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국과 인도 자동차 시장 성장세가 꺾이면서 ‘피크 카 이론’이 힘을 얻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최근 중국과 인도 자동차 시장 성장세가 꺾이면서 ‘피크 카 이론’이 힘을 얻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2011년 세계 자동차 산업계, 교통 학계에 흥미로운 논문이 발간됐다. 미국에서 젊은층을 중심으로 운전면허증 발급 비율이 줄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미시간대 교통연구소의 마이클 시박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16~19세 미국인 중 운전면허증을 가진 사람 비중은 1983년 46~87%에서 2011년 27~69%까지 떨어졌다.

대중교통 발달과 도시화 등으로 자동차 수요가 정점을 지나 정체 혹은 감소할 것이라는 ‘피크 카(Peak Car)’ 이론의 시발점이었다. 이 이론은 미국, 영국, 독일 등 자동차 보급률이 높은 선진국을 중심으로 퍼졌다.

최근 피크 카 이론이 다시 힘을 얻고 있다. 이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자동차 업계의 신흥 시장 중국과 인도의 성장세가 꺾이면서부터다. 중국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인 2009년, 인도는 2017년 각각 미국과 독일을 제치고 세계 1, 4위의 자동차 시장으로 급부상했다. 7~9%대로 성장하던 두 나라 경제는 정체된 선진국 외에 새 시장을 찾던 자동차 기업들에 돌파구가 됐다.

하지만 최근 이 두 신흥 시장이 흔들리고 있다. 중국은 지난해 28년 만에 처음으로 자동차 판매량이 전년보다 감소하며 역성장한 데 이어 현지 자동차 공장 가동률도 급락하고 있다. 경기 둔화로 내수 시장이 위축되는 가운데, 미·중 무역전쟁이 자동차 수요의 발목을 잡았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포드의 중국 현지 공장 가동률은 11%, 푸조시트로엥(PSA)그룹 공장 가동률은 1% 밑으로 떨어졌다. 자동차 공장 손익분기점이 80%인 것과 비교하면 공장을 돌릴수록 손실이 나는 셈이다.

인도 자동차 시장도 올해 들어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 인도 자동차제조사협회(SIAM)에 따르면 지난 2분기(4~6월) 자동차 판매량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18.4% 감소했다. 2000년(23.1% 감소) 이후 최악이다. 월별로는 8개월 연속 판매가 줄고 있다. 금융권에서 잇따라 디폴트(채무불이행)가 터진 탓에 자동차 대출 시장이 급격히 얼어붙은 데다, 자동차 보험·배기 가스 규제 강화 등이 성장에 급제동을 걸었다.

이에 따라 올해 세계 자동차 시장 전망도 나빠졌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2년 연속으로 자동차 판매량이 감소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영국 시장 조사회사 자토다이나믹스에 따르면 작년 세계 자동차 판매량은 8601만 대로 전년보다 0.5% 감소했다. 9년 만에 역성장했다. 올해 상반기 추정치는 4510만 대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6.7% 감소한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이런 움직임이 가속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연결(Connectivity)·자율주행(Autonomous)·공유(Sharing)·전동화(Electrification)를 중심으로 세계 자동차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컨설팅회사 KPMG는 차량을 2대 이상 보유한 미국 가구 비중이 현재 57%에서 2040년 43%까지 떨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포스코경영연구원의 박형근 수석연구원은 “자율주행기술이 완성되면 이 기술을 탑재한 로봇택시 등 새로운 이동 수단이 각광받을 것”이라며 “이 기술이 언제 완성되느냐에 따라 ‘피크 카’ 이론이 현실화되는 시기가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적과의 동침’도 OK…이종·경쟁사 간 합종연횡 가속화

산업계 변화를 앞두고 자동차 회사들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일부 회사들은 이미 지난해부터 공장 폐쇄, 인력 감축 등의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작년 GM이 북미 지역 공장 5곳을 폐쇄하고 직원 15%(약 1만5000명)를 감축한 데 이어, 지난 6월에는 포드도 유럽 지역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했다. 공장 6곳의 문을 닫고 20%(약 1만2000명) 인력을 감원하는 내용이다.

