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는 하반기 중 여의도 마스터플랜을 발표할 예정이다. 박원순식 여의도 개발의 핵심은 시범·광장·미성 등 오래된 재건축 아파트 단지의 기부채납 비율이 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는 하반기 중 여의도 마스터플랜을 발표할 예정이다. 박원순식 여의도 개발의 핵심은 시범·광장·미성 등 오래된 재건축 아파트 단지의 기부채납 비율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여의도를 ‘한국의 맨해튼’으로 키우는 안을 공개하면서 박원순식 개발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최고 50층까지 건물 높이를 올려 수변 스카이라인을 조성하는 내용으로, 박 시장은 여의도를 주거·상업·녹지 공간이 어우러진 초고층 국제 금융 도시로 만들 계획이다.

여의도 마스터플랜이 공개된 것은 7월 10일 박 시장이 리콴유 세계도시상을 받기 위해 싱가포르를 방문한 자리에서였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여의도를 통으로 재개발할 것”이라며 “공원과 커뮤니티 공간을 보장하면서 건물 높이를 높일 계획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여기에서 여의도를 “신도시에 버금가는 곳으로 만들겠다”고 말하며 여의도 개발이 파격적인 수준이 될 것을 예고했다.

서울시는 현재 박 시장이 언급한 ‘여의도 일대 종합적 재구조화 방안(여의도 마스터플랜)’을 준비하고 있다. 하반기 중 발표될 예정인데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시는 여의도 전역을 상업지역화해 초고층 건물로 재건축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여의도의 대표적 재건축 대상인 시범·진주·대교·한양·삼부아파트는 현재 일반주거시설로 정해져 있어 35층 고도 제한을 받고 있지만, 시가 용도 변경을 허가하면 최고 50층 건물로 재건축할 수 있다. 한강변에 있는 여의도 초·중·고등학교를 재배치하고 한강공원 녹지 공간을 확대하는 안도 거론되고 있다. 강변을 선착장으로 개발해 배가 드나들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서울시는 여의도 교통도 정비한다는 계획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상습 정체 구간으로 꼽히는 여의도와 노량진 사이를 잇는 길을 새로 만들고 여의도와 용산을 잇는 새로운 교통수단을 검토하고 있다. 시 관계자는 “지하철뿐 아니라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 서부경전철 등이 지날 예정인 등 각종 교통 인프라가 잘 마련된 곳이기 때문에 추가 철도 시설 계획은 없다”면서도 “개발 이후 인구밀도가 높아질 것에 대비해 도로 폭을 확대하는 등 정비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재건축·오피스 시장은 ‘들썩’

박 시장의 발표 후 여의도 부동산 시장이 기대감에 들썩이고 있다. 7월 17일 재건축이 가장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여의도 시범아파트 상가 부동산 일대에서 서(西) 여의도 지역 매물을 단 한 건도 찾을 수 없었다. 마스터플랜 발표 직후 일부 체결된 계약을 제외하고는 집주인들이 매물들을 다시 거둬들였기 때문이다.

시범아파트 상가에 있는 A부동산 사장은 “매매가가 최소 5000만원에서 1억원까지 올랐는데도 매물이 없다”고 전했다. 박 시장의 발표 전 시범아파트 시세는 79.33㎡(24평) 12억원, 119㎡(36평) 14억원대였다. 시세 17억원 수준이었던 158㎡(48평) 아파트가 바로 전날 17억4000만원에 팔렸다. 매수자가 매물이 있는지 확인 전화를 건 뒤에 곧바로 계약금으로 17억원을 입금했다고 한다. 이날 기자가 A부동산에 머문 20분 남짓 동안 여의도 아파트 매물을 찾는 2통의 전화가 걸려왔지만, 사장은 “물건이 없다”며 전화를 끊었다.

여의도의 또 다른 재건축 대상 광장아파트에 있는 B부동산에서는 이미 박 시장의 마스터플랜에 대한 설명이 한창이었다. 부동산을 찾은 40대 후반의 한 부부는 “여의도 투자 가능성을 알아보려고 들렀다”고 말했다. 부동산 사장은 “하루 1~2건 수준이던 아파트 매매 관련 전화 문의가 박 시장의 발표 이후 하루에 5~10건 정도로 증가했다”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마스터플랜 발표 이후 여의도 아파트 재건축 과정이 상당한 진통을 겪을 것이란 예측이 지배적이다. 각 조합에서 개별적으로 추진하던 재건축 계획이 시의 마스터플랜에 묶여 움직일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재건축 단지들이 기존 정비 계획을 대대적으로 수정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지난달 20일 시범아파트는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에 개발 기본 계획 변경안을 제출했지만 심의 보류 결정을 받기도 했다.

