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현지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에 있는 애플 사옥 내 ‘스티브 잡스 극장’을 찾은 유튜버, 1인 미디어 등 참석자들이 신제품 아이폰과 애플워치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12일(현지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에 있는 애플 사옥 내 ‘스티브 잡스 극장’을 찾은 유튜버, 1인 미디어 등 참석자들이 신제품 아이폰과 애플워치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오른편 나무 사이로 애플 신사옥 ‘애플 파크(Apple Park)’ 일부가 눈에 들어왔다. 12일(현지시각) 오전 미국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에 있는 애플 신사옥 입구에 들어서자 나타난 풍경이었다. 도넛처럼 둥근 원형 고리 모양으로 된 이 건물은 ‘우주선’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이음매 없는 곡선의 통유리로 된 건물 안쪽으로 부산히 움직이는 애플 직원들 모습이 눈에 띄었다.

지난해 9월 이곳을 찾았을 때와 가장 달라진 것은 사옥 주변의 조경이 깔끔해진 것이었다. 당시엔 나무를 한꺼번에 많이 심다 보니 비료 냄새가 진동했었다. 이제 나무와 건물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하나의 풍경이 돼 있었다. 사옥 이름 그대로 ‘애플의 공원’을 찾은 느낌이었다.

사옥 입구에서 왼편으로 몸을 돌려 5분 정도 얕은 언덕길을 걸어 올라가니 행사가 열리는 ‘스티브 잡스 극장(Steve Jobs Theater)’이 나왔다. 애플의 신제품 발표회를 보기 위해 이곳을 찾은 세계 미디어 관계자들과 애플 보안요원들이 뒤섞여 묘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아이폰XS(텐 에스)’입니다. 애플이 만든 아이폰 중 가장 진일보한 것이죠.”

스티브 잡스 극장 단상에 오른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마치 연극무대에 선 배우처럼 고조된 목소리로 말했다. 이날은 2007년 아이폰이 세상에 처음 등장한 이후 11년 만에 나온 통산 17번째 모델 ‘아이폰XS’와 ‘아이폰XS 맥스’ ‘아이폰 XR’을 공개하는 자리였다.


필립 실러 애플 글로벌마케팅책임자가 6.5인치 대화면의 ‘아이폰XS 맥스’(오른쪽)를 기존 아이폰과 비교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AFP 연합뉴스
필립 실러 애플 글로벌마케팅책임자가 6.5인치 대화면의 ‘아이폰XS 맥스’(오른쪽)를 기존 아이폰과 비교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AFP 연합뉴스

화면·저장장치·카메라 대폭 개선

신제품 이름에 S가 붙는 것은 놀랄 만한 외관 변화보다는 성능 개선에 무게를 뒀다는 의미다. 실제 공개된 아이폰XS는 전작인 아이폰X와 외관상으로는 큰 변화를 찾기 힘들었다. 지문 인식 대신 얼굴 인식 기술, LCD(액정표시장치) 대신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화면을 각각 채용한 것, 홈버튼을 없앤 것도 전작과 똑같았다. 화면크기도 5.8인치로 같았다. 아이폰XS 맥스의 경우 이 크기를 6.5인치까지 확 키웠다. 지난달 출시된 삼성전자의 갤럭시노트9(6.4인치)보다도 크다. 애플은 이번 아이폰XS 모델에 대용량 메모리 512GB를 처음으로 채택했다. 아이폰XS 맥스 가격은 1099달러에서 시작하지만, 512GB 모델의 경우 1499달러에 달한다. 지난해 나온 아이폰X의 999(64GB)~1149달러(256GB)를 훌쩍 뛰어넘는 것이다. 애플이 아이폰X 출시 때와 비슷한 수준의 환율을 적용, 한국 출고가를 책정한다면 아이폰XS맥스 512GB 모델은 사상 처음으로 200만원을 넘길 가능성이 높다.

