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를 꿈꿨던 법학도. 로저스 회장은 선친의 발명가 기질을 물려받아
‘업계 최초’라는 수식어를 늘 달고다닌 미디어 재벌이다.

 “힘을 비축한 다윗, 골리앗을 향해 돌을 날리다.”

 2004년 11월12일 로저스이동통신(Rogers Wireless Communi cation)이 업계 4위 업체인 마이크로셀(Microcell)사를 공식 인수했을 때 캐나다의 한 신문이 쓴 제목이다. 이 합병으로 500만명의 가입자를 확보한 로저스이동통신은 업계 1위인 벨이동통신(Bell Mobility)을 따라잡게 됐다. 하지만 이번 합병의 더 큰 의의는 로저스그룹이 통신업계의 공룡인 벨캐나다그룹(Bell Canada Enterprise; BCE)의 아성을 위협할 수 있는 교두보를 확보한 것이란 사실을 이 신문은 강조하고 있다.

 2004년 연초에 시장에 매물로 나온 마이크로셀 인수 대금으로 주요 경쟁자인 텔어스그룹(Telus Group)이 11억달러를 제시하자 로저스측은 이보다 3억달러 더 많은 14억달러(약 1조2000억원)로 판돈을 올려 인수에 성공한 것이다. 이에 따라 합병 작업을 진두지휘한 에드워드(테드) 로저스 (Edward S. Rogers, 71) 로저스커뮤니케이션그룹(Rogers Communication Inc.) 회장은 캐나다 재계에서 다시 한 번 주목받게 됐다.

 ‘미디어 재벌’(Media Mogul), ‘캐나다의 루퍼트 머독’, ‘인수 합병의 달인’ 등의 별칭을 듣고 있는 로저스 회장은 전략적 사고와 과감한 파이낸싱을 무기로 창업 40여년 만에 캐나다의 선두 미디어그룹을 구축하는 데 성공한 인물이다. 미국 <포브스>가 ‘세계 500대 갑부’에서 추산한 로저스 회장의 총재산은 17억달러(약 1조8000억원)로 342위, <캐내디언 비즈니스>가 캐나다 부자들만 순위를 따로 매긴 결과는 10위로 기록됐다. 그가 다섯 살 때 38세의 나이로 요절한 선친이 남겨놓은 건 발렌타인 축하 카드 한 장밖에 없었지만 30세도 되기 전에 맨손으로 창업, 캐나다에서 보기 드문 성공적인 기업을 일구었다. 현재 로저스 회장은 지주회사의 지분 36.5%로 90.9%의 의결권을 행사하고 있다. 변형우선주를 허용하는 캐나다 상법에 따라 보유 주식의 3배 가까운 의결권을 보유한 셈이다.

 현재 로저스그룹의 계열군은 크게 네 갈래다. 지주회사인 로저스커뮤니케이션그룹 산하에 로저스케이블(Rogers Cable), 로저스이동통신(Rogers Wireless Communi cation), 로저스미디어(Rogers Media), 토론토블루제이스야구단(Toronto Blue Jays Baseball Club) 등을 두고 있는데 1만6000여명의 직원을 거느리고 있으며 2004년 1~9월까지의 매출액은 40억달러(약 4조1000억원), 순익은 12억달러(1조3000억원)를 기록하고 있다.

 이 중 캐나다 최대의 케이블 TV 업체인 로저스케이블은 비상장업체로 2004년 9월 말 현재 케이블 가입자가 230만명에 달하고, 초고속 인터넷 가입자는 100만명에 육박한다. 전국에 소비자를 직접 만나는 로저스 비디오 스토어 288개소를 두고 비디오 대여, 판매, 케이블 TV 및 인터넷 가입 등의 영업을 하고 있다. 토론토증권거래소(TSX)에서 거래되고 있는 로저스이동통신은 가입자가 390만명으로 캐나다에서 2위 업체였으나 마이크로셀 인수로 120만명의 가입자를 더 확보, 460만명의 가입자를 보유한 벨캐나다를 앞질렀다.

 이 회사는 마이크로셀 인수 작업이 마무리되는 대로 상장 폐지시킨다는 계획 아래 현재 소액주주들의 지분을 매입하겠다고 밝혀둔 상태다. 이에 앞서 모회사인 로저스커뮤니케이션그룹은 미국의 AT&T사가 보유하고 있던 로저스이동통신의 지분 34.1%, 4800만주를 주당 36.37달러, 총 18억달러를 주고 인수했다. 이렇게 지주회사가 90%의 지분을 보유한 다음 소액주주를 대상으로 ‘매수 청구권을 행사해 줄 것’을 발표한 것이다.