다른 한편으로 자동차 회사들은 경쟁사와의 협력도 마다하지 않는다. 미래 자동차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서는 신기술을 개발하고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전통 자동차 브랜드들에는 테슬라, 우버같이 신기술·신개념으로 무장한 새로운 경쟁사들이 떠올랐고, 이들의 시장 가치도 전통 자동차 브랜드를 넘어서고 있다.

차량 공유 서비스 우버는 지난 1분기 10억달러(약 1조2000억원) 순손실을 냈지만 시가총액은 673억달러에 달한다. 피아트크라이슬러(184억유로), 르노(151억유로)를 더한 것보다 많다.

‘영원한 라이벌’ 메르세데스-벤츠와 BMW는 지난 3월부터 자율주행차를 공동으로 개발하고 있다. 2024년 운전자 개입이 필요 없는 완전 자율주행차(레벨4)를 양산하는 것이 목표다. 이를 위해 메르세데스-벤츠의 모기업 다임러와 BMW의 자율주행 전문가 1200명이 공동 연구 개발팀에 참여하고 있다.

최근 포드와 폴크스바겐, BMW와 재규어도 각각 짝지어 전기차 개발에 협력하기로 했다. 최종 무산됐지만 지난 5월 이탈리아·미국계 자동차 회사 피아트크라이슬러(FCA)와 프랑스 르노자동차가 합병을 시도한 것도 이 같은 맥락이었다.

이종(異種)과의 결합을 통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려는 시도도 있다. 지난달 도요타는 중국 최대 차량 공유 업체인 디디추싱에 6억달러(약 7100억원)를 투자하기로 했다. 중국 현지에 디디추싱과 합작 법인을 설립해 차량 관리, 정비, 보험, 금융 서비스를 진행할 예정이다.


plus point

세계 자동차 업계 고전하는데 폴크스바겐·도요타는 어떻게?

세계 자동차 수요가 정점을 지나 감소 조짐을 보이는 상황에서 상반기 도요타의 글로벌 판매량이 나홀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1위 폴크스바겐, 3위 르노·닛산·미쓰비시 연합, 4위 제너럴모터스(GM), 5위 현대·기아차 모두 전년 동기 대비 판매량이 감소한 가운데 도요타의 약진이 주목받았다.

도요타는 상반기 차 판매량이 전년 같은 기간보다 2% 증가한 531만1806대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세계 2위다. 2분기(4~6월) 순이익도 전년 동기보다 3.9% 증가한 6829억엔(약 7조8000억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도요타는 경쟁사들이 고전하고 있는 중국 시장에서 실적을 올리고 있다. 특히 자사 고급 브랜드 렉서스가 지난해 말 출시한 ‘ES’ ‘UX’ 등이 현지에서 잇따라 성공을 거두면서 시장 점유율이 높아지고 있다. 실제로 상반기 중국 시장에서 렉서스 판매량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36% 증가한 9만5000대를 기록했다.

폴크스바겐도 상대적으로 견고했다. 작년 상반기 세계 1위였던 르노·닛산·미쓰비시 연합이 판매량 급감(6.1%)으로 3위로 내려앉은 상황에서 폴크스바겐 판매량은 2.8% 감소하는 데 그쳤다. 여기엔 폴크스바겐의 수익성 관리 전략이 주효했던 것으로 보인다. 회사는 대당 마진이 낮은 세단의 비중을 줄이고, 마진이 높은 SUV 비중을 높이는 방식으로 전략을 수정했다. 실제로 지난달에는 수익성이 낮은 ‘뉴비틀’ 생산도 중단했다. 지난해 25%였던 SUV 판매 비중은 지난 6월 35%까지 올라갔다. 그 결과 2분기(4~6월) 결산에서 판매는 275만 대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3% 감소했지만, 매출은 651억8500만유로(약 88조5000억원)로 7% 증가했다. 2분기 순이익도 23% 증가한 39억6400만유로(약 5조4000억원)였다. 폴크스바겐은 2025년까지 30종이 넘는 SUV 포트폴리오를 완성할 계획이다.

송현 기자

  • 목록
  • 인쇄
  • 스크랩
  • PDF 다운
ⓒ 조선경제아이 & econ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