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기업이 자율주행차 시장을 장악하게 될까. 3개 회사가 유력하다. 완전자율주행의 전 단계인 주행 보조 장치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모빌아이가 현재로선 가장 앞섰다. 규모에선 아직 모빌아이에 미치지 못하나, 강력한 내부 생태계를 완비한 테슬라가 잠재력 면에선 톱. 아직 완제품을 내놓은 건 아니나 전체 개발 과정을 포함한 통합 플랫폼을 건설하겠다는 야망을 품은 엔비디아도 무섭다.
3개 회사는 모두 미국 국적이지만 비(非)미국인이 만들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모빌아이는 이스라엘인 암논 샤슈아가 1999년 창업한 자율주행 기업으로 2017년 무려 153억달러(약 18조3000억원)에 인텔에 팔렸다. 테슬라는 남아공 출신의 일론 머스크가 이끌고 있다. 엔비디아는 대만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공부하고 경력을 쌓은 젠슨 황이 1993년 공동 창업해 현재까지 최고경영자(CEO)를 맡고 있다.
모빌아이│현재 시장의 최강자, 인텔 업고 미래로
모빌아이 경쟁력을 얘기하기 전에 자율주행의 단계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자율주행 단계는, 관련 기술이 안 들어가는 레벨 0부터 인간이 전혀 신경 쓸 필요 없이 출발부터 최종 목적지까지 알아서 데려다주는 레벨 5까지 총 6단계다. 세계 자율주행기술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 꼭 알아야 하는 것이 바로 ‘레벨 2’와 ‘레벨 3’의 차이다.
레벨 2는 스티어링휠·페달에서 손발을 떼더라도 차가 일정 조건에서 알아서 갈 수 있는 단계다. 그러나 운전자가 항상 주시하다가 이상이 감지되면 즉각 개입해야 한다. 레벨 2에선 사고 책임이 운전자에게 있다. 자율주행이라는 말 대신 ‘주행 보조’ 정도의 용어로 쓴다.
레벨 3는 자동차가 기본적으로 주행을 맡고 운전자는 필요할 때만 개입하는 ‘조건부 자율주행차’다. 레벨 3를 본격 자율주행의 시작으로 본다. 현재 소비자가 살 수 있는 자율주행차 단계는 레벨 2까지다. 관련 법제화가 불충분하기 때문에 레벨 3 차량은 아직이다.
그렇다면 현재 소비자가 접할 수 있는 기술인 레벨 2 시장의 최강자는 누구일까.
바로 모빌아이다. 전 세계 주행 보조 장치의 기술과 칩 시장에서 압도적 1위다. 모빌아이가 뛰어난 이유는 원천기술도 물론 좋지만, 시판된 차에 장착된 자사 시스템을 통해 막대한 주행데이터를 수집해 기술 향상에 활용하기 때문이다. 모빌아이는 2022년까지 전 세계 1400만 대의 차량에 달린 자사 주행 보조 장치로부터 주행데이터를 축적하게 된다. 전 세계 회사 중에 1000만 대 이상의 차에서 주행데이터를 모아 개발할 수 있는 곳은 모빌아이뿐이다. 게다가 모빌아이는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 설계회사인 인텔과 힘을 합쳐 자율주행용 차세대 인공지능(AI) 칩까지 개발하고 있다.
테슬라│수직통합 시스템에 1만 개 인공위성 위치정보 연결
테슬라의 자율주행 기술은 자사 차량에서 수집한 수많은 실제 데이터를 인간의 뇌와 유사한 ‘신경망 학습’을 통해 완성도를 높여가는 식으로 발전한다. 테슬라의 강점은 모빌아이의 주행 보조 시스템보다 한 단계 높은 능력의 시스템을 탑재했기 때문에 더 고품질의 데이터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테슬라는 또 모빌아이에 비해 유리한 점이 있다. 모빌아이는 자사 시스템을 자동차회사에 파는 부품업체다. 따라서 자동차업체와 항상 협업해야 한다. 반면 테슬라 자율주행 시스템은 100% 자사 차량에 탑재된다. 자율주행 기술을 구현하는 플랫폼도, 통합 제어하는 반도체도, 이런 것들을 탑재해 실제 데이터를 수집하는 차량도 전부 독자 구축한 것이다. 따라서 테슬라는 자율주행 시스템을 개발할 때 다른 파트너와 협업·조율을 하는 데 시간·인재·비용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
테슬라는 또 스타링크라는 자체 인공위성망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지구를 1만 개 넘는 인공위성으로 뒤덮어 전 세계 인터넷망을 만드는 사업이다. 테슬라가 자사 차량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수많은 주행데이터를 통해 자율주행 기술을 더 발전시키고, 여기에 지구 단위의 초정밀 위치정보까지 결합한다면 어떻게 될까.
