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성향이 보수에 가까울수록 명품을 선호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정치 성향이 보수에 가까울수록 명품을 선호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명품 산업은 인간의 ‘과시욕’을 양분 삼아 성장해왔다. 자신의 높은 지위를 타인에게 알리고, 나아가 그들로부터 존중이나 찬양을 받고 싶은 인간의 욕구가 명품 산업을 키워냈다. 과시욕을 충족시켜주기 위해 명품은 누구나 쉽게 넘볼 수 없는 고귀한 존재여야 했고, 이 때문에 명품 기업은 각 사회의 상류층만 이용할 수 있는 값비싼 제품을 생산해왔다. 즉 명품이 사회를 계층화하는 역할을 수행한 것이다. 우리 사회는 명품을 구매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으로 나뉜다.

보수주의와 진보주의로 나뉘는 정치 이데올로기 역시 명품과 마찬가지로 사회 계층화 역할을 한다. 보수주의는 관습적인 전통 가치를 옹호하고, 기존 사회 체제의 유지와 안정적인 발전을 추구한다. 동시에 경제적 자유를 외친다.

그 반대 진영에 있는 진보주의는 기존 체제에 대항하면서 변혁을 통해 사회를 새롭게 바꾸려 하고, 경제적 평등이라는 가치를 옹호한다. 정치적 이데올로기는 각 계층을 어떻게 나눠야 하는지, 같은 계층에서도 각자의 지위는 어떻게 나뉘는지, 자원은 어떻게 분배해야 하는지 등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 큰 영향을 미친다.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계층에 따른 소비자의 신념을 만들었다면, 개인의 지위와 밀접하게 연결된 명품 소비에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다비드 뒤부아(David Dubois) 프랑스 인시아드대학원 마케팅 교수는 ‘소비자의 정치적 이데올로기와 지위 유지 목표의 상호작용이 명품 구매 욕구를 형성하는 방법(How Consumers’ Political Ideology and Status-Maintenance Goals Interact to Shape Their Desire for Luxury Goods)’이라는 논문을 통해 이에 대한 답을 내놨다. 정치 성향과 명품 구매욕은 밀접한 인과관계가 있는데 특히 보수 성향이 강할수록 명품에 대한 선호가 강하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롤렉스 광고. ‘클래스는 영원하다(Class is forever)’라는 슬로건을 통해 롤렉스의 최고급 이미지를 부각했다. 사진 롤렉스
롤렉스 광고. ‘클래스는 영원하다(Class is forever)’라는 슬로건을 통해 롤렉스의 최고급 이미지를 부각했다. 사진 롤렉스

보수, 지위 유지 위해 명품 선호

명품 광고 유형은 두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지위 유지 유형이다. 명품을 구매하면 현재 당신이 누리고 있는 지위를 더욱 공고화할 수 있다는 점을 부각하는 것이다. 스위스 시계 기업 ‘롤렉스’의 2013년 광고가 대표적이다. 이 광고에서는 ‘백발’이 트레이드 마크인 모델 카르멘 델로피체(Carmen DellOrefice)가 롤렉스 시계를 차고 등장한다. 그의 어깨엔 롤렉스의 대표 슬로건 ‘클래스는 영원하다(Class is forever)’가 쓰여 있다. 1931년생인 델로피체는 현존하는 최고령 모델로, 활동을 시작한 1947년부터 정상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델로피체와 슬로건을 통해 롤렉스는 시간이 아무리 많이 지나도 물질적인 가치 그 이상의 역할을 한다는 점, 각 분야에서 성공을 거둔 이들만 살 수 있는 특별한 시계라는 점을 직관적으로 표현했다.

두 번째는 지금보다 한 단계 높은 지위로 올라서고자 하는 이들을 타깃으로 한 광고다. 2008년 영국 자동차 제조사 ‘애스턴 마틴’은 자사 최상급 수퍼카 ‘원(One)-77’을 출시하며 ‘예술 작품을 통해 삶에 가치를 더한다(Adding a piece of art adds value to life)’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원-77은 총 77만 대만 한정 생산된 차로, 당시 약 21억원에 달하는 몸값을 자랑했다. 아우디 역시 2012년 ‘당신이 서 있는 위치, 아우디로 끌어올려라(update your status with status)’라는 광고를 선보였다. 자사 제품이 최고인 만큼, 이 제품을 구매한다면 소비자의 지위 역시 함께 높아질 수 있다는 의미다.

