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형부산대 생명정보학과, 국가생명 연구 자원정보센터 (KOBIC) 최초 한국인 유전체 분석
김태형
부산대 생명정보학과, 국가생명 연구 자원정보센터 (KOBIC) 최초 한국인 유전체 분석

숱한 음모론과 정치적 갈등 심화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남긴 아픔 중 하나다. 코로나19 최초 발생 국가인 중국과 최대 피해국이 된 미국의 갈등이 대표적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4월 30일(현지시각) 기자들 앞에서 코로나19가 중국 우한 바이러스 연구소에서 왔다는 증거를 봤다고 했다. 사흘 후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도 “바이러스가 우한 연구소에서 시작됐다는 증거가 있다”라고 했다. 앞서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미군이 코로나19를 가져왔을 수 있다는 트윗으로 미국을 자극했다. 중국 인민일보는 지난해 미 육군 전염병 연구소가 일시 폐쇄된 점, 미 정부가 전염병 유행 시나리오를 작성한 점 등을 미국이 설명해야 한다는 보도로 ‘코로나19 미국 기원설’을 부추겼다.

논란은 발원지 공방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감염률·치사율이 인종마다 다르다’는 주장부터, ‘이 동물은 감염에 취약하고 저 동물은 강하다’는 주장까지 낯선 손님 코로나19를 둘러싼 찬반양론은 이 순간에도 세계 각지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코노미조선’은 이런 어수선한 상황일수록 객관적 사실에 근거한 합리적 추론의 힘을 믿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전 세계 과학자들이 내놓은 주요 연구 성과를 토대로 코로나19의 실체에 다가가 보는 스페셜 리포트를 준비한 이유다. 코로나19 게놈 해독과 관련해서는 이 분야 전문가인 김태형 테라젠바이오 수석연구원의 도움을 받았다.


게놈 분석 국제 프로젝트 ‘넥스트스트레인’의 시각화 툴에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 흐름을 표시한 그림. 유럽에서 퍼진 바이러스(하늘색)가 가장 많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사진 넥스트스트레인
게놈 분석 국제 프로젝트 ‘넥스트스트레인’의 시각화 툴에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 흐름을 표시한 그림. 유럽에서 퍼진 바이러스(하늘색)가 가장 많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사진 넥스트스트레인

Q1 감염증 확산 초기에 ‘코로나19 바이러스는 데옥시리보핵산(DNA)보다 불안정한 리보핵산(RNA) 구조라 돌연변이가 쉽게 등장할 수 있다’는 경고가 쏟아졌다. 실제로도 변이가 많이 일어났을까.

과학자들이 감염병 바이러스 게놈 정보를 공유하는 ‘인플루엔자 감시망(GISAID)’에 지금까지 공유된 코로나19 게놈 데이터는 약 1만 개다. 이 중 게놈 분석 국제 프로젝트 ‘넥스트스트레인(Nextstrain)’이 지난 4개월 동안 실시한 3600여 건의 해독 결과에 따르면,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연간 25개 정도의 돌연변이를 일으킨다. DNA 구조의 바이러스와 비교하면 변이 속도가 빠르지만, 같은 기간 50개가량의 변이를 일으키는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보다는 오히려 느리다.


한국에 퍼진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상당수는 중국에서 온 B 계통군(clade)이다.
한국에 퍼진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상당수는 중국에서 온 B 계통군(clade)이다.

Q2 생각보다 느리다고는 해도 한 달에 2개꼴로 변이가 발생한다.

모든 생명체에게 변이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변이가 자주 일어난다고 해서 그걸 큰 문제의 전초현상처럼 여길 필요는 없다. 변이 자체보다는 변종 여부를 눈여겨봐야 한다. 예컨대 돌연변이가 바이러스의 어떤 기능을 바꿔 치사율을 급격히 끌어올리는 식의 변종 말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에서 변종이 나타났다는 연구 결과는 아직 안 나왔다. 물론 이게 앞으로도 변종이 없을 것이라는 의미는 아니지만, 지나친 우려는 자제해야 한다.


Q3 변이에 따른 바이러스 계통 특성은 지역별로 얼마나 다를까.

‘넥스트스트레인’에 따르면 코로나19 바이러스는 A1a, A2, A2a, A3, A6, A7, B, B1, B2, B4 등 총 10개의 ‘계통군(clade)’으로 구분된다. A로 시작하는 계통군은 주로 유럽에서, B가 붙은 계통군은 주로 아시아에서 넘어왔다. 미국에서 피해가 가장 심각한 뉴욕의 경우 시민에게 퍼진 바이러스 계통 대부분이 유럽에서 온 A2a로 드러났다. ‘넥스트스트레인’의 시각화 툴을 이용해 A2a 계통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뉴욕 내 확산 시점을 보면 3월부터로 나타난다. 당시 미국 정부가 유럽발 입국 금지 정책을 펼쳤는데, 게놈 분석 결과만 놓고 보면 뉴욕은 유럽에서 넘어온 코로나19 바이러스 차단에 실패한 셈이다.

