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수 카이스트(KAIST), 삼성종합기술원 CTO 전략팀, CJ제일제당 제약사업부 전략기획 담당 / 사진 채승우 객원기자
이문수
카이스트(KAIST), 삼성종합기술원 CTO 전략팀, CJ제일제당 제약사업부 전략기획 담당 / 사진 채승우 객원기자

홍합은 물속에서도 접착성 단백질을 분비해 몸을 바위에 고정한 채 바닷물 속에 있는 미생물을 걸러 먹고 산다. 홍합이 분비하는 접착 물질은 강한 파도에도 떨어지지 않을 만큼 접착력이 좋다. 친환경적이면서도 탁월한 성능의 이 접착 물질을 어떻게 하면 인류를 위해 유용하게 쓸 수 있을지를 두고 학계의 활발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이문수 이노테라피 대표는 홍합 접착 물질을 활용한 바이오 제품 개발에 일찍 뛰어들었다. 삼성종합기술원 CTO 전략팀과 CJ제일제당 제약사업부 등을 거친 그는 이해신 카이스트(KAIST) 화학과 교수의 연구를 보고 기술의 사업성을 직감했다. 당시 이 교수는 물속에서 홍합이 접착력을 유지할 수 있는 원리가 카테콜아민 고분자에서 기인했다는 것을 처음 학계에 보고해 유명해진 인물이었다. 이 대표는 이 교수를 설득해 본격 사업을 시작했고 10년간의 동고동락 끝에 ‘이노씰’의 국내외 허가, ‘이노씰 플러스’ 품목 허가, 코스닥시장 상장 등의 성과를 거뒀다.

10년 동안 예상치 못한 암초에 번번이 좌초될 위기에 처했지만, 이 대표는 그때마다 전략을 구체화하며 극복해 나갔다. 그는 초기에는 홍합 접착 작용기를 이용해 단백질 약물을 체내에 오래 유지시키는 약물전달기술(DDS)을 개발하려 했다. 그러나 이 기술은 다른 의약품과 함께 사용하는 기술이다 보니 주도적인 제품 개발에 한계가 있었다. 이 대표는 독자적인 제품을 만드는 방향으로 전략을 수정했고 그렇게 이노씰이 탄생했다.

이노씰은 파스 형태의 체외 지혈 제품으로 현재 국내 5대 병원에 공급되고 있다. 주로 몸에 가느다란 관을 삽입하는 카테터 수술 과정에서 발생하는 출혈을 지혈하는 데 활용된다. 장기에서 발생하는 출혈을 멈추게 하는 체내용 지혈 제품(이노씰 플러스)은 주요 병원과 3상 임상을 마치고 지난해 10월 품목 허가를 받았다. 주삿바늘의 구멍을 신속하게 막아 출혈을 막는 무출혈 주삿바늘은 글로벌 특허를 취득하고 새로운 응용제품으로 확장 중이다.

2월 4일 ‘이코노미조선’은 서울 문래동에 있는 이노테라피 본사에서 이 대표를 만나 지난 10년간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첫 사업계획서를 작성하고 직접 발로 뛰며 투자를 유치하던 그는 어느덧 해외 시장 공략을 준비하는 기업의 최고경영자(CEO)가 됐다.


10년간 일군 성과는.
“처음에 개발하기로 했던 제품이 임상을 마치고 허가까지 받았고 또 상장했다. 국내 기술로 해외에서도 쓰일 수 있는 좋은 제품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사실 첫 사업계획서를 보면 10년째는 엄청난 글로벌 회사가 돼 있어야 하는데, 고비가 많았다.”

설립 2년 만에 투자를 받았다. 데스밸리(Death Valley·죽음의 계곡)를 겪은 적은 없나.
“모든 벤처회사는 늘 데스밸리를 겪기 마련이다. 이노테라피는 2012년 12월 첫 투자를 받기 전 2년간 힘든 시기를 보냈다. 신물질 허가를 받기까지 지속적으로 자금이 들었다. 지금 되돌아보면 투자를 잘 받아온 것 같지만 사실 자금에 대한 문제는 정말 쉽지 않았다.”