한편 아이폰 XR은 값비싼 OLED 대신 LCD를 화면으로 쓰고, 테두리를 싸는 소재도 고강도 스테인리스 스틸 대신 알루미늄을 써서 값을 749달러로 낮췄다. 성능과 기능은 아이폰 XS와 비슷했다. 다만 ‘이를 보급형 모델로 볼 수 있는가’를 두고 정보기술(IT) 리뷰 전문 유튜버들 사이에서는 “솔직히 749달러도 싸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는 의견도 나왔다.

가장 큰 성능 변화는 디자인이나 특정 기능보다도 반도체 성능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애플은 ‘A12 바이오닉’이라는 새 스마트폰용 중앙처리장치(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를 내놓았다. 대만 반도체 위탁생산업체인 TSMC가 7나노미터(㎚·10억분의 1m) 공정으로 제작한 A12 바이오닉 칩은 현재 대부분의 스마트폰에 탑재되는 10나노 공정 기반 AP와 비교해 성능과 소비전력을 최대 40% 개선하는 효과가 있다. 여기에는 아이폰X와 마찬가지로 인공지능 학습 기능도 들어갔다. 이를 통해 사진 한 장을 찍는 과정에서 무려 1조회의 연산을 진행, 전작 아이폰에서 구현했던 아웃포커싱(피사체 배경을 흐리게 만드는 것) 기능에서 나아가 처음으로 인물의 뒷배경 심도를 조절할 수 있게 됐다. 굳이 DSLR을 사지 않아도 전문가 같은 사진을 촬영하는 쪽으로 한발 더 다가간 것이다.


12일(현지시각) 애플의 아이폰 신제품을 만져보기 위해 스티브 잡스 극장에 모여 있는 참석자들. 사진 AFP 연합뉴스
12일(현지시각) 애플의 아이폰 신제품을 만져보기 위해 스티브 잡스 극장에 모여 있는 참석자들. 사진 AFP 연합뉴스

아이폰 신제품 3종과 함께 공개된 4세대 애플워치는 화면이 30% 커지고, 더욱 정확한 심박 측정을 위해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의료기기 승인을 받아 스마트워치 최초로 심전도 측정센서를 장착했다. 의료기기, 원격진료 등에 대한 규제 때문에 심전도 스마트폰을 3년 전 개발해놓고도 상용화하지 못한 국내 상황과 대조적이다. 이 센서는 운동하지 않는데 갑자기 심장이 빠르게 뛴다거나, 심지어 가끔씩 자기도 모르게 심장이 뛰지 않는 부정맥도 짚어준다. 시계에 손가락을 대면 몸에 약한 전기를 흘려서 심장의 이상 신호를 읽어내기도 한다. 이 정보는 별도로 기록되고, 문서로 뽑아 진료 정보로 활용할 수도 있다.

‘시계’로서의 매력도 어필했다. 쿡 CEO는 애플워치를 소개하면서 ‘이제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시계’ ‘스마트워치가 아니라 세계 시장에서’라는 수식어를 강조했다. 애플워치는 전 세계 스마트워치 시장에서 점유율 41%를 기록하고 있다. 스위스 전통 시계들도 위협하고 있다.


애플이 촬영된 인물 사진의 심도를 조절하는 기능을 설명하고 있다. 기존의 아웃포커싱 기능에 심도 조절까지 활용하면 아이폰만으로도 전문가에 준하는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사진 최호섭 객원기자
애플이 촬영된 인물 사진의 심도를 조절하는 기능을 설명하고 있다. 기존의 아웃포커싱 기능에 심도 조절까지 활용하면 아이폰만으로도 전문가에 준하는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사진 최호섭 객원기자

1000달러 안팎의 고가 전략의 이면

아이폰XS 발표가 끝나갈 무렵 소비자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리사 잭슨 애플 부사장이 무대에 올랐다. 환경 문제를 담당하는 그는 “애플은 재생에너지를 이용해 자원 재활용에도 나서고 있다”면서 “심지어 구형 제품에서 수거한 플라스틱 울림통, 강화유리 소재 등 부품 일부를 가공해 신제품에 실제로 사용했다”고 말했다.

