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삼구(맨 오른쪽)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지난 4일 서울 광화문 본사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기내식 대란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 사진 조선일보DB
박삼구(맨 오른쪽)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지난 4일 서울 광화문 본사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기내식 대란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 사진 조선일보DB

“그동안 국민 여러분께 아시아나 기내식 사태로 인해 심려를 끼쳐서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은 지난 4일 오후 서울 광화문 금호아시아나그룹 본사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최근 발생한 ‘기내식 대란’에 대해 사과했다. 아시아나항공이 기내식 공급업체를 바꾸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면서 기내식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이달 초 아시아나항공의 운항이 줄줄이 지연됐고, 일부 노선에서는 기내식 없이 항공기를 운항하기도 했다. 아시아나항공에 기내식 서비스를 제공하던 하도급업체 대표가 자살까지 하면서 기내식 대란은 일파만파로 커졌고, 결국 박 회장이 90도로 고개를 숙여야 했다.

“우리는 사과의 시대에 살고 있다.”

TV와 신문,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보면 기업이 올려놓은 사과 광고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제품이나 서비스에 문제가 생기고, 이 사실이 소셜미디어나 뉴스를 통해 전해지면 기업들은 주저없이 사과문을 쓴다.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 덕분에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정보를 접하고 이를 주변 사람들에게 전하고 있다. 문제가 커지기 전에 즉각 사과를 하는 게 당연한 상식이 됐다. 로버트 마이어(Robert Meyer)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교수는 이런 상황을 가리켜 ‘사과의 시대’라고 표현했다. 마이어 교수는 와튼스쿨 ‘위기관리 센터’의 공동 책임자를 맡고 있다.

‘즉시 사과’의 법칙을 지킨 사례는 국내외에서 적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국내에서 대표적인 사례는 코오롱이다. 2014년 2월 17일 밤 9시 15분쯤 코오롱이 운영하는 경주의 한 리조트가 붕괴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10명이 죽고 100여명이 부상을 당한 대형 사고였다. 이웅열 코오롱 회장은 전화로 사고 발생 소식을 보고받고 즉각 과천의 코오롱 사옥으로 향했다. 그리고 밤 11시쯤 사고 현장인 경주로 내려갔다. 이 회장은 다음 날 오전 6시에 사고 현장에서 직접 “유가족께 엎드려 사죄드린다”는 사과문을 읽었다. 이후 사고 수습을 직접 지휘하는 모습을 보였다. 코오롱 리조트 붕괴 사고는 인재(人災)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코오롱의 발 빠른 사과는 기업 위기관리의 모범으로 남았다.

존슨앤드존슨은 즉시 사과 전략을 성공적으로 활용한 대표적인 해외 기업이다. 존슨앤드존슨의 경우 1982년 10월 타이레놀 캡슐을 먹은 사람이 청산가리 중독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위기관리팀을 구성하고 사건이 발생한 시카고 지역에서 리콜을 실시했다. 미국 연방수사국(FBI)과 식품의약국(FDA) 조사 결과, 타이레놀 제조 과정이 아니라 약국 유통 과정에서 청산가리가 들어간 것으로 확인됐지만, 존슨앤드존슨은 미국 전역으로 리콜을 확대했다. 이후 존슨앤드존슨은 유통 과정에서 제품을 변조할 수 없게 포장을 강화한 제품을 10주 뒤 출시했다. 타이레놀의 시장점유율은 사건 직후 급락했지만, 존슨앤드존슨의 빠른 대응 덕분에 오래지 않아 원래 수준을 회복했다.

도요타는 차량 가속페달 문제에 잘못 대처하면서 곤경에 처했다. 2010년 2월 미국 상원 청문회에 출석한 도요다 아키오 도요타 사장. 사진 블룸버그
도요타는 차량 가속페달 문제에 잘못 대처하면서 곤경에 처했다. 2010년 2월 미국 상원 청문회에 출석한 도요다 아키오 도요타 사장. 사진 블룸버그

반대의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일본의 도요타는 2009년 차량 가속페달 결함으로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일가족이 사망하는 사고가 생겼지만, 운전자에게 잘못을 돌렸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조사 결과 가속페달에 구조적인 문제가 있는 게 확인됐고, 도요타의 아키오 CEO는 미국 의회 청문회장에서 사죄해야 했다.

이렇게 사과하는 타이밍에 따라 위기관리의 성패가 갈리다 보니 ‘즉시 사과’가 위기관리의 만병통치약처럼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즉시 사과는 만병통치약이 아닐 뿐더러 오히려 문제를 키울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무조건적 빠른 사과 정답 아닐 수도

어메리커스 리드(Americus Reed) 와튼스쿨 교수는 “많은 기업이 ‘미안함 버튼’을 들고 다니면서 대중에게 용서를 빌고 있는데, 이런 공격적인 사과 캠페인이 회사의 문제를 뉴스에 다시 노출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리드 교수는 “대중은 너무나 바쁘고 특정 기업의 문제에 대해 생각하기에는 너무 많은 일들이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다”며 “기업의 사과 캠페인이 사람들이 잊어버린 문제를 다시 상기시키는 것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위기관리 분야의 베테랑인 이안 미트로프 서던캘리포니아대 명예교수도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미트로프 교수는 기업이 모든 종류의 위기상황에서 항상 잘못을 인정하는 태도를 보일 필요는 없다고 지적한 바 있다. 사과를 한다는 건 기업이 모든 잘못을 인정하고 법적, 경제적 책임을 지겠다는 선언과 다름없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트로프 교수는 “문제에 대한 확실한 자료가 있거나 명분이 있다면 위기에 맞서는 방식으로 대처해도 된다”고 말했다.