뒤부아 교수는 명품 기업이 이 같은 광고 유형을 계속 유지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이는 보수주의 소비자와 연관 있다. 보수주의 소비자는 사회·경제적 계층 질서를 유지하는 경향이 있고, 또 계층 변화에 반감을 가지고 있다. 즉 이들은 명품을 구매함으로써 자신의 지위를 보존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명품을 사는 경향이 있다고 경험적으로 추론했다. 단 반드시 지위가 향상될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지위 향상 역시 그들에겐 또 다른 ‘변화’이기 때문이다.


선글라스 광고 세 가지 유형. 왼쪽부터 ‘지위 향상’ ‘지위 유지’ ‘지위 관계 없음’을 나타냈다. 사진 다비드 뒤부아
선글라스 광고 세 가지 유형. 왼쪽부터 ‘지위 향상’ ‘지위 유지’ ‘지위 관계 없음’을 나타냈다. 사진 다비드 뒤부아

그러나 이는 경험적 추론일 뿐 보다 정확하게 개인의 정치적 성향과 명품 소비 간 인과관계를 규명할 필요가 있었다. 이를 위해 뒤부아 교수는 미국 50개 주 2만1999명의 소비자가 2011년 10월부터 2012년 9월까지 구매한 자동차를 조사했다. 이 데이터에는 소비자가 구매한 자동차의 브랜드·모델과 소비자의 정치적 성향, 소득, 학력, 사회적 지위 등도 함께 포함돼 있었다.

분석 결과, 사회적 지위가 높은 보수주의자가 비슷한 지위의 진보주의자보다 고가의 자동차를 구입하는 경향이 9.8% 더 컸다. 가격으로 환산하면, 진보주의자는 자동차에 평균 2만9022달러(약 3260만원)를 썼다. 반면 보수주의자는 이보다 14% 높은 3만3216달러(약 3730만원)를 자동차에 투자했다. 뒤부아 교수는 “보수주의자의 명품 선호 현상은 그들의 지위를 지키고자 하는 욕구로 설명될 수 있다”며 “이 때문에 우리는 보수주의자가 진보주의자에 비해 지위 유지형 광고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일 것이라고 기대했다”고 말했다. 반면 지위 향상을 강조하는 광고에 대해서는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 간 반응의 차이는 크지 않으리라고 예측했다.

뒤부아 교수의 예상이 맞았다. 그는 400명의 실험자에게 같은 제품의 선글라스 광고를 세 가지로 제작해 보여줬다. 이 선글라스를 통해 높은 지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광고와 한 단계 높은 지위로 올라설 수 있다는 광고, 나머지 하나는 지위 상관없이 모두에게 사랑받는 선글라스라는 점을 부각한 광고였다. 이후 온라인 설문조사를 통해 실험자에게 선글라스 구매 의향을 물었다. 지위 유지를 강조한 광고에서 보수주의자의 구매 의지는 진보주의자를 앞섰다. 다만 지위 향상, 지위와 관계없는 광고에서는 정치 성향 간 큰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보수주의자의 지위를 유지하고 싶은 욕구는 지위를 높이고 싶은 욕구에 비해 얼마나 더 강할까. 뒤부아 교수는 실험자 300명에게 지위 유지 또는 향상에 대한 욕구가 높아지게 만드는 글을 읽게 했다. 이후 명품 헤드폰 세트에 얼마나 지불할 의향이 있는지를 조사했다. 그 결과, 보수주의자 중 지위 유지에 대한 욕구가 활성화된 이들은 평균 109.8달러(약 12만3000원)를 지불하겠다고 답했다. 반면 보수주의자 중 지위 향상에 대한 욕구가 강해진 이들은 이보다 83%나 낮은 59.9달러(약 6만7000원)까지만 지불하겠다고 답했다.