한국에서는 딱 2개의 바이러스 계통군이 발견된다. 대다수를 차지하는 건 중국에서 유입된 것으로 보이는 B 계통군이다. 흥미로운 건 나머지 하나인 A1a인데, 이 게놈 해독 데이터를 역추적해보면 경기도 평택 미군기지 내부에 있는 군 병원이 등장한다. 유럽에 다녀왔거나 유럽인과 접촉한 미군 또는 미군기지 근무자가 A1a 계통 코로나19 바이러스의 국내 상륙을 본의 아니게 도운 셈이다.


Q4 인종에 따라 코로나19 감염 확률이 다르다는 주장은 사실일까.

일단 유색인의 코로나19 감염 비율이 더 높게 측정됐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된 건 사실이다. 영국 라이케스터대 병원의 캄레시 쿤티 교수팀이 4월 국제 학술지 ‘영국의학저널’에 발표한 바에 따르면 영국의 코로나19 중증환자 2249명 가운데 64.8%는 백인, 나머지 35.2%는 백인 외 인종으로 나타났다. 영국 인구에서 백인 외 인종이 차지하는 비율이 13%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유색 인종의 코로나19 감염률은 상당히 높은 셈이다. 영국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감염 비율은 백인의 3배에 달하고 치명률은 6배에 이른다.

그러나 이런 현상을 생물학적 차이로만 설명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유럽과 미국 내 소수 인종 상당수가 바이러스 감염에 취약한 주거 밀집 지역에 살기 때문이다. 백인과 백인 외 인종의 사회·경제적 차이도 고려해야 한다는 의미다. 한국에서도 코로나19 집단 감염 발생 현황을 살펴보면 요양시설·정신병원·콜센터 등 사회·경제적 약자가 모인 곳이 많았다. 김태형 연구원도 “코로나19 감염률이 인종마다 상이하다는 주장이 과학계에서 널리 인정받는 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Q5 코로나19가 여성보다 남성에게 더 위협적이라는 주장은 어떻게 봐야 할까.

여러 국가의 코로나19 사망자 통계 자료를 보면 실제로도 남성 사망자 수가 더 많다.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의 ‘젠더와 글로벌 건강센터’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중국·독일·프랑스·이탈리아·덴마크 등 코로나19 사망자 정보를 공개한 모든 나라에서 남성 사망률이 여성을 압도했다. 이 중 한국과 이탈리아는 여성 환자 비율이 남성보다 높은 국가인데도 사망률은 남성이 앞섰다.

중국 베이팅 통런병원이 코로나19 환자 1099명의 정보를 분석해 4월 말 국제 학술지 ‘보건학의 프런티어’에 발표한 논문도 같은 맥락이다. 이 병원에 따르면 코로나19 감염 비율은 남녀가 비슷하지만, 중증 환자로 넘어가는 비중은 남성이 높다. 특히 사망자는 무려 70%가 남성으로, 여성(30%)보다 2.4배 많았다. 이런 경향은 코로나19뿐 아니라 2002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와 2015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유행 시기에도 나타났다.

코로나19가 남성에게 유독 치명적인 이유는 뭘까. 아직 단정할 수 없지만, 과학자들은 남성이 호흡기나 신경계에 해로운 흡연을 여성보다 즐긴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샌프란시스코(UCSF) 연구팀이 흡연 환자 정보가 포함된 코로나19 관련 논문 12개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중환자실에 입원한 감염자의 17.8%에서 흡연 이력이 발견됐다. 흡연 비경험자는 9.3%였다.


누구나 코로나19에 감염될 수 있으나 사망률은 모든 국가에서 남성이 여성을 능가한다. 각국 통계와 연구 논문이 이를 증명한다. 사진 연합뉴스
누구나 코로나19에 감염될 수 있으나 사망률은 모든 국가에서 남성이 여성을 능가한다. 각국 통계와 연구 논문이 이를 증명한다. 사진 연합뉴스

Q6 코로나19가 독감·폐렴 수준에 불과하다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매우 치명적이라는 주장도 있다. 어느 쪽이 맞을까.

환자의 건강 상태에 따라 코로나19를 쉽게 이겨낼 수도 있고 그러지 못할 수도 있다. 분명한 사실은 코로나19 바이러스를 결코 만만하게 봐선 안 된다는 점이다. 과학자들에 따르면, 코로나19 바이러스는 폐뿐 아니라 바이러스의 장기 침투를 돕는 ACE2 수용체가 발현되는 체내 다른 조직에도 침투할 수 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장(腸) 세포에서도 증식한다는 최근 연구 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네덜란드 휘브레흐트 연구소와 에라스뮈스대 메디컬센터, 마스트리흐트대 공동 연구팀은 ACE2 수용체가 폐 세포뿐 아니라 장 세포에도 있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연구진에 따르면, 코로나19 바이러스는 ACE2 수용체가 많고 적음과는 무관하게 존재만 하면 장 세포를 감염시킬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됐다.