 매스컴 계열사인 로저스미디어는 산하에 방송그룹과 잡지그룹을 자회사로 두고 있다. 방송그룹에는 43개 라디오 방송과 홈쇼핑, 스포츠 채널, 다민족 채널(OMNI 1, 2) 등 5개 TV 방송을 자회사로 보유하고 있으며, 바이오그래피 채널, MSNBC 등 7개 채널에 출자해 둔 상태다. 로저스미디어의 잡지그룹은 캐나다 최대의 시사 주간지인 <맥클린>(Maclean’s)을 비롯해 70개 정기 간행물을 발행하고 있으며, 토론토 지역 일간지인 <토론토 선>(Toronto Sun)의 지분 65%도 보유하고 있다.



 선친은 북미 최초의 가정용 라디오 발명가

 로저스 회장은 본래 변호사를 꿈꾸던 법학도였지만 창업가(entrepreneur) 정신이 더 강한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발명가였지만 그는 ‘신기술을 발명한 사람이라기보다 이를 적절히 잘 활용한 인물’이라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토론토대학을 1956년 졸업하고 오스굿 로스쿨에서 수학한 뒤 ‘토리’라는 법무법인에서 계약직 비서로 일하던 1960년 그는 FM 방송(CHFI)을, 1962년에는 AM 방송(CFTR)을 설립한다. 이는 선친이 못 다 이룬 꿈을 성취하는 작업의 첫 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로저스 회장에게 선친은 ‘영원한 코치’다. 비록 직접적인 기억은 없지만 모친으로부터 아버지 생전의 모습과 일화를 자주 듣곤 했다고 한다. 로저스 회장의 선친 테드 로저스 1세(1900~1938년)는 1925년 북미 최초로 가정용 라디오 수신기를 발명하고 방송국을 설립했던 발명가이자 기업가. 지금이야 가정용 콘센트에 꽂아 쓰는 전기기구가 흔한 세상이지만 20세기 초반만 해도 건전지로만 라디오를 들을 수 있었고 이에 따라 라디오 청취 인구는 적었다. 

건전지가 귀한 물건이었던 데다 가격도 비쌌기 때문이다. 로저스 1세가 발명한 가정용 라디오는 불티나게 팔려 그의 나이 28세에 로저스머제스틱(Rogers Majestic)이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활발하게 사업을 펼쳐 나갔다. 하지만 38세에 갑자기 심장 동맥류(動脈瘤)로 요절, 아내와 아들은 나락(奈落)으로 떨어져야 했다.

 로저스 회장은 이때 상황과 관련해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석 달 만에 회사의 지분은 필립스 등 여러 회사에 팔리고 남은 건 발렌타인데이 축하 카드 하나뿐이었다”며 “그때부터 내겐 ‘생활’의 문제보다는 ‘생존’의 문제가 더 절실했다”고 최근 한 인터뷰에서 회상했다. 하지만 로저스 회장은 아버지의 도전정신만은 그대로 이어받았다. 로저스 회장은 “아버지는 한 번 하면 끝장을 보는 성격이었다고 하는데, 나도 그 기질을 고스란히 물려받았다”고 이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래서 로저스 회장의 일을 향한 열정과 목표가 잡혔을 때 몰아치는 집중력은 캐나다 재계에서 유명하다. 특히 그에게는 ‘업계 최초’ ‘없던 시장을 만들어낸 사람’이란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그가 1960년대 FM 방송국을 시작했을 때의 일화다. 당시 로저스 회장은 FM 방송이 수신 감도나 음질 등에 비춰봤을 때 충분히 승산이 있는 미래 산업, 즉 ‘뉴미디어’라고 판단했지만 문제는 FM 방송을 수신할 수 있는 라디오가 거의 보급돼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마치 ‘얼음도 없는 동네에서 아이스하키 팀을 만드는 것’과 유사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사업성이 있다고 판단한 이상 즉시 실행에 옮겨야만 직성이 풀리는 로저스 회장은 먼저 FM 방송 허가부터 받았다. 그리고는 미국 웨스팅하우스사에 대당 40달러 전후의 싼 FM 전용 라디오를 주문했다. 라디오가 납품되자 직접 소매점에 들고 가 원가보다 싼 값에 공급하는 한편, 잠재적인 청취자라고 생각되는 사람들에게는 거저 주기도 했다. 이렇게 시작된 FM 방송 CHFI는 2년 뒤 다른 AM 방송국을 살 만 한 돈을 벌어준 방송국으로 성장했다.

