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3일 오후 서울 청진동 헌혈의집 광화문센터 앞에 있는 헌혈 참여 안내문. “국민 여러분의 적극적인 헌혈 참여를 부탁드립니다”라고 써 있다. 사진 조강휘 인턴기자
3월 3일 오후 서울 청진동 헌혈의집 광화문센터 앞에 있는 헌혈 참여 안내문. “국민 여러분의 적극적인 헌혈 참여를 부탁드립니다”라고 써 있다. 사진 조강휘 인턴기자

3월 3일 오후 2시 서울 청진동 ‘헌혈의집 광화문센터(이하 광화문센터)’. 낮인데도 헌혈자가 적어 간호사 세 명만 우두커니 서 있었다. 약 125㎡(38평) 남짓한 센터에 헌혈자는 세 명뿐. 7개의 헌혈 침상은 절반 이상이 비어 있었다. 인기척이 없어 ‘윙윙’ 천장에 달린 온풍기 소리만 광화문센터 안을 가득 메웠다. 30분이 지나도 사람이 더 오지 않았다.

광화문센터는 직장인의 헌혈 ‘거점’으로 발 디딜 틈 없이 붐비던 곳이었다. 점심시간과 퇴근 시간에 직장인이 짬을 내서 이곳에서 헌혈했다. 광화문센터가 속한 서울동부혈액원은 2018년 기준 전국 헌혈 실적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올해 광화문센터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1월 말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발병하면서 이곳 헌혈자 수가 50%가량 감소했다. 하루 평균 헌혈자는 60명에서 30명 안팎으로 줄었다. 이날 전현도 광화문센터 과장은 “꾸준히 센터를 방문하던 이른바 헌혈 ‘단골’도 코로나19 발병 이후 발길을 끊었다”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2월 25일 헌혈 버스에서 채혈 담당 간호사가 코로나19 확진자로 확인되면서 헌혈에 대한 공포감이 강해졌다. 헌혈 장소와 같이 좁은 공간에서 사람이나 의료 기기를 통해 바이러스에 감염될 가능성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이날 광화문센터에서 헌혈하던 직장인 김영현(46)씨는 “헌혈하다가 코로나19에 감염될 수도 있어 겁이 났다”면서도 “혈액 보유량이 부족해졌다는 소식에 어렵게 광화문센터를 찾았다”고 했다.

전국적으로 헌혈 ‘한파’가 매섭다. 대한적십자사에 따르면 국내 코로나19 확진자 발생 이후 현재까지(1월 21일~3월 2일) 헌혈은 25만8481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약 10.5%(2만7318건) 감소했다.

하루 평균 혈액 보유량(5일 기준)은 3일분으로 지난해 4.7일분보다 1.7일분 감소했다. 혈액 보유량이 3일분 미만이면 혈액 수급 위기 ‘주의’ 단계에 해당한다. 혈액 수급 위기단계는 보유량에 따라, 심각(1일분 미만)-경계(1일분 이상 2일분 미만)-주의(2일분 이상 3일분 미만)-관심(3일분 이상 5일분 미만)등 4단계로 구분된다. 5일분 이상이 적정 보유량이다. 주의 단계가 발령하면 병원마다 수혈량이 제한돼 우선순위를 정해 일부 환자에게만 혈액을 공급해야 한다.

급기야 3월 2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정부는 헌혈 시 감염 우려를 해소하고자 더 철저한 안전 조치를 추진할 계획이다”라며 “공공기관과 국민 여러분께서는 소중한 생명을 살릴 수 있게 헌혈에 적극적으로 동참해 달라”고 호소했다.


“헌혈 인구 감소하는 문제 해결해야”

전문가들은 “이번 공급 위기는 헌혈의 인기가 지속적으로 감소하면서 가중됐다”고 지적한다. 헌혈 인구 자체가 줄어들면서 코로나19와 같은 위기 상황에 헌혈자가 조금만 줄어도 금방 주의 단계에 직면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헌혈자 수는 지난 5년간 계속 감소했다. 2015년 헌혈자는 308만3000명에 달했으나 지난해 278만1000명으로 9.8% 줄었다. 같은 기간 헌혈률(헌혈자 수를 총인구로 나눈 비율)은 6.1%에서 5.4%까지 떨어졌다.