신제품에 재활용 소재를 사용한다는 것도 매우 놀라웠지만, 더 놀라운 것은 그다음이었다. 잭슨 부사장은 “제품을 더 오래 쓸 수 있게 할 것”이라며 “그러면 소비자도 좋고 지구도 좋다”고 말했다.

애플 입장에서는 소비자들이 자주 스마트폰을 교체하는 것이 실적에 보탬이 된다. 그런데 그의 말대로 애플이 신제품 내구성을 높이고 소프트웨어와 운영체제 개선 등을 통해 구형 모델을 1년 이상 더 쓰게 한다면, 애플은 어떻게 될까.

스마트폰 시장은 하드웨어 교체주기가 늘어나면서 역성장에 직면해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 소비자의 스마트폰 교체 주기가 2014년 23개월에서 최근 31개월로 늘었으며, 내년에는 33개월로 더 늘어날 것”이라고 전했다. 실제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SA)는 올해 글로벌 스마트폰 전체 출하량이 14억8100만대로 지난해(15억80만대) 대비 역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현재 스마트폰 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삼성전자의 연간 출하량도 3억대를 밑돌 것으로 추정했다. 2013년 연간 스마트폰 출하량 3억1980만대를 기록한 삼성은 사상 처음 3억대를 넘긴 이후 지난해까지 3억대 선을 지켜왔다. 애플의 경우 지난해 2억1580만대에서 올해 2억1960만대로 출하량이 약간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지만, 의미 있는 수준은 아니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박형우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하반기 아이폰 신제품을 사려는 대기 수요가 있기는 하지만 스마트폰 산업이 전반적으로 부진하고 아이폰이 999달러 이상의 프리미엄급으로 평균판매가격대가 높아진 상황이어서 판매량이 깜짝 놀랄만큼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애플은 ‘오래 쓸 거라면 단단하게 제대로 만들어주겠다. 대신 돈을 더 내라’는 전략으로 맞서고 있는 것이다. 이는 애플의 가격 정책을 보면 뚜렷해진다. 애플은 지난 2016년까지는 신제품 가격을 649달러로 고수하다가, 화면을 크게 만든 ‘플러스’ 모델을 만들면서 가격을 100~120달러 올렸다. 지난해 아이폰X를 내놓으면서는 가격대를 999달러로 확 띄웠다. 이번에 내놓은 아이폰XS와 아이폰XS 맥스를 1000달러 안팎의 프리미엄 모델로 내놓고 보급형 모델이라는 스마트폰(아이폰XR)조차 기존의 일반모델보다 가격대를 높였다. 가격대에 대한 일부 소비자들의 비난에도 애플은 높은 가격대를 무기로 지속 성장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올해 애플이 미국 상장 기업 중 최초로 시가총액 1조달러를 넘어서는 데도 큰 영향을 미친 요소다.

애플의 성장에는 2007년 아이폰을 내놓은 뒤 10년 넘게 구축해 온 생태계와 여기서 나오는 매출도 매우 큰 역할을 했다. 전 세계의 애플 아이폰 사용자는 13억명에 달한다. 애플은 이들로부터 기기값 외에도 앱 판매 수수료(거래금액의 30% 정도), 음악 구독료, 기타 서비스 이용료 등의 명목으로 기기당 연간 30달러를 벌어들이고 있다. 모건스탠리는 최근 보고서에서 “지난 5년간 애플의 매출 증가에서 아이폰이 차지한 비율은 86%에 달했지만 향후 5년간은 앱스토어 같은 서비스 분야가 전체 60%를 담당하게 될 것”이라고 추정했다.