엔비디아│개발부터 제품까지, 자율주행 생태계 장악
업계에선 테슬라, 모빌아이·인텔 연합과 함께 자율주행 기술을 장악할 후보로 엔비디아를 꼽는다. 엔비디아는 25년 전 GPU(Graphic Processing Unit·그래픽처리장치)를 처음 선보인 뒤 줄곧 시장을 이끌어 왔다. 이 회사가 GPU 기반의 딥러닝(인공신경망), 이를 통한 이미지 인식·판단 능력 향상, 개발자부터 최종 제품까지 연결하는 생태계 완성 등을 통해 자율주행 플랫폼 시장을 테슬라와 양분하거나 테슬라·모빌아이와 삼분할 가능성이 꽤 있다는 것이다. 엔비디아는 7월 13일 처음으로 인텔 시가총액을 앞서기도 했다. 이로써 엔비디아 시가총액은 세계 반도체 제조사 중 대만 TSMC, 한국 삼성전자에 이어 3위에 올랐다.
GPU는 CPU(Central Processing Unit·중앙처리장치)보다 그래픽 처리에 능하기 때문에 게임 쪽 수요가 컸다. 그런데 이보다 더 큰 사업 기회가 데이터센터 분야에서 폭발하고 있다. 재택근무, 비대면 비즈니스가 급격히 확대되면서 아마존·마이크로소프트 등 클라우드서비스 기업들이 데이터센터 건설에 돈을 쏟아붓고 있기 때문이다. 엔비디아의 올해 1분기 데이터센터 사업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무려 80% 늘었다.
이것에 더해 엔비디아의 미래를 떠받치는 것이 자율주행 분야다. 자율주행 기술의 발전은 이미지 분야 딥러닝 기술의 덕을 크게 봤는데, 이미지 분야 딥러닝에는 고성능 GPU가 엄청나게 많이 필요하다. 엔비디아의 자율주행차 개발총괄인 대니 샤피로는 이렇게 말했다.
“자율주행 기술 투자가 계속 크게 늘 것이다. 특히 ‘딥뉴럴네트워크(DNN)’의 개발·검증을 위한 데이터 센터와 인프라에 엄청난 돈이 투입된다. 트럭 배송, 물품 이동 등에서는 완전자율주행도 가능해질 것이다. 일반 양산 차에도 자율주행용 하드웨어가 많이 탑재될 것이다. 우선 레벨 2 플러스(2 이상 3 미만) 차량의 대량생산을 촉진해 한층 더 높은 레벨로 나아가기 위한 기반이 마련될 것이다. 이렇게 하려면 강력한 처리능력을 가진 컴퓨터가 필수다. 엔비디아는 엔드 투 엔드, 즉 자율주행차의 개발자들이 사용하는 프로그래밍 언어부터 데이터센터, 최종 제품에 이르는 전 과정에 필요한 AI 처리를 완성차 메이커와 서플라이어에 제공할 수 있는 유일한 개방 플랫폼을 보유하고 있다.”
엔비디아는 또 6월 23일 메르세데스-벤츠와 자율주행 기술을 탑재하는 차량의 컴퓨팅 아키텍처를 공동 개발해 2024년부터 양산한다고 발표했다. 이 아키텍처는 벤츠 S클래스부터 A클래스까지 모든 차세대 모델에 탑재된다. 일종의 자율주행 레퍼런스카를 만들겠다는 것인데, 이게 성공한다면 그 이후로 더 많은 자동차업체가 엔비디아·벤츠의 시스템을 탑재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