 1960년대 말 케이블 TV 사업을 시작했을 때도 그의 전략적 사고와 앞선 안목이 잘 드러났다. 당시만 해도 캐나다에는 ‘케이블 TV’에 대한 개념조차 희박했다. TV 방송은 안테나로 수신하는 것이지, ‘별도로 돈을 내야 한다’는 인식은 전무했던 시절이었다. 이때 로저스 회장은 우연찮은 기회에 케이블 TV에 대해 접하게 되고 이를 사업화시킬 궁리를 한다. 창업 이래 한 번도 로저스 회장이 제대로 쉴 생각을 하지 않고 일에만 매달리자 60년대 말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 아내가 반강제로 그를 설득해 끌다시피 오스트레일리아로 여행을 떠났다. 

  당시만 해도 국제전화 시설이 그리 좋지 않은데다 휴대폰도 없던 시절이어서 이곳에서 일을 잊고 가족들과 푹 쉴 거라고 아내는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이미 미국에서 시작된 케이블 사업 등 뉴미디어에 관한 책을 가져간 그는 휴가 기간 동안 이 책을 다 읽고 난 뒤 새로운 사업 구상을 한 것이다.

 휴가에서 돌아온 로저스 회장은 토론토 지역에 케이블 사업자 신청을 하게 된다. 이때 30여년 뒤 숙명적으로 다시 만나게 되는 맥클린앤헌터(Maclean & Hunter)사와 사업권을 두고 각축을 벌인 결과 로저스측이 따낸다. 로저스 회장은 이와 함께 벨캐나다(Bell Canada)사의 케이블망을 고스란히 인수하는 개가도 올린다. 당시 벨사는 전화 케이블을 깔면서 TV 수신용 케이블도 함께 일부 가설해 두었으나 이 부분의 사업성이 없다고 판단, 사업에서 철수하면서 이 망(網)을 거의 헐값에 로저스케이블로 넘긴 것이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1990년대 로저스케이블은 캐나다 최대 케이블 TV 업체로 성장했으며 이를 본 벨사는 부랴부랴 케이블 사업에 뛰어들려 했지만 추가 사업자를 선정하지 않는다는 정부 정책 때문에 위성방송으로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로저스 회장이 지난 1980년대 이동통신 사업자를 따낸 것도 ‘캐나다 최초’였다. 이때 로저스 회장은 참모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동통신 사업은 수익성이 높은 미래 산업’이라고 판단, 나중에 로저스이동통신(Rogers Wireless)으로 이름을 바꾼 캔텔(Cantel)이란 계열사를 1985년 설립하고 사업권을 따낸다. 설립 초기 자금과 기술력에서 자사보다 우월한 미국의 에이티앤티(AT&T)와 전략적 제휴를 결성한 로저스 회장은 20여년 뒤인 2004년 AT&T의 지분을 모두 인수하고 독립한다.  



 파이낸싱 연금술사, 두차례 금융위기 맞기도

 로저스 회장의 경영 스타일 중 또 다른 성공요인으로 ‘파이낸싱의 적절한 구사’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주식시장을 통한 자본금 증액(증자)보다는 은행 대출을 더 선호했다. 증자를 반복할 경우 지분율이 떨어지는데다 시간이 걸려서 급박한 인수 합병에는 잘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로저스 회장은 “자기 집을 저당 잡혀 보지 않은 사업가가 무슨 사업가냐”고 수시로 이야기한다. 이 말대로 그는 창업 초부터 자주 토론토 근교 자신의 단독주택을 은행에 담보로 제공하곤 했다. 이번에 인수에 성공한 마이크로셀의 매입 자금도 여러 금융기관의 컨소시엄 형태로 조달한 브릿지론이었다. 그런데 주로 금융권 대출로 자금을 운영하다 보면 지분율은 유지되겠지만 대우그룹의 예에서도 잘 드러나듯이 그만큼 위기에 봉착할 가능성도 커진다.