혈액 수급 비상사태는 최근 들어 반복되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15년까지 혈액 보유량이 적정 단계인 날이 가장 많았으나, 2016년에는 적정 단계 125일(34.2%), 관심 단계 183일(50%), 주의 단계 58일(15.8%)로, 관심 단계가 가장 많은 것으로 확인됐다.

고령화로 헌혈 가능 인구가 줄고 있어 혈액 수급이 개선되기 쉽지 않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헌혈 가능 인구는 2020년 약 3920만 명에서 2050년까지 1018만 명가량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헌혈자가 특정 연령대에 편중됐다는 점도 문제다.

대한적십자사 2018년 혈액 사업 통계에 따르면 10~20대가 68.4%로 헌혈 참여율이 가장 높다. 김영우 국립암센터 국제암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저출산 고령화 현상에 따라 코로나19 사태가 종식되더라도 혈액 공급 부족이 나아지기는 어렵다”면서 “10~20대 헌혈에만 의존하면 혈액 수급에 계속 어려움이 생길 수 밖에 없으니 다양한 연령대가 참여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라고 했다.


Plus Point

신뢰 잃은 헌혈…잘못된 상식 3가지

헌혈에 대한 오해도 사람들이 헌혈을 기피하는 원인 가운데 하나다. 온라인상에선 “헌혈하면 ‘호구(어수룩해 이용하기 좋은 사람을 이르는 말)’가 되는 이유”라는 게시글이 공유됐다. 흔히 알려진 헌혈에 대한 잘못된 상식 세 가지를 정리했다.


1│헌혈은 대한적십자사의 ‘혈액 장사’?

헌혈자는 봉사 정신으로 헌혈에 참여하는데, 대한적십자사는 혈액을 판매해 수익을 올린다는 지적이 있다. 이른바 혈액 및 혈액 성분 제제 수가(이하 혈액 수가) 논란이다. 혈액 수가란 각 혈액원에서 헌혈자로부터 채혈해서 제조한 혈액 제제(적혈구·혈장·혈소판)를 의료기관에 공급하는 가격이다.

대한적십자사는 “혈액 수가는 의료품비, 인건비, 기념품비, 헌혈의집 임차료 등 사업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일정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한국의 혈액 수가는 2016년 기준 4만8260원으로 미국(약 25만원), 호주(약 28만원)의 6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2│헌혈자 보상은 ‘나 몰라라?’

헌혈자에 대한 보상이 미미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온라인상에선 “헌혈해봤자 5000원 내외의 상품권이나 영화 티켓이나 준다”면서 “이걸 10배 가까이 뻥튀기해서 환자한테 팔아먹는다”는 글이 공유됐다.

대한적십자사 관계자는 “헌혈자에게 좋은 기념품을 주려고 노력하고 있다”면서 “매년 기념품 종류를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기념품 구매 비용을 늘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2014년 120억원이었던 기념품 사업 예산은 2018년 135억원으로 12.5% 증가했다.


3│혈액 관리 못 해서 내다 버린다?

혈액 관리 문제도 그간 도마 위에 올랐다. 2017년 대한적십자사 발표에 따르면, 약 611만 유닛의 혈액 가운데 18만3768유닛이 폐기됐다. 직장인 최모(29)씨는 “건강을 포기하면서 헌혈했는데 피가 버려진다는 생각에 실망스럽다”고 했다.

대한적십자사는 “폐기된 혈액은 대부분 성분에서 문제가 발견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폐기된 혈액 대부분은 혈액의 성분에서 ALT(알라닌아미노전달효소) 정상 수치 초과, B형 간염 검사 양성, C형 간염 검사 양성 등이 나왔다. 한국의 혈액 폐기율은 3%로 독일(6.2%), 호주(5.7%)보다 양호한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