특히 여의도 재건축 단지 중 가장 먼저 신탁사를 선정해 속도를 내던 시범아파트 주민들의 불만이 크다. 시범아파트 C부동산 사장은 “시범아파트 신탁사인 한국자산신탁에서 시 담당자를 찾아가는 등 여러 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 측은 마스터플랜과의 정합성을 맞추면서도 단지별 개발 계획도 가능한 한 존중한다는 입장이다. 시는 마스터플랜안에 맞춰 법적 효력을 가진 지구단위계획을 구상 중이다. 마스터플랜은 법적으로 재건축 사업을 구속하지 못한다. 시 관계자는 “연말이나 내년 상반기까지 아파트 지구단위계획을 결정하고 그 이후 단지가 정비 계획을 결정하는 게 일반적 수순”이라면서도 “시범아파트 노후화에 따른 불안 등 주민 의견을 존중해서 지구단위 계획 결정 전에라도 단지 측의 정비 계획이 결정될 수 있도록 주민과 협의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서여의도 용도별 구분
서여의도 용도별 구분

여의도 통합 개발은 공실 공포에 휩싸인 이 지역 오피스 시장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층고를 올리려면 주거 지역의 법적 용도를 일반상업지역으로 변경해 용적률(대지면적에 대한 건축물 바닥면적의 비율)을 높여야 한다. 가구 수가 늘어나는 대신 일정 수준을 오피스 등 비주거시설로 채워야 하는데, 현재 여의도 대형 오피스 빌딩의 공실률이 이미 10%를 웃돌고 있다는 게 문제다. 현재 건설 중인 파크원, 여의도 우체국, 사학연금, 옛 MBC 사옥까지 들어서면 공급 과다 현상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한화63시티에 따르면 연면적 3만㎡ 이상 대규모 빌딩인 FKI타워(전경련 회관)와 서울국제금융센터(IFC)의 2분기 공실률은 14.6%를 기록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여의도에 둥지를 틀고 있던 LG 계열사들이 마곡으로 대거 이전한 영향이다. 이주가 본격적으로 진행됐던 지난해 4분기와 올해 1분기(각각 17% 이상)와 비교해 떨어졌지만 지난해 같은 기간(13.0%)보다는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곽수지 한화63시티 연구위원은 “대규모 빌딩 공실률이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는데 파크원 등이 완공되면 이런 현상은 더 심화할 것”이라며 “대형 임차인이 여의도 외부에서 유입돼야 하는데 대기업들이 권역을 이탈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쟁점 1│개발 소극적이었다 갑자기 추진

부동산 전문가들은 박원순 시장이 ‘신도시급 여의도 개발’을 언급한 배경에 관심을 보인다. 도시 경쟁력 강화 측면에서는 긍정적으로 해석할 수 있지만, 앞선 2번의 임기에서 재개발·재건축을 규제하는 등 개발 억제 정책을 고수해왔던 탓이다. 이번 여의도 마스터플랜이 파격적이라는 표현도 나온다. 실제로 박 시장은 그동안 마을 가꾸기, 도시 정비 등을 통한 도시 재생에 치중해왔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마지막 3선 임기에서 눈에 띄는 업적을 내놔 차기 대권 도전의 발판을 마련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하기도 한다. 업계 관계자는 “이명박은 사라져도 청계천은 남지 않았는가”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3선 임기에 들어가서야 뒤늦게 개발 계획이 나온 게 당혹스럽다”면서 “도시 경쟁력 강화와 부동산 시장 안정은 양립이 어려운 키워드로 고민해 봐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시장 임기와 개발에 걸리는 시간의 차이를 박 시장이 어떻게 극복할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아파트 재건축의 경우 사업 준비단계부터 재건축 시행, 착공까지 보통 10년이 걸리는데, 박 시장은 3선 임기 4년 안에 어느 정도 기틀을 잡아놔야 하는 상황이다. 현재 여의도 재건축 단지 대부분은 사업 준비단계에서 막혀 있는 등 초기 단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쟁점 2│한강 르네상스 재연

여의도는 이명박, 오세훈 등 역대 서울 시장 재임 때도 국제 금융 도시 개발이란 이름으로 들썩였던 전례가 있다. 이 때문에 부동산 시장 전문가들은 이번 박 시장의 여의도 마스터플랜이 과거처럼 시장만 흔들다 좌초될 가능성을 우려한다.

2011년 오세훈 전 시장의 ‘한강 르네상스’가 대표적이다. 당시 오 전 시장은 여의도 통합 재개발을 추진했다. 11개 아파트단지, 61만4301㎡의 용도를 3종 일반주거지역에서 상업지역으로 변경하는 방식의 고밀도 개발이었다. 하지만 기부채납 비율을 조합원들의 예상(25%)과 다르게 40%로 설정하면서 주민들의 거센 반대에 부딪혔고 백지화됐다.