진보주의자의 구매 여력은 지위 유지에 대한 욕구가 높아졌을 때조차도 보수주의자(109.8달러)보다 69%나 낮은 65.1달러(약 7만2800원)에 불과했다. 이를 고려하면 명품 기업은 진보주의 소비자를 등지고 보수주의 소비자에게 충성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진보주의 소비자도 명품을 선호할 수 있다. 나일라 오르다바예바(Nailya Ordabayeva) 보스턴대 교수는 최근 논문을 통해 진보주의자는 자신의 ‘독특함’을 나타내기 위해 명품을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즉 명품 기업은 보수주의 소비자와 진보주의 소비자 각각의 접근법을 달리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명품 기업은 정치 이데올로기 변화 흐름에 항상 촉각을 곤두세워야 한다.
명품 기업은 정치 이데올로기 변화 흐름에 항상 촉각을 곤두세워야 한다.

명품 기업, 정치·경제 변화에 신경써야

뒤부아 교수는 “이 같은 실험 결과는 명품 브랜드의 효과적인 세분화 및 타깃팅 전략에 대한 강력한 통찰력을 제공한다”며 “정치 이데올로기, 사회적 지위 목표, 구매 습관 간의 인과관계를 확립하면 명품 제품과 서비스를 새로운 유형의 소비자 그룹에 판매할 기회가 생긴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뒤부아 교수는 명품 기업이 보다 적극적으로 정치 이데올로기 추이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소비자의 정치적 성향을 확인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지도를 보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한국의 영남은 보수, 호남은 진보로 나뉘듯, 미국도 지역색이 있다. 중부에는 공화당 지지율이, 서부나 동부에서는 민주당 지지율이 높게 나타난다. 뒤부아 교수는 “이외에도 소비자의 인터넷 검색 패턴, 선호하는 웹사이트 등 디지털 흔적을 통해서도 정치 성향을 알아낼 수 있다”며 “명품 기업은 각 소비자 성향에 맞춰 제품과 서비스를 적절하게 배치하고, 소비자가 지위를 유지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만들어 노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경제의 변화에 대해서도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환경의 변화는 보수주의자가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유지하고 싶은 욕구를 더욱 강하게 부채질하고, 이는 명품 기업에 좋은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뒤부아 교수는 “세계 경제에 대한 불안감, 또는 엘리트의 권력이나 권위를 포기하는 것과 관련된 사회적 위협은 지위 유지 욕구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다”며 “이는 명품을 구매하려는 소비자의 행동을 크게 바꿔놓을 수 있다”고 말했다.


plus point

남성호르몬 많을수록 명품 선호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을수록 명품을 선호하는 성향이 강해진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을수록 명품을 선호하는 성향이 강해진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명품 소비에 영향을 미치는 또 다른 요인 중 하나는 남성의 대표적 성(性)호르몬으로 꼽히는 테스토스테론이다. 테스토스테론은 여성에게서도 생성되지만, 성인 남성의 경우 성인 여성에 비해 테스토스테론의 분비량이 약 10배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으면 자신감이 상승한다. 쾌감을 활성화하기 때문이다. 수컷 공작이 암컷을 유혹할 때 꼬리를 활짝 펴는 행위 역시 테스토스테론 분비 때문이다.

