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2018년 3월 28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신세계그룹 & 파트너사 채용박람회’에 참석해 인사하고 있다. 사진 조선일보 DB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2018년 3월 28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신세계그룹 & 파트너사 채용박람회’에 참석해 인사하고 있다. 사진 조선일보 DB

“이번 기회에 좀 도와주셨으면 해서…”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

“고객들한테 잘 알려서 제값 받고 팔 수 있게끔 노력해보겠습니다. 안 팔리면 제가 다 먹죠 뭐.”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2019년 12월 12일 방송된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출연자 중 한 사람인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가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강원도 농가에서 버려지는 못난이 감자를 사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백 대표의 갑작스러운 요청을 흔쾌히 수락한 정 부회장은 방송 다음 날인 12월 13일부터 전국 이마트 매장을 통해 못난이 감자 판매에 나섰다.

결과는 대성공. 이마트가 준비한 감자 30t은 이틀 만에 완판됐다. ‘정용진과 백종원의 의기투합’이라는 신선함에 일반 감자의 절반 수준(900g 기준 780원)인 가격 매력까지 더해지자 수많은 소비자가 이마트를 찾았다. 못난이 감자를 포함한 이마트의 감자 제품 매출은 전년보다 44% 급증했다.

많은 사람이 이 이벤트에 찬사를 보낸 건 ‘농촌 지역 생산자와 상생(相生)하겠다’는 유통 대기업의 메시지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당시 이마트에서 못난이 감자를 구매한 주부 김서경(64)씨는 “마침 감자가 필요하기도 했고, 좋은 취지에 호응하고 싶어 (못난이 감자를) 샀다”고 했다.

사실 정 부회장의 상생 노력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마트24가 올해 초 선보인 ‘3+4 못난이 사과’도 과수 농가를 돕기 위해 추진된 것이다. 총 7개의 사과를 묶어 파는 이 제품 가격은 3800원으로 1개당 약 543원이다. 세척 사과(1개당 1300원)의 절반 이하 가격이다. 못난이 사과는 못난이 감자와 마찬가지로 맛은 일반 사과에 밀리지 않지만 색이 흐리거나 못생겨 대형마트 입고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이마트24가 지난해 7월 출시한 ‘2+3 바나나’ 역시 ‘농가도 돕고 돈도 버는’ 기획이었다. 이마트24는 외관상 상품성이 떨어지는 바나나를 여러 개 묶어 판매했다. 5개월 동안 이마트24의 바나나 매출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183% 증가했고 전체 과일 매출은 135% 늘었다. 이마트가 지난해 12월 20일부터 25일까지 진행한 ‘장수 한우’ 판매 행사도 축산 농가에 큰 힘이 됐다.

정 부회장의 상생 행보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경제 위축 상황에서 더 적극성을 보인다. 이마트는 3월 19일부터 일주일 동안 경북 지역에서 기른 ‘보조개(못난이) 사과’를 4㎏ 박스당 9980원에 팔았다. 기존 봉지 사과보다 40%가량 저렴하다. 이마트는 13브릭스 이상의 고당도 사과만 추려 구매자의 만족도를 높였다.

이 밖에 신세계백화점과 이마트는 중소 협력사 5000여 곳의 자금난 해결을 돕기 위해 8000억원 규모의 상품 결제 대금 조기 지급을 결정하기도 했다. 또 정 부회장 뜻에 따라 신세계그룹이 운영하는 복합쇼핑몰 ‘스타필드’도 입점 업체 임대료 받는 것을  유예하기로 했다.


모델들이 서울 이마트 성수점 과일 매장에서 기존 제품보다 40% 저렴한 ‘보조개 사과’를 소개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모델들이 서울 이마트 성수점 과일 매장에서 기존 제품보다 40% 저렴한 ‘보조개 사과’를 소개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대구 이마트 만촌점 직원들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진료 현장에서 근무하는 공중보건 의료진에게 보낼 물품을 포장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대구 이마트 만촌점 직원들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진료 현장에서 근무하는 공중보건 의료진에게 보낼 물품을 포장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상생만큼 중요한 친환경

정 부회장이 주도하는 신세계그룹의 지속 가능 경영은 상생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환경 친화적인 기업 만들기도 평소 그가 신경 쓰는 주요 테마 중 하나다.

신세계백화점은 지난해 9월 아웃도어 브랜드 노스페이스와 함께 친환경 ‘티볼(T-ball)’ 패딩을 출시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티볼은 동물 털 대신 인공 충전재를 사용하는 패딩이다. 환경뿐 아니라 윤리적인 제조 과정까지 중요시한다. 백화점은 인조 모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브랜드 ‘레몬플랫’과 ‘앙크 1.5’ 등도 잇따라 선보였다. 최근에는 화학 비료와 농약을 3년 이상 쓰지 않고 기른 목화를 자체 속옷 브랜드 ‘언컷’의 제품 소재로 활용했다.

또 신세계백화점은 지난해 말 커피 찌꺼기로 만든 비료 약 30t을 중소 농가에 기부하기도 했다. 친환경 사회공헌의 하나로 실시된 이 기부를 위해 신세계는 수도권 6개 점포 VIP 라운지에서 회수한 커피 찌꺼기를 전남 장성에 있는 공장에서 비료로 가공했다. 경북 상주 포도 농장, 전남 무안 양파 농장, 제주 감귤 농장 등이 신세계백화점의 도움을 받았다.

신세계면세점의 경우 ‘뽁뽁이’로 알려진 포장재 ‘에어캡’ 사용을 전면 중단할 방침이다. 이미 신세계면세점은 지난해부터 충격 완화 효과가 뛰어난 물류 상자를 도입해 에어캡 사용량을 절반가량 줄인 상태다. 물류 박스 안에서 완충 역할을 해줄 에코박스 확대, 포장 간소화 등 후속 조치를 통해 불필요한 쓰레기 발생을 줄여나간다는 게 면세점의 목표다.

백화점과 면세점만큼 포장재를 많이 쓰는 신세계TV쇼핑도 올해 3월부터 친환경 포장재 사용에 나섰다. 이 회사의 친환경 포장재는 생분해성 고분자(PBAT) 70%, 옥수수 전분 플라스틱(PLA) 20%, 무기질 10% 등으로 구성됐다. 매립 후 100~180일 이내에 자연 분해된다. 신세계TV쇼핑은 친환경 포장재 개발을 위해 ㈜SKC와 약 5개월간 머리를 맞대고 연구에 매진했다.

신세계그룹의 이런 노력은 의미 있는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 유엔(UN) 경제사회이사회 특별협의지위기구인 UN지원SDGs협회는 지난해 10월 발표한 ‘UN지속가능개발목표경영지수(SDGBI)’에서 신세계백화점을 국내 상위 그룹(공동 62위)에 편입했다. UN지원SDGs협회가 조만간 발표 예정인 ‘UN 플라스틱 저감-기후 변화 대응 친환경 인증(GRP)’에서도 신세계그룹에 대한 평가가 주목받고 있다.

한국은 1인당 플라스틱·비닐 포장재 사용량 전 세계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김정훈 UN지원SDGs협회 사무대표는 “유통 분야는 업종 특성상 플라스틱과 비닐 소재 사용 빈도가 높다”며 “유통 업계의 환경 인식이 그 어떤 분야보다 더 요구되는 이유다”라고 말했다.

전준범 기자

  • 목록
  • 인쇄
  • 스크랩
  • PDF 다운
ⓒ 조선경제아이 & econ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