첫 투자 유치가 빠르다. 비결이 뭔가.
“전략기획 경력이 있었던 덕이다. 투자 유치도 최고재무책임자(CFO)가 오기 전까지 인력이 없어 직접 세일즈했다. 전략기획의 경험을 토대로 카운터 파트(거래 상대방)의 요구를 빨리 짚어낼 수 있었다. 사업적인 부분에서 장점이 컸다. 상장을 추진했던 것도 과학자 이외의 팀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상장을 통해 조달한 자금으로 벤처캐피털(VC) 투자를 많이 하고 있다. 이유가 뭔가.
“계획에서 벗어난 부분은 없다. 본업인 메디컬 실란트(의료용 접착·점착·지혈)의 경우 지속적으로 제품 개선과 개발을 하면서 좋은 제품을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다. 다만 개발, 임상, 허가까지 메디컬 연구 분야가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뿐이다. 반면 창업투자회사와 협업하는 투자는 단순하게 재무적 투자자(FI)로서 수익을 얻겠다는 것이 아니라, 영속적인 계속기업이 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이노테라피의 비전은 무엇인가.
“모든 단백질에 적용 가능한 플랫폼을 개발하는 회사다. 홍합 접착 물질은 모든 표면과 붙는다. 이노씰, 이노씰 플러스 신물질은 혈액의 모든 단백질과 붙는다. 다음 타깃은 유전자 치료제 플랫폼이다. 유전자 치료제는 다양한 바이러스벡터 운반체(DNA나 RNA와 같은 유전물질을 세포나 생체에 주입하기 위해 바이러스를 이용해 개발된 운반체)에 치료유전자를 담아서 장기에 전달한다. 우리는 이 중, AAV(Adeno-associated virus) 에 집중해 차기 기술을 개발 중이다. 단백질 덩어리인 AAV 바이러스벡터 운반체에 이노테라피의 신기술을 결합하면 재현성 있게 특정 장기로 이동할 수 있다. 유전자 치료제 상업화를 위한 근본적인 품질 문제를 해결하고 타깃 전달 기능을 갖춰, 파격적인 헤게모니를 쥐는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이다.”

후발 의료기기 업체에 조언한다면.
“우리처럼 치료 재료를 개발하는 업체의 경우 개발의 스펙이나 목표를 글로벌 시장에 맞춰서 진행할 것을 권하고 싶다. 한국 시장을 타깃으로 개발하면, 유럽이나 미국 허가 시에 많은 어려움이 발생할 수 있다. 호흡을 길게 해 유럽이나 미국 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제품을 개발해야 성공한다. 목표 자체를 한국으로만 보고 진행하면 그 이상의 확장이 어렵지만, 좀 더 커버리지가 넓은 허가를 기준으로 개발하면 중간에 진행을 멈추는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그 결과물을 활용해 다음 단계로 발전시킬 수 있다.”

국내 제도·규제로 겪은 어려움은.
“우리나라는 신물질 개발 프로젝트에 대한 허가가 많았던 나라가 아니다. 대부분 수입 제품이 주를 이뤘던 시장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의 경험은 레퍼런스가 풍부한 글로벌 제품의 허가 자료를 평가하는 것에 익숙하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개발 제품은 처음부터 완벽할 수 없다. 시장에서 평판이 지속적으로 쌓여서 제품의 완성도가 높아지는 것이다. 한국은 그 완벽하지 않은 제품을 평가하는 경험이 부족해 새로운 결정에 더욱 어려움을 겪는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글로벌 시장을 바라보며 제품을 개발하라는 것이다.”

앞으로 10년의 비전은.
“정해진 롤모델은 없다. 세계 어느 나라 수술실에 가도 이 제품이 한국 제품인지, 심지어 어느 회사 제품인지 모르면서 늘 쓰는 제품이 딱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그게 이노테라피의 제품이 됐으면 한다. 우리 제품은 지혈제에서 밀폐, 힐링, 유전자 치료제 등으로 무궁무진하게 확장 중이다. 바로 메디컬 시장의 대명사가 되는 것이 목표다.”

김유정 기자, 구정하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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