 훌쩍 뛰어넘는다”고 말했다.

때로는 승리를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모습도 보여준다. 항공우주부품 업체인 아르코닉(Arconic)과의 일전이 대표적인 사례다. 엘리엇은 지난해 1월 주가수익률이 형편없다며 아르코닉의 최고경영자(CEO) 클라우스 클라인펠드(Klaus Kleinfeld)의 사퇴를 요구했다. 아르코닉 이사회는 처음에 이를 거절했다가 4개월 뒤에 결국 클라인펠드를 사퇴시킬 수밖에 없었다.

‘포천’에 따르면 이 기간에 엘리엇은 사립 탐정을 고용해 클라인펠드와 아르코닉 임원들의 약점을 찾아다녔다. 엘리엇은 ‘포천’의 보도를 부인했지만, 행동주의 투자의 전장에서는 서로의 약점을 찾아다니는 건 일상 같은 일이다.

클라인펠드가 CEO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엘리엇은 멈추지 않았다. 엘리엇은 지난해 5월 아르코닉의 주주들에게 종이 위임장과 동영상 재생기를 뿌렸다. 동영상 재생기는 4분 분량의 광고 영상을 담고 있었는데, 클라인펠드가 얼마나 경영을 못했는지에 대한 내용으로 가득 차 있었다. 엘리엇이 동영상 재생기를 수만 명의 아르코닉 주주에게 발송하는 데만 300만달러 정도를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데이비드 로즈워터 모건스탠리 주주행동주의 및 기업방어그룹 대표는 “제대로된 행동주의 투자를 하려면 영리한 것에서 그치지 않고 나쁜 사람이 되겠다는 의지도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4일 열린 텔레콤 이탈리아 주주총회에서 엘리엇이 최대주주 비방디를 꺾었다. / 블룸버그


엘리엇은 한국을 노린다

엘리엇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최근 미국에서 행동주의 투자의 기세는 한풀 꺾인 모습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S&P500 지수의 수익률은 8.7%였는데, 행동주의 투자자의 수익률은 2.9%에 그쳤다. 2012년에만 해도 행동주의 투자자의 수익률이 20.9%로 S&P500 수익률(13.4%)을 훌쩍 앞섰는데, 그 이후 행동주의 투자는 계속해서 내리막이다. 전체 행동주의 펀드의 운용자산(AUM)도 2015년 상반기 이후 하락세다.

미국 내 전체 펀드 자금 흐름을 봐도 인덱스펀드(주가지표 움직임에 연동되게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펀드)에 자금이 몰리고, 액티브펀드(시장수익률을 초과하는 수익을 올리기 위해 펀드매니저가 적극적으로 운용 전략을 펴는 펀드)에서는 자금이 빠져나가고 있다. 행동주의 펀드는 대표적인 액티브펀드다. 조승빈 대신증권 연구원은 “인덱스 관련 상품 비중이 높아지면서 지수 관련 상품 운용사인 뱅가드와 블랙록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며 “이는 행동주의 펀드의 움직임을 제한하는 요인이 된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운신의 폭이 좁아지면서 행동주의 펀드가 눈을 돌린 곳이 바로 아시아와 유럽이다. 액티비스트 인사이트에 따르면 유럽에서 행동주의 펀드가 투자한 기업은 2015년 72개에서 2016년 97개로 늘었다. 아시아에서도 같은 기간 52개에서 77개로 늘었다.

행동주의 투자의 기수인 엘리엇도 마찬가지다. 엘리엇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반대 의견을 내고, 현대차그룹에 관심을 보인 것도 모두 2015년 이후의 일이다.