힐케 플라스만(Hilke Plassmann) 인시아드 대학원 마케팅 교수는 테스토스테론의 이러한 성질을 고려했을 때, 남성의 명품 선호가 테스토스테론과 관계가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이를 검증하기 위해 플라스만 연구팀은 캘리포니아주 대학생 143명을 모집, 절반에겐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높여주는 알약을 주고 나머지에겐 위를 보호해주는 알약을 줬다. 테스토스테론이 혈류에 완전히 퍼진 4시간 30분 뒤, 연구팀은 브랜드 로고를 2개씩 짝지어 총 5쌍을 실험자에게 보여줬다. 캘빈클라인과 리바이스처럼, 고가 브랜드와 저가 브랜드로 인식되는 브랜드로 짝지어져 있었다. 실험 결과,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높이는 약을 먹은 실험자가 다른 실험자에 비해 상위 브랜드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두 번째 실험에서는 같은 제품을 ‘제품 품질’ ‘제품이 가진 힘’ ‘제품이 가진 지위’ 등 세 가지로 나눠 설명했다. 몽블랑 만년필을 예로 들면, ‘뛰어난 지속성과 내구성(제품 품질)’ ‘칼보다 강하다(힘)’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상징(지위)’이었다.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은 그룹은 자신의 지위를 높여줄 수 있다고 강조한 광고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반면, 품질 등을 내세운 광고에 대해서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다만 플라스만 교수는 “남성 소비자의 테스토스테론 수치는 계절과 연령, 또는 외부 요인에 의해 변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여기서 외부 요인이란, 매력적인 여성을 만났을 때나 자신이 응원하는 스포츠 팀이 경기에서 승리했을 때 등을 말한다. 이때는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상승할 수 있다. 플라스만 교수는 “소비자의 실시간 삶의 흐름을 결정적 순간에 캐치해 변화가 생겼다면 빠르게 전략에 적용할 수 있는 마케팅 도구를 고안해야 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plus point

명품 시장 지각변동 불러온 ‘밀레니얼 세대’

1980~2000년대에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가 명품 시장의 큰손으로 떠올랐다.
1980~2000년대에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가 명품 시장의 큰손으로 떠올랐다.

미국 컨설팅 업체 베인앤드컴퍼니는 지난해를 ‘명품 시장의 세대교체’가 일어난 해로 규정했다. 지난해 명품 시장은 전년 대비 5.2% 성장한 2620억달러(약 285조6000억원) 규모였는데, 이 중에서도 85%가 Y세대, Z세대로 부르는 밀레니얼 세대였다는 것이다. 밀레니얼 세대란 1980~2000년대생을 일컫는 신조어다.

밀레니얼 세대의 소비 습관은 명품 시장의 지각변동을 불러왔다. 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물건에 돈을 아끼지 않는 ‘작은 사치’를 추구한다. 남들과 차별화되지 않는 고리타분한 디자인, 틀에 박힌 명품은 거부한다. 대신 자신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튀는 디자인과 희소성 있는 브랜드를 선호한다. 딜로이트 조사에 따르면, 밀레니얼 세대는 명품 구매 시 고려 요인으로 품질, 구매력, 고유성 등을 뽑았다. 반면 명품 브랜드의 이름과 그 브랜드만이 줄 수 있는 가치 등은 그보다 저렴한 대안이 나타났을 때 즉시 힘을 잃었다. ‘포브스’는 “밀레니얼 세대가 이전 세대와 같은 ‘사치’를 원한다고 생각한다면 실수”라고 말했다.

명품 업계가 디지털 전략에 눈뜬 것도 밀레니얼 세대의 소비 성향과 연관돼 있다. 딜로이트의 ‘2017 명품의 글로벌 파워’ 보고서에 따르면, 베이비붐 세대와 밀레니얼 세대의 소비 채널은 극명한 차이를 보였다. 베이비붐 세대의 72%는 오프라인 매장에서 명품을 구입했다. 온라인과 모바일 구매는 각각 22%, 6%에 그쳤다. 반면 밀레니얼 세대 23%는 온라인에서, 19%는 모바일에서 명품을 샀다. 매장에서 명품을 사는 밀레니얼 세대는 58%로 베이비붐 세대보다 14%포인트 낮았다. 베인앤드컴퍼니는 2025년에 명품 업체의 온라인 매출 비율이 25%까지 높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포브스’는 “밀레니얼 세대의 자산 증가 추세는 10여 년 뒤 명품 시장의 새로운 흐름으로 나타날 수 있다”며 “명품 브랜드가 이전 마케팅 전략을 고수한다면, 이 흐름에서 뒤처질 수 있다. 변화에 발맞춰 명품 브랜드 역시 함께 변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윤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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