 로저스 회장은 지난 40여년간 숱한 금융전쟁을 치르면서 두 번의 큰 위기를 만났다. 하지만 로저스 회장은 이 위기를 즐기기까지 하면서 지금까지 슬기롭게 극복해 냈다. 1980년대 케이블 사업을 활발하게 확대할 때의 일이다. 1981년 미국의 한 케이블 회사(UA-Columbia Cable vision)를 인수하는 데 성공하면서 로저스케이블은 북미 최대의 케이블 회사로 발돋움한다. 문제는 인수 성공 이후 은행으로부터 크게 압박을 받게 됐다는 것이다. 불과 1500만달러에 불과하던 부채가 인수 직후 1억6400만달러로 늘어날 정도였으니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하필이면 당시 북미의 이자율이 상승일로를 걷게 되면서 로저스그룹은 거의 부도 위기에 봉착한다. 하지만 행운의 여신은 로저스 회장 편이었다.

 캐나다 내의 케이블 회사를 제외한 거의 모든 계열사를 팔다시피 하면서 자금 확보에 나섰으나 재무 상황은 거의 빈사 상태에 빠졌던 1981년 봄, 그는 ‘백기사’를 만나 기사회생하게 된다. 미국 내 자산 매각을 협의하기 위해 뉴욕으로 향하던 로저스 회장은 전용기의 기수를 로스앤젤레스로 돌린다. 베버리힐스에 있는 전설적인 투자가 마이클 밀켄(Michael Milken)을 방문하기 위해서였다.

 이때 로저스 회장을 수행했던 그래엄 세비지(Graham Savage) 전 부사장은 최근 이렇게 당시 상황을 회고했다.

 “우리는 당시 팔 수 있을 만한 계열사는 다 팔아대고 있었다. 마치 연료가 바닥나 고도가 점점 떨어지는 비행기를 부채질로 밀어 올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런데 마지막 기대를 안고 찾아간 밀켄의 딜링 룸에서 그룹이 회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의 이어지는 증언이다. “밀켄은 이때 전화 한 통으로 30분 만에 10억달러를 조달해서는 그 중 3억달러를 로저스 회장에게 쥐어 줬다. 이 자금으로 은행 대출을 막고 난 뒤 로저스그룹은 재도약할 수 있었다.” 그 자신 인수 합병(M&A)의 전문가였던 마이클 밀켄은 한눈에 로저스 회장의 의도와 행보를 파악하고 즉시 자금을 조달해 주었던 것이다. ‘금융계의 황제’란 칭송을 듣던 밀켄은 그로부터 8년 뒤 뉴욕주 검사였던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에게 기소당해 금융계에서 퇴장해 버렸지만 로저스 회장에게는 적절한 타이밍에 구원의 손길을 보냈던 ‘백기사’였던 셈이다.

 또 한 번의 위기는 1994년 맥클린앤헌터그룹 인수 때 닥쳐왔다. 인수 대금으로 잡은 31억달러를 조달하기 위해 그는 은행 컨소시엄에서 20억달러, 이전 대출에서 충당한 7억4000만달러, 주식 발행 잉여금 2억7000만달러, 단기 대여금 1억4800만달러 등을 동원했다. 하지만 예상 밖의 저항으로 1개월 안에 끝날 줄 알았던 인수 작업이 지체되면서 이자가 엄청나게 불어나 또다시 곤경에 빠진 것이다. 그렇지만 이번에도 로저스 회장의 승리였다. 시간을 끌던 맥클린측이 태도를 바꿔 백기투항하면서 인수가 완료되자마자 그는 맥클린이 소유했던 유럽의 출판법인 등 계열사를 속속 매각, 31억달러의 자금 중 모두 24억달러를 순식간에 갚아 버린다. 1차 매각이 끝난 뒤 2차 매각을 통해 토론토 선, 맥클린 등 정기 간행물 및 4개 라디오방송국만 남기고 나머지 계열사와 자산을 완전히 처분하는 데 성공해 모기업인 로저스커뮤니케이션의 재정까지 알차게 변신시켰다. 인수와 매각에 걸린 8개월이 지난 뒤 1995년 초에 나온 ‘1994년 사업 보고서’에 따르면 로저스커뮤니케이션의 매출액은 전년도에 비해 68%나 향상됐으며 순이익 역시 60% 이상 호전됐다. 이 실적에서 맥클린 계열사 실적을 제외하고도 매출액과 순익은 각각 전년에 비해 16.5%, 30% 좋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인수와 매각 작업을 통해 알짜배기 계열사를 확보한 것은 물론 모회사의 재무 구조까지 탄탄해지는 ‘두 토끼를 잡은’ 셈이다.