과학자들은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장으로도 침투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사진은 장에 코로나19 바이러스(검은 점)가 붙어 있는 모습. 사진 마스트리흐트대
과학자들은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장으로도 침투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사진은 장에 코로나19 바이러스(검은 점)가 붙어 있는 모습. 사진 마스트리흐트대

Q7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폐·장 등에 침투하면 어떤 부작용을 낳을까.

혈전(血栓·피가 굳어서 생기는 덩어리)을 유발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속속 나와 우려를 낳는 상황이다. 프랑스 스트라스부르크대 병원 연구팀이 코로나19 환자 106명을 1개월간 관찰한 바에 따르면 환자 가운데 30%가 급성 폐색전증을 앓았다. 폐색전증은 정맥에 생긴 혈전이 혈관을 타고 이동해 폐혈관을 막으면서 발생하는 병이다. 호흡 곤란과 두통, 실신 등을 야기한다.

비슷한 연구 결과는 최근 미국에서도 나왔다. 미국 뉴욕 마운트 시나이 병원 연구팀은 코로나19 환자 2773명의 의료 기록과 사망자 75명의 부검 기록을 분석했다. 그 결과 인공호흡기 치료를 받은 환자 중 항응고제(혈전 치료제)가 투여된 이의 사망률은 29%로 나타났다. 이는 항응고제를 투여하지 않은 환자의 사망률(63%)보다 크게 낮은 수치다. 또 연구진에 따르면 항응고제를 투여한 환자는 인공호흡기 치료 시작 이후 21일 만에 사망한 데 반해 투여하지 않은 환자는 9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전 세계에서 총 8개의 코로나19 백신 후보물질이 임상 시험에 돌입했다.
전 세계에서 총 8개의 코로나19 백신 후보물질이 임상 시험에 돌입했다.

Q8 코로나19 백신·치료제 개발 착수 소식이 계속 들린다. 실제 개발 성공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5월 7일 현재 임상 시험에 착수한 코로나19 백신 후보물질은 세계적으로 총 8개다. 전임상 단계는 100여 개다. 미국 생명공학사 모더나와 미국 국립알레르기감염병연구소(NIAID)가 개발한 후보물질이 가장 먼저 1·2상 임상에 돌입했다. 영국 옥스퍼드대와 임페리얼칼리지런던 연구팀이 만든 백신 후보물질도 4월부터 임상에 들어갔다. 한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가 백신과 치료제 개발 지원에 대대적으로 나선 만큼 늦어도 내년 초까지는 어떤 형태로든 의미 있는 성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이 ‘성과’라는 게 꼭 제품 출시를 의미하는 건 아니다. 변이가 쉬운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특성 때문이다. 코로나19를 유발하는 사스코로나바이러스-2(SARS-CoV-2)의 유전자 지도를 세계 최초로 만들어 4월 국제 학술지 ‘셀’에 발표한 김빛내리(서울대 생명과학부 석좌교수) 기초과학연구원(IBS) RNA 연구단 단장은 “코로나19 백신이나 치료제가 개발되더라도 바이러스 변이로 인해 효과는 기대보다 적을 수 있다”라고 했다. 김 단장은 “감기 바이러스 정도로 생각하고 무시했던 코로나 바이러스들이 사스와 메르스에 이어 코로나19까지 일으켰다”며 “수년 내 또 다른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등장할 수 있다”라고 경고했다.


Plus Point

도움 준 테라젠바이오는 어떤 회사?

테라젠바이오의 한 연구원이 유전체 분석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 김흥구 객원기자
테라젠바이오의 한 연구원이 유전체 분석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 김흥구 객원기자

유전체 분석 분야에서 우수한 기술력을 자랑하는 바이오 기업이다. 테라젠이텍스 소속으로 바이오·유전체 사업을 전담하다가 5월 4일 테라젠이텍스의 100% 자회사로 공식 분사했다. 앞서 테라젠이텍스는 지난 3월 주주총회에서 유전체 사업 부문을 물적분할해 비상장법인 테라젠바이오를 신규 설립하기로 결의한 바 있다. 2017년부터 테라젠이텍스 바이오연구소를 총괄해온 황태순 대표가 신설 테라젠바이오를 이끌기로 했다.

테라젠바이오는 맞춤형 항암 치료 연구에 주력할 방침이다. 암세포가 지닌 특이 항원을 암 환자에게 투여해 생체 내 면역 시스템을 활성화한 다음 암세포를 제거하는 치료법이다. 제약사의 신약 개발 효율을 높일 수 있는 바이오 마커(생체표지자) 개발에도 나선다. 개인 유전체 분석,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NGS), 헬스케어 빅데이터 쇼케이스 구축 등도 이 회사의 핵심 사업 분야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