마이어 교수와 리드 교수는 사과를 하지 않고 위기를 넘긴 대표적인 사례로 미국의 대형 투자 은행인 골드만삭스를 꼽았다. 골드만삭스는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주택모기지 관련 금융 상품을 판매하면서, 투자 위험을 고객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는 혐의로 2010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기소됐다. 그해 4월 27일 미국 상원에서는 골드만삭스의 임원들을 불러 청문회를 진행했다. 여러 의원이 골드만삭스의 임원들을 향해 날을 세웠지만, 골드만삭스는 단 한마디의 사과도 하지 않았다. 로이드 블랭크페인 골드만삭스 CEO는 “사람들이 돈을 잃은 건 주택시장이 급락했기 때문”이라며 “애초에 고객들은 위험을 감수하고 투자를 했고, 이 비즈니스가 원래 이렇다”고 말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많은 사람이 골드만삭스 같은 월스트리트의 대형 투자은행을 향해 분노를 표출했다. 일반적인 기업이었다면 발 빠르게 사과를 하는 식으로 대응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골드만삭스는 대중을 향해 사과문을 발표하는 선택을 하지 않았다. 마이어 교수는 “기업이 사과를 할지 말지 결정할 때는 이해관계자들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며 “골드만삭스가 신경써야 할 이해관계자는 투자자들이었기 때문에 사과를 하지 않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골드만삭스가 잘못을 인정하면 법적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투자자들 입장에선 결코 반길 수 없는 상황이다. 골드만삭스는 자신들의 이해관계자를 위해 사과를 하지 않는 선택을 한 것이다.

무조건 빨리 사과하는 게 능사는 아니라는 건 심리학자들도 동의한다. 심리학자인 신시아 프란츠와 커트니 베니그손은 2005년에 ‘빠른 것보다 늦은 것이 낫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은 앰허스트칼리지 대학생 82명을 대상으로 사과의 타이밍에 대한 반응을 담고 있다. 실험 참가자들은 세 개의 시나리오를 읽고 자신의 감정 상태를 표현했는데, 세 개의 시나리오는 각각 ‘대화를 시작하자마자 사과를 하는 것’ ‘대화를 나누다 사과를 하는 것’ ‘사과를 아예 하지 않는 것’이었다. 논문은 ‘대화를 나누다 사과를 하는’ 시나리오가 실험 참가자들의 마음을 가장 크게 누그러뜨렸다고 지적한다. 즉시 사과를 하는 것보다 상대방으로 하여금 분노를 충분히 표현하게 한 뒤에 사과를 하는 게 더 낫다는 말이다.

‘즉시 사과’ 전략의 또 다른 단점은 기업이 문제를 제대로 파악할 시간도 없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2014년 12월 5일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은 뉴욕 JFK공항에서 이륙하려던 대한항공 KE086편 항공기를 돌려세웠다. 기내 서비스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항공기에 타고 있던 사무장을 내리게 한 것이다. 며칠 뒤 이 사건이 보도되자 대한항공은 사과문을 발표했다. 비교적 빠른 대응이었지만, 사과문의 내용이 문제였다.


사과보다 중요한 건 문제를 고치는 것

대한항공은 승객들에게 불편을 끼쳐서 죄송하다면서도 잘못은 조 전 부사장이 아닌 사무장에게 있다며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였다. 대한항공의 사과문은 진정성이 없다는 비판을 받았고, 이후 소셜미디어와 언론의 취재를 통해 사건 정황이 속속 드러나면서 사건은 일파만파로 퍼져 나갔다. 결국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까지 나서서 공식 석상에서 머리를 숙였고, 조 전 부사장은 1심에서 징역 1년, 2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대한항공은 2014년 ‘땅콩 회항’ 사건 당시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아 큰 어려움을 겪었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검찰에 출석하기 앞서 취재진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 사진 조선일보 DB
대한항공은 2014년 ‘땅콩 회항’ 사건 당시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아 큰 어려움을 겪었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검찰에 출석하기 앞서 취재진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 사진 조선일보 DB