 일부 금융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로저스 회장의 행보를 ‘아주 위험한 파이낸싱’이라고 공격하는 사람들도 물론 있다. 은행장들조차 로저스 회장의 전화를 받으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때가 많았다고 한다.

 전 TD은행장 로버트 코델스(Robert Korthels)는 최근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로저스 회장에 대해 “테드와 거래한다는 건 은행원들에게는 유격훈련을 받는 것과도 같다”고 표현했다. 그는 “로저스그룹의 계좌는 언제나 펄펄 끓는 용광로 같았다”며 “재미도 있었지만 가슴을 졸인 적도 많다”고 말했다. 하지만 로저스 회장은 이런 지적에 전혀 요동하지 않는다. 1998년에도 비슷한 방식으로 이동통신 사업을 확장했을 때 동일한 지적이 금융가에서 제기됐고 이 때문에 주가가 6달러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불과 2년 뒤 주가는 50달러를 넘어섰고 지금은 25달러 전후에서 매매되고 있다. 로저스 회장은 “봐라. 내가 언제 실수한 적 있느냐”고 외치는 듯하다. 분석가들이 아무리 불안하다고 해도 ‘위험이 없으면 이익도 없다’는 그의 행보에는 거침이 없다.

 물론 로저스 회장이 파이낸싱에만 매달려 본원적인 사업 판단을 소홀히 한 것은 아니다. 언제나 업계 최고를 목표로 끊임없이 달리고 있는 것이다. 그는 1989년 케이블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하면서 임직원에게 “한 분야에서 1등을 하지 않으면 자멸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 바 있다. 당시로서는 막대한 규모인 5억2500만달러 규모의 기능 향상 작업을 시작하면서 임직원에게 던진 이 말 속에서 목표를 잡고 나면 절대 옆을 돌아보지 않는 그의 스타일을 짐작할 수 있다.

 44년 전 라디오 방송국을 설립한 이후 로저스그룹의 성장 과정은 ‘인수 합병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특히 자신보다 덩치 큰 경쟁자를 만났을 때 로저스 회장은 합병이란 무기로 경쟁자를 제패하는 과단성을 보여주곤 했다.

 1994년 인수한 맥클린앤헌터도 당시 로저스그룹 외형의 2배가 넘는 것은 물론 107년 역사를 자랑하며 산하에 70여개 잡지사와 미국에도 케이블망을 갖춘 탄탄한 미디어 그룹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맥클린앤헌터를 대상으로 ‘31억달러에 적대적 인수를 하겠다’고 로저스 회장은 공개 선언한 것이다.

 맥클린그룹의 경영진은 즉각 ‘포이즌 필’(Poison Pill), 즉 ‘기업의 자산 가치를 고의적으로 감소시키는 전술’을 펼치는 한편, 백기사(White Knight; 자신에게 우호적인 성향을 지닌 지원 자금)들을 규합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로저스 회장은 이미 맥클린 경영진의 대응 전략을 미리 내다보고 예상되는 우군 회사들에 읍소반, 협박반으로 대비를 해둔 터였다. 맥클린의 론 오스본(Ron Osborne) 회장이 동조자들을 찾았을 때 들을 수 있었던 답변은 한결같이 “여유가 없다”는 것뿐이었다. 결국 맥클린측의 백기투항으로 인수전은 끝난다. 그런데 인수전을 선포할 때만 해도 로저스 회장은 “맥클린그룹의 경영진의 신상은 보장될 것”이라고 공언했지만 인수 합의서의 서명이 채 마르기도 전에 오스본 회장 등 경영진은 축출되고 이로 인해 ‘냉혈한(冷血漢) 테드’란 악명을 얻게 된다.