유럽에서도 엘리엇의 입김이 거세다. 엘리엇은 지난 4일 이탈리아 최대 통신사인 텔레콤 이탈리아(TIM) 이사회를 장악했다. TIM 최대주주인 프랑스계 미디어 회사 비방디(Vivendi)와 표 대결을 펼친 끝에 승리했고, 결국 엘리엇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사회를 구성할 수 있었다. 지난달에는 영국의 요식 업체인 ‘위트브레드’를 공격해 커피 사업 자회사인 ‘코스타 커피’의 분할 요구를 관철시키기도 했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지역은 PBR(주가수익비율)과 ROE(자기자본순이익률) 같은 주식시장의 수익 관련 지표가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 비해 낮은 편이다. 게다가 스튜어드십 코드가 이제 막 도입되기 시작하는 등 주주가치를 높이려는 각국 정부의 의지가 강하다. 그만큼 엘리엇 같은 행동주의 펀드가 활동하기 좋은 무대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plus point

엘리엇을 움직이는 사람들

폴 싱어·존 폴락·제시 콘 ‘사냥꾼 3형제’


폴 싱어 엘리엇 회장은 일흔을 넘겼지만 여전히 엘리엇 투자의 최종 결정을 책임지고 있다. / 블룸버그

폴 싱어가 1977년 엘리엇을 세울 때 초기 자금은 130만달러가 전부였다. 가족과 친구들에게서 끌어모은 돈이었다. 지금은 엘리엇의 운용자산이 390억달러에 달한다. 행동주의 펀드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2위인 서드포인트(Third Point)와의 격차가 두배에 달한다.

세계 최대 행동주의 펀드를 만든 주역이지만 배경은 평범하다. 약사의 아들로 태어난 폴 싱어 회장은 미국 로체스터대에서 심리학을 전공하고 하버드대에서 법학으로 석사 학위를 땄다. 도널드슨 러프킨 앤드 젠렛에서 부동산 전문 변호사로 일하던 폴 싱어는 1977년에 엘리엇을 세웠다. 초창기에는 공매도나 전환사채 차익거래 같은 투자 전략을 내세웠지만 성과는 신통치 않았다. 그러다 1987년 블랙먼데이(뉴욕 증시에서 하루 만에 주가가 22.6% 급락한 사건)를 겪고 행동주의 투자로 방향을 선회했다. 이후 잘 알려진 것처럼 폴 싱어는 세계 최대 행동주의 펀드 왕국을 세웠다.

폴 싱어는 외부 노출을 삼간다. 행동주의 투자의 특성상 적이 많기 때문이다. 자신은 이미 얼굴이 알려져 있어 어쩔 수 없지만, 엘리엇 직원들은 얼굴이 노출되지 않도록 한다. 직원들의 소셜미디어 활동을 금지하고, 온라인 어디에도 얼굴 사진을 올리지 못하게 하고 있다.

공화당의 주요 지지자 중 한 명이었지만 최근에는 공화당과 거리를 두고 있다. 폴 싱어 회장은 트럼프 낙선 운동에 자금을 지원했고, 동성애자 인권을 옹호하는 활동도 한다.

폴 싱어 회장 대신 엘리엇의 얼굴 역할을 하는 이는 존 폴락 공동 최고경영자(CEO)다. 폴 싱어 회장은 2015년 존 폴락을 공동 CEO에 선임하고 그 뒤로는 대외 활동을 삼가고 있다. 대신 폴락 CEO가 대내외에서 엘리엇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 폴락 CEO는 1989년부터 엘리엇에서 일하고 있다. 폴락 CEO는 2016년에 미국 경제 매체 ‘배런스’와의 인터뷰에서 “삼성전자를 포함한 모든 한국 주식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저평가돼 있는데, 이는 기업 지배구조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엘리엇의 실제 투자를 담당하고 있는 제시 콘 포트폴리오 매니저도 빼놓을 수 없다. 아직 마흔이 되지 않은 제시 콘은 모건스탠리에서 기업 인수·합병(M&A) 담당자로 일하다 2004년 엘리엇에 합류했다. 철인3종 경기 선수를 하기도 한 콘은 ‘협상의 달인’으로 불린다.

뉴욕의 대형 로펌인 슐츠로스앤드자벨의 마크 웨인가튼 공동의장은 ‘포천’과의 인터뷰에서 “폴 싱어가 아직도 최종 결정을 내리지만, 엘리엇의 실권은 제시 콘이 행사한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이종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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