이번에도 기부채납 비율이 핵심 쟁점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크다. 정비 구역의 일부를 공공 지역으로 기부하는 기부채납 비율이 높아지면 주민들의 반대가 커지지만, 반대로 이 비율이 낮아지면 여의도 주민 특혜 논란에 휩싸일 수 있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실제로 3종 일반주거지역에서 상업지구로 용도를 변경하면 땅 가치가 뛰게되는데, 그만큼 시에선 개발 이익을 환수할 것”이라면서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지에 따라 방향이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 측은 과거의 실패 사례를 반영해 개선된 계획을 세우겠다는 입장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오 전 시장의 개발 계획은 기부채납 비율 등이 과도한 수준이었기 때문에 무산됐던 것”이라며 “박원순 시장의 계획은 여의도 전체의 변화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50년 전 개발로 조성된 여의도의 시설물들이 일시에 노후화될 가능성도 있는 데다, 개별적으로 추진하면 난개발이 될 가능성이 있다. 그는 “전체적인 계획을 세워 개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쟁점 3│초고층 형평성 문제

50층은 재건축을 앞둔 아파트 조합원들 사이에서 ‘꿈의 높이’로 불린다. 현재 서울시는 아파트 재건축 최고 높이를 35층으로 제한하고 있다. 이 규제에 막혀 압구정·대치·한남 등 주요 재건축 대상 단지들이 서울시와 갈등을 빚고 있다. 조합원으로서는 아파트가 높아질수록 조망이 좋아져 가치가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강남구 은마아파트는 49층 초고층 재건축을 고집하다가 번번이 심의에서 퇴짜를 맞아 35층으로 방향을 선회하기도 했다.

여의도는 박 시장의 마스터플랜과 서울시 최상위 도시계획인 ‘2030서울 플랜’에 따라 상업지구의 경우 최고 50층 주상복합아파트 개발이 가능하다. 오히려 다른 재건축 단지와의 형평성 문제가 제기되는 부분이다. 업계 관계자는 “한강변 다른 지역은 오히려 35층으로 제한돼 불이익을 받고 있었는데, 여의도에만 특혜를 준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면서 “고도 제한이 부동산 시장 안정화 방편이라고 하지만 오히려 이해 관계자들의 갈등으로 시장 안정을 해칠 수도 있다”고 말했다.


Plus Point

여의도 개발의 역사

1960년대 후반 여의도 개발이 시작됐다. 사진 서울시
1960년대 후반 여의도 개발이 시작됐다. 사진 서울시

여의도가 한국의 ‘금융 메카’가 된 것은 여의도 개발 역사에서 찾을 수 있다. 불과 50년 전까지만 해도 여의도는 비가 와 한강물이 불어나면 섬의 절반 정도가 잠기는 모래섬이었다. 1916년 일제가 간이 비행장을 건설한 후 1956년까지 공군 비행장으로 쓰이던 여의도는 17대 서울시장 김현옥의 재임 기간 개발 역사를 시작했다.

‘불도저’라는 별명의 김 전 시장이 여의도 개발 계획을 위해 근처 밤섬을 폭파해 제방을 쌓은 일화는 유명하다. 이때 서울대교(현 마포대교)가 개통되면서 여의도 발전은 힘을 얻기 시작했다. 1971년 지어진 여의도 시범아파트는 국내 최초로 엘리베이터와 스팀난방 시설을 갖춰 그 시대 기준 최첨단 아파트로 지어졌다. 이후 광장아파트·삼부아파트·장미아파트 등 여의도를 대표하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

여의도가 정치·경제 중심지의 면모를 갖추게 된 건 1975년 여의도 동쪽에 국회의사당이 들어서면서다. 이어 KBS, 증권거래소 등이 차례로 생기면서 증권가가 생겼고, 각계의 엘리트가 유입됐다. 1983년 63빌딩 완공으로 여의도는 신도시 이미지의 정점을 찍었다. 여의도 토박이 김범기 금성부동산 부장은 “1980년대 당시, 단지마다 관용차가 즐비했고 여의도고등학교 재학 당시 8개 과목 과외를 하고 있는 동급생이 있을 정도로 여의도는 부자들의 동네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점차 강남과의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하면서 부촌 명성이 퇴색했다. 학부모들이 반포·목동 등지로 빠져나간 탓에 학군도 나빠졌다. 화려했던 대규모 아파트 단지들도 시간이 지나며 낡아갔다.

다시 여의도 부동산 시장이 꿈틀대기 시작한 때는 2000년대 이후다. 2006년 서울국제금융센터(IFC) 건물이 착공에 들어가고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2011년 한강 르네상스 계획의 일환으로 여의도 재개발 계획을 밝히면서 여의도 전역이 들썩였다. 하지만 시의 과도한 기부채납 요구에 개발안이 좌초됐다. 2012~2013년 여의도 집값은 바닥 수준까지 떨어졌다. 그러다 오랜 기간 공터로 남겨져 있던 통일교 부지에 2016년 파크원 공사가 재개되면서 기대감이 싹텄고, 최근 박원순 시장의 여의도 마스터플랜이 발표되면서 주민들의 기대가 한껏 치솟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