 1990년대에 두 번이나 월드시리즈(미국 프로야구 결승전)를 제패한 토론토블루제이스 인수도 로저스그룹의 중요한 이정표였다. 2000년 1억6000만달러를 주고 인터브루라는 맥주회사로부터 블루제이스를 매입, 그룹 이미지 제고에 큰 도움을 입은 것은 물론 최근에는 전용구장을 헐값에 사들이는 개가도 올렸다. 2004년 11월29일 토론토 시는 “2500만달러에 스카이돔을 블루제이스구단에 매각한다”고 발표했다. 스카이돔은 북미 최초의 개폐식 지붕을 가진 구장으로서 1989년 6억달러의 건설 비용이 들었으니 인플레 요인을 제외한 단순 계산으로도 불과 건설비의 5%도 안 되는 가격에 인수하는 것이다. 일부 언론에서 이 거래를 두고 ‘블루제이스가 스카이돔을 훔쳐갔다’는 표현을 사용할 정도였지만 야구장 소유주인 스포츠코(Sportsco)사가 부도로 법정 관리 중인 상태인데다 ‘블루제이스를 위한 전용구장’이라는 명분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현재 업계에서는 ‘조만간 로저스 회장이 구장을 몇 곱절로 튀겨서 팔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로저스 회장은 창업 이후 지금까지 철저하게 일에 빠져서 산 사람이다. 마치 루퍼트 머독(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미디어 재벌, 미국 폭스 채널과 영국의 <더 타임스>, LA 다저스구단 등을 소유하고 있다)과 같은 일중독 증상은 여러 곳에서 확인된다. 1988년 동맥류 수술을 받은 직후 그는 병상에 꼿꼿하게 앉아 서류를 검토했다. 동맥류는 그의 아버지가 38세에 요절하게 된 원인이어서 의사들이 좀 더 요양을 권했지만 ‘바쁘다’며 퇴원하는 순간까지 일을 한 것이다. 심지어는 1992년 심장 관상동맥 우회술(최근 클린턴 전 대통령이 받은 심장 수술)을 받았을 당시에는 마취도 깨기 전에 임원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구술했고 퇴원하는 순간까지 전화로 지시를 내렸다. 당시 한 기자가 계열사의 대표이사에게 “로저스 회장이 언제 복귀하는가?”라고 물었을 때 “복귀라니? 어제도 나랑 네 시간이나 전화통화를 했는데 언제 회사를 비우기라도 했나?”라고 반문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70세 은퇴’ 번복하고 진두지휘. 벨캐나다그룹과 최종 승부 벌일 듯

 이제 로저스 회장은 새로운 전쟁을 시작했다. 전화가 발명된 지 100년이 지난 오늘 로저스 회장은 ‘인터넷’과 ‘광섬유’라는 뉴미디어로 무장하고 전화사업으로 기업 역사를 쓰기 시작한 골리앗(벨캐나다그룹)을 향해 전열을 다지고 있는 것이다. 벨캐나다그룹은 매출액 190억달러, 순익 17억달러, 직원 수 13만명으로 로저스그룹에 비하면 열 배 이상의 외형을 지닌 ‘공룡’기업이다. 그러나 외형은 비록 큰 격차를 보이고 있지만 매출액 대비 이익률만 따지면 벨과 로저스 그룹은 각각 8.9%와 30%로 로저스그룹 입장에서는 ‘붙어볼 만한 경쟁자’이다.

 로저스 회장의 최종 목표가 벨캐나다그룹이라는 사실은 2004년 초 로저스케이블을 통해 인터넷폰(VoiP) 시장에 진출한다고 밝혔을 때 잠깐 언급됐다. 당시 로저스 회장은 “2억달러를 들여 토론토지역 180만 케이블 가입자에게 2005년 중반까지 일반 전화망을 구축할 것”이라며 “벨은 이미 전화사업을 한 지 100년이나 되지 않았느냐”고 말해 벨의 사업 영역을 탈환할 것이라는 점을 시사한 바 있다. 하지만 이렇게 빠른 시일 내에 통신업계의 각 분야에서 벨을 위협하리라고는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여기에다 캐나다의 선두 방송그룹인 벨글로브미디어(Bell Globe Media)를 로저스그룹이 탐을 내고 있다는 소문도 오래 전부터 나돌고 있다. 벨글로브미디어는 산하에 캐나다 1위 전국 일간지인 <글로브 앤 메일>(Globe and Mail), 지상파 방송 CTV 등을 보유한 벨캐나다그룹의 미디어 계열사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 요즘 ‘골리앗’도 ‘다윗’의 공격에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벨그룹의 계열사인 벨이동통신은 최근 캐나다 주요 일간지에 “로저스 가입자가 해약하고 벨에 가입할 경우 신형 카메라폰을 무료로 주고 초저가 요금제를 적용한다”는 광고를 내고 회원 확보 전쟁에 나섰다.

 70세가 되는 2004년에 은퇴하겠다던 발표도 번복하고 현역에서 로저스그룹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인수 합병의 달인’ 로저스 회장의 마지막 전투는 ‘벨캐나다그룹’이라는 중원(中原)은 아닐지 캐나다 재계가 숨죽이고 지켜보고 있다.

박형진 미주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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