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현지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 지역 애플 사옥 내 스티브 잡스 극장에서 열린 신제품 행사에서 팀 쿡 최고경영자가 4세대 애플워치를 소개하고 있다. 사진 AP 연합뉴스
12일(현지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 지역 애플 사옥 내 스티브 잡스 극장에서 열린 신제품 행사에서 팀 쿡 최고경영자가 4세대 애플워치를 소개하고 있다. 사진 AP 연합뉴스

12일(현지시각) 신제품 발표를 앞둔 애플 파크(Apple Park‧미 캘리포니아 애플 신사옥) 내 스티브 잡스 극장에 영화 ‘미션 임파서블’의 주제곡이 흘러나왔다. 세계 최강의 스파이 기관 IMF 소속 에단 헌트(톰 크루즈)의 활약과 22년 동안 함께 해왔던 4분의 5박자 마성의 멜로디. 폭탄의 도화선이 타들어가는 긴박한 순간에도 불가능해 보이는 임무를 끝내 완수한다는 의미의 대명사다.

극장의 어둠을 깨고 앞쪽의 대형 스크린이 밝아진다. 녹음(綠陰)이 우거진 애플 파크에서 이 음악과 함께 등장한 한 애플 여직원이 은색 트렁크 가방을 들고 애플 파크를 가로질러 달린다. 애플의 음성인식서비스 시리(Siri)와 애플워치(착용형 스마트시계)의 도움으로 스티브 잡스 극장 뒤쪽에 도착한 그녀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은 백발의 팀 쿡 최고경영자(CEO). 쿡은 그녀에게 건네받은 가방을 진지한 표정으로 열고, 그 안에서 클리커(프레젠테이션 도구)를 꺼낸다. 웃음 띤 얼굴로 클리커를 오른손에 치켜든 채 무대로 나가는 장면에서 화면이 꺼지고, 똑같은 포즈의 쿡 CEO가 실제 무대에 등장한다.

‘애플 스페셜 이벤트 2018’의 문을 연 쿡의 얼굴에는 지구상에 존재했던 그 어느 기업도 이루지 못했던 기업가치 1조달러(시가총액)를 한 달 전에 이뤄냈다는 자신감이 묻어났다. ‘대체불가능(irreplaceable)’한 사람으로 불렸던 전임자 스티브 잡스의 이름을 딴 극장에서 그는 잡스의 죽음으로 한때 애플의 몰락을 우려했던 세계 사람들에게 익살스럽게 질문했다. “이 비디오 재미있었나요?”

이날 행사에 쿡과 함께 나선 사람은 제프 윌리엄스(55) 최고운영책임자(COO)와 필립 실러(58) 글로벌 마케팅책임자(CMO)였다. 혼자 대부분의 프레젠테이션을 주도했던 잡스와 달리 철저히 역할 분담을 해서 순간순간 바통 터치를 하며 강력한 팀워크를 과시했다. 다만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성격으로 공개석상에 좀처럼 모습을 보이지 않던 조너선 아이브 최고디자인책임자(CDO)는 이번 발표장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애플 그 자체로 불리던 잡스 사후에도 더 건재한 모습으로 애플이 성공적인 경영을 이어갈 수 있는 것은 이들을 비롯한 주요 임원진들이 재고관리와 수요예측, 마케팅과 디자인 등 기업의 기초체력을 끊임없이 갈고 닦은 노력 때문이었다.

쿡은 ‘재고는 악’이라 믿는 SCM(공급망관리·Supply Chain Management) 전문가다. IBM(1983~94), 인텔리전트일렉트로닉스(1994~97), 컴팩(1997) 등 정보기술(IT)업체에서 16년간이나 SCM을 담당했다. SCM은 제품공급과 생산‧조립, 유통, 배송이 모두 유기적으로 맞물려 연결되는 게 핵심이다.


(왼쪽부터) 제프 윌리엄스 최고운영책임자(COO). 조너선 아이브 최고디자인책임자(CDO). 필립 실러 글로벌마케팅책임자(CMO).
(왼쪽부터) 제프 윌리엄스 최고운영책임자(COO). 조너선 아이브 최고디자인책임자(CDO). 필립 실러 글로벌마케팅책임자(CMO).

이번 행사에도 그는 이렇게 다양한 요소들을 서로 톱니바퀴처럼 연결시키는 지휘자의 역할을 다시 한 번 보여줬다. 본인은 이번 제품 발표를 관통하는 ‘개인적인(personal)’이라는 키워드를 제시하고 이와 연결된 건강, 개인정보 보안 등의 이슈는 후속 발표자들이 자연스럽게 이어받아 설명할 수 있도록 연출했다.

팀 쿡은 1998년 애플의 글로벌 운영팀 부사장으로 영입된 후 이 회사의 직영공장을 모두 없애고 아웃소싱 방식의 생산시스템을 도입했다. 또 전 세계 100여개가 넘는 업체로부터 구입하던 부품도 아일랜드, 중국, 싱가포르 등 3개국에서 모두 조달하도록 했다. 부품을 모아 조립하는 것은 인건비가 싼 중국에서 하도록 정리했다. 또 부품과 자재 보관 창고는 조립라인과 같은 공장 터에 마련했고 배송은 항만이 아닌 항공을 이용해 운송 시간을 단축했다. 애플 제품이 언제든 가능할 때 소비자에게 발송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팀 쿡이 온 지 1년 6개월 만에 재고물량은 70일치에서 1일치가량으로 줄었다.

팀 쿡이 9분간의 발표를 마치고 불러낸 사람은 서열 2위 윌리엄스였다. 그는 푸른색 남방에 짙은 남색 청바지를 입고 나타나 애플워치를 공개했다. 차분한 목소리로 애플워치의 기능을 설명한 그는 13년간 IBM에서 일할 때부터 쿡과 함께한 인물이다. 1998년 애플의 구매 부문 책임자로 합류했고 이후 2004년부터는 운영 담당 부사장, 2010년부터는 유통망·서비스·고객 지원 등을 거쳤다. 애플워치의 개발도 총괄했기 때문에 이번 행사에서 애플워치 부문을 전담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팀 쿡 CEO가 가장 신뢰하는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아이폰을 소개한 임원은 녹색 남방을 입고 나타난 실러 CMO였다. 윌리엄스보다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아이폰의 최신 기능을 설명한 그는 1997년 잡스가 CEO로 복귀하면서 함께 애플에 합류한 잡스의 최측근이었다. 아이맥, 맥북, 아이패드, 아이폰, 애플TV 등 애플이 내놓은 주요 제품의 개발과 마케팅을 주도했다. 현재는 전 세계에서 판매되고 있는 애플 제품의 마케팅을 총괄하고 있다. 실러는 프레젠테이션을 위해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는 퍼포먼스도 마다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1999년 맥북을 소개하는 뉴욕 프레젠테이션 행사에서 내구성을 보여주기 위해 맥북을 들고 안전장치 없이 3층 높이에서 뛰어내렸다. 밑에는 얇은 매트리스만 있었다.

한편 ‘애플 디자인의 심장’으로 불리는 조너선 아이브 CDO는 행사에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는 잡스의 마지막 작품인 ‘애플 파크’를 디자인하기 위해 두문불출했고 최근 제품 디자인 업무에 복귀했다. 애플 파크에 대해 아이브는 “우리 자신들을 위한 공간을 (이렇게 거대하게) 만드는 일은 과거에 없었고 앞으로도 다시는 없을 것”이라면서 “애플파크는 우리와 우리 제품이 더 나아지도록 만드는 장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