plus point

애플 파크와 스티브 잡스 극장

애플의 아이폰 신제품 발표회가 열린 스티브 잡스 극장 외관. 얇은 지붕, 통유리벽이 특징이다. 사진 최호섭 객원기자
애플의 아이폰 신제품 발표회가 열린 스티브 잡스 극장 외관. 얇은 지붕, 통유리벽이 특징이다. 사진 최호섭 객원기자

지난해 4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에 총면적 26만㎡(약 7만8000평) 규모의 부지에 지상 4층, 지하 3층의 저층형 건물로 완공된 애플 신사옥 ‘애플 파크’는 스티브 잡스의 유산이다. 그는 이미 1998년 ‘픽사’ 대표를 맡던 시절부터 애플 파크와 같은 신사옥 건설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무실은 “우연한 마주침(encounters)과 계획되지 않은 협업(unplanned collaborations)이 수시로 일어나는 공간”이었다. 그는 건축가 노먼 포스터에게 “새로운 애플은 모든 것이 한 지붕 아래 있어야 한다”며 이 같은 철학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오늘날 많은 회사들이 벤치마킹하는 사무실 디자인 철학이다. 각층의 복도는 직원들이 이동하다 수시로 만날 수 있도록 열려있으며, 도넛 모양 안쪽에 조성된 공원도 직원들의 우연한 만남을 유도하도록 설계됐다. 유현준 유현준건축사무소 소장은 최근 ‘이코노미조선’과의 인터뷰에서 “직원들의 창의성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애플 신사옥처럼 직원들이 자주 만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잡스의 이름을 딴 ‘스티브 잡스 극장’은 애플이 제품 출시 행사를 진행하기 위해 외부에 공개하는 강당 목적으로 지어졌다. 신사옥 부지의 언덕 꼭대기에 자리하고 있다. 겉에서 보는 외관은 얇고 편평한 지붕과 안이 훤히 보이는 통유리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실제 극장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1층 복도에서 유리벽면을 끼고 지하로 이어져 있는 계단을 내려가야 한다. 이곳에서 신제품 발표회가 진행된다. 극장 앞으로는 참석자들이 신제품 아이폰을 만져볼 수 있는 공간도 마련돼 있다.

plus point

스티브 잡스 극장 가득 채운 유튜버

빨간 셔츠를 입은 인기 유튜버 마르케스 브라운리가 스티브 잡스 극장에 들어서자 참석자들이 몰려 인증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 최호섭 객원기자
빨간 셔츠를 입은 인기 유튜버 마르케스 브라운리가 스티브 잡스 극장에 들어서자 참석자들이 몰려 인증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 최호섭 객원기자

애플 행사장을 직접 찾는 재미 중 하나는 누가 이곳을 찾았는지 둘러보는 것이다. 삼성 등 다른 스마트폰 업체의 신제품 공개 행사를 가면 여전히 유명한 IT 기자나 칼럼니스트를 만날 수 있지만, 애플 행사장에서만큼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이번 행사에서 스티브 잡스 극장을 가득 메운 참석자들의 상당수는 유튜버들이었다.

이들 중에는 수백만명의 팬을 보유한 이도 있었다. 유튜브에서 ‘MKBHD’라는 이름으로 영상을 올리는 마르케스 브라운리(Marques Brownlee)가 스티브 잡스 극장에 들어서자 그를 알아본 참석자들이 우르르 그의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670만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그를 알아보고 ‘인증사진’을 찍으려는 것이었다.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모두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이지만 인기 유튜버를 바라보는 시선은 여느 아이돌팬 못지 않았다.

유튜브나 페이스북 라이브 같은 영상매체를 통해 IT 신제품 리뷰를 소비하는 경우가 늘면서 공식 행사를 마친 뒤 제품을 직접 만져보는 전시장 분위기도 사뭇 달라졌다. 많은 참석자들이 사진기 대신 스마트폰과 마이크를 들고 기계 구석구석을 훑으며 동영상을 촬영했다. 1인 유튜버의 경우 서로 촬영을 도와주거나 동반 출연하는 ‘협업’도 잇따랐다.

최호섭 객원기자, 장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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