사과를 빨리 하는 게 좋은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기업이 문제를 빨리 고쳐야 한다는 데에는 여러 전문가가 동의한다. 그리고 전문가들은 기업이 보여줘야 할 사과의 메시지는 과거에 잘못한 것보다 미래에 어떻게 문제를 고칠지에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예컨대 케임브리지애널리티카(CA) 스캔들이 터지면서 수천만 명의 페이스북 이용자 개인정보가 불법적으로 활용됐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는, 나중에는 공식적으로 사과하기는 했지만, 스캔들이 터지고 한참 동안 침묵을 지켰다. 페이스북도 CA에 잘못을 전가하는 태도로 일관하다 뒤늦게 사과했다. 페이스북의 이런 미숙한 위기관리에 비판이 쏟아졌다. 와튼스쿨의 모리스 슈바이처(Maurice Schweitzer) 교수는 “사과 이후에 무언가가 실제로 바뀔 것이라는 믿음을 주는 게 중요한데, 페이스북의 사과에서는 이런 진심이 느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인 김호 전 에델만코리아 대표와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가 함께 쓴 ‘쿨하게 사과하라’에는 기업이 사과할 때 지켜야 할 세 가지 법칙이 나와있다. 세 가지 법칙은 ‘인정과 사과’ ‘해명’ ‘대책’인데, 저자들은 이 중에서도 대책에 주목한다. 저자들은 “보상책과 재발 방지를 위한 구체적 조치를 언급하는 등 말로만 끝나는 사과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를 제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plus point

기업, 소셜미디어 활용 늘어날수록 더 큰 위기 노출

이종현 기자

미국 버지니아의 한 도미노피자 매장에서 직원이 피자를 만들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미국 버지니아의 한 도미노피자 매장에서 직원이 피자를 만들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소셜미디어는 기업의 경영 방식을 완전히 바꿔놓고 있다. 소셜미디어로 인해 위기에 빠지는 기업이 생기는가 하면 소셜미디어 덕분에 위기에서 탈출하는 기업들도 있다. 도미노피자가 위기에 빠졌다가 이를 극복하는 과정은 소셜미디어의 영향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2009년 4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의 도미노피자 매장에서 남녀 직원이 고객에게 배달할 피자에 장난을 쳤다. 이들은 피자에 들어갈 치즈에 신체 이물질을 넣는 등 엽기적인 행동을 하는 모습을 찍어서 동영상 공유 사이트인 ‘유튜브’에 올렸다. 이 동영상은 삭제되기 전까지 조회수 200만 건을 넘길 정도로 많은 사람이 봤다. 사람들은 영상을 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트위터 등 다른 소셜미디어로 영상을 공유했고, 도미노피자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확산됐다.

도미노피자 경영진은 처음 영상이 올라오고 44시간이 지나서야 사실을 확인했다. 도미노피자 경영진이 택한 해결책은 소셜미디어를 활용하는 것이었다. 패트릭 도일 도미노피자 최고경영자(CEO)는 직접 사과 동영상을 찍었고, 이를 유튜브에 올렸다. 문제가 발생한 유튜브를 사과 채널로도 활용한 것이다.

도미노피자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트위터에 공식 채널을 열어서 소비자들과 직접 소통하기 시작했다. 효과는 즉각 나타났다. 많은 소비자가 도미노피자가 아닌 철없는 직원들의 잘못이라는 사실을 인지했고, 도미노피자에 대한 긍정적인 여론이 형성됐다.

김호 전 에델만코리아 대표와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 등은 도미노피자 사건에 대한 트위터상 실제 대화 2만773개를 직접 분석했다. 도일 CEO의 공개 사과 전후로 소셜미디어에서 도미노피자에 대한 여론이 어떻게 바뀌었나를 비교한 것이다.

분석 결과를 보면 사과 전까지만 해도 트위터 대화의 80% 정도가 도미노피자에 부정적인 내용이었는데, 사과 이후에는 52%로 낮아졌다. 긍정적인 내용은 0.3%에서 6.3%로 늘었다. 단순 정보 공유 등 중립적인 내용은 20.1%에서 41.7%로 증가했다.

소셜미디어로 위기를 겪은 기업은 도미노피자만이 아니다. 전 세계 거의 모든 기업이 소셜미디어를 소비자와의 소통이나 홍보에 활용하면서 문제도 끊이지 않고 있다. 글로벌 미디어 업체인 IAC의 저스틴 사코 기업 커뮤니케이션 디렉터는 런던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 전 ‘아프리카로 출발! 에이즈에 걸리지 않기를 바라요!’라는 트윗을 썼다가 결국 회사에서 해고됐다. IAC도 전 세계에서 지탄을 받았다.

크라이슬러의 트위터 계정을 운영하던 뉴미디어 대행사의 한 직원은 크라이슬러 트위터 계정으로 ‘디트로이트에는 운전할 줄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데 모터시티라는 게 참 아이러니하네요’라는 글을 올렸다가 회사에서 해고됐다. 대행사도 크라이슬러와의 계약을 해지당했다.

LG경제연구원은 소셜미디어 활용이 늘어날수록 기업들은 더 큰 위기에 노출된다며 소셜미디어의 양면성을 잘 살펴야 한다고 조언한다.

LG경제연구원은 소셜미디어 리스크를 분석한 보고서에서 “기업들이 리스크를 줄이려면 소셜미디어 활용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수립하고, 직원들을 대상으로 소셜미디어 활용법에 대한 교육을 철저하게 해야 한다”며 “위기 발생 시 적절한 타이밍에 대응할 수 있도록